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6-28일 정전협정 70주년을 기해 미 전국에서 수도 한복판 워싱턴DC로 평화활동가들, 평화단체들이 대규모로 결집했다. “한국전쟁을 끝내라”는 드높은 함성과 행진이 3일간 이어진 ‘코리아피스액션’ 행사에 AOK (액션 원 코리아)는 참가단을 조직하고 총 7명의 워싱턴원정단을 구성해 미국을 다녀왔다.
(참조 코리아피스액션 홈페이지)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동맹을 속수무책으로 강화하며 고강도 군사연습을 계속하며 이제는 종전만 주장해도 ‘반국가세력’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는 요즘,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존재가 버겁기만 하다. 3년간 전쟁하고 70년간 휴전인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전쟁, 정전 후 수 개월 내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명시된 약속이 헌신짝처럼 버려진 전쟁, 대체 언제쯤이나 이 괴이한 전쟁을 매듭지을 수 있단 말인가.

7월 하순 숨막히는 무더위 속에서도 올해는 정전협정 70년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예년보다 더 많은 집회와 행사들이 국내외로 이어졌다. 국내의 여러 중요한 행사들도 있었지만 평화협정이 이뤄져야하는 상대인 미국의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고 올 4월부터 원정단을 준비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풀뿌리 통일운동을 한다고 그간 거의 혼자서 태평양을 오갔으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7명의 우리 원정단은 워싱턴의 7.27 행사에 참석함은 물론이었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도 방문해 동포들과의 만남을 가졌는데 청년세대와 함께 미국 방문을 완수한 보람이 컸다.

7월 27일 백악관 앞에서 출발해 워싱턴 도심을 행진하고 있는 코리아피스액션 참가자들. [사진 – 김도형]
7월 27일 백악관 앞에서 출발해 워싱턴 도심을 행진하고 있는 코리아피스액션 참가자들. [사진 – 김도형]
7월 27일 “코리아 평화, 당장 실현하라”, “전쟁연습 중단”을 촉구하며 워싱턴DC 시내를 행진하는 코리아피스액션 참가자들. 나이와 인종, 민족적 차이를 넘어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는지 알 수 있다. [사진 – 정연진]
7월 27일 “코리아 평화, 당장 실현하라”, “전쟁연습 중단”을 촉구하며 워싱턴DC 시내를 행진하는 코리아피스액션 참가자들. 나이와 인종, 민족적 차이를 넘어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는지 알 수 있다. [사진 – 정연진]

‘정전협정 70주년 코리아피스액션’ 행사는 위민크로스DMZ, 코리아피스나우 풀뿌리 네트워크(Korea Peace Now, KPNGN) 두 단체가 작년부터 준비해 대표적인 평화단체인 퀘이커친우봉사회(AFSC), 연합감리교 세계선교회, 미주한인평화재단(뉴욕민권센터가 만든 평화단체),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 미주동포전국협회(NAKA), 평화재향군인회 (Veterans for Peace) 등 미국내 평화, 종교 단체들 공동 주관으로 열렸다.

워싱턴원정단에는 AOK 한국 상임대표인 필자, AOK 한국 청년회원 김남기(연세대 사학과 대학원생, 한국현대사 전공), 청년여성 경기평화교육센터 김해인 교육위원, 평화의 길 김도형 영상사업본부장, 이대수 아시아시민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그리고 AOK미국의 홍동식 자문위원과 스텔라 박 운영위원이 동참했다.

