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의 굴욕과 경술국치에 이은 세 번째 국치인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소문이길 바랐던 일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 외교가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조급하게 한일관계 개선을 바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지렛대는 한일관계의 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마침내 윤 정부는 6일 그 해법으로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했다.

주지하다시피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 대법원은 2018년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한마디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은 일본 기업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기업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피해 배상은 완전히 마무리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가해 일본 기업이 한 푼도 배상하지 않겠다며 버텨왔다. 이 문제로 한일관계가 5년 넘게 갈등을 빚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해법인 ‘제3자 변제’란 일제 전범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대신 우리 기업이 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자기 나라의 판결을 뒤엎고 다른 나라의 입장을 대변하다니... 이 정도라면 장지연이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왜 ‘시일야방성대곡’을 썼는지 이해가 갈 지경이다.

이에 대한 어떤 해석이나 변명도 불필요하다. 오직 당사자가 중요하다. 일제강제동원 피해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6일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의 배상안을 두고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사람이오, 일본 사람이오” 하고 묻고는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6일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법 발표와 관련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며 ‘한일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강조했다. ‘미래지향’, ‘새 시대’라는 미사여구를 쓰지만 결론은 하나, 대일 굴욕이다. 이제 한국의 대일 굴욕시대가 합법적으로 열린 것이다. 민족적 수치인 조선 중기 삼전도의 굴욕과 한말 경술국치에 이은 21세기 세 번째 국치이지 않은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정부의 해법은 강제징용의 일본 책임을 덮는 일로서, 결국 일본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물론 조짐도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동해 공해상에서 한미일 군사훈련이 스스럼없이 진행됐으며, 윤 대통령은 불과 며칠 전인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과거에는 ‘군국주의 침략자’였으나 지금은 우리의 ‘파트너’라며 근거 없는 비약을 했던 터였다.

야당은 물론 시민사회의 비난이 들끓고 있다. 문제는 반대 여론이 터져 나올 것을 예상했을 텐데 윤 대통령이 왜 얼토당토않은 합의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는가 하는 점이다. 미국이 한일관계 개선을 종용한 것은 맞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도 그럴듯한 빌미가 될 수는 있다.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새로운 한미일 관계로 나가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외세에 대한 굴복이자 민족적 핑계이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갈 뿐이다. 그 어느 것도 국민에게 좌절감을 주고 민족에게 피해를 주는 이런 합의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만큼 충족되지 않는다.

윤 정부 들어 대통령실 이전 등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전격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잦다. 이번 일도 그렇다. 왜 피해자가 도리어 돈을 모아서 피해배상을 하는 괴상한 일이, 그것도 번갯불에 콩 볶듯 일어났는가? 민심이 흉흉하다. 오죽하면 시중에 ‘천공한테 날짜를 받아 밀어붙였나’, ‘윤석열에 친일 디엔에이(DNA)가 있는가’라는 말들이 떠돌겠는가? 윤 정권의 앞날이 아니라 민족의 앞날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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