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2023 제주고서전』, 한국고서협회 주최, KBS제주방송총국. [사진 제공 – 이양재]
『2023 제주고서전』, 한국고서협회 주최, KBS제주방송총국. [사진 제공 – 이양재]

오늘(4일) 오전 11시경에 드디어 ‘2023 제주고서전’을 개막하였다. 이제 나는 자유롭게 제주고서전에 출품한 책을 여러 번에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 ‘2023 제주고서전’에는 조선시대에 제주도에서 출판한 고서로는 『예기천견록』 2종과 『오자직해』, 『장감박의』, 『첩산선생주해당시』 등 5종을 전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서지학계에서는 조선시대의 책판목록을 조사하여 제주에서 출판한 조선시대 출판물은 93종으로 추정했고, 그중에 23종의 실물만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2023 제주고서전’을 준비하면서 우리 진행위에서는 조선시대 제주에서 출판된 97종의 서목을 확인할 수 있었고, 또한 기존의 연구에서 빠진 2종의 실물을 더 확인하여 25종의 실물이 전하는 것으로 집계하였다. 즉, 이번 고서전을 준비하면서 1411년에 나온 『논어』와 1588년 이전에 나온 『첩산선생주해당시』 등 두 종의 고서 실물을 추가로 확인한 것이다.

1. 제주에서 간행한 현존 최고본 고서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 1405년, 목판본, 조선시대에 제주에서 출판된 최고본 고서이자,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최고본 병서(兵書)이다. 박철상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 1405년, 목판본, 조선시대에 제주에서 출판된 최고본 고서이자,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최고본 병서(兵書)이다. 박철상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제주에서 가장 오래전에 출판된 책은 1405년에 나온 『황석공소서』이다. 이 책은 2008년 7월 4일 자 <연합뉴스>를 통하여 “600년 전 국내 최고 병서 발굴”이라는 제하에 보도하였다. 『황석공소서』는 병서(兵書)로서 조선 태종 5년(1405) 11월 제주도에서 당시 제주목사 이원항(李原恒)과 제주판관 한이(韓彛)의 책임 아래 목판으로 판각 간행하였다.

이 책을 발굴한 소장자는 박철상 박사이다. 아쉽게도 전시 준비 마지막 단계에서 소장자와 통화하게 되어 출품이 불발되었다.

2. 제주에서 간행한 『논어(論語)』

『논어』, 1411년, 제주도안무사 김정준(金廷儁)이 제주도민들을 교화하기 위해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의 저본은 당시 생원이었던 고득종(高得宗, 1388-1452)이 소장한 원판본(元版本) 『논어』이다. 오채현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논어』, 1411년, 제주도안무사 김정준(金廷儁)이 제주도민들을 교화하기 위해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의 저본은 당시 생원이었던 고득종(高得宗, 1388-1452)이 소장한 원판본(元版本) 『논어』이다. 오채현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나는 여러 해 전에 파주 헤이리의 오채현 소장의 『논어』를 확인한 바 있다. 1411년 제주목 간기가 있는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현전본(現傳本) 『논어』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출판된 『논어』이다. 1411년 제주도안무사 김정준(金廷儁)이 제주도민들을 교화하기 위해 간행하여 향학에 반포한 책이다.

이 책의 저본은 당시 생원이었던 고득종(高得宗, 1388-1452)이 소장한 원판본(元版本) 『논어』로서 간행에 동원된 각승(刻僧)이 16인, 교정(校正)에 성균유학(成均幼學)과 성균생원(成均生員) 3인, 감독관 1인이 기록되어 있다.

소장자 오채현은 수년 전에 이 책을 안동 국학원에 보관 기탁하였으므로 이번 제주고서전에 출품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별첨하는 사진을 받았다. 이 책은 아직 서지학계에 공식 보고된 바 없이 아는 사람만 아는 상태로 비장해 온 고서이다.

