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왜 떠나느냐고 묻거든

12월 27일 저녁 8시 40분 로스앤젤레스 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집에서 마지막 짐을 챙겼다. 가급적 짐을 가볍게 하기로 했다. 어깨에 메는 작은 배낭과 작은 캐리어는 10Kg 이내로 맞추기로 했다. 저가항공의 경우 짐을 발송할 경우 몇 만원에서 십만 원이 넘은 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짐을 부치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도 있고,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걸려 모두 들고 항공기에 타기로 했다.

그래도 책 한 권은 가져가야지 생각했다. 시인 김남주가 하이네, 브레히트, 네루다의 시들을 번역해 엮은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챙겨두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다가 잊어먹고 그냥 두고 떠났다. 여행하는 동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걸 가져갔다고 제대로 읽었을는지는 모르겠다.

집을 떠나기 직전 컵을 떨어뜨려 손잡이가 깨졌다. 기분이 약간 찜찜했지만 별일이야 있겠나. 하고 떠났다. 나는 집을 떠날 때마다 현관을 나서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라고 속으로 자문해 보곤 한다. 아내는 내가 떠난다고 오늘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나를 배웅했다. 아내에게 잘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현관을 나섰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겠지?

남미 여행을 간다니까 여러 사람이 물었다. 굳이 그 먼 데를 왜 가느냐고. 사실 나도 그 먼 데를 왜 가야 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굳이 답을 하자면 ‘지금이 아니면 가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시골에 살며 누구네 아들, 누구네 딸이 야반에 서울로 튀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럴 때면 나도 이곳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엄두도 못 냈다. 읍내에 있는 영화관에 한번 가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대학에 가면서 서울로 오기 전까지 말 그대로 산골촌놈으로 살았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 뒤에도 여행은 생각도 못했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럴 마음의 여유도, 경제적 여력도 없었다. 여행을 사치라고만 생각하고 살았다.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한국에도 볼 게 많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이라도 기회가 되면 여행을 자주 하고 싶다. 자유인으로 살고 싶은 열망이 있었던 모양이다. 젊었다면 여행 작가로 사는 것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내가 여행 작가 기질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다시 읽었다. 세계일주는 아니지만 남미를 간다는 것은 약간의 모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청소년용으로 알려졌지만, 그 작품이 나올 때는 그런 목적이 아니었다. 성인을 위한 모험담이다. 이번 여행을 두고 일말의 기대와 설렘도 있었다. 여행이 어떻게 펼쳐질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하기는 했다.

인천에서 페루 리마로 가기 위해 미국 LA에서 한번 환승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조금 더 싸게 가기 위해서는 두 번 정도 경유, 환승할 수도 있었지만, 한번만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LA까지는 아시아나 항공을, LA-리마는 LATAM 항공(칠레의 LAN 항공과 브리질의 TAM 항공이 합병해서 탄생한 남미 최대의 항공사로 본사는 칠레의 산티아고에 있다)을 타기로 결정됐다. 아시아나는 이미 좌석을 배정받은 상태였지만, 라탐은 좌석을 배정받지 못했다. 공항으로 가기 전 인터넷으로 수차에 걸쳐 좌석 배정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인천공항에서 LA행을 체크인하면서 물었더니 LA-리마행 티켓은 환승하면서 현지에서 받으라고 한다.

우리를 싣고 갈 아시아나 항공기의 인천공항 출발 전 모습. [사진-임영태]
우리를 싣고 갈 아시아나 항공기의 인천공항 출발 전 모습. [사진-임영태]

환승을 위해 대기 중

밤 8시 40분 아시아나 OZ204기가 인천공향을 이륙했다. LA 도착 예정시간은 미국 서부시간으로 27일 오후 2시 50분이다. 비행시간은 11시간 10분으로 예정돼 있다. 미국 서부시간과 한국의 시차는 17시간으로 한국이 17시간 빠르다. 날짜 변경선을 지나기 때문에 하루가 늘어나게 된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하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있으면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구치소에서 출정 나가거나 검치를 나가서 법원, 검찰청 좁은 비둘기장에 하루종일 갇혀 있을 때의 기분과 닮았다. 0.7평 독방에 갇힌 기분도 비슷한 면이 있다. 다리도 펴지 못하고 화장실 한번 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은 육체적으로 포획당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폐쇄공포증이나 고소공포증이 심한 사람은 비행기를 타는 일이 매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그게 싫어서 해외여행을 아예 안(못) 가는 사람도 있다.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은 좀 다르겠지? 언제 그런 좌석을 한 번 타 볼 수 있을까?

