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동시에 완독률이 가장 낮은 책은 성경이라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말이다.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인내심이 필요할지 모른다.

올해 2024년은 KAL858기 사건 발생 37년이 된다. 당국의 입장과 달리, 사건을 둘러싼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복잡하게 이야기할 필요 없다. 2020년 초 발견된 미얀마(버마) 앞 바다의 기체 추정 물체를 아직도 인양 못 한 현실이 말해준다. 진실규명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준 소식은 사라져버린 듯하다. 그럼에도 인내심을 갖고 희망을 얘기하려 한다.

절반 이상이 비공개된 KAL858 문서

외교부 KAL858 문서 350여 쪽 가운데 “공란”으로 처리된 부분은 190여 쪽이다. 자료의 절반 이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외교부 KAL858 문서 350여 쪽 가운데 “공란”으로 처리된 부분은 190여 쪽이다. 자료의 절반 이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이런 마음으로 외교부가 공개한 KAL858기 문서를 봤다. 30년이 지난 문서를 공개하기로 한 원칙에 따른 것으로, 모두 350여 쪽이다. 지난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문서는 정보공개 청구로 2016년 직접 열람했던 자료들을 포함한다. 그런데 희망을 생각하던 나는 무엇보다 당혹감과 실망감을 느꼈다. 350여 쪽 가운데 “공란”으로 처리된 부분이 190여 쪽이다. 자료의 절반 이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3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공개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더 가지라는 하늘의 뜻인가? 30년 공개 원칙을 제대로 안 지킨 외교부의 잘못인가? 아니면, KAL858기 사건이 그만큼 민감한 사건이라는 의미인가? 복잡한 심정으로 이번에 살펴본 문서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987년 12월 1일 외교부의 국제법규과는 “대한항공 858기 실종사건에 따른 관할권 및 범죄인인도문제 검토(안)” 문건을 작성했다. 먼저, 사건을 “실종사건”이라고 부른 점이 주목된다. 시작 부분에서도 비행기가 “방콕 도착전 실종되었”다고 명시했다(2016070055, 3쪽).

사건 뒤 바로 “대북한 응징방안” 고민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외교부는 “대북한 응징방안 강구 촉구”라는 표현을 쓰며 이 사건이 북에 의한 사건이라고 비교적 분명히 했다. KAL858기는 1987년 11월 29일 실종되었으므로 12월 1일은 겨우 이틀이 지난 때였다. 그런데 사건이 북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이 깊어지는 대목이 있다. 외교부는 “주요 항공기 폭발 테러사례”를 정리했는데 모두 네 가지였다. 첫째는 1985년 6월 인도 항공 소속 보잉기, 둘째는 1986년 4월 TWA 소속 보잉기, 셋째는 1986년 5월 에어랑카 소속 트라이스터 여객기, 넷째는 1986년 12월 이라크항공 소속 보잉기 사건이었다.

이 가운데 첫째, 둘째, 셋째 사건은 각각 “테러가능성 추정”, “아랍테러리스트 소행으로 추정”, “타밀게릴라 소행으로 추정”으로 표현했다(2016070055, 15쪽). 다시 말해, 1987년 12월 기준 최대 2년 이상 된 사건의 테러 여부도 “추정”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 된 사건 관련해 “대북한 응징”을 한다며 테러 여부와 주체를 확신할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조심스럽다.

위령제를 사건 “활용가능 방법”으로 간주

다른 부분은 몰라도 “위령제”를 사건의 “활용가능 방법”으로 간주했다는 점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위령제”를 사건의 “활용가능 방법”으로 간주했다는 점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1987년 12월 3일, 외교부는 “사건이 북한 또는 북한의 조정을 받은 조총련, 테러단체 등의 소행임이 드러날 경우 단계적으로 북한의 야만적인 테러행위를 규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구체적 방법으로 “북한규탄 성명, 담화 등 발표”와 “범국민적 규탄대회”가 제시됐다. 첫째 방안은 6단계로 이루어졌고 둘째 방안은 2단계로 이루어졌는데, 첫 방안이 매우 구체적이다.

각 단계는 “수사결과, 북한관련 사실이 최초로 드러났을 때”(1단계)를 시작으로, “수사내용에 대한 최초 북한 반응시”(3단계), “재판결과 발표시”(5단계), “재판결과에 대한 북한 반응시”(6단계) 등으로 구성된다. 2단계가 주목되는데, “희생자 합동위령제 거행시”다. 이 경우 “대통령각하 또는 국무총리 연설”이 있을 예정이었다(2016070055, 33쪽).

다른 부분은 몰라도, “위령제”를 사건의 “활용가능 방법”으로 간주했다는 점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같은 쪽). 국민의 고통은 그렇게 소비되고 정쟁화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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