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관에 압박을 가하는 평화의 외침과 워싱턴 시가 행진

한풀이 행사에서 색색의 끈을 휘날리며 기쁨의 춤을 추었던 참가자들은 백악관 앞으로 집결했다. 실내에서 밖으로 나오면 섭씨 37도의 숨막히는 더운 공기가 압도했지만 저마다 깃발과 피켓을 가지고 백악관 앞으로 모여들었다.

백악관앞 집회는 위민크로스DMZ /코리아피스나우 풀뿌리네크워크(KPNGN)의 조현숙 활동가가 진행했는데 여러 연사의 발언 사이사이에 “70년은 너무 길다!”, “코리아 피스 나우!”라는 구호를 신명나게 선창하면서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이끌어갔다.

백악관 앞 집회에서 조현숙 활동가가 청중을 리드하고 있는 모습.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미주한인평화재단의 현수막이 눈에 띈다. [사진 – 김도형]
백악관 앞 집회에서 조현숙 활동가가 청중을 리드하고 있는 모습.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미주한인평화재단의 현수막이 눈에 띈다. [사진 – 김도형]

AOK(액션 원 코리아)가 이번 행사를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핑크 천을 펼치자 마자 참가자들은 서로 핑크천을 맞잡고 백악관 앞에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대오를 형성했다. 사회자는 정전 70년에 백악관 앞에 이렇게 많이 모인 이유는 바로 바이든 행정부에 ‘한국전쟁을 끝내라‘고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고 집회는 곧 미국 정책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되었다.

세계적인 여성 반전평화단체 코드핑크의 메디아 벤자민 대표는 “군사비 1조 달러를 쓰고 남한에 3만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전쟁연습을 격화시키는 미국이 북이 미사일 실험을 한다고 해서 과연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어 ‘한국전쟁을 끝냄으로써 미국의 군사주의를 끝내자’는 명쾌한 호소에 환호성이 이어졌다.

미주한인평화재단의 베키 벨코어 미주한인봉사교육협의회(NAKASEC) 사무총장은 이산가족들이 가족을 상봉하지 못하고 있는 비극과 서류미비자 가족들이 서로 뿔뿔이 흩어져 만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마찬가지라고 비유하면서 “정전 70년에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지난 70년간의 잘못을 바로 잡고 가족상봉과 평화를 이루도록 요구하는 것이 미주한인들의 의무”라고 천명했다.

백악관앞 집회에서 크게 원을 그린 핑크 띠를 참가자들이 들고 있다. 7월 27일 한국에서는 평택 미군기지를 핑크띠로 에워싸는 인간띠잇기 운동이 있었고 백악관 앞에서도 같은 상징물을 사용했다. [사진 - 이재수]
백악관앞 집회에서 크게 원을 그린 핑크 띠를 참가자들이 들고 있다. 7월 27일 한국에서는 평택 미군기지를 핑크띠로 에워싸는 인간띠잇기 운동이 있었고 백악관 앞에서도 같은 상징물을 사용했다. [사진 - 이재수]
세계적인 반전평화단체 코드핑크 메디아 벤자민 대표와 코드핑크 회원들. 현재 미국에서 상영중인 바비인형 영화를 패러디한 복장을 한 회원들이 “제재를 끝내라”, “평화를 실현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 김도형]
세계적인 반전평화단체 코드핑크 메디아 벤자민 대표와 코드핑크 회원들. 현재 미국에서 상영중인 바비인형 영화를 패러디한 복장을 한 회원들이 “제재를 끝내라”, “평화를 실현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 김도형]

또한 “휴전협정을 맺을 때 평화협정을 하기로 하고서 평화협정을 하지 않고 있으면서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 으로 불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데이비드 김 민주당 캘리포니아 연방하원후보의 단호하고도 열정 넘치는 연설은 요즘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고 있는 한국계미국인 정치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연방하원으로 2선 의원인 영 김, 미셀 박 스틸 의원이 종전선언이 위험한 발상이라며 종전선언에 앞장서서 반대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라파이옛트 공원 백악관앞 집회는 링컨기념관까지 평화행진으로 이어졌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장구와 소고를 치는 어린이들 참여가 돋보이는 풍물패 ‘한판’이 연신 흥을 돋구었다. ‘End The Korean War 한반도 평화 통일’ 문구가 쓰여진 대형 현수막을 앞세우고 참가자들은 1.5마일이 넘는 거리의 워싱턴 시내를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한국전쟁을 끝내라!”, “전쟁연습 중단하라!”, “전쟁이 아닌 복지를! Welfare not Warfare”, “우리 생애 내에 평화실현!”이라는 다양한 구호와 저마다 만든 피켓을 가지고 전쟁을 끝낼 기세로 함성을 지르며 행진했다.

