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학문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톺아보기 15에서 북이 2016년부터 매년 과학기술 분야의 최고 권위상인 2.16 과학기술상을 받은 과제들의 수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연구자를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로 선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즉,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는 2.16과학기술상과 마찬가지로 ‘국가 과학기술과 경제발전, 인민생활 향상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뽑힌다. 

8년 동안 39명 선정

2016년 이후 지금까지 8년 동안 39명이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로 선정되었다. 상의 앞에는 연도가 붙는데, 이는 수상을 한 해의 전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2019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는 2019년에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받아 2020년에 선정된 사람이다. 

<연도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 수상자 수>


상금은 없는 명예상

(서광, 2018.2.14.)
(서광, 2018.2.14.)

북이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를 선정한다고 하면 적지 않은 사람이 상금은 얼마냐고 묻는다. 하지만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 선정을 전하는 북의 기사에서 상금을 언급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김정은 위원장이 국가과학원 방문, 미사일 발사 성공 등 특정 계기에 특별상금을 주었다는 내용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신 수상자들은 증서를 받고, 로동신문에는 그들의 사진과 연구성과가 큼지막하게 소개된다. 이는 2015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를 신설할 때 김정은 위원장이 했다는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를 선정하여 소개 선전하고 내세워주라’는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19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 소개 기사(로동신문, 2020.6.25.)
2019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 소개 기사(로동신문, 2020.6.25.)

김일성종합대학이 최다 배출

선정 당시를 기준으로 수상자의 소속을 보면 김일성종합대학이 11명으로 가장 많고, 8명의 국가과학원과 7명의 김책공업종합대학이 뒤를 이었다(김일성종합대학의 11명은 2019년 가을 이 대학에서 분리된 평양의학대학 소속 2명을 포함한 수치이다). 이 세 곳의 수상자를 합치면 정확히 전체의 2/3인 26명에 달한다. 이 수치만으로도 이 세 기관이 북의 연구개발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는 13개의 기관이 한 명씩 배출했다. 

<기관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 수(선정 시점 기준)> 

기관 유형별로 보면 김일성종합대학을 필두로 한 대학 소속이 23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가과학원・농업연구원 등 전문 연구기관 소속이 12명, 병원 소속 1명이었다. 

생산 현장에서도 배출

이외의 세 명은 생산 현장(위 표 최하단) 소속이다. 이 중 평양화력발전소 보온건재분공장의 현옥주에 대해서는 지난 톺아보기 14에서 소개했다. 황해제철연합기업소 흑색금속전망연구소 김승남 박사와 김책제철연합기업소 압연공무과 기술준비실 실장 박준일은 모두 주체철 생산공정 확립에 크게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각각 2016, 2018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에 선정되었다. 

김승남(좌)과 박준일(우) (서광, 2017.4.12., 로동신문, 2019.2.11.)
김승남(좌)과 박준일(우) (서광, 2017.4.12., 로동신문, 2019.2.11.)

주체철 관련 3명 선정

김책공대 박지민도 주체철 관련 성과를 인정받아 2018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로 선정되었다. 구체적으로 그는 산소열법용광로(김정은 시대 주체철 공정의 핵심 설비)의 통합자동화체계와 진공정련로 컴퓨터 조종체계를 개발하여 김책제철연합기업소가 주체철 생산체계를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당시 정보과학기술대학 부학장이었던 그는 이후 제1부총장을 거쳐 현재는 총장에 재직 중이다.

김책공대 총장 박지민(조선중앙통신, 2021.10.2.)
김책공대 총장 박지민(조선중앙통신, 2021.10.2.)

경제발전과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성과들 

수상자들의 연구개발 성과 중에는 주체철 관련 기술을 포함하여 경제의 자립성 강화와 관련된 사례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아크릴계 칠감(페인트) 생산의 국산화, 북한식 자동항법 계산체계 개발, 철강공장의 폐설물을 이용한 물 정화제 국산화, 기능성 종이 10여 종 개발, 마식령스키장의 고속삭도 조종체계 개발, 금속분말 주사성형 기술 개발, 화력발전 터빈날개의 국산화 등을 꼽을 수 있다. 

북이 김정일 집권기인 2000년대 초부터 강조해온 정보화, 현대화 관련 성과도 다수 존재한다. 높은 수준의 통합생산체계를 쉽게 구축할 수 있는 표준화된 분산형 조종설비 개발, 대규모 연속 생산공정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공장에 통합자동화체계 확립, 김정숙평양제사공장 위생용품 생산공정의 무인화 등과 앞서 언급한 산소열법용광로 통합자동화체계, 스키장 삭도 조종체계 등이 그것이다. 

