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1987년 12월 9일, 외교부는 문건을 하나 작성했는데 비밀문서라는 뜻의 “秘” 표시가 있다. 제목은 “KAL기 실종 사건 개요”다. 이 자료는 다른 문서와 달리 경어체로 쓰였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듯이”라는 문구로 추정컨대, 기자회견 또는 관계부처회의 자료인 듯하다(2016070055, 119쪽).
바다 아닌 산을 수색한 치명적 잘못
향후 대책 가운데 수색활동 부분이 주목된다. “현지 수색 지역이 해발 1,000-1,200m의 산맥 밀림지역으로 활동에 장애가 있읍니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수색 활동이 불가피하게 장기화 될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2016070055, 123쪽).
잘 알려져 있듯, 당시 정부는 초기에 실종 추정 지점인 바다가 아니라, 산악지대 수색에 집중했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박강성주, 『눈 오는 날의 무지개: 김현희-KAL858기 사건과 비밀문서』, 295쪽). 이 치명적 잘못이 외교부가 비밀문서로 작성했던 문건에도 고스란히 기록됐다. 참고로, 2020년 초 기체 추정 물체 역시 산이 아닌 바다에서 발견됐다.
1988년 2월 10일, 당시 유엔 주재 한국대사는 “KAL기 사건(안보리 제기)”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한다. 이는 3급 비밀문서로 한국 특파원 5명을 유엔대표부에 초대해 안보리 소집 관련 설명을 한 뒤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는 내용이다(2017060057, 93쪽). 정부가 언론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던 노력으로 보인다.
“실종사건”에서 “폭파사건”으로
1988년 2월 11일에도 유엔 주재 한국대사가 문건을 작성한다. 제목은 “칼 폭파사건(본부 출장 직원)”이다. 앞선 문건과 달리 제목의 “폭파사건”이란 표현이 주목된다(2017060057, 105쪽). 1988년 1월 15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는 공식 수사결과를 발표했는데 북쪽 김현희 일행의 폭탄 테러라고 밝혔다. 실종사건이 아닌, 북에 의한 폭파사건으로 성격이 분명해진 것이다.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는 1988년 2월 16일∼17일 이틀 동안 열렸는데, 외교부로서는 대표단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도 고민이었다(2017060057, 96∼102쪽). 특히 수석대표를 누구로 할 것이냐가 관건이었는데, 최광수 당시 외무부장관이 직접 나서게 된다. 참고로 북의 경우 박길연 당시 유엔 주재 대사가 수석대표로 나섰다.
외교력 총동원에도 유엔 좋은 결과 없어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당시 한국의 경우에는 장관을 핵심으로 하는 외교력을 ‘총동원’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애초 원했던 만큼의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했다”(박강성주,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 156쪽).
이번 자료에는 유엔에 제출된, 공식 수사결과의 영어 번역본도 있다. 내용은 이미 알려진 것들이다(박강성주, 『슬픈 쌍둥이의 눈물: 김현희-KAL858기 사건과 국제관계학』, 217∼221쪽).
덧붙이면, 이번 외교부 자료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 안보리 회의는 “‘조건’은 북한에게 불리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북한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부결 가능성이 우려돼 대북 규탄 결의안이 추진되지 않았고, 회의에 참여한 많은 국가가 중립적 위치를 지키거나, 한국의 입장을 비판했기 때문이다(박강성주,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146∼157쪽).
결의안 문제의 경우, 이번 자료에서 “안보리 소집의 실익 검토”, “거부권 행사가 예상” 등과 같은 문구에서 그 우려를 확인할 수 있다(2016070055, 31쪽).
중요한 KAL858기, 중요한 재조사
1987년 11월 29일에 일어난 KAL858기 사건은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북풍’의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당시 제13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2024년 4월 10일에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있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언론들은 KAL858기 사건을 거론했다. 예컨대, 한국일보(2024년 1월 14일), 문화일보(2024년 1월 19일), 일요서울(2024년 1월 19일), 아시아경제(2024년 1월 26일), YTN(2024년 1월 31일), 국민일보(2024년 2월 24일) 등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건에 의문점들이 존재한다면, 특히 기체 추정 물체가 바다에 있다고 알려졌다면, 그에 합당한 재조사가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KAL858기는 지금도, 우리 곁을 날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