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회담 양측대표의 좌담회 석상에서 언제나 일본대표 택전렴삼씨는 「일청⋅일로양전쟁은 일본을 위협하는 세력이 한반도로 진출했기 때문에 그것을 압록강 저편으로 몰아내는 싸움이었다. 우리는 세 번째 일어서서 삼팔선을 압록강 바깥까지 밀어 올리지 않으면 조상에 대해서 면목이 없다. 이것이 일본외교의 임무다. 

그렇다고 해서 군비가 약한 일본으로써 총칼로써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교와 정치의 힘으로 삼팔선이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옛날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를 식민지로 해서 침략했을 당시에 취한 정책에 일본민족을 일등민족으로 하고 조선민족을 이등민족으로 만주민족을 삼등민족으로 구별하고 각각 다른 대우를 해서 「분열시켜 지배한다」는 식민지주의의 원칙을 관철했다.


일본은 먼저 반성해야 한다

한일관계의 역사와 현재의 분석

 

택전대표가 한국을 삼팔선 이남과 이북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압록강 저편과 대치된 관계에서 일본의 대륙정책을 다루려는 태도는 대동아전쟁 당시나 현재나 근본적으로 다름이 없는 「분할정책」의 뱃속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정부는 약 육십만의 재일교포에 대해서 「두개의 한국」을 전제로 「한국적」과 「조선적」을 구별하여 「제삼국인대우」란 외국인도 내국인도 아닌 위치에다 두고 사실상 「두개의 적」 사이에 의식적인 이간책을 써왔다.

현재 그들 사이에는 과학, 언론, 창작, 미술, 연극, 체육의 각 분야에 걸쳐 제휴하려고 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에의 기?이 가속도로 번져가고 있으나 한일회담은 이러한 동향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부정적이며 배전적이었다.

사⋅일구 당시 「매카나기」 전미대사는 이박사 하야 및 정변성공의 보도를 듣고 「위스키」를 들이키면서 「혁명성공」을 자축했다고 듣고 있는데 이때 벌써 미국은 한일제휴의 선을 쫒아 나아갈 것을 기대했을는지 모른다. 이것과 전후해서 「매카더」 주일미대사는 안내각에 대하여 한국과도정부에게 「축전을 보내고 대한경제원조를 고려하는 동시에 재일교포의 북송을 1960년 11월 30일부로 단절하라는 몇 개 조항을 권고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안내각의 뒤를 이은 현지전내각이 이 지시에 따라서 일본의 국가자본 및 민간의 독점자본을 남한에 주입한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지전?소판외교략선인 것 같다.

미국이 작년도 하반기부터 ??한 국제수지의 역조, 금 유실 등 일련의 경제적 악순환은 그 뒤 「케네디」행정부의 국지전력 강화정책을 통한 동북아세아기구의 촉진을 가져왔다. 그것은 이미 일본에서 조달된 미국의 무기를 동기구내의 각국에 다가 배당할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고도성장소득배가정책」을 부르짖고 있는 지전내각을 위해서 적어도 고무적인 것이다.

남한경제가 파?상태에 놓여 있음을 기화로 한일양국의 매판자본가들 사이에 광산개발, 화력발전, 농수산, 철도, 전기전화관계의 개발에 이르기까지 의논이 진행 중에 있다고 듣고 있는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으로 진척될 것인지가 문제다.

일본의 대한재산청구권은 미국측  요구에 따라 안내각 때 ??했으나, 재일 한국재산권을 주장하는 한국에 대해서는 육, 칠억불에 해당하는 일본의 대한경원과 상살조건으로 단념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본정부는 이것을 대미채무를 이 방향에 다가 전용함으로써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국가자본 이외에 민간자본의 투하도 예상되는바 외자도입법을 개정한 한국정부당국과 호응하여 대규모의 일본경제시찰단이 방한준비가 완료되었으나 국내의 반대?쟁 때문에 좌절되었던바 요즘 다시 준비를 갖추고 있다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1905년 로일전쟁의 ?화조약은 로서아로 하여금 일본의 한국자유처분권을 인정케 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계⋅타프트 비밀협정」에서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대신에, 일본이 「필리핀」을 침략하지 않을 것을 보장받았다. 로일전쟁 중 일본의 전비 십삼억원 중 팔억원이 미국에서 조달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오늘의 한일관계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어디까지나 미국중심의 한일정책임은 말할 나위도 없겠으나, 거기에는 한국보다 일본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미일안보조약의 테두리 안에서 일본의 대한진출을 승인하면서 현재 남한에 와 있는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지위를 강화하자는 것이니, 여기에 한일회담의 전도를 가로막는 최대의 요인이 있다.

이상 일본이 한국에 대한 침략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한, 미국이 자국본위에 치중하는 한, 그리고 남한의 현 집권당이 그들과 영합하는 이상 진정한 의미의 한일관계는 영영 맺어질 수 없다. 바라건대 그 옛날 대륙침략의 명명이 높았던 일본은 석일을 속죄할 수 있는 반성을 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 건설적 방향으로 머리를 돌려주기 바란다.

초점

초점 [민족일보 이미지]
초점 [민족일보 이미지]

焦奌

韓⋅日會談 兩側代表의 座談會 席上에서 언제나 日本代表 澤田濂三氏는 「日淸⋅日露兩戰爭은 日本을 威脅하는 勢力이 韓半島로 進出했기 때문에 그것을 鴨綠江 저편으로 몰아내는 싸움이었다. 우리는 세 번째 일어서서 三八線을 鴨綠江 바깥까지 밀어 올리지 않으면 祖上에 대해서 面目이없다. 이것이 日本外交의 任務다. 

