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1. 북측의 허준 유적

필자는 통일뉴스의 ‘국혼의 재발견’ (11)회 연재 “국제적 베스트셀러 허준의 『동의보감』과 도가의학”에서 허준에 대한 필자의 관점을 일부 언급한 바 있다. “‘문화 제주, 문화 Korea’를 위하여” (14)회 연재에서도 “허준의 고향은‥‥‥, 옛 ‘장단군 대강면 우근리’의 양천허씨 집성촌이다. 그곳은 현재 북측의 ‘황해북도 장풍군 국화리’이다. 허준의 귀양지는‥‥‥, ‘평안북도 의주’이며, 허준은 여기에서 『동의보감』을 탈고하였다”라고 하였다.

또한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허준의 종손 허형욱과 그 자손들은 해방 전에 모두 황해도 해주군 대거면 은동리(현재 황해남도 옹진군 은동리)에 살고 있었고, 남쪽에서는 그의 자손이 한 분도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2. 조선 의학의 중흥조는 허준

필자는 통일뉴스의 ‘국혼의 재발견’ (11)회 연재 “국제적 베스트셀러 허준의 『동의보감』과 도가의학”에서 침구(鍼灸)는 고조선 의학이며, 허준은 고조선 건국이념 홍익인간을 의학으로 계승한 과학자로 규정하였다.

현재 북에서 한때 동의학(東醫學)이라 부른 고려의학(高麗醫學)의 학술 연구가 활발하고, 그 의료술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즉 북은 고려의학의 선진국이다. 남측의 의료계가 양의(洋醫)와 한의(韓醫)의 협진(協診)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북에서는 양의와 고려의학의 협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한다. 중국에서도 양의와 중의(中醫)의 협진은 보편적 현상이다. 북의 고려의학은 남측의 한의학보다 앞선 선진 수준으로 본다. 북의 고려의학이 개발한 고려의약품도 그 품질이 높다고 한다.

3. 허준을 기념한다는 남측의 한심한 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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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침구편, 1책, 초판본(1613년), 을해자체 훈련도감자. 초판본은 낱 첵도 희귀본이다. 2012년 충청북도에서는 초판본 복각본 낱권 3책을 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현재 남측에는 허구와 ‘소설 동의보감’에 편승한 가짜 유적지가 있다. 서울의 구암공원과 경남 산청이 그 대표적인 가짜 유적지이다. 남측에 있는 허준의 가장 확실한 유적지라 할 수 있는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산129번지 묘역은 가짜 유적지 보다 더 빈약한 대우를 받는다. 가짜가 진짜를 몰아낸 것이다. 날조된 허구와 소설이 역사적 사실을 몰아낸 참담한 상황이다.

『허준의 묘』, 경기도 기념물,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하로리 산129. 오랜 추적 끝에 1991년 필자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허준의 묘』, 경기도 기념물,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하로리 산129. 오랜 추적 끝에 1991년 필자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필자는 실전된 허준의 묘소를 1991년 9월 27일 하포리 산129번지에서 찾아냈다. 이에 지난 2021년 파주시 특강에서 ‘의성 허준 선생 기념사업’을 파주시가 나서서 새롭게 할 것을 요구하였다. 파주시가 그렇게 한다면 필자는 허준의 공인된 유일한 유묵과 『동의보감』 초판본 2책 등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관련 자료 10여점을 파주시에 영구기탁할 의사가 있다. 다시금 필자는 파주시에 ‘동의보감촌’을 만들기를 권고한다.

4. 고려의학의 선진국 북측에 제안한다

허준에 대하여 오랜 기간 연구한 필자의 결론은, 거듭 말하지만 허준은 ‘황해북도 장풍군 국화리(옛 우근리)’의 양천허씨 집성촌에서 태어났고, ‘평안북도 의주’에서 『동의보감』을 탈고하였으며,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산129번지에 묻혔고, 그의 자손들은 거의 모두 ‘황해남도 옹진군 은동리’에서 살았다는 사실이다. 즉 북에는 허준의 고향과 『동의보감』의 탈고지가 있다.

이러한 북의 장풍군 국화리에서 고려약전(高麗藥典)을 표준화를 주도하는 연구소를 만들고, 아울러 의주에는 중국 관광객과 남측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동의보감촌을 만들기를 제안한다. 지금 한반도 정세가 험악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정세는 풀릴 때는 순식간에 풀릴 것으로 본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현실적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새로운 정세가 도래할 때 허준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파주와 그의 고향이 있는 장풍군 국화리는 직선거리로 20km를 전후한 가까운 거리이므로 당일에 왕래하며 교역‧교류가 가능하리라 본다. 남측의 경기도 파주시와 북측의 황해북도 장풍군은 허준 선생을 제대로 기리며 미래를 대비하자.

5. 허준의 후손을 찾자

허준의 후손들은 단 한 사람도 남측으로 월남하지를 않았다. 그의 후손들은 해방 전에 모두 황해도 해주군 대거면 은동리(현재 황해남도 옹진군 은동리)에 살고 있었다. 필자는 북에서는 그 후손들을 찾아냈으면 희망한다.

그 후손 젊은이 가운데 지력(智力)이 있는 일부가 고려의학을 전공하도록 혜택을 주어 고려의학의 종주국으로서 지위를 확립하며, 남측의 한의학계와 교류를 하였으면 한다. 그 후손이 주도하여 남측에 있는 허준 묘소를 참배하고 제를 올리는 행사를 남측의 한의학계에서 함께 주도한다면 이는 우리 사회에 큰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허준을 잊지 말자. 그는 단군조선의 건국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구현한 역사적 인물이며, 그는 당대의 의학자이자 생리학자이며 약학자였다. 우리 민족의 전래 과학은 모두 단절되었지만, 한의학만이 남아 있다. 우리는 이제 한의학 또는 고려의학을 전래 과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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