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요즘 리승만(李承晩, 1875~1965)을 다룬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되어 유행하고 있다. 이 영화는 리승만을 미화하고만 있다. 리승만의 과(過)를 무시하고 그의 모든 것을 공(功)으로 분장하고 있다. 독자분들은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 진상(眞相)과 진상(進上)

우리 말에 ‘진상(眞相)’이란 단어가 있다. ‘진상’이란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지거나 감추어진 사물의 참된 내용이나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또 ‘진상(進上)’이란 단어도 있다. 이 ‘진상’은 “조선시대 지방의 토산물이나 진귀한 물품을 임금이나 고관에게 바치는 일”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진상이다, 진상을 떤다”란 말이 있다, 즉 “못생기거나 못나고 꼴불견이라 할 수 있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이다. 여기 “진상이다, 진상을 떤다”란 말에서의 ‘진상’은 ‘진상(進上)’이란 단어에서 의미가 변화하여 나온 말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진상이다, 진상을 떤다”란 말은 ‘진상(進上)’보다는 “참모습을 드러낸다”라는 의미에서 우리 말 ‘진상(眞相)’에서 파생한 단어라고 본다. 즉 “진상이다, 진상을 떤다”라는 말은 ‘진상(進上)’과 ‘진상(眞相)’, 어느 하나보다는 이 두 단어 모두를 함의(含意)한 단어로 보게 되는 것이다.

2. 잡지 『진상(眞相)』

『眞相』 7월호(하기 긴축판), 통권 제5권7책, 1960년 7월 1일 발행, “신문(新聞)의 신문사(新聞社) 진상사(眞相社)” 발행. 필자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眞相』 7월호(하기 긴축판), 통권 제5권7책, 1960년 7월 1일 발행, “신문(新聞)의 신문사(新聞社) 진상사(眞相社)” 발행. 필자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진상(眞相)』 제호를 가진 잡지는 2종이 있는 것 같다. 사단법인 한국잡지협회의 한국잡지박물관에서 검색하면 1966년 3월 1일 자로 박중임(朴重壬)을 발행인으로 창간호(4월호)를 발행한 『진상(眞相)』이 나온다. 발행소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도렴동 117번지 ‘진상사’이다. 이 잡지 『진상』은 1965년 11월 15일 등록된 잡지이다. 이 잡지 『진상』의 부제(副題)는 “신문적(新聞的)인 잡지(雜誌)·잡지적(雜誌的)인 신문(新聞)”이다. 이 접지의 창간호는 표지를 표함하여 모두 100쪽이다.

그런데 박중임이 1966년 3월 1일 자에 창간한 『진상』 이전에 또 하나의 잡지 『진상』이 있다. 이 잡지 『진상』의 발행인은 최흥조(崔興朝, 1918~2000)로서 한국잡지박물관 검색에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1960년 7월 1일 자로 최흥조가 발행한 『진상(眞相)』 1960년 7월호 (하기긴축판) 1책을 소장하고 있다. 이 『진상』 1960년 7월호는 표지를 포함하며 모두 100쪽으로 목차 하단(下段)에 제5권제7호라고 밝힌 것을 보아 1956년에 창간호가 나왔다.

즉 최흥조가 발행한 『진상』은 박중임의 『진상』보다 무려 10년 전에 창간호를 발행한 것이다. 이 최흥조의 『진상』을 발행한 발행소는 “신문(新聞)의 신문사(新聞社) 진상사(眞相社)”로서 그 주소는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 95번지이다.

최흥조의 『진상』은 1956년부터 1961년까지 약 7년여간 발행되었으나, 박중임의 『진상』은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박중임의 『진상』은 창간호 이외에 다른 호가 아직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박중임의 『진상』은 최흥조의 『진상』이 폐간된 이후에 최흥조의 『진상』을 본떠 후속으로 나온 것 같다.

최흥조는 1918년에 개성에서 출생하여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중퇴한 후 황해민보와 한성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재직한 바 있는 언론인이다. 그는 1952년 9월에 주간 『신문의 신문』을 창간하였고 이어 1956년에는 월간 『진상』을 창간하였으며 월간 『반공(反共)』도 창간하였으나 이 모두 5·16쿠데타 직후에 박정희의 군부에 의하여 폐간되었다.