그렇다고 해서 軍備가 弱한 日本으로써 銃칼로써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 그러나 外交와 政治의 힘으로 三八線이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옛날 日本 帝國主義가 滿洲를 植民地로 해서 侵略했을 當時에 取한 政策에 日本民族을 一等民族으로 하고 朝鮮民族을 二等民族으로 滿洲民族을 三等民族으로 區別하고 各各 다른 待遇를 해서 「分裂시켜 支配한다」는 植民地主義의 原則을 貫徹했다.

 

日本은 먼저 反省해야 한다

韓日關係의 歷史와 現在의 分析

 

澤田代表가 韓國을 三八線 以南과 以北으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鴨綠江 저편과 對치된 關係에서 日本의 大陸政策을 다루려는 態度는 大東亞戰爭 當時나 現在나 根本的으로 다름이 없는 「分割政策」의 뱃속을 드러낸 것이다.

日本政府는 約六十萬의 在日僑胞에 대해서 「두개의 韓國」을 前提로 「韓國籍」과 「朝鮮籍」을 區別하여 「第三國人待遇」란 外國人도 內國人도 아닌 位置에다 두고 事實上 「두개의 籍」 사이에 意識的인 離間策을 써왔다.

現在 그들 사이에는 科學, 言論, 創作, 美術, 演劇, 體育의 各 分野에 걸쳐 提携하려고 하여 祖國의 平和統一에의 氣?이 加速度로 번져가고 있으나 韓日會談은 이러한 動向에 대해서는 根本的으로 否定的이며 排戰的이었다.

四⋅一九 當時 「매카나기」 前美大使는 李博士 下野 및 政變成功의 報道를 듣고 「위스키」를 들이키면서 「革命成功」을 自祝했다고 듣고 있는데 이때 벌써 美國은 韓日提携의 線을 쫒아 나아갈 것을 期待했을는지 모른다. 이것과 前後해서 「매카더」駐日美大使는 岸內閣에 대하여 韓國過渡政府에게 「祝電을 보내고 對韓經濟援助를 考慮하는 同時에 在日僑胞의 北送을 一九六◯年 十一月 三十日附로 斷絶하라는 몇 개 條項을 勸告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岸內閣의 뒤를 이은 現池田內閣이 이 指示에 따라서 日本의 國家資本 및 民間의 獨占資本을 南韓에 注入한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池展?小坂外交略線인 것 같다.

美國이 昨年度 下半期부터 ??한 國際收支의 逆調, 金流失 等 一聯의 經濟的 惡循環은 그 뒤 「케네디」行政府의 局地戰力 强化政策을 通한 東北亞細亞機構의 促進을 가져왔다. 그것은 이미 日本에서 調達된 美國의 武器를 同機構內의 各國에 다가 配當할 것을 意味하는 同時에 「高度成長所得倍加政策」을 부르짖고 있는 池田內閣을 위해서 적어도 鼓舞的인 것이다.

南韓經濟가 破?狀態에 놓여 있음을 奇貨로 韓日兩國의 買辦資本家들 사이에 鑛山開發, 火力發電, 農水産, 鐵道, 電氣電話關係의 開發에 이르기까지 議論이 進行中에 있다고 듣고 있는데, 이것이 具體的으로 어떠한 內容으로 進陟될 것인지가 問題다.

日本의 對韓財産請求權은 美國側  要求에 따라 岸內閣때 ??했으나, 在日 韓國財産權을 主張하는 韓國에 對해서는 六, 七億弗에 該當하는 日本의 對韓經援과 相殺條件으로 斷念할 것을 要求하고 있는 모양이다. 日本政府는 이것을 對美債務를 이 方向에 다가 轉用함으로써 一石二鳥의 効果를 企圖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周知의 事實이다. 이러한 國家資本 以外에 民間資本의 投下도 豫想되는 바 外資導入法을 改正한 韓國政府當局과 呼應하여 大規模의 日本經濟視察團이 訪韓準備가 完了되었으나 國內의 反對?爭 때문에 挫折되었던바 요즘 다시 準備를 갖추고 있다한다.

우리가 銘心해야 할 點은 一九◯五年 露日戰爭의 ?화條約은 露西亞로 하여금 日本의 韓國自由處分權을 認定케했다. 그러나 그 以前에 「桂⋅타프트 秘密協定」에서 美國은 日本이 韓國을 植民地化하는 代身에, 日本이 「필리핀」을 侵略하지 않을 것을 保障받았다. 露日戰爭中 日本의 戰費 十三億圓中 八億圓이 美國에서 調達된 것이었다. 이러한 歷史的 事實에서 오늘의 韓日關係가 美國의 立場에서 볼 때 어디까지나 美國中心의 韓日政策임은 말할 나위도 없겠으나, 거기에는 韓國보다 日本을 重視하지 않을 수 없는 理由가 있다. 美日安保條約의 테두리 안에서 日本의 對韓進出을 承認하면서 現在 南韓에 와 있는 美國의 軍事的 經濟的 地位를 强化하자는 것이니, 여기에 韓日會談의 前途를 가로막는 最大의 要因이 있다.

以上 日本이 韓國에 對한 侵略根性을 버리지 못하는 限, 美國이 自國本位에 置重하는 限, 그리고 南韓의 現執權黨이 그들과 迎合하는 以上 眞正한 意味의 韓日關係는 永永 맺어질 수 없다. 바라건대 그 옛날 大陸侵略의 命名이 높았던 日本은 昔日을 贖罪할 수 있는 反省을 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 建設的 方向으로 머리를 돌려주기 바란다.

[민족일보] 1961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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