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에서 방영 중인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이 화제다. 우리에게는 먼 과거로만 느껴지던 고려시대가 한발 우리 앞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연말에 고려시대로 우리를 이끌어줄 또다른 길라잡이 『고려왕릉 기행』(굿북플러스)이 나왔다. 『북한 국보유적 기행』과 『북한박물관 기행』을 펴낸 바 있는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의 노작이다.

정창현,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정창현, 『고려왕릉 기행』, 굿북플러스, 2023.12. [자료 사진 - 통일뉴스]

태조부터 34대 공양왕까지 왕과 왕후들의 왕릉, 개성지역 56기와 강화도 등 남한 지역 6기, 총 62기에 관한 종합 안내서이자 연구서인 셈이다. 송악산을 주산으로 자리잡은 고려의 수도 개경(송도)이 역시 고려왕릉의 중심지이고, 전화(戰禍)를 피해 왕릉까지 몽진한 강화도에 5기, 파주에 1기가 자리잡은 것.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 개성의 산세, 지리와 맞닥뜨리고 만월대(궁궐)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갈피를 잡아야 하지만 저자의 친절하고 상세한 사진과 도표들의 안내를 받게 된다. 더구나 고려의 역사와 이후 굴곡진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떻게 고려 왕릉들이 잊혀지고 복원됐는지 왕릉마다의 구체적인 사연들이 잠든 왕릉을 일깨우는 듯 하다.

물론 이같은 작업들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방문조차 불가능한 북녘인데다 북측 자료들을 입수하는 것도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저자는 다르다. 태조 왕건왕릉을 취재할 당시 “사진을 찍고 돌아서려는데 뜻밖에도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자고 한다. 능의 서쪽에 무덤칸(묘실)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뭐 이 정도이니... 실제로 남측 인사로서 왕건왕릉을 둘러보고 기록한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고 좋은 시절, 좋은 기회를 얻어 이 책이 쉽게 쓰여졌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특히 중국, 일본, 미국 등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해외교포를 통해 수백 장의 고려왕릉 사진을 입수했다”거나, “일제 강점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유리 원판 사진을, 분단 이후 시기는 필자가 직접 촬영하거나 북한이 공개한 사진과 조사보고서를 활용했다”거나, “방위별로 구글어스 지도에 왕릉의 위치를 표시했다” 등의 노력은 결코 이 작업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특징은 많은 사진과 지도, 도표 등이 고령왕릉 기행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이 책의 특징은 많은 사진과 지도, 도표 등이 고령왕릉 기행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고려왕릉을 직접 찍은 사진들이고, 또한 지도나 도표 등을 통한 지리적, 체계적 이해까지를 돕고있다는 점일 것이다. 각 기의 고려왕릉 별로 이 정도의 사진과 도표를 제시하고 있는 책은 아마 북에서도 발간된 적이 없을 듯하다.

뿐만 아니다. 북한이 2013년에 개성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고려 34대 왕 중 24기의 왕릉 만이 주인이 밝혀져 있는 상황이다. 역사적 고증과 현지조사가 더 남겨진 상태인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논점들을 근거들을 제시하며 깊이있게 파고들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의 주인공인 현종의 선릉(宣陵)만 하더라도 북측이 추정해온 ‘선릉군 제1릉’과 ‘선릉군 제3릉’이 헷갈리고, 최근에는 시책(옥책) 조각이 발견된 ‘칠릉군 제1릉’이 선릉일 것이라는 추정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사진으로 보는 고려왕릉에 대한 종합보고서’가 딱 들어 맞는 말이지만, 모든 독자들이 역사학자의 논지를 파악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저자의 안내를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사진으로 고려왕릉 기행을 간접경험하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의 기본 소임은 충분하달 수 있다.

『북한 국보유적 기행』(역사인, 2021)과 고 정용일과의 공저 『북한박물관 기행』(굿북플러스, 2023)에 이은 『고려왕릉 기행』의 발간으로 이제 정창현 소장은 근현대사와 북한 전문가를 넘어 북녘 문화유산에 대한 독보적인 자리를 굳혔다고 평가해도 무방하리라.

남북이 군사적 충돌 전야의 긴장감에 휩싸인 지금, “누구나 개성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날을 상상해 본다”는 저자의 바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새해에는 고령왕릉 기행단이 개성을 찾고, 조선왕릉 기행단이 서울을 찾아 작은 물줄기라도 흐르게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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