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해가 저물어갑니다. 국제적 차원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전이 지속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전이 가세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더욱 얼어붙었습니다. 몇 년간 아무런 변화 없이 꿈쩍도 하지 않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의 답답함에 아쉬움을 보내면서, [2023년 송년특집]을 ①한반도 주변 관계 ②남북관계 ③북한 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터져나오는 공통된 평가다.

남북관계도 대표적이다.
어렵사리 유지해온 남북간 평화유지를 위한 모든 신뢰와 제도적 기반들이 그 짧은 기간에 되돌려졌다. 남북은 서로 혐오와 적대의 말폭탄, 전략무기의 향연을 벌이고 있으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들도 무력화돼 언제 군사적 충돌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고 볼 수 있고, 53년 정전체제의 민낯을 다시 찾았다고 볼 수도 있다.

말폭탄을 넘어 법제화로

“북한의 공산전체주의 시스템은 활기찬 시장도, 앞선 기술도, 미래의 인재도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압도적이고 강력한 힘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언제라도 그러한 힘을 사용할 것이라는 단호한 의지에 의해서 구축되는 것입니다.”, “ 북한 주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국의 혹독한 감시와 처벌 속에 기본적인 인권조차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28일 ‘제21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체회의’에서 쏟아낸 말들이다. 대화상대가 아닌 힘으로 구출해야 하는 ‘실패한 국가, 불쌍한 인민’이라는 프레임이다.

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의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자체가 싫다”, “윤석열 저 천치바보들”이라는 인상적인 비난에 이어 올해는 주로 미국을 상대로 비난을 퍼부었으며, “바보들이기에 일깨워주는데 대륙간탄도미싸일로 서울을 겨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남조선것들을 상대해줄 의향이 없다”등 비교적 관심밖 곁가지 취급을 했다.

화룡점정은 [조선중앙TV]가 10월 2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8강전을 보도하면서 남측을 ‘괴뢰’(꼭두각시)라 부르고 자막에도 그렇게 표기한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말폭탄도 지겨운 단계가 된 남북은 적대관계의 법제화, 법제화된 평화관계의 무력화를 진행했다. 적대관계 제도화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북한이 9월 헌법을 ‘수정보충’해 “핵무기발전을 고도화한다”를 헌법에 명시했고 지난해 11월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 발사를 기념해 이날을 ‘미사일공업절’로 제정했다.

남측은 헌법재판소가 9월 26일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의 대북전단살포 규제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해 대북 전단을 규제할 법적 수단이 사라졌고,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민간교류협력을 차단하고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민간단체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정부는 6월 14일 지난 2020년 6월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의 책임을 물어 북측을 상대로 447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했다. 현실성 없는 제소지만 북한 때리기에 유용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당연히 공식적인 남북간 인적교류와 물적교류는 모두 전무했다. 인도적 대북지원이나 미미한 인적교류마저 완전히 끊긴 것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이례적인 상황이다. 혹시 윤석열 정권이 비밀리에 대북 메신저를 보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전두환 정권 등 독재정권들은 물밑으로 전형적인 이중 플레이를 폈던 전례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기존의 남북관계와 민간교류를 샅샅이 헤집어보고 있다. 서해 공무원 사망사건 재조사와 대북지원단체들에 대한 조사가 대표적 사례이다. 지난 시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과의 접촉도 문제삼고 있다. 나아가 예산을 미끼로 행사에서 ‘평화’나 ‘통일’이라는 단어를 빼고 ‘자유’나 ‘인권’ 등을 내세우라는 압력을 받은 단체가 있을 지경이다.

북 돈줄죄기와 인권 이슈화, 그리고 독자제재

한미일의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아랑곳 않고 핵⸱미사일 개발로 나아가고 있지만 거부권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어떤 대북 규탄성명이나 제재결의도 채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한미일은 숱한 독자제재만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2월 1일자 독자제재까지 모두 13차례에 걸쳐 개인 75명과 기관 53개가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 남북간 교류가 끊기 마당에 쏟아내는 독자제재가 북한에 얼마나 압박이 될지는 미지수다. 마지막 12월 1일자 독자제재는 미국과 일본은 물론 처음으로 호주까지 같은날 독자제재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른바 대북제제의 국제연대 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

등장부터 논란을 일으킨 김영호 통일부장관은 지난 11월 6일 취임 100일을 맞아 ‘원칙있는 남북관계 정립’를 내세우며 △북한 인권 개선 △이산가족·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 해결 △북한 실상에 대한 대국민홍보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통일부는 오는 12월 ‘북한인권로드맵’을 발표하고 연초에 공개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이어 조만간 『북한 경제·사회 실태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한미일 대북수석대표들과 수시로 유무선 협의를 갖고 북한의 ‘군사도발’ 때마다 강력 비판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자 독자제재 등을 통해 북한 ‘돈줄죄기’를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주로 가상화폐 탈취 등 IT분야와 해상환적 등을 감시, 적발하는 것이다. 아울러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실행을 독려하고 있다. 물론, 북한 인권문제를 국제적 차원에서 이슈화하는 것도 외교부의 몫이다.

