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이들 문학가를 독립투사로도 기억하자

일제강점기에 열혈 독립투사로서의 순수 문학가가 몇 분있다. 그러한 분 가운데 다섯 분을 출생순으로 언급한다면, 우선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시인 겸 소설가), 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 1900~1943, 소설가), 상화(尙火, 想華) 이상화(李相和, 1901~1943, 시인),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 1904~1944, 시인), 해환(海煥)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시인) 등 다섯 분이다. 이들은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각기 타계했다.

지난해는 현진건과 이상화의 80주기였고, 금년 1월 16일은 이원록, 6월 29일은 한용운의 80주기이며, 내년은 윤동주 80주기이다. 이들의 죽음은 각기 병마와 타살의 사연이 있다.

「님의 침묵」의 문학가 만해 한용운은 말년에 중풍으로 고생하였지만 1944년 6월 28일 조선총독부의 특별 훈련으로 공습경보가 발령되었을 때 혼수상태에 빠졌고 이튼날(29일) 심우장에서 열반에 든다. 「운수 좋은 날」의 소설가 현진건은 폐결핵과 장결핵의 합병증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는 위암과 폐결핵과 장결핵의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광야」의 이육사는 베이징(北京)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옥중 순국하니, 그의 옥사는 일제의 고문과 학대로 쇠약해진데 원인이 있다. 반면에 「별 헤는 밤」의 시인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고 옥중 순국하는데 이것은 일제 생체 실험이었다.

(빙허 현진건은 지난해 4월 24일자로 게재한 제7회분 연재 「소설가 빙허 현진건 80주기에 역사유적기행문학을‥‥‥」 참조)

1. 의열단원 육사 이원록

『육사시집(陸史詩集)』, 1946년 초판본, 서울출판사 발행. 한국근대문학관 소장. [사진 제공 – 이양재]
『육사시집(陸史詩集)』, 1946년 초판본, 서울출판사 발행. 한국근대문학관 소장. [사진 제공 – 이양재]

육사의 본관은 진보(眞寶, 진성(眞城))이고,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881번지에서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다. 이에 안동시는 2004년에 그의 60주기가 되던 해를 맞아 도산면 백운로 525에 ‘이육사기념관’을 개관한다. 벌씨 20년이나 된다. 그리고 지난해(2023년) 11월 16일에는 그가 1925년부터 살며 활동하던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 ‘이육사기념관’이 개관한다. 이육사에 대해서는 많은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어 여기에서는 중요한 사실 하나만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육사는 항일 유혈 투쟁을 벌인 의열단(義烈團)의 단원이었다. 즉 그는 항일 지하조직이자 비밀결사로 평가되는 ‘의열단’에 가담하고 열혈 독립운동을 하면서 틈틈이 시작(詩作)하여 30여 편 정도의 시를 남겼다. 이육사는 자신의 시작 활동에 관한 생각은 “계절의 오행”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나는 이 가을에도 아예 유언을 쓰려고는 하지 않소. 다만 나에게는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따름이오. 행동은 말이 아니고, 나에게는 시를 생각한다는 것도 행동이 되는 까닭이오.”

즉 이육사는 시인으로 보다는 독립투사로 살아 온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를 독립투사로 추모하며 그의 시를 음미하여야 할 것이다. 내일(16일)은 베이징의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한 이육사의 80주기이다. 이에 앞서 오늘 옷깃을 여미고 그의 시 「광야」를 읽으며 그를 깊이 생각하고자 한다.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2. 문학가 만해 한용운

『님의 침묵(沈默)』, 1926년 초판본, 회동서관 발행.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필자 구장본). 사진은 내면 제호면을 찍은 것인데, 제호면 앞에 얇은 유지(油紙)가 들어 있어 제호가 흐릿하게 보인다. [사진 제공 – 이양재]
『님의 침묵(沈默)』, 1926년 초판본, 회동서관 발행.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필자 구장본). 사진은 내면 제호면을 찍은 것인데, 제호면 앞에 얇은 유지(油紙)가 들어 있어 제호가 흐릿하게 보인다. [사진 제공 – 이양재]

한용운(韓龍雲)의 본관은 청주이고 호는 만해(萬海)이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그를 기리는 기념관과 문학관은 일찍이 개관한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의 「만해기념관」(관장 전보삼)과 강원도 인제군의 「만해문학박물관」 등등이 있다. 만해의 시집 『님의 침묵』은 1925년 내설악 백담사에서 쓰여져서 1926년 회동서관(匯東書館)에서 초판본을 간행한다. 1934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서 재판본을 발행하고, 광복 후 1950년에 다시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삼간하나, 삼간본은 초판본 및 재판본과는 크게 달라진다. 초판과 재판을 기저로 했지만, 현대 맞춤법으로 고치는 쓸데없는 과정을 시도하여 많은 오류를 범한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3.1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33인의 민족대표 가운데 1인이다. 3.1 「조선독립선언서」의 마지막 공약 삼장을 추가한 것은 만해였다. 당시의 여러 민족대표가 친일로 변절하였지만, 만해는 최후의 일각까지도 변절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만해에 갖는 매력이고, 또한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되는 이유이다. 지금부터 6월 29일 만해의 80주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3. 해방 후 나온 작고 시인들의 시집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의 시집은 모두 해방 후에 초판본이 나온다.
이상화의 시집은 1951년에 백기만이 청구출판사에서 펴낸 『상화와 고월』에 시 16편이 실린 것이 그의 첫 시집이다. 이 시집은 필자도 소장하고 있다. 이육사의 시집도 1946년 아우 이원조(李源朝, 1909~1955)에 의하여 서울출판사에서 『육사시집(陸史詩集)』 초판본이 간행된다.