이제 비행기라는 하늘 감옥에 10시간 이상 갇힌 채 1만 킬로 가까운 거리(대략 9,500킬로)를 가야 한다. 사람들은 무얼 위해 이처럼 자유를 유보당한 채 그 먼 길을 떠나는 것일까? 비행기가 아니면 사실상 외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을 위해서는 이 정도의 부자유, 불편쯤은 기꺼이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비행기를 발명하지 못했다면 인간의 삶과 지구의 운명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대규모 인력이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비행기가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처럼 지구 환경의 파괴도 심각한 상황에 이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금처럼 누구나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면, 자연 보존이 훨씬 쉽지 않았을까?

그리고 엄청난 인명 살상과 문명 파괴를 불러오는 전쟁도 그 양상도 달랐을 것이다. 몽골기병이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했지만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대륙까지는 가지 못했다. 오늘날 세계 전역에 군사기지를 둔 미국은 세계 어디서든지 전쟁을 벌일 수 있다. 미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군도 아프리카에서 작전을 쉽게 벌일 수 있다. 이건 모두 비행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해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파괴의 수단이 되는 것은 공중폭격이다. 비행기를 발명하지 못했다면 인류가 지구 밖으로 나가서 우주를 정복하겠다는 것은 상상 속에서만 남았을 일이다.

태평양을 건너서[사진-임영태]
태평양을 건너서[사진-임영태]
[사진-임영태]
공중에서 본 LA. [사진-임영태]

태평양을 횡단해 11시간 넘게 비행하는 동안 기내식이 두 번 나왔다. 비빔밥과 닭고기 중에서 선택하라고 해서 닭고기를 택했다. 하지만 바로 후회했다. 비빔밥을 먹을 걸. 두 번째는 비빔밥이 없어서 결국 비빔밥은 못 먹었다.

비행기는 예정된 시각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환승을 위해 입국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1시간 반 넘게 기다려야 했다. 짜증이 난다. 속으로 욕지기가 절로 나온다. 몇 번 되지도 않지만 미국에 갈 때마다 이런 기분이다. 입국 심사에서 대놓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다. 누구나 미국으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을 텐데 그래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미국으로 몰려든다.

입국 수속을 끝낸 뒤 라탐 항공에서 체크인하고 티켓을 받았다. 30분도 안 걸렸다. 인터넷으로 미리 신청하지 않아서 따로따로 앉아서 가야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나란히 자리를 배정받아 다행이었다. 저녁 8시 10분 출발이어서 시간이 넉넉했다. 그래도 환승 시간이 짧았다면 당황했을 것이다. 미국 공항에서 환승하려면 최소한 5시간 정도는 여유를 두어야 할 것 같다.

배가 고파서 뭘 좀 먹기로 했다. 샌드위치와 콜라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 가격이 너무 비싸다. 샌드위치 2개에 25.9달러, 작은 콜라 2병에 10달러, 부가세 3.41달러 해서 모두 39.31달러다. 환율을 1달러=1,350으로 계산하면, 총 53,200원이 되는 셈이다. 샌드위치 하나에 17,480원, 콜라 작은 병 하나에 6,750원이다.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미국경제가 잘 돌아가고 고용지표도 좋다고 난리다. 군사력과 정치적 압박 같은 경제외적 강제를 동원해 반도체, 2차전지 등 첨단 산업 공장을 미국에 증설하라고 압박하면서, 또 중국을 따돌림시키기 위한 ‘자유-가치동맹’을 ‘서방국가들’(한국과 일본, 대만을 포함해)에 강요하면서 전부 미국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니 미국경제가 호황일 수밖에. 물론 첨단 기술 경쟁에서 미국이 원천기술을 갖고 독주하고 있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경제가 좋다고 하지만 인플레가 너무 심하다. 그 때문에 마구 올린 금리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발국가는 물론이고 한국이나 독일, 일본 같은 이른바 선진국가들도 미국에게 뜯기고 있다. 미국경제만 호황인 상황을 지켜보며 이들 나라, 특히 한국은 찍 소리도 못하고 있다.