최근 진행된 한미일 안보실장 협의에서도 “사이버 범죄, 또한 암호화폐 세탁에 따른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언급됐으며, 12월 7일 일본 도쿄에서 제1차 ‘북한 사이버 위협 대응 한미일 외교당국간 실무그룹’ 회의가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9.19군사합의 무효화와 전략자산 대결

북한 돈줄죄기와 인권 문제 이슈화가 통상적인 압박책이라면 군사분야의 압박책은 군사적 충돌 위험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의 수준이 다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의 가속화와 한미일의 군사대응 강화, 미국전략자산 전개 등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한미 정상은 ‘워싱턴선언’(4.26)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을 한층 증진시킬 것”이라고 천명했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2월 15일 워싱턴D.C.에서 “올해 미국 전략자산은 한반도 인근에 총 17회 전개됐다. 이는 작년의 5회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증가한 것”이라고 요약했다. 김 1차장은 "핵 전략의 기획과 운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계속 협의해서 내년 중반까지 완성하기로 합의했다"고도 밝혔다.

지금도 미국 해군의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미주리함’(SSN-780)이 17일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상태다.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17일 “연말연시를 앞두고 까지 조선반도 지역에 또다시 핵전략수단들을 들이미는 미국의 도발적 행위를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17일 밤 동해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은 올해 미국을 사정거리에 둔 신형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포-18’형을 4월과 7월 시험발사해 성공했고, 숱한 미사일 발사 시험을 단행했다. 또한 세 번만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에 탑재 발사해 궤도에 진입시켰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성공에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해 결국 “정부는 ‘9.19 군사합의의 제1조 제3항에 대한 효력 정지를 추진하고, 과거에 시행하던 군사분계선 일대의 대북 정찰·감시활동을 복원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북한 국방성은 11월 23일 성명을 통해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군대는 9.19북남군사분야합의서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9.19군사분야 합의라는 안전장치가 뽑힌 셈이다.

남북간 통신선도 지난 4월초 이후 끊긴 상태다. 지난 10월 말, 표류해온 북한 선박을 돌려보낼 때도 ‘유엔사 및 국제상선통신망’을 통해 ‘상황을 전파하고 통보’해야 했다. 남북간 긴급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직접 의사소통 방법이 막혀있는 심각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군사적 충돌 위험과 국민의 선택

한반도에서 군사적 대치는 강화되고 이를 억제할 제도적 장치들은 사라짐으로써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이제 현실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더구나 4월 국회의원 총선거 등 국내 정치 상황이 남북간 군사적 충돌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평화를 깨뜨리는 어떠한 군사적 충돌도 있어서는 안되고 더구나 걷잡을 수 없는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의 확전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민족의 비극이자 인류의 비극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진보보수를 떠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데 모든 힘을 우선적으로 기울여야 할 때이다.

올해 북러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간 서신 교환 등 북중러 3각 협력이 강화되고 한미일 3각 공조가 심화되는 것은 결국 남북간 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의 공간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북미, 북일 간 대화, 한중, 한러간 대화가 병행되면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터야할 것이다. 북한도 결국 남북관계 개선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우리 민족이 생존, 번영할 수 있는 길임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우스개로 지난 9월 최재형 목사 몰카에서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가 “저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이렇게 좀 끊어지면 좀 적극적으로 저는 남북 문제 제가 좀 나설 생각이예요. 정말로”라고 말한 대목을 주목하며 “남북 문제도 김건희가 나서야 할 판”이라는 탄식마저 나오고 있다.

‘러시아-우쿠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진행 중이고, 대만과 한반도가 다음 전장터로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악몽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흐름을 멈춰세우지 못한다면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내년에 중요한 선거들이 기다리고 있다. 1월 대만 총통선거, 3월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대선, 4월 한국 총선, 11월 미국 대선, 일본 중의원 선거도 10월로 예정돼 있지만 앞당겨질 수도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한반도의 일촉즉발 상황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드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년이면 윤석열 정부 3년차이다. 야당도 국민도 윤석열 정부의 폭주를 멈춰세우기 위해 모든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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