행진하는 사이 후텁지근한 날씨는 어느새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면서 장대 같은 소낙비가 퍼부었지만 대열은 흐트러짐 없이 전진했다. 한국전쟁 전사자들의 기념 공원이 바라다 보이는 링컨기념관 앞에서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 지도자들이 나와서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의식을 각기 고유한 의식으로 진행했다. 여러 종교가 한 데 어우러지는 의식으로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넋들을 위로하여 숙연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한풀이 의식이 있었던 교회에서부터 목에 저마다 색색의 끈을 걸고 나왔던 참가자들은 끈을 서로 이어 손에 손잡고 어느 새 하나로 모두 이어졌다. 하나된 마음으로 코리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가운데 평화를 기원하는 강강수월래 춤으로 이어졌고 춤은 오랫동안 그칠 줄 모르고 날이 어둑 어둑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마침 이 장소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1963년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과 행진이 있었던 장소가 아니던가. 정확히 60년전, 미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명소에서 색색의 끈으로 너와 내가 하나된 마음으로 부르는 ‘우리의 소원’ 통일 노래는 참으로 각별했고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코리아의 통일이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인들의 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한발짝 더 다가간 모습이었다. 링컨기념관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코리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의식에 진지한 관심과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링컨기념관에 도착한 행진대열이 색색의 끈을 잡고 하나로 이어져 통일노래를 부르는 모습. [자료 사진 - women cross DMZ]
링컨기념관에 도착한 행진대열이 색색의 끈을 잡고 하나로 이어져 통일노래를 부르는 모습. [자료 사진 - women cross DMZ]
7월 27일 링컨기념관 앞에서 강강수월래 후 찍은 단체 사진, 모두의 표정이 밝다. [사진 - 김창종]
7월 27일 링컨기념관 앞에서 강강수월래 후 찍은 단체 사진, 모두의 표정이 밝다. [사진 - 김창종]


# ’코리아피스액션’ 행사의 의의

코비드19 사태로 인해 미국에서는 지난 3년간 대면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주최측 추산으로 500여명이 참가했다는 이번 ‘코리아피스액션’은 코비드 이후 처음으로 코리아평화 이슈를 가지고 결집한 대규모 집회였는데, 워싱턴지역 참가자들은 워싱턴에서 코리아평화 이슈로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코비드 이전에도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여성과 청년들의 참여가 두드러지게 많은 점이 희망적이다. 연배가 지긋한 남성들 참여가 압도적으로 많은 국내 집회와 확연히 다르다고 타지역이나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놀라워한다.

또한 인종과 배경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동포 활동가, 이산가족 당사자, 참전용사, 군사전문가, 반전활동가, 종교지도자, 학자, 예술가 등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코리아평화의 실현을 위해 나서고 있다는 점은 주최단체들에게도 참가자들에게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한마디로 위민크로스DMZ의 그간의 노력, 그리고 함께하는 단체들의 연대의 힘을 볼 수 있었다.

행사는 기, 승, 전, 결로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완성도가 높았는데, 여기에는 문화적 상징이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위민크로스DMZ가 군사분계선을 넘는 행사에서는 조각보가 상징이었다. 저마다 색깔과 모양은 달라도 작은 조각보들이 모여 큰 조화를 이루듯이 남북의 평화도 그러한 마음으로 완성되게 하자고 남북해외 여성들이 함께 조각보를 만들었고 완성된 조각보를 맞잡고 통일을 노래했었다.

2023년 ‘코리아피스액션’에서는 색색의 끈이 문화적 상징이었다. 끈은 평화와 통일을 향한 저마다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고 연결과 소통, 공감과 연대의 매개체가 되었다. 한풀이 행사에서는 응어리를 풀어내는 해원의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링컨기념관 앞의 마무리의식에서 끈으로 이어진 강강수월래는 인종과 종교, 성별을 가리지 않고 ‘전쟁 없는 한반도’가 모두의 염원이라는 끈끈한 연대의식을 표현했다.

2015년 위민크로스DMZ의 조각보와 2023년 코리아피스액션의 색색의 끈. [왼쪽 사진 - 정연진 / 오른쪽 자료 사진 - 김도형]
2015년 위민크로스DMZ의 조각보와 2023년 코리아피스액션의 색색의 끈. [왼쪽 사진 - 정연진 / 오른쪽 자료 사진 - 김도형]


# 워싱턴원정단의 보람

한국의 청년세대가 미국의 평화활동에 동참하는 것은 아직까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번 워싱턴원정단에서 청년 동참자들이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했다. 김남기 청년은 “미국 역사의 어두운 진실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지만 미국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말하며, 특히 평소에 꼭 만나고 싶었던 팀 셔록 기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를 만난 것이 보람찼다고 한다.

