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젊은 시절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으로 정신없을 때 아버지가 나를 보고 “니 증조부를 닮았다”고 욕한 적이 있다. 나의 증조부는 미두(米斗: 미곡시세의 등락을 이용해 약속으로만 매매하는 투기행위)인지 뭔지를 한다고 윗대가 모은 재산을 몽땅 다 날려 먹고 남의 땅까지 끌어들여서 후손에게 그 짐을 떠안긴 채 자신은 방랑을 떠나 평생을 풍류객으로 살았다고 한다. 증조할머니는 생과부로 살았고, 할아버지는 유복자처럼 자랐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삼촌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할아버지는 혼례를 올려 성년이 되자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어떻게 어떻게 듣고 들리는 소식을 통해 할아버지는 일본까지 가서 증조할아버지를 모셔왔고, 증조부는 집에 돌아온 지 6개월인가 1년만인가 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안 되면 조상 탓이다. 후손들은 증조부 탓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한 셈이다. 할아버지는 장손이었지만 아무 재산도 물려받지 못했고, 평생을 지게질로 살았으며 교육은 아예 받지 못했다. 내 기억으로는 할아버지가 한글 이야기책은 낭랑하게 읽었지만 문자를 쓰는 것은 보지 못했다. 아버지 형제들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1927년생 큰고모는 아예 학교를 가지 못했고, 1930년생 아버지, 1936년생 작은아버지, 1946년생 막내고모 모두 국민학교 졸업으로 제도교육은 끝이었다.

아버지 형제들이 교육을 받지 못한 데는 할아버지 잘못도 컸지만, 어쨌든 아버지가 보기에 그 원천을 제공한 것은 아버지의 조부(나에게는 증조부)였다. 재산 다 날려 먹고 주위 사람들과 자손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 자신은 평생을 방랑 생활로 무책임하게 살다가간 조부를 내가 닮았다고 비난한 것이다. 시골구석에서 죽을 고생을 다해서 겨우 대학에 보냈더니 데모로 학교 짤리고 감옥 가고, 동네사람들이 다 보는 가운데 경찰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고, 그러고 아예 연락도 안 되고, 설이나 추석 명절에 제사지낼 때도 집에 오지도 않고 ... 기가 찼을 것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아주 이기적이고 나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평생을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집안의 장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할 정도로 힘든 노동의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무거운 굴레를 짊어진 아버지는 평생 여행이라는 것을 해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도 해보지 못하고 사셨다. 반면에 증조할아버지는 책임을 팽개치고 훌훌 떠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다갔다. 아버지와 대척점에 증조부가 있는 셈이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지난해 12월 27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중남미(라틴아메리카)와 미국 뉴욕을 여행하고 올해 1월 24일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28일간의 여정을 간략히 정리하면 대략 이렇다.

1) 마추픽추 여행(2023. 12. 27- 2014. 1. 2)
인천공항에서 미국 로스엔젤레스를 경유, 페루의 수도 리마 도착. 리마에서 쿠스코로 항공 이동해, 마추픽추를 구경하고, 다시 비행기로 쿠스코에서 리마로 돌아옴.

2) 파타고니아 여행(2024. 1. 3 – 1. 8)
페루 리마에서 칠레 산티아고를 거쳐, 푸에르토나탈레스로 항공 이동, 육로로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로 이동하며 파나고니아 지역 여행.

3) 이과수 여행(2024. 1. 9 – 1. 12)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아르헨티나 이과수와 브라질 이과수를 보고, 브라질 쿠리티바 경유해 리우데자네이루로 이동.

4) 콜롬비아 보고타와 멕시코(2024. 1. 13 – 1. 18)
원래 과테말라와 멕시코 지역의 마야문명 유적을 보려던 계획이 어긋나는 바람에 계획 변경.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칠레 산티아고, 안토파가스타, 콜롬비아 칼리를 거쳐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입성. 보고타에서 멕시코시티로 이동.

5) 미국 뉴욕 여행(2024. 1. 19- 1. 24)
멕시코시티에서 뉴욕으로 이동해 돌아보고, 24일 새벽 인천공항 귀환.