정말이지 물가가 장난이 아니구나. 우리도 물가, 특히 생필품 가격 때문에 난리다. 임금이 올라도 인플레가 이 정도면 소득을 다 빨아갈 것이다. 미국이야 호황이어서 견딜만하다 해도 한국은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있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있다. 쓸 돈이 없다. 소비를 줄여야 한다. 월급쟁이가 지갑을 열지 않는다. 자영업자가 가장 죽을 지경이다.

서너 시간만 참으면 기내식이 나올 텐데, 좀 참을 걸 그랬나? 샌드위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옆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흑인여성이 훌쩍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종이에 스케치 같은 걸 하다가 얼굴을 숙이고 눈물을 찍어낸다. 무슨 사연일까? 실연을 당했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LA 공항 식당 모습. [사진-임영태]
LA 공항 식당 모습. [사진-임영태]

페루 수도 리마로

허기를 때우고 이야기를 나누다 출국장으로 향했다. 다시 신발까지 벗으며 기분 나쁜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면세점이 늘어선 곳에 서점이 보인다. 그곳에서 친구에게 줄 책갈피를 10장 샀다. 책갈피만 모으는 친구가 있다. 여행을 갈 때마다 술도 아니고 담배도 아니고 책갈피 노래를 부르는 ‘이상한’(?) 친구다. 책갈피 하나에 2.5달러씩 25달러, 부가세 2.3달러 해서 27.3달러를 냈다. 한때 한국에서는 책갈피를 공짜로 막 줬는데... 물론 지금은 한국도 사정이 달라졌지만.

보딩 게이트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평소 느긋한 이 대표가 웬일인지 빨리 줄을 서자고 한다. 그래 봐야 우리 티켓은 5그룹이어서 마지막이다. 그래도 5그룹 중에서는 선두에 자리를 잡아 빨리 비행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잘한 일이었다. 선반에 캐리어를 올리고 좌석 아래에 가방을 넣어놓고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제가 생겼다. 이 대표 좌석번호와 동일한 좌석티켓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 것. 딱 보아도 우리와는 달리 찐 배낭여행객 모습을 하고 용량이 큰 배낭을 멘 사람이 와서는 티켓을 내미는데 좌석번호가 같다. 승무원이 와서 티켓과 여권 사진 찍어 가고,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난리다. 그 승객은 승무원을 잡고 뭐라고 하소연을 하고... 하지만 우리는 그냥 모른 채 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우리 자리는 있으니 답답할 게 없다. 한동안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그래도 자리 문제가 해결이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승객과 이 대표의 영문명이 동일했다. 한글 이름은 달랐는데도. 그 승객은 서울서 인터넷으로 체크인 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우리가 현지 공항에서 체크인할 때 동일한 영문명이 떠니까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냥 티켓을 뽑아주었던 모양이다. 항공사 직원의 실수였던 셈인데, 덕분에 우리는 나란히 좌석을 배정받아서 8시간이나 걸리는 비행시간 동안 덜 지루하게 비행할 수 있었다.

집을 떠나며 컵을 깬 일은 이걸로 액땜을 한 셈이다. 앞으로 남미 저가항공을 계속 타야 하는데 무조건 빨리 줄을 서서 먼저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 장땡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2월 28일 오전 7시 20분경 LA535편으로 페루 리마공항(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 예정 시간이 8시간 10분이었는데 거의 맞았다. 인천에서 리마까지 오는데 비행시간만 20시간 가까이 걸렸다. 리마와 한국의 시차는 12시간으로, 한국이 리마보다 12시간 빠르다.

LA에서 리마로. [사진-임영태]
LA에서 리마로. [사진-임영태]
비행기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사진-임영태]
비행기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사진-임영태]

리마와의 첫 대면

페루 입국 수속은 간단했다. 미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줄이 제법 길었지만 간단히 끝났다. 숙소가 어디냐고 묻지도 않았다. 얼굴 보고 여권 사진 보고 바로 도장 찍어주고 심사 끝. 8시가 채 안 돼서 입국 절차가 모두 끝났다. 짐을 따로 찾을 일도 없어서 바로 공항 로비로 나왔다. 잠깐 기다리다가 8시 30분경 박우물 선생을 만났다. 박 선생은 여행가이자 공연가수로 페루 리마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전 알게 되었다. 여행 관련 정보도 얻고 필요하면 도움도 받기로 했다. 리마에서는 박 선생 댁에서 묶기로 했다.

