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꼼짝 않고 닫혀 있는 답답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나마 간간이 개성이나 금강산, 평양과 묘향산 등을 오갈 수 있었던 시절이 까마득한 옛일만 같고 다시 그런 때가 올 수나 있을지 아득함만 밀려오는 날들이다.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을 오갈 수 있던 호시절, <중앙일보>와 <민족21> 기자로 누구보다 부지런히 북녘을 취재한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이 『북한 국보유적 기행』이라는 반가운 책을 역사인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첫 장면부터가 그렇다. “2007년 5월 11일 평양 모란봉과 그 주변의 역사유적을 답사하기 위해 모란봉 초입에 있는 모란각에 도착했다. 뜻밖의 인물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평양력사박물관 리정남 학예연구실장이 직접 답사를 안내했다는 것.
“운이 좋았던 것일까? 2004년 2월 사진으로만 봤던 덕흥리 벽화고분, 강서대묘의 벽화고분에 들어가 벽화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109쪽) 이쯤되면 당분간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발로 뛴 북한 기행문이랄 수 있을 것이다.
북한 국보유적 200점을 1호 평양성과 2호 안학궁터로부터 195호 백두산 장군봉 아래 룡신비각, 199호 백선행기념관까지를 △평양 △묘향산과 자강도 강계 △의주 △개성과 황해도 △원산과 금강산 △함흥과 백두산 지역으로 나누어 안내하고 있다.
저자에게도 남북단절의 공백이 남은 걸까. 새로 국보유적으로 등록된 △숙종 영릉 △온혜릉 △광복사터 △향목리 동굴유적 △태성리 3호무덤 △옥도리 벽화무덤 등 6건은 고유번호가 ‘미상’으로 남겨졌다.
526쪽에 걸쳐 650여 장의 컬러 사진으로 북녘 국보유적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유적의 위치나 공간배치 등을 사진과 그림 등으로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한 개인이 완성했다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방대하고 상세한 기록이다.
저자도 서문에서 30여 차례 방북 기회를 마련해준 언론사들과 단체들, 자료와 사진 수집을 도와준 많은 언론과 개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이 한 권의 책에 수많은 남북교류 과정에서의 축적된 내용이 오롯이 담겼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은 북녘의 지리와 역사, 문화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기자로서의 꼼꼼한 기록이다. 고구려 무덤과 성 등의 역사를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고 특히 북측 학계의 해석까지 상세히 안내하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유적 소개를 넘어 북녘의 역사와 정신을 이해해 가는 훌륭한 길라잡이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현지 안내를 맡은 북녘 ‘해설강사’의 설명을 인용하는 대목들은 일반적인 학술서적이나 답사기 등을 넘어서는 생생한 북녘 유적 기행으로 독자들을 이끌 것이다.
“1890년대까지 평양성에서는 매일 아침 문을 여는 새벽 4시에 33번, 문을 닫는 저녁 10시에 28번 평양종을 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강점한 일제는 평양종을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보고 그 종소리에 조선 사람의 젃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면서 종을 치는 것은 물론 그 가까이에 다가서지 조차 못하게 했습니다. 평양종이 자기의 아름다운 소리를 다시 울린 날은 1946년 1월 1일이었죠.”(73쪽)
“보현사는 서산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7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킨 장소로 유명하단 말입니다. 하루는 서산대사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석가탑(8각13층탑)의 방울들이 ‘왜란 왜란 왜란’ 하고 울려 잠을 깼더란 말입니다.”(182쪽)
북녘 땅을 제대로 밟아 본 적이 없는 일반인은 물론 여러 번 북한을 방문했더라도 정해진 참관 코스만 맴돌았던 이들까지 저자의 안내를 따라 북녘 구석구석의 국보유적들을 찾아 떠나는 인문학 기행은 한편의 잘 짜여진 장편 다큐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북녘에 있는 돌덩이 하나, 나무 한 조각도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이고, 북녘의 국보유적 하나하나가 우리 민족 공동의 역사유적이다... 이 책이 다시 시작될 남북 문화유산 교류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바람이 빨리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