여행 여정도. [사진-임영태]
여행 여정도. [사진-임영태]

남미여행을 떠난다는 결정은 쉽게 했다. 그런데 막상 여행을 결정하고 나서는 정말 가야 하는 건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일정표를 짜고 정보를 알아보고 비행기표를 끊기 시작하면서부터 남미여행이라는 게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너무 아는 게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여행기를 비롯해 읽어야 할 자료가 적지 않았지만 제대로 읽지 못했다. 유튜브에도 많은 동영상이 올라 있고, 남미 관련 사이트들도 많이 있었지만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건성으로 보았을 뿐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남미 여행은 위험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패키지 여행을 갔다온 친구도 그냥 따라만 다니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남미 여행은 고산병, 언어 문제, 숙소와 음식 등 여러 면에서 힘들다고 얘기했다. 여행기나 경험담을 보아도 남미에서 여러 가지 험한 일을 당한 예가 부지기수로 떠돌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여행을 결심한 이유는 지금이 아니면 죽을 때까지 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과적이지만 사연도 있었고 위기도 있었지만 별로 위험한 일은 당하지 않았다. 함께 여행한 3명 가운데 거의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남미여행을 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치안 문제와 비행기 문제다. 이번 여행에서 안전 문제는 없었지만, 비행기는 문제가 됐다. 나이, 체력, 시간 등을 고려해 우리는 버스를 타고 장거리 이동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고 비행기를 많이 이용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비행 간격 사이에 시간 여유를 충분히 두면 되는데 한 달이 채 안 되는 사이에 거대한 남미 대륙을 거의 일주하려다 보니 빡빡하게 일정을 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동하는 중간에 하루씩은 시간 틈을 두었는데 이과수에 이어 마야문명 기행을 위해 중미(과테말라)로 이동하는 데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남미 저가항공의 경우, 자주 연착되고 그냥 비행이 취소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우리도 몇 차례 연착이 있었고, 바로 우리 앞 비행기가 취소되는 것도 봤다. 그래도 이과수까지는 무사히 갔는데 결국 문제가 생겼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엄청난 거리를 매우 짧은 시간에 주파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대략 계산해 본 바로는 비행거리만 5만 킬로미터가 넘는 것으로 나왔다.

인천-LA 9,570km, 미국 LA-페루 리마 6,680km, 페루 리마-쿠스코 왕복 590km, 페루 리마-칠레 산티아고 2,460km, 칠레 산티아고-푸에르토나탈레스 2,030km,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부에노스아이레스 2,060km,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이과수(아르헨) 1,040km, 브라질 이과수-쿠리티마-리우데자네이루 1,170km,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칠레 산티아고 3,960km, 칠레 산티아고-안토파가스타 1,100km, 칠레 안토파가스타-콜롬비아 칼리-보고타 3,340km,콜롬비아 보고타-멕시코 멕시코시티 3,160km, 멕시코시티-미국 뉴욕 3,340km, 미국 뉴욕-인천공항 11,140km(10이하 절삭). 총합계 51,460km(128,650리). 인천-LA LA-리마, 멕시코시티-뉴욕을 제외하더라도 중남미에서 이동한 것만 해도 20,910km(52,275리)나 된다. 여기에 비행기 이동 외에도 버스와 택시 등의 이동거리도 몇 천 킬로는 될 것이다. 그냥 대략 계산한 것이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거리를 이동한 것은 분명하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 먼 거리를 이동하려다 보니 비행기를 많이 타게 되었다. 당연히 남미지역을 면이나 선이 아니라 점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 광대한 지역을 그냥 맛이라도 볼 수 있으려면 최소한 3개월 정도라도 여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지금에야 하게 된다. 실제로 남미 여행기를 쓴 많은 사람들이 짧게는 몇 달에서 1년 이상을 여행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말 그대로 비행기 타고 날아서 주마간산으로 돌아본 것에 불과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행기를 써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좋아하는 파타고니아만 해도 한 달은 지내야 그 맛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터인데 불과 5,6일 지내고 무슨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인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가서도 뭘 봐야 할지도 모르고 놓친 것도 많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남미 여행기를 여러 권 읽어보았더니 우리가 스쳐 가듯 지난 바로 옆에도 봐야 할 것들이 많았으나 몰라서, 시간이 없어서 놓친 것들이 적지 않았다. 본 것이 너무 적고 할 이야기도 그만큼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본 대로, 느낀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기로 했다. 남미여행을 하기 쉽지 않은 <통일뉴스> 독자들에게 짧은 체험이지만 전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개인적으로도 이번 여행은 의미가 있다. 가장 오랫동안 집을 떠났으며, 내 평생에서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은 돈을 쓴 일이었다. 들어간 게 있으면 나오는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평소 지론이다. 나로서는 그만큼 들어간 것이 있으니 그에 맞게 생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파타고니아 풍광. 아르헨티나 엘 찰텐. [사진-임영태]
파타고니아 풍광. 아르헨티나 엘 찰텐. [사진-임영태]

벌써 여행을 갔다온 지 두 달이나 돼 간다. 젊은 시절과 달리 기억력이 떨어져 벌써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사진을 보면서, 메모를 보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짧은 글을 보면서,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관련 책과 자료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 볼까 한다.

 

임영태 필자 약력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힘쓰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으며, 지금은 평화박물관의 ‘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에서의 학살-한국현대사, 기억과의 투쟁』, 『새로 쓴 한국현대사-해방부터 촛불항쟁까지 35장면』(공저),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공저),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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