3. 리승만을 비판한 최흥조의 『진상』, 1960년 7월호

『眞相』 7월호(하기 긴축판), 통권 제5권7책, 본문 1면의 목차(目次). [사진 제공 – 이양재]
『眞相』 7월호(하기 긴축판), 통권 제5권7책, 본문 1면의 목차(目次). [사진 제공 – 이양재]

1956년에 창간한 최흥조의 『진상』은 그 소장처가 매우 적다. 필자는 2012년에 대구 한옥션에서 1960년 7월호 (통권 제5권제7호)를 낙찰받았다. 아마도 최흥조가 발행한 『진상』의 전책(全冊)은 확인되지 않으며, 낱 책으로도 극히 드물게 시중에 나온다.

발행인 최흥조의 행적이나 저술을 보면 그는 반공 보수 우파이다. 그러나 그는 민주적 성향의 언론인이다. 그런 그가 월간지 『진상』 1960년 7월호 하기긴축판(夏期緊縮版)에서 리승만을 민주반역자(民主叛逆者)로 비판하고 있다.

1960년 4.19의거로 4월 26일 리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27일에는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하였으며, 28일 경무대에서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5월 29일 하와이로 도망치듯이 망명한다. 그러니까 『진상』 1960년 7월호는 6월에 편집되었을 것이니, 리승만의 망명 이후에 나온 리승만에 대한 당시의 실체를 기사화하고 있다.

『眞相』 7월호(하기 긴축판), 통권 제5권7책, 본문 1면의 권두언 「老婆의 捕虜 李承晩」. [사진 제공 – 이양재]
『眞相』 7월호(하기 긴축판), 통권 제5권7책, 본문 1면의 권두언 「老婆의 捕虜 李承晩」. [사진 제공 – 이양재]

이 7호의 표지는 프란체스카가 전부(前夫)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당시 일본 동경에 거주하고 있던 ‘프릿츠’에게 6000만 불의 돈 보따리를 쥐여 주고, 리승만의 목에는 개 목줄을 매어 쥐고 있는 모습의 삽화를 하고 있다. 본문 24면에서 26면까지는 ‘李프란체스카의 不正蓄財曲折’이라는 전수방(田秀芳)이 쓴 기사를 싣고 있다. 또한 본문 1면의 권두언에서는 「老婆의 捕虜 李承晩」에서는 발행인 최흥조의 울분에 찬 논조가 실려 있다. 리승만의 실정의 한 원인이 프판체스카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4. 맺음말

본 연재에서는 7월호 이 책의 표지와 권두언 및 목차를 사진으로 제공한다. 본 잡지를 일일이 분석하여 소개하기란 부끄러운 일의 연속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미 1960년에 이 땅에서 반공 보수 우파들마저 그 진상을 알고 폐기 처분한 리승만의 부활을 다시 꿈꾼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하여 최흥조의 『진상』, 1960년 7월호를 소개한 것이다.

리승만의 과오를 바로잡을 기회는 4,19로 출범한 민주 정부에 있었으나, 그 기회는 1년 후 5.16쿠데타로 인하여 무산되며, 5.16 군부 또한 4.19 자유당 정부를 능가하는 부정부패를 보인다. 이후 5.16쿠데타 세력의 부정부패를 심판할 기회는 5.18 군부의 쿠데타로 다시금 무산된다.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자기 변명적이고 자기 기만적인 말인가?”를 지적하며 이 글을 마친다.

추기(追記)
혹자는 필자의 이 글에서 리승만으로 북한식으로 썼다고 비판하지 말라. 리승만은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표기할 때 ‘이승만’으로 쓰지 않고 한자로 ‘李承晩’이나 ‘리승만’으로 썼다. 발음할 때는 ‘니승만’으로 말하였다. 그러므로 필자의 이 글에서는 그를 존중하여 리승만으로 쓴다. 대법원 판결에 전주리씨는 ‘李’의 한글 표기는 리로 하는 것을 허용하는 판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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