AOK 워싱턴원정단과 미국 평화활동가 두 분이 함께했다. 7월 27일 워싱턴 캐넌 미하원 의원회관 앞에서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해인 경기평화교육센터 교육위원, 로터리클럽 활동가, LA 홍동식 자문위원, 김남기 AOK한국 회원, 로터리 클럽 활동가, 이대수 아시아시민평화네트워크 대표, LA 스텔라 박 운영위원, 정연진 AOK한국 상임대표. 평화의길 김도형 PD가 빠졌다. [사진 – 김도형]
AOK 워싱턴원정단과 미국 평화활동가 두 분이 함께했다. 7월 27일 워싱턴 캐넌 미하원 의원회관 앞에서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해인 경기평화교육센터 교육위원, 로터리클럽 활동가, LA 홍동식 자문위원, 김남기 AOK한국 회원, 로터리 클럽 활동가, 이대수 아시아시민평화네트워크 대표, LA 스텔라 박 운영위원, 정연진 AOK한국 상임대표. 평화의길 김도형 PD가 빠졌다. [사진 – 김도형]
7월 26일 워싱턴DC 시내 프렌즈하우스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참석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참석자들 연령대와 과반수가 여성인 것에 한국과 타지역에서 온 참석자들이 놀라는 분위기였다. [사진 – 김도형]
7월 26일 워싱턴DC 시내 프렌즈하우스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참석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참석자들 연령대와 과반수가 여성인 것에 한국과 타지역에서 온 참석자들이 놀라는 분위기였다. [사진 – 김도형]

마지막 날 7월 28일에는 조지워싱턴 대학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전 70주년 평화 협정의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컨퍼런스에서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명예교수가 기조연설을 맡았고,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인적비용을 되짚어보고 평화협정에 관한 전망까지 토의하는 유의미한 시간을 가졌다.

한 마디로 평가한다면 이번 평화대회는 기, 승, 전, 결로 이어지는 하나의 스토리가 관통하는 울림있는 행사였다. 미 의회 앞에서 한반도평화법안을 지지하는 의원들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기) 응어리진 분단의 한을 푸는 해원의식을 통해 모두의 의식을 하나로 연결하고 마음과 마음을 통하게 했다(승). 백악관 앞 집회와 행진에서 한인 뿐만 아니라 인종과 국가를 넘어서 코리아의 평화를 염원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시민의 열망을 결집했다(전). 갑자기 퍼붓기 시작한 소나기 속을 뚫고 링컨 기념관까지 행진한 후 함께 강강수월래 춤을 추며 참가자들은 분단을 극복하고 전쟁 없는 한반도를 노래하며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했다(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7월 28일 조지워싱턴대에서 열린 컨퍼런스까지 이어졌다. 컨퍼런스를 끝내고 3일간의 행사를 축하하는 참석자들. [사진 - 김도형]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7월 28일 조지워싱턴대에서 열린 컨퍼런스까지 이어졌다. 컨퍼런스를 끝내고 3일간의 행사를 축하하는 참석자들. [사진 - 김도형]


#미의회 앞 기자회견

코리아피스액션은 지난 회기에 이어 미 하원에 재발의된 한반도평화법안(H.R. 1369)에 대한 하원의원들의 지지연설로 시작되었는데 이 법안은 지난 회기 캘리포니아 민주당 의원 브래드 셔먼에 의해 발의되어 55명의 공동발의자까지 확보했었으나 의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아쉽게 폐기된 적이 있다.

한국전쟁의 종전과 평화협정, 워싱턴과 평양간 연락사무소 설치를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이번 회기에 재발의 되어 현재 33명의 공동발의가 확보된 상태이다. 물론 공동발의자가 많을수록 미 하원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거 2007년 미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일본군성노예 결의안의 경우를 보면, 당시 공동발의자가 100명이었는데, 반드시 숫자가 많아야만 통과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7월 27일 미의회 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 중 발언하는 크리스틴 안 Women Cross DMZ 창립자/사무총장. [자료사진 - Women Cross DMZ]
7월 27일 미의회 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 중 발언하는 크리스틴 안 Women Cross DMZ 창립자/사무총장. [자료사진 - Women Cross DMZ]

부친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바바라 리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하원의원, 주디 추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하원의원, 델리아 라미레즈 일리노이즈 하원의원의 지지연설이 이어졌는데 바바라 리 의원은 미국에서 한국전쟁이 더 이상 ‘잊혀진 전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집단적인 기억상실에서 벗어나야 할 때” 임을 강조한 것이 미국인들에게 반향이 있으리라 싶었다.

이제는 90의 나이를 바라보는 이산가족 이복신(Joy Gebhard) 선생, 미군유해송환 운동을 하는 릭 다운스, 미군 3성 장군 출신 댄 리프의 발언이 이어졌는데 하이라이트는 최연소 연사인 하나 김이었다.