시내에 위치한 리마 공항. [사진-임영태]
시내에 위치한 리마 공항. [사진-임영태]
리마 공항 내부 모습. [사진-임영태]
리마 공항 내부 모습. [사진-임영태]

리마공항은 2001년에 전면 확장 공사를 했다고 하는데 너무 북적댔다. 수도 리마의 중심지에서 11km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이동은 편리했지만 도심지여서 협소하고 주변도 혼잡했다.

공항에서 나오자 호객꾼들이 손님을 잡기 위해 연신 ‘탁시’(TAXI)를 외치고 있었다. 이들을 통해 택시를 잡으면 거리에서 잡는 것에 비해 2배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페루 택시는 미터기가 없어서 가는 곳을 두고 가격을 흥정해야 한다. 박 선생 말로는 외국인은 2배 이상 부르니까 감안해서 가격을 깎아야 한다고.

왜 택시요금을 미터기로 하지 않고 흥정하게 하는 걸까? 우리도 미터기 없이 택시를 흥정해서 가격을 정하던 때가 있었다. 바가지요금이 문제된 적도 있었다. 특히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운다고 언론에서 자주 보도하곤 했다. 하지만 그건 먼 옛날 이야기다. 지금의 페루가 우리의 70년대 수준은 아닌데... 왜 이런 것일까? 무슨 일이든 기존 관행을 깨고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 페루 사람들도 지금의 택시 요금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걸 뻔히 알 것이다. 하지만 이걸 바꾸는 일은 우리가 보기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여서 쉽지 않을 수 있다.

공항에서 100미터 정도 걸어 나와 도로변에서 택시를 잡기로 했다. 처음 잡은 택시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자 박 선생이 픽 웃으며 그냥 보낸다. ‘나 현지인이야, 뭘로 보고...’ 이런 표정이다. 다시 한 사람이 다가와서 택시를 연결시켜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가격이 맞지 않아서 다시 실패. 박 선생이 길을 건너가서 택시를 잡자고 한다. 육교를 건너 반대편으로 넘어가면서 박선생이 육교 위 노점에서 과일을 사서 우리에게 맛보라고 하나씩 주었다. 대표적인 페루의 과일 중 하나라고 했는데 이름을 잊어버렸다.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잘 모르겠다. 속이 키위나 다래를 닮아 까만 씨가 있는데 너무 딱딱해 깨물 수가 없다. 그냥 삼키면 배출된다고 해서 그대로 꿀꺽 삼켰다. 망고나 구아바, 파파야 같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열대 과일과는 달리 시원한 맛이다.

공항 앞 육교에서 바라본 리마 시내 도로. [사진-임영태]
공항 앞 육교에서 바라본 리마 시내 도로. [사진-임영태]

아침 9시 조금 넘어서 구시가 로스 올리보스 지구(Los Olivos)에 위치한 박 선생 집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20분 정도 걸렸다. 택시비는 페루 돈으로 20솔(sol). 페루 1솔은 한국 돈 360원 정도이니 7,000원 남짓 되는 셈이다. 차량들이 거리를 질주하는데 신호등이 안 보인다. 교차로에도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다. 서로 적당히 눈치껏 알아서 좌회전, 우회전하며 잘도 통과했다. 이 정도의 대도시에 신호등도 제대로 없이 차량들이 질주를 하다니... 교통사고가 엄청 많이 날 것 같았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잘잘못을 따지지? 우리 같으면 그냥 멱살잡이를 할 텐데... 이 사람들은? 도로 중앙 분리대 흙이 그냥 풀풀 날렸다. 신시가지에 가면 중앙분리대에도 잔디가 있고 가로수도 있다며 잔디와 풀, 나무가 있는 곳은 부자동네라고 말한다.