3. 『당시절구』를 최초로 공개하다

『첩산선생주해당시(疊山先生註解唐詩)』, ‘무자년유월일제주개간(戊子年六月日濟州開刊)’의 간기가 있어 1653년 이전 무자년에 책판을 제작한 것을 알려준다. 필자는 여기에서의 무자년(戊子年)을 1588년으로 본다. 필자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첩산선생주해당시(疊山先生註解唐詩)』, ‘무자년유월일제주개간(戊子年六月日濟州開刊)’의 간기가 있어 1653년 이전 무자년에 책판을 제작한 것을 알려준다. 필자는 여기에서의 무자년(戊子年)을 1588년으로 본다. 필자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이원진의 『탐라지』(1653년)의 판본 목록에 『당시절구』가 들어 있으나 이 책의 발견은 서지학계에 보고된 바 없다. 이번 고서전을 준비하면서 나는 나의 서고에서 ‘무자년유월일제주개간(戊子年六月日濟州開刊)’의 간기가 있는 『첩산선생주해당시(疊山先生註解唐詩)』를 찾아냈다.

3권1책의 고본인데, 선덕구년(宣德九年, 1434년) 추구월(秋九月)에 명나라 초기의 관리 장익(張益, 1395~1449)이 쓴 서문이 있다. 따라서 서문의 1434년 이후, 『탐라지』가 편찬된 1653년 이전의 무자년에 출판된 것이다.

1653년 이전, 1434년 이후의 무자년은 1468, 1528, 1588, 1648년 등인데, 이 책에는 흑구가 있고 어미는 흑어미와 이엽화문어미가 섞여 있는 것을 보면, 대체로 임란 이전인 1528년이나 1588년에 판각한 판본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는 1528년 판본이기보다는 1588년 판본으로 보인다. 30여 년 전에 구매한 소장품인데, 이번 ‘2023 제주고서전’에서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4. 제주 책판 목록에 언급된 출판물을 검토하면서

‘2023년 제주고서전’을 준비하면서 97종의 책판목록을 검토하였다. 과거 제주의 책판 목록과 현재 전존하는 제주 간기본과 본문 등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의 제주도는 다소 열악한 출판 환경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대의 흐름에 맞는 출판 활동을 꾸준히 하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제주의 수요를 넘어선 책판이 있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관점을 형성시킨다. 1418년 판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이나 17세기의 『십구사략』 8권과 『장감박의(將鑑博議)』 10권5책본, 1687년 판 『삼국지통속연의』 12권12책 본은 당시로서는 거질(巨帙)의 책이었고, 또한 순 한문본이라 제주에서의 독자는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특히 1740년 판 『근재선생집』에는 “庚申冬刊于濟州移蔵板本扵羅州”라고 기록하고 있어 제주에서 판각 간행하여 나주로 판을 옮겼음을 알 수가 있다. 즉 이는 제주에 판각을 주문한 것임이 확인된다.

또한 1418년과 1706년 각기 판각된 권근(權近, 1352~1409)의 『예기천견록』은 조선 전체에서도 수요가 적은 책이었고, 1653년 『탐라지』 책판 목록에 수록된 『포은집(圃隱集)』은 제주의 수요는 매우 적어, 제주에서 책판을 만드는 것보다 육지에서 인쇄된 서책을 사 오는 것이 막대한 경비를 들여 판각을 만들어 인쇄하는 것보다 경제적이었을 것이다.

즉 이러한 많은 책판은 육지에서 주문 제작한 책판이거나, 육지에서의 서책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책판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더군다나 1687년 판 『삼국지통속연의』 12권12책 본은 그 서책을 인출하여 육지의 독자들에게 공급한 방각본 성격의 수출품으로 보인다. 즉 제주에서 제작된 책판 목록을 보면, 일부 육지에서 주문 제작한 책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판에 보이는 대다수 서책의 실물이 전존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책판을 조선시대 중기와 후기에 인구가 적은 제주에서 제작하였다는 것은 대단한 긍지를 가질 만한 놀라운 사실이다. 이러한 제주 자체 출판물 이외의 육지 출판물도 제주인들에게 보급되었음을 미루어 보면, 높은 수준의 학문과 문화에 대한 조선시대 제주인들의 열정과 욕구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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