위민크로스DMZ/코리아피스나우는 청년세대의 활발한 참여를 위해 청년그룹을 양성해왔는데 이번 행사를 위해서는 ‘30 언더 30’ 그룹(30세 이하 청년 30인)을 조직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14세 하나 김은 2015년 위민크로스DMZ 30명 국제여성평화활동가 대표단의 일원으로 분단선을 가로지른 김반아 선생의 손녀이기도 하다.

7월 27일 코리아피스액션 미의회 기자회견에서 청년그룹 대표로 “전쟁은 옳지 않다’고 발언하는 하나 김. [사진 – 정연진]
7월 27일 코리아피스액션 미의회 기자회견에서 청년그룹 대표로 “전쟁은 옳지 않다’고 발언하는 하나 김. [사진 – 정연진]

로스앤젤레스에서 2016년 AOK 신년모임에서 새해 소망을 쓰는 자리에 여섯 살 최연소 참가자였던 하나 김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싸우자는 말 그만하기, 평화하자고 말하기”라고 한글로 써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반목과 대립에 찌들은 어른들 마음에 반짝이는 맑은 눈망울로 무장해제를 요구하던 어린 하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쩍 의젓하게 자란 하나 김은 분명한 어조로 “전쟁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이 결코 끝나지 않았고 미국 정부가 여기에 매년 수십억 달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기후 파괴와 경제적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은 더 나은 교육과 의료, 안보가 필요합니다. Z세대와 알파세대는 전쟁이 아닌 평화가 필요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발언해 박수를 받았다.

#분단의 한, 매듭을 풀어라, 한풀이 의식

7월 27일 오후에 파운드리 연합감리교회에서 열린 문화행사 (Unbind Your Heart)에서는 세계적인 행위예술가 이도희 씨가 분단의 한을 푸는 마음의 의식을 주도했다. 참석자들로 하여금 각자 응어리진 한과 분노를 긴 색지에 적어서 무대에 걸게 했는데, ‘한’이라는 한국 정서를 이해하지 못할 법한 미국인 참여자들도 자신의 한을 깨알 같은 글씨로 나눠준 종이 띠에 가득 적는 모습이 무척 놀라왔다. 영어에는 ‘한’이라는 단어조차 없는데 이들이 이해를 하다니…

‘분단의 한을 풀어라’, 문화행사를 주도하고 있는 이도희 행위예술가. [사진 - 김도형]
‘분단의 한을 풀어라’, 문화행사를 주도하고 있는 이도희 행위예술가. [사진 - 김도형]
행위예술가 이도희 씨가 주도한 한풀이 의식, ‘마음의 매듭을 풀어라’. [사진 - 김도형]
행위예술가 이도희 씨가 주도한 한풀이 의식, ‘마음의 매듭을 풀어라’. [사진 - 김도형]

자신의 분노와 한에서 시작되었으나 분단의 한은 결국 우리 조상들로부터 우리들까지 이어지는 가슴팍에 깊게 맺힌 응어리, 풀리지 않은 매듭이라는 것을 깨닫을 수 있었다.

이도희 씨의 애끓는 노래 소리에 북, 징, 꽹과리, 등 풍물소리가 어우러진 가운데, 참석자들이 무대 중앙에 사각의 궤에 중간 중간 매듭이 묵여진 색색의 길다란 천의 매듭을 직접 자기 손으로 풀어내고 마침내는 매듭에서 자유로워진 기다란 끈을 흔들며 기쁘게 환호하는 몸짓에 서로 흥겨워했다.

이도희 행위예술가의 소리와 풍물패 ‘한판’의 소리가 극적으로 어우러져 서로 고양되면서 한풀이로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카타르시스 체험. 응어리진 분노가 환희로 전환되는 독특한 의식이었다.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이러한 한풀이 의식이 가능할까.

수 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도희 씨의 행위예술에 청중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한 마디 말도 표현하지 않은 채 무언의 몸짓과 소리, 음향으로 제주 4.3의 한을 표현해 내고 미국인 청중이 그 한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그의 행위예술을 일찍이 체험한 나에게는 기대에 못지 않은 인상 깊은 시간이었으나 그녀를 일개 무속인으로 여기고 왜 교회에서 무슨 무속 의식을 하는가, 하고 거부감을 느낀 사람이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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