리마의 첫 인상은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시는 혼잡하다. 매연도 심하다. 바람에 먼지가 날리는 입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리마는 연평균 강수량이 아주 적은 메마른 도시다. 태평양 연안 해안 사막 지역에 세워진 도시로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5월에야 안개비처럼 약간의 비가 내린다. 이 비를 두고 사람들은 ‘잉카의 눈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주택가에서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되는 세 바퀴 차량. [사진-임영태]
주택가에서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되는 세 바퀴 차량. [사진-임영태]
구도심 주택가 모습. [사진-임영태]
구도심 주택가 모습. [사진-임영태]

박 선생 집에 도착한 뒤 우리는 빵과 과일, 계란 프라이 등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리고 식사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우리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박 선생은 페루 출신의 부인과 두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그리고 처제와 처남 가족 등과 함께 살았다. 부인은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K-문화 열혈 매니아로 한국 음식도 일품으로 했다. 두 딸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교쟁이다.

그런데 박 선생은 지난 2년간 펜데믹으로 가족들이 강제 생이별 상태에 있는 등 많은 시련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한국에 공연 때문에 들어왔을 때 코로나가 터져 페루로 가지 못하고 헤어져 지내야 했다는 것. 그 사이 페루 처가에서는 할머니, 장인, 장모가 사망하는 등 코로나의 상처가 컸다고 한다. 페루는 펜데믹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남미 지역에서도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한국도 코로나 피해가 없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대처를 잘해 피해가 적었다. 펜데믹으로 세계는 심각한 혼란 상황에 처했고 그 나라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심지어 세계 패권국이라는 미국조차도 우왕좌왕 하며 맨얼굴을 그대로 보여줬을 지경이다.

박 선생은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스스럼없이 대해 주었다. 그가 페루와 리마에 대한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먼 길을 오느라 피곤했지만 우리는 그 자리를 쉽게 뜰 수가 없었다.

식사 후 우리는 간단히 씻고 시내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장거리 이동의 피로도 있고 해서 두어 시간 쉬고 가기로 했는데 네댓 시간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오후 3시 넘어서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4시 반이 넘어서 집을 나섰다. 박물관을 찾기도, 중앙 시가지 관람을 가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동네에서 약간의 돈을 환전한 뒤, 라푼타 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라푼타 해변에서

동네에서 택시를 불렀다. 남미 여행 중 우리는 우버 택시를 주로 이용했는데 박 선생은 인드라이브를 사용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페루 정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페루에서는 1990년대 반군 소탕 작전 과정에서 민간인 25명을 납치 살해한 책임이 인정돼 2009년 4월 법원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전 독재자 후지모리를 2023년 12월 6일 돌연 석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후지모리의 딸 게이코와 아들 겐지가 이끄는 후지모리파가 의회에서 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상태다. 의회를 장악한 후지모리파가 두 차례나 대통령 탄핵을 시도하는 등 정국을 뒤흔들며 과거 회귀를 꾀하면서 페루 정국은 혼미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 정치 상황도 심각하지만 페루는 훨씬 더하다.

리마 라푼타 해변 주변 지도(구글). [사진-임영태]
리마 라푼타 해변 주변 지도(구글). [사진-임영태]

라푼타 해변은 리마 카야오 항구 아래 툭 튀어나온 곶이다. 이 지역은 한적하지만 치안이 좋고 정비가 잘 된 휴양지나 다름없다. 곳곳에 요트가 정박해 있고 전망 좋은 해변에는 클럽과 술집, 식당들이 즐비하다. 모래사장은 아니고 우리나라의 몽돌보다는 훨씬 큰 검은 돌들이 깔려 있는 이곳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간간이 보였다. 지금 기온은 대략 22도 내외다. 낮에는 25-26도를 오르내리며 태양 볕이 따갑고 약간 더운 느낌이지만 우리 여름 기온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해변에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바닷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의 제법 있었다. 그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는 해변을 걸어서 가는 동안 해군학교에서 페루 국기를 내리고 있는 장면을 잠시 구경할 수 있었다.