김책제철연합기업소의 산소열법용광로 종합조종실(조선의 오늘, 2021.2.19.)
김책제철연합기업소의 산소열법용광로 종합조종실(조선의 오늘, 2021.2.19.)

농수축산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성과도 여러 건 있었다. 북의 풍토에 맞는 벼 강화재배 방법, 우량 알용 닭(산란계) 육종, 어류 질병 면역 관련 유전자 분리, 미생물 복합균 및 이를 이용한 유기질비료 생산기술 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보건의료, 기초연구 성과도

나선식 뇌 CT 제작, 눈전기생리검사기 개발, 산소 운반용 대용 혈액 연구, 불임증 치료기술 확립, 암 재발/전이 예방약 및 치료 방법 개발 등 보건의료 부문의 성과도 적지 않았다. 이 중 대용 혈액 연구에 성공한 평양의대 의학과학기술교류소 윤원남은 후속 연구를 수행하던 2018년 6월 만 49세에 사망하였다. 그는 사후에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로 선정되었다. 

2016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 리무철(김책공대 전자공학부)이 주도하여 개발한 나선형 뇌 CT (조선의 오늘, 2015.12.18.)
2016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 리무철(김책공대 전자공학부)이 주도하여 개발한 나선형 뇌 CT (조선의 오늘, 2015.12.18.)

비선형 복잡계에서 카오스와 프랙탈에 대한 연구(리과대학 최철웅), 비선형 나노광학(김일성종합대학 임성진), 계산대수기하학(국가과학원 김광호) 등 기초과학 분야의 성과를 인정받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에 선정된 연구자도 있다. 

국제 학술 활동에 적극적인 수상자도 

수상자 중에는 국제 학술 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학자들도 다수 있다. 예를 들어 북의 양자정보학을 개척했다는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의 김남철은 국제학술지에 논문 20여 편을 발표했고, 국제학회에 열 번 이상 참가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실제로 이 사람의 논문을 여러 편 확인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이 그 예인데, 2017년 11월 Applied Physics B라는 저널에 실린 논문이다. 총 일곱 명의 저자 중 앞의 네 명(고명철, 김남철, 호남철, 염주성)이 북의 학자들이고, 나머지 세 명은 중국인이다. 그리고 김남철(붉은색 타원 표시)과 한 중국인 학자의 이름 옆에는 이메일 아이콘이 붙어 있는데, 이는 이들이 논문의 교신저자임을 나타낸다.

김남철(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의 해외 발표 논문 사례
김남철(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의 해외 발표 논문 사례

김남철뿐 아니라 카오스와 프랙탈 연구자인 최철웅(리과대학), 물고기 유전체 연구자 장성훈, 재료설계 연구자 유철준, 비선형 나노광학의 임성진, 종합적인 영화편집 시스템 개발자 최춘화(이상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 시스템 연구자 박지민(김책공대), 계산대수기하학의 김광호 등도 국제학회 활동이나 논문 발표 실적이 많다고 알려졌다. 

과학자, 기술자 집안 출신도 있어

가족이 대대로 과학자, 기술자인 수상자도 여러 명 있다. 예를 들어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 엄기수는 물 정화제의 국산화에 성공해서 2016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로 선정되었고, 이때 그의 동생과 딸도 2.16 과학기술상을 받았다. 게다가 이보다 몇 년 전에 이미 아버지, 동생과 함께 2.16 과학기술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즉, 3대에 걸쳐 과학기술계 최고의 상을 받은 것이다.

자신들이 받은 상을 펼쳐놓고 보고 있는 엄기수 가족(조선의 오늘, 2017.11.12.)
자신들이 받은 상을 펼쳐놓고 보고 있는 엄기수 가족(조선의 오늘, 2017.11.12.)

2017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로서 컴퓨터 정보보호 전문가인 량지성(김책공대 정보기술연구소)은 수학박사인 아버지를 따라 자신도 20대에 수학박사가 된 사람이다. 자동항법 계산 시스템을 개발해서 2016년 최우수 과학자로 선정된 최길영(국가과학원 정보과학기술연구소)은 아들, 딸, 사위도 과학자이다. 앞서 언급한 박준일(김책제철연합기업소)의 아버지도 같은 공장의 설계 기술자였다고 알려졌다.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박사.

대학에서 미생물학, 대학원에서 북한 과학사를 전공했고,

북의 과학기술에 기초한 경제발전 전략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북한의 '과학기술 강국' 구상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2018) 등이 있고,

공저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선택―10년의 변화 10개의 키워드』(블루앤노트, 2022), 『김정은의 전략과 북한』(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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