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일반적으로 서점(書店)을 영어로는 ‘Book store’나 ‘Book shop’이라고 한다. 이는 책을 파는 장소를 말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Booksellers’라고 할 때는 책을 파는 장소로보다는 책 판매자를 의미한다. 대체로 ‘Book store’나 ‘Book shop’은 단순하게 신간 서적을 파는 서점을 의미한다. ‘Booksellers’는 진귀한 고서(Rare books)나 오래된 책(Antic-Books)을 파는 고서상인을 호칭할 때 흔히 쓴다. 고서상인은 단순히 고서를 파는 행위가 아니라, 서지학적 안목이 곁들여 있기 때문이기에 그런 것 같다. 한국에서는 고서상인을 얕보는 경향이 있지만, 서양에서의 고서상인들은 전문 분야의 박사학위를 가진 자들이 수두룩하다.

‘국제고서적상연맹(ILAB, International League of Antiquarian Booksellers)’이란 세계적인 연합체가 있다. 현재 이 연합체에는 22개 국가에 있는 각국의 고서협회나 고서적상협회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비(非)가입국 소재의 고서점이 단독으로 회원 가입할 수는 없다. 반드시 고서협회나 고서적상협회가 있는 나라의 단체가 연맹의 회원으로 가입하여야 하며, 개인은 자신이 속한 국가의 회원으로 가입하여야 ‘국제고서적상연맹’의 고서상으로 인정을 받는다. 2023년 현재 ‘국제고서적상연맹’에는 22개국 1,600여 고서적상이 회원으로 있다.

1987년 7월 14일 창립총회를 개최한 ‘한국고서협회(ABAK)’는 창립 4년 후인 1991년 8월 30일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ILAB 회장단 회의에서 연맹 가입이 승인되었다. 이후 한국고서협회의 정회원은 ‘국제고서적상연맹’의 도의(道義)와 규칙(規則)을 따라야 한다. 현재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고서협회만이 연맹의 가맹국이다. 따라서 1991년 이후 일본의 ABAJ가 주최하는 ‘일본국제고서박람회’와 일본의 고서점가(古書店街)는 나의 단골 무대가 되었다.

1. 나의 국제 북 페어 방문

나는 1991년 5월경 ‘한국고서협회’에 입회하여 7월 22일 자에 개최된 동 협회의 제3기 정기총회에서 간사(幹事)로 선임되었다. 우리나라의 고서협회가 ‘국제고서적상연맹’의 정회원국으로 승인되기 130여 일 전에 ‘한국고서협회’의 회원이 되고 40일 전에 간사가 된 것이다. 이보다 앞선 1986년 말에 나는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 해를 넘겨 가면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에 머물면서 연초의 ‘Miami Beach Art Fair’와 ‘Miami Beach Antic-Show’를 보았고, St. Petersbrug와 Miami Beach에서 열린 고서박람회(Antic-Book Fair)를 각기 찾은 적이 있다. 그리고 1991년 ‘미국고서협회(ABAA)’가 후원하는 ‘캘리포니아 국제고서박람회’(2월)과 ‘뉴욕 국제고서박람회’(4월)를 각기 방문하였다.

내가 ‘한국고서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한 1991년 이후에는 1994년 2월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국제고서적상연맹’의 회장단 회의와 제27회 ‘캘리포니아 국제고서박람회’를, 당시 ‘한국고서협회’의 여승구 회장(화봉문고 대표)과 동행하여 참관한 바 있다. 당시의 방문기는 ‘한국고서협회’ 회보 『고서(古書)』 창간호(1994, pp.31~35)에 「지진에 떨며 폭설을 헤치며」라는 제호로 기고한 바 있다. 벌써 29년 전의 일인데, 꼭 30년이 되는 2024년에는 10월 14일부터 18일까지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회장단 회의를 가고 싶다. 가게 될 수 있을까?