구시가지 모습. [사진-임영태]
구시가지 모습. [사진-임영태]
요트가 즐비한 라푼타 해변. [사진-임영태]
요트가 즐비한 라푼타 해변. [사진-임영태]

라푼타의 튀어나온 끝부분을 돌아가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바닷가 끝부분 가장 위치 좋은 곳에 자리한 식당에서 불빛이 비치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지금은 그 식당이 폐업한 상태라고 하는데 밤에는 불빛을 밝혀 주변 풍광을 빛내고 있어서 매우 잘 어울렸다. 오른편 해변에서는 바다가 잔잔하더니 끝 부분에서는 파도가 제법 거세게 몰아친다. 태평양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모습이다. 바다 건너편에 두 개의 섬이 보였다. 샌 로렌조라는 이름의 큰 섬과 엘 프론톤이라는 작은 섬이다. 그 섬에 과거 한때는 교도소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철거하고 호텔을 지어 관광지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해군학교의 국가 강하식. [사진-임영태]
해군학교의 국가 강하식. [사진-임영태]
일몰 후 어둠이 내리는 태평양 바닷가. [사진-임영태]
일몰 후 어둠이 내리는 태평양 바닷가. [사진-임영태]
어둠이 내리 깔린 라푼타 해변 풍광. [사진-임영태]
어둠이 내리 깔린 라푼타 해변 풍광. [사진-임영태]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은 페루 해류지역이다. 세계적인 기상 이온 현상인 엘니뇨가 발생하는 원인 제공지역이다. 페루 근처 해역은 평소 난류보다는 한류의 흐름이 강한 지역으로 수온이 낮다. 그런데 이 지역에 북쪽으로부터 난류인 적도 해류가 강하게 밀고 들어와 해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일이 벌어지게 되면서 동태평양의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엘니뇨는 스페인어로 ‘예수’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엘니뇨가 크리스마스 전후에 발생하고 평소에 못 보던 난류성 물고기들이 많이 잡혀 어부들이 ‘Oh My God’라고 하며 좋아한 것에서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엘니뇨로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수온은 이 지역만이 아니라 세계 전반의 기후 변화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엘니뇨 현상으로 표층수가 따뜻해지면서 그 아래에서 올라오는 영양분이 풍부한 물의 상승을 막아 풍부한 어족 자원이 유지될 수 없게 된다. 그 때문에 어획량이 감소하고 적도 반류(태평양과 인도양의 주요 해류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북위 5도 정도에서 흐른다)에 의해 내려가야 할 부근의 공기가 올라가 이 지역에 강우량이 몇 배로 늘어나 홍수가 발생하게 된다. 반면에 호주와 같은 태평양 서쪽 지역은 가뭄이 발생하게 된다. 엘니뇨는 보통 1-3개월 정도면 끝나지만 1년 이상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엘니뇨의 정반대 현상이 라니냐다. 엘니뇨가 ‘남자 아이’라면 라니냐는 ‘여자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라니냐는 주로 엘니뇨 현상의 전과 후에 발생하는데 적도 무역풍 세력이 강해져서 서태평양의 해수온도는 상승하고 동태평양의 해수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이다. 엘니뇨 현상과는 반대로 적도 무역풍의 힘이 강해지면서 서태평양의 온수층이 두터워지고 동태평양의 온수층이 얕아져 동태평양 해수 수온은 평년보다 0.5℃ 낮아지게 된다.

라니냐 현상이 발생하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에서는 극심한 장마가 나타나고, 페루 등 남아메리카에서는 가뭄이, 북아메리카 지역에서는 강추위가 나타난다. 지금 지구는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인간들은 눈앞의 이익 때문에 행동을 계속 미루며 재앙을 앞당기고 있다. 인간의 탐욕이 지구를 망가뜨리고 급기야는 인류의 공멸을 불러올 수 있다.

페루가 미식 강국이 된 사연

해변 구경을 하고 나니 어둠이 내려앉았다. 배도 고팠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7시경이 되자 식당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다. 저녁 먹을 곳을 찾아서 한참을 헤맸다. 박 선생이 알고 있던 맛집은 이미 영업이 끝나서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음식기행이라고 하는데, 미감이 둔한 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박 선생이 페루가 세계적으로 미식의 나라라고 자랑한다. 그러면서 미식 강국 페루를 대표하는 세비체(Cwviche)를 먹어볼 것을 강추한다. 세비체는 페루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생선회 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생선, 문어 같은 해산물을 회처럼 얇게 떠서 레몬즙이나 라임즙, 식초, 고수, 고추, 양파, 소금 등을 넣고 재워두었다가 먹는 음식이다.