『윤동주 친필원고(尹東柱 親筆原稿)』, 국가등록문화재, 연세대학교 소장. 사진 출처는 문화재청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윤동주 친필원고(尹東柱 親筆原稿)』, 국가등록문화재, 연세대학교 소장. 사진 출처는 문화재청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에 자선 시집으로 발간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 1948년에 친구 정병욱(鄭炳昱, 1922~1982)과 동생 윤일주(尹一柱, 1927~1985)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사에서 간행한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보존하고 있는 『윤동주 친필원고(尹東柱 親筆原稿)』는 광복직후 북간도에서 서울로 와서 형의 자취와 행적을 찾아다니던 동생 윤일주에게 유고와 유품을 가지고 있던 친지들이 전해주었고, 시인의 여동생 윤혜원이 고향을 떠나며 가지고 온 것이 더해졌다. 이렇게 모인 유품들을 윤일주의 가족이 보관하고 있다가 2013년 2월 연세대학교에 기증하였다. 이 원고는 2018년 5월 8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다.

이들 3종의 시집 가운데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은 해방 후 츨판된 시집 가운데는 가장 높은 호가에 거래된다. 2020년에 들어와 최소 1,000만원부터 보존상태가 양호한 책은 2,500만원을 호가한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4. 개혁 승려이자 문학가로서 독립투사라는 만해의 이미지

한용운의 『님의 침묵』 초판본은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1925년)과 더불어 최고의 평가를 받는 우리 민족 최고가(最高價)의 근대 시집이다. 『진달래꽃』 초판본은 2015년 12월 화봉경매에서 1억3천500만원에 팔려 한국 현대문학 작품 중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으나, 『님의 침묵』 초판본은 2023년 서울 코베이 경매에서 1억8천만원의 낙찰가를 기록한다. 두 책은 8년간의 경매 시차가 있지만 『진달래꽃』 초판본은 『님의 침묵』 초판본보다는 현전본이 희소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필자 생각으로는 현전본의 수량은 두 책이 거의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2016년에 『진달래꽃』 초판본이 한 책 더 경매에 나왔으나 유찰되었다.

이제 여기서 『님의 침묵』 초판본의 과거 호가(呼價)를 내가 아는 대로 언급하고자 한다. 1980년대 중반 서지학자 안춘근(安春根, 1926~1993) 선생이 소장하던 『님의 침묵』 초판본이 50만 원 선에서 거래되었다. 이는 당시의 근·현대 시집 호가로서는 최고가 호가였다. 10년 후인 1990년대 중반에 나는 모 경매에서 350만 원 선에서 낙찰받았다. 그리고 15년 후인 2010년경에 병원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초판본을 2,500만 원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하 역박)에 납품하였다. 13년 후인 2023년 6월에는 경매에서 수수료를 제외하고서도 1억8천만 원에 낙찰되었으니 실제로는 2억 원을 훨씬 넘겨 매매된 것이다.

그런데 역박에 납품한 필자 소장본에는 ‘김두한인(金斗漢印)’이라는 인흔(印痕)이 보이는데 이 인흔은 김두한(金斗漢)은 싸움꾼 김두한(金斗漢, 1918~1972)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만해가 김두한에게 증정한 책일 것이다. 글을 몰랐다는 김두한에게 이 시집은 난해한 것이 아니었을까?

5. 인물의 성향과 업적이 중요

경매에서 시작가보다 높은 가격이 호가하여 낙찰된다는 것은 복수(複數)의 응찰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그 경매물에 인기가 있는 것이다. 왜? 경매물에 인기가 있는가? 서화(書畫)의 경우 작가가 이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 이름이 있다고 호가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업적이 있어야 높이 평가된다.

50년 전 5만 원 10만 원 호가하던 매국노 일당(一堂) 이완용(李完用, 1858~1926)의 서예는 잘 쓴 것이어야 현재 20만 원 정도가 호가한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金九, 1876~1949)의 서예는 1,000만 원이 넘으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3,000만 원도 호가한다. 시중에 유통량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도 호가의 기준이 된다.

독립투사 만해 한용운이나 의병대장 안중근은 우리 근대사의 인물 중에서 매우 높게 평가받고, 그들의 작품은 유통량도 매우 적다. 물론, 우리나라에 조선시대 이전의 글씨는 매우 희소하다. 조선으로 들어와서도 세종대왕의 확실한 글씨는 남은 것이 없고, 이순신의 글씨는 시중 유통품이 거의없어 호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의 인물이든 민족과 나라를 위한 긍정적 위업을 이룩한 인물, 또한 예술사의 한 획을 그은 작가로 평가받는 분의 작품은 소중하다.

김소월이나 한만해는 특출한 문학가이다. 그러나 만해는 소월보다 하나의 평가 기준이 더 있다. 소월이나 만해는 친일파가 아니지만, 만해는 독립투사라는 사실에서 평가 기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만해는 독립투사로서 온 몸으로 온 삶을 살았다. 삶 자체가 저항의 예술이다. 이러니 독립투사의 문학 작품이 순수 문학가의 작품보다 높이 평가받는 사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사회이다. 소월이나 만해에게 우리나라가 없다면 이렇게 높이 평가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내게는 만해가 조선일보에 연재하였던 시를 스크랩한 것이 5점 있다. 『님의 침묵』 초판본은 구할 수 없더라도 만해의 다른 자료라도 구하여 내가 생각하는 평화기념관에 영구 존치하고자 한다.

이육사와 한만해의 순국 80주기를 맞아 그들을 추모하는 글을 쓰려다가 글이 세속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그들은 일제에 저항하여 순국하였지만, 우리 민족의 감성에 깊이 살아있고, 그 생명력은 우리 민족과 국가가 건재하는 한‥‥‥, 우리 말과 글이 살아있는 한 영존(永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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