이번에 워싱턴원정단을 구성하면서 동참자들에게 재미활동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코리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느꼈다니 다행이다.

김해인 청년은 한풀이 행사와 다양한 종교가 한 데 조화된 의식이 무척 인상 깊었다고 한다. 재미동포가 아닌 미국인들 눈에는 굉장히 이색적이었을 한풀이 문화행사에 그들이 많이 참여한 것도 인상 깊었고, 해외에 사는 동포들이 한국의 전통을 더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느껴졌다고 한다. 매듭진 끈을 다같이 풀고 춤추고 즐기다가 나중에는 끈을 묶어서 강강술래를 하는 것이 “민족의 한을 다 풀고 같이 즐겁게 연대하자는 의미”로 와닿았다고 한다.

워싱턴원정단은 워싱턴 일정에 이어 뉴욕에 이틀, LA에 이틀 체류하며 동포사회와의 만남을 가졌다. 그간 미국에서 내가 혼자서 강연이나 좌담회를 할 때 보다 확실히 청년세대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동포사회의 반응이 크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점이 나에게는 무척 고무적이어서 앞으로도 이러한 기회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LA발표회는 예정되어 있었으나 뉴욕행사는 갑자기 만들어진 행사였는데 이윤희 선생과 미주한인평화재단의 도움으로 발표회를 급히 마련할 수 있었다. 참가 소감은 김해인 청년이 대표로 했고 김남기 청년은 본인이 연구하는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으로 보는 미국’에 대해 김도형 PD는 남북해외가 함께하던 통일월간지 <민족21> 사진기자로서 남북을 오가며 찍은 사진들 위주로 ‘북녘사회의 집단과 개인’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강의를 했는데 청중의 호응이 아주 좋았다.

로스앤젤레스 평화의교회에서 8월 2일 열린 워싱턴원정단의 발표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인원이 참석하였다. [사진 – 정연진]
로스앤젤레스 평화의교회에서 8월 2일 열린 워싱턴원정단의 발표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인원이 참석하였다. [사진 – 정연진]
로스앤젤레스 평화의교회에서 8월 2일 열린 워싱턴원정단의 발표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인원의 참석이 있었다. [사진 정연진]
로스앤젤레스 평화의교회에서 8월 2일 열린 워싱턴원정단의 발표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인원이 참석하였다. [사진 - 정연진]

분단문제를 우리 세대에 해결하지 못하고 미래 세대에까지 짐을 지우는 것은 너무나 착잡한 일이다. 더구나 코리아의 분단은 세계사적으로 부당한 일이다. 마땅히 분단되었어야 할 2차대전 침략국가 일본 대신 한반도가 희생된 것이기에 분단에 대한 부당성을 국제무대에 계속 제기해 나가야 한다. 세계역사를 바로 잡기에 1-2 세대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것이다. 또한 세계사적 부당성을 지적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타민족과 여러 나라들의 평화시민과의 연대와 협력이 있어야만 가능하지 않겠는가.

워싱턴에서 조현숙(미국명: Elizabeth Cho) 활동가의 활약과 함께 40대의 활약이 두드러진 점이 무척 고무적이고 희망이었다. 조현숙 활동가는 김도형 PD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들의 목표는 통일이 아니라 통일의 당사자인 남과 북이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미국의 정치를 움직여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수긍이 가는 말이다.

‘민족’이 우선 가치인 국내의 통일운동과 타민족과 영어권 2세들이 많이 참여하는 해외의 운동은 궁극적인 목표는 같겠으나 실천에 있어 역할 분담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활동가들에게는 미정부와 의회를 압박해 평화협정과 평화법안을 만드는 것이 당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국내의 역할 분담에 대해 국내에서도 토론이 전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평화와 통일은 천을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 같다고 표현하고 싶다. 평화를 위한 폭넓은 수평적인 연대가 날줄이라면 세대와 세대를 잇는 수직적 시간, 통일을 향한 역사가 씨줄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씨줄과 날줄이 결합되어야 비로소 현실이 된다. 즉 내 안에서 씨줄과 날줄이 결합되어 응집될 때 나의 능력과 힘이 온전히 발휘되고 쓰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전 70년, 평화와 통일이 멀게만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아침이 오기 전 새벽녘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우리들의 열망이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면 멀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워싱턴 ‘코리아피스액션’에 참가하고 느낀 보람은 바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영상 - 김도형 PD]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