페루가 미식의 나라로 명성을 얻게 되고 미식가들이 찾는 남미 최고의 국가가 된 데는 아쿠리오 가스통이라는 셰프의 공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그가 오너 셰프로 있는 레스토랑 ‘아스트리드 이 가스통’은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선정되었고, 2011년 ‘월드베스트 레스트토랑 50선’에 처음 이름을 올리고 2013년에는 1위를 차지하며 페루를 미식 강국으로 이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페루하면 세비체를 떠올리고 그 맛을 보기 위해 페루를 찾게 만들었다. 프랑스 유학을 한 프랑스 전문요리사였던 가스통은 조국 페루의 자연과 공동체 회복에 주목해 독창적인 요리를 만들었다. 그는 페루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개발하고 지역 특색을 담은 요리를 만들었다. 또 페루 전통 요리에 유럽 스타일을 입히고, 중국 요리 재료를 사용하고, 이탈리아 스타일로 요리를 하기도 했다. 이런 가스통의 노력 덕분에 페루 요리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이제는 페루 음식이 페루 관광의 가장 중요한 매력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임수진, “페루 음식, 국가 브랜드가 되다”, 『라틴 아메리카 음식 ‘듬뿍’』, 181-202쪽 참고).

미식의 나라 페루를 대표하는 요리 ‘세비체’. [사진-임영태]
미식의 나라 페루를 대표하는 요리 ‘세비체’. [사진-임영태]
어둠이 내린 해안 식당거리. [사진-임영태]
어둠이 내린 해안 식당거리. [사진-임영태]

박 선생은 페루 음식 예찬을 한참 동안 늘어놓고 세비체를 먹을 것을 강추했다. 우리는 세비체와 칼국수 면발 볶음이 곁들여진 볶음밥과 맥주를 시켰다. 모두 가격이 180솔이 나왔다. 한화로 6만 5천원 가량(180X360=64,800원) 되는 돈이다.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페루 물가도 보통이 아니다. 관광지란 점을 감안해도 그렇다. 2024년 페루의 1인당 GDP는 7,952달러에 불과하다. 한국은 34,653달러다, 한국에 버금가는 가격인 셈이다(IMF 기준_나무위키).

식사를 하는 동안 만난 베네수엘라 출신의 젊은 여성이 인상에 남아 있다. 체구도 왜소하고 얼굴도 아주 앳돼 보여 나는 처음 중학생이 알바를 하는 줄 알았다. 스페인어를 잘하는 박 선생이 물어보니 베네수엘라에서 이곳으로 떠나와 돈을 벌고 있는 18세 여성(소녀?)이라고 했다. 마음이 찡했다.

차베스 사후 베네수엘라는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국제 유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2015년부터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았고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한 상황이 조성되었다. 이렇게 되자 엄청난 경제난민이 발생했다. 국제기구의 추정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340만 명의 난민과 이주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페루, 콜롬비아, 브라질, 칠레 등 남미 전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이주했다.

소녀라고 해야 할지 청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이 여성도 자신의 삶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조국 베네수엘라를 떠나 이곳으로 온 것이다. 자신이 버는 돈 가운데 일부를 가족들에게 매달 송금하고 있다고 한다. 박 선생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도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다수 들어와 살고 있다며, 치안 상황이 안 좋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들 때문이든 아니든 원주민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김 원장을 영접하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다. 9시경 공항에 도착했다. 김 원장은 이미 8시경 공항에 도착해 1시간 이상 발을 동동 굴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비행기 도착 뒤 입국 수속 등 공항 빠져나오는 데 1시간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그 사이 인터넷이 안 돼 확인도 못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혼이 난 게 당연했다. 이렇게 해서 여행을 위한 완전체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박 선생 집에서 담소와 휴식을 가진 뒤 다음날 일정을 논의했다. 내일 마추픽추 기행을 위해 쿠스코로 떠날 것이다.

 

임영태 필자 약력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힘쓰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으며, 지금은 평화박물관의 ‘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에서의 학살-한국현대사, 기억과의 투쟁』, 『새로 쓴 한국현대사-해방부터 촛불항쟁까지 35장면』(공저),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공저),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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