오승환(서울 목일중학교 교사)


이 이야기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 교원교류를 위해 남측 전교조를 비롯한 130명의 `북한교육견학단`이 7월 29일부터 8월 2일까지 4박5일간 방북했을 때, 필자가가 평양에서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쓴 방북기입니다. 필자의 요구와 여건에 따라 8월11일자로 `기고문`에서 `교사들의 통일이야기`로 난을 바꿉니다. - 편집자 주

▶[사진제공 - 오승환]

내 아들아.
아버지는 이번에 전교조 평양방문단으로 북쪽 땅에 들어섰다. 고려항공 비행기를 타고 왔고, `민족내부의 이동`이니까 비자라는 것도 필요 없단다.

이왕 북쪽 땅을 디딜 바에 반도의 허리를 옥죄는 휴전선을 훌훌 걷어버리고 걸어서... 또 그렇게 걸어서, 민족의 땅을 두 발로 내딛으며 평양에 왔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앞으로 너희들은 그렇게 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통일을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며 찾아보아라. 북의 인민학교, 중학교에서 만난 네 또래의 아이들은 너처럼 순진하고, 맑은 눈동자더라. 허나 너처럼 안경을 쓴 아이들은 못봤다. 쉴 틈 없이 마구 공부를 해야되는 남쪽의 아이들...

북녘의 아이들은 노래와 춤, 악기연주에 무척 재간이 많은 것 같다. 본디 우리 민족은 가무를 즐기며, 풍류를 아는 문화민족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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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영아, 너도 문화예술을 가까이 해라. 이 애비는 미술교사로 그림을 잘 그리는데, 너도 공부만 하지말고 뭐든 한가지를 꼭 배우고 지녀, 그것을 통하여 민족과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하여라.

백두산이다!
온 겨레가 보고싶어하는 백두산. 감격! 감격!
발 아래에 짙푸른 천지가 민족의 정기를 내뿜고 있다.

백두산에서 내려오는 길.
그 기슭에서 갖은 자태를 뽐내는 들꽃에 묻혀 점심도시락을 들며 생각한다. 백두의 한 자락에 앉아 점심과 휴식을 취하며, 남쪽의 여의도광장 집회를 떠올린다. 아스팔트 위에서 머리띠 두르고 구호를 외치며 먹었던 도시락도 좋았지만, 여기 백두 들녘에서 가슴속 깊이 구호를 외친다.

"민족통일, 자주통일, 민족단결."
아들아. 같이 외치자꾸나. 어른 아이가, 남자 여자가 따로 없다. 함께 외치자!

그 언제인가!
애국열사들이 이 기슭에서 외세에 맞서 항일 독립투쟁을 할 때 눈 쌓인, 들꽃 만발한, 백두호랑이 포효하던 이 벌판에서 뜨거운 눈물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조국광복을 다짐했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남아답고 멋들어진 기상이냐. 그것만이 최상이다.

아들아.
눈을 들어 멀리 보아라. 백두의 정기를 느껴 보아라. 근시안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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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말 일본놈과 외세의 폭압이 우리를 얼마나 유린하였으며, 우리 형제 그 몇이나 죽임을 당하며 오욕의 세월을 살았는지 너는 알아야 한다.

이상한 반민족적인 놈들의 말도 안되는 작태들은 행여 꿈에도 흉내내지 말고, 우리가 알아야 하고 행하여야 할 본질을 너는 알지 않느냐. 애비가 평소에 하던 말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우리가 서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둘이서 눈을 마주 대고 "동지!"라고 부른 것이 이제는 익숙해졌느냐. 너와 나는 뜻을 같이하는 `동지`인 것이니 나의 마음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북쪽의 `리광남`이나 남쪽의 `오세영`이나 뭐가 다르더냐.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푸르고 아름다운 땅별(지구)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회상황일 뿐이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지 말고 같은 곳을 바라보자. `입장의 동일함` 만이 최상의 길인 것이다. 아버지가 좀 자세히 구체적으로 써야 중학교 1학년인 네가 쉽게 이해하겠지만, 명석한 우리 아들이니 잘 이해할 줄 믿는다.

묘향산 가는 길목에서, 창광거리에서, 평양지하철역에서, 옥류관에서 나는 너를 보고 있다. 여기서 만나는 이들마다 감격으로 뜨거운 눈물로 굳게 손을 잡는다.
"우리 통일합시다."

▶[사진제공 - 오승환]

평양의 학교에서 남북 교원들과 북쪽 아이들과 함께 운동회를 했다. `민족공조팀`, `민족자주팀`으로 나누어 응원소리 드높였던 모습대로 손잡고 힘차게 외쳐보자.
"민족통일, 자주통일, 민족대단결"

나도 북녘아이와 함께 손잡고 달리기에 참가하여 상품(물고기 두 마리가 함께 헤엄치는 모습의 도자기)도 받았다.

얼마후면 다시 남쪽의 네 곁으로 내려간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묘한 기분이 든단다. 평양순안비행장 고려항공의 `안내원 동무`가 눈물범벅인 얼굴로 손을 흔든다.
"다시 만납시다. 통일합시다."

아들아 너하고도 잠시 `분단의 현실`을 맛봐야만 했다. 숙소에서 네게 전화를 하고픈데 전세계 곳곳에 전화통화가 가능한데 바로 코밑에 있는 너하고는 전화 한 통 할 길이 없으니... 그저 한숨만 나오더라... 보고 싶은 우리 아들...

돌아가는 길에 예쁜 평양산 `치마 저고리` 인형을 사 가지고 가마. 기다려라.

2003. 8. 2.  조국의 하늘을 보며  아버지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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