2. 갑작스레 ‘2023 제주고서전’을 준비하다

2023년 연초에 나는 KBS제주방송총국 전시실 대관 담당자에게 전화하여 9월 초에 두 주일 정도 1층 전시장을 쓸 수 있겠는가를 문의하였다. 가을쯤에 기획전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세 차례나 장소를 빌려 좋은 전시를 한 실적을 보았는지 구두(口頭)로 한 나의 대관 신청을 접수하였다. 하지만 금년 상반기 사업이 지지부진하며 7월에 이르자 나는 낙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전시실 대관 담당자로부터 7월 27일 전화가 왔다. “9월 초에 두 주간 사용하는 것으로 말씀하셔서 9월 1일부터 14일까지 비워 놓았는데 예정대로 전시하십니까?”하는 확인 전화였다. 아차‥‥‥, 준비를 못 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이럴 때는 처음 예정한 대로 나가야 한다. 내 구두 예약을 허언(虛言)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급히 우리 한국고서협회의 김선균 회장에게 전화하여, 시간이 촉박하지만 한 달간 준비하여 ‘2023 제주고서전’을 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의외로 대구의 회원 몇 분과 수집가 몇 분, 서울의 마구류(馬具類) 전문가 김병천 선생과 티메카코리아의 김태진 사장, 충주의 우리한글박물관의 김상석 관장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왔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벼락치기 전시 준비에 들어갔다. 원래 1년 전부터 준비하여야 하는 것을 한 달 만에 준비하자니 여러 면에서 벅찼다. 그러나 출품되는 의외의 자료들이 있어 놀라운 일이다.

3. 도(島)에서 도(道)로의 출생신고

미군정청(美軍政廳)의 「법령 제94호, 제주도(濟州道)의 건설(建設)」 1946년도 7월 2일 자. 14.7×21cm. 이 문건은 영문 부분을 포함하여 2장 3면의 문건이다. 문서의 오른쪽에 천공(穿孔)한 것을 보면 어느 정부 부처에서 철하여 보관 중이던 문건으로 보인다. 십여 년 전 어느 고서경매에서 낙찰받았다. 필자 소장품. [사진 제공 – 이양재]
미군정청(美軍政廳)의 「법령 제94호, 제주도(濟州道)의 건설(建設)」 1946년도 7월 2일 자. 14.7×21cm. 이 문건은 영문 부분을 포함하여 2장 3면의 문건이다. 문서의 오른쪽에 천공(穿孔)한 것을 보면 어느 정부 부처에서 철하여 보관 중이던 문건으로 보인다. 십여 년 전 어느 고서경매에서 낙찰받았다. 필자 소장품. [사진 제공 – 이양재]

놀랄만한 자료에 대하여 개막도 하기 전에 미리 쓴다는 것은 부담이 있다. 그래서 ‘2023 제주고서전’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품목은 먼저 터트리지 않는다. 놀랄만한 자료는 9월 4일 개막하는 ‘2023 제주고서전’에서 직접 보기를 바란다. 다만 여기서는 비(非) 역점적인 자료를 한 점 소개하고자 한다. 그 비 역점적인 자료는 1946년도 7월 2일 자,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在朝鮮美國陸軍司令部軍政廳)의 「법령 제94호, 제주도(濟州道)의 건설(建設)」이라는 당시의 문건이다.

이 문건은 제주도를 전라남도에서 분리 독립된 도(道)로 승격하는 법령으로 제6조에 1946년 7월 30일 24시에 효력을 발생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법령을 공포한 자는 미군정장관 러치 아서(Lerch, Archer L., 1894-1947)이고, 이 법령은 제주도(濟州島)를 제주도(濟州道)로 승격한 것 이상의 내용은 없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되고 9월 8일인가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였다. 그런데 해방되고 채 일 년이 되지 않은 시기에 제주도를 전라남도의 부속적인 섬(島)에서 전국 단위를 지칭하는 도(道)로 승격한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파격적이지 않은가? 육지에 부속된 섬으로 지방정부가 관할하는 지역이 아니라, 독자적인 도지사가 있는 중앙정부에서 직접 관할하도록 한 이유가 과연 환영하기만 한 일이었을까? 섬 제주가 도로 승격된 것은 1947년 3.1절 행사장에서의 불상사와 이로써 확대된 후발 사건 제주4.3의 시발점이 도의 승격에서부터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측면에서도 세심히 검토되어야 할 일이다.

9월 4일, ‘2023 제주고서전’에서 애서가들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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