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은 이렇게 통일에 노력

유엔에 의존치 않고 민족자체가

 

청소년에 단일민족을 강조

상호교류장려로 동족의식을 견지

「자유의 질병」이 동독 침투에 주력

민족의 숙원인 통한문제 제15차 유엔총회의 정치위원회에서 조건부 북한초청이라는 전례에 없던 결정이 내려짐으로써 전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러한 국제적 현실에 직면한 정부와 정계에서는 새로운 정세에 대처할 통한 태세를 갖추어야 할 필요성을 통감하기에 이르렀다. 

국회에서는 통일문제에 대한 거국적 초당태세를 모색하기에 이르렀고, 정부에서는 1억 6천만환의 경비로 통일문제연구소를 5월내에 발족시켜 통한문제에 대한 조사 및 정책수립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한국이 이같이 1948년 정부가 수립된 이후 30년 만에 겨우 통한에 대비할 태세를 모색하고 있는데 비하여 동서양단이라는 동일한 운명에 처하고 있는 서독에서는 이미 1949년 서독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정부기구 내에 통독성이라는 통독에 대비하고 있는 외에도 1954년에는 통독촉진위원회라는 거족적인 민간단체를 설치하여 양단된 조국에 통일될 장래에 대비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2차대전후 「나치」의 항복에 이어 미⋅소 양진영에 의하여 동서독으로 양단된 독일은 1949년 동서 양독에서로 서독정부와 동독정부가 수립된 이후로 민족과 국토의 양단이라는 운명을 오늘날까지 지녀오고 있다. 

독일에 있어서의 통독의 움직임은 동독공산정권의 일방적인 고집으로 오늘날까지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동독은 북한공산정권과 마찬가지로 전 외국군의 철수를 전제로 양독간의 직접교섭을 고집하면서 앞서 김일성이 제안한 바와 같이 동서 양독의 연합을 제의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서독은 국제감시하의 전독 자유선거를 주장하고 있는데, 동독이 1957년의 4대국 외상회의시 이를 거부한 이후 이 협상은 사실상 결렬된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서독정부와 국민은 동독괴뢰정권의 이 같은 태도에도 불구하고 통독의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관민일치의 만반의 태세와 준비를 기울이(려 하지 않)고 있는데, 그들의 통독을 위한 기구로는 첫째, 통독문제 및 동독내사정의 연구조사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는 통독성(전독문제성)이 설치되어 있고 통독문제를 대외적으로 취급하는 통일과가 외무성에 설치되어 있는 외에도 민간단체로는 전 국민과 제 단체를 망라한 통독촉진위원회가 있어 명실상부한 관민일치의 거족적인 태세를 갖추고 있다.

먼저 통독성의 기구를 본다면 통독 정⋅부상 밑에 4국 23과로 나누어져 있으며 제1국은 동독 및 소련점령지와 동부국경선문제를 비롯하여 전독에 걸치는 사상문제 및 통독대책을 연구조사하고, 제2국은 백림대리부, 제3국은 동부국경선 이외의 국경선문제를 관리하여 제4국인 본부국은 성내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이 같은 기구를 가진 통독성은 그 근본목적을 어느 일정시기에 통독을 성취할 수 있다는데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동서독이 단일민족이며 단일국가라는 정신적 유대를 견지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들의 활동대상을 앞으로 국민이 될 청소년층에 집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근본목적에 따라 통독성은 동서독간의 왕래여행을 적극후원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과 같은 분단상태가 국제정세로 말미암아 장기로 지속화할 때 서독이 서로 이민족으로 화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철학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대학교수학생들의 교류, 서책교환, 예술운동 등의 교류를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편승하려는 동독공산주의자들의 선전과 ?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는 현재 간첩 방지법을 기초하여 동독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선전원 및 간첩들을 색출하려하고 있다.

이밖에도 동서독간의 통상도 관리하는 동시에 동독내의 공산화 실정을 연구조사하고 공산권내의 실정을 출판 영화 및 기타 「매스⋅매다아」의 방법으로 국민에게 주지시키는 일방, 통독이 성취될 때에 취급할 행정 기타 모든 조치를 작성하고 있다.

통독성이 통독의 대내문제를 담당하는 일방, 외무성의 통일과는 통독정책의 수립과 실천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통독상으로는 기민당의 「에른스트⋅레머」씨가 1957년 이래로 취임하고 있는데 그는 통독성의 목적은 통독의 실현이 미소영불 4대국의 합의에 의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달려있다는 인식하에 단일국가를 가지려는 독일국민의 정신적 통일을 유지하는데 있다고 명언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 호응하여 서독의 전 정당 및 민간⋅사회단체를 총망라한 통독촉진위원회가 1954년에 발족되었다.

이에는 서독의 모든 정당⋅노동조합⋅기업가협회⋅피난민협회 및 기타 문화⋅사회단체들이 참가해 있으며, 그 이름은 「호이스」대통령이 작명한 것으로 전 국회의장을 지낸바 있는 「풀⋅로에베」씨가 위원장으로 취임하고 있다.
 
전 서독내에 삼천개의 지부를 가지고 있는 동위원회는 강령에서 전 독일국민 특히 청소년들의 정신유대유지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분단될 수 없는 독일」을 표어로서 표방하고 있다. 

실지적인 활동으로는 동독으로부터의 피난민 구호와 생활보장을 위하여 정부와 협조하고 있으며 1953년 동독에서 공산주의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자유의거를 기념하기 위하여 6월 17일을 「통독의 날」로 설정하고 매년 전반적으로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이 위원회의 목적이 민족의 해방과 자결에 있음을 강조하고 출판 기타 방법에 의하여 청소년들을 계몽하고 선도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이 안에는 대학위원회를 특별히 설치하여 학교교육을 통한 반공사상과 통독사상의 함양에 힘쓰고 있으며 청소년 동독방문을 알선하여 동독의 물정을 직접 견문케 함으로써 정신무장을 강화하는 동시에 동서청소년들과의 정신적 유대를 유지토록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통독의식을 강조하기 위하여 백림시내의 동서경계를 이루고 있는 「브란덴부르그」문을 상징한 「브란데브르그」 문「빼지」를 제조하고 이의 패용을 장려하고 있는데, 그간 천이백만 개가 팔렸다 한다.

이 위원회의 경비는 국민들의 자진납부에 의존하고 있으며, 서독내 각 도시⋅촌락마다 자발적으로 일인당 일「페니」씩을 자진갹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2차전후의 폐허로부터 각고면려 오늘날에는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번영을 이룩한 서독은 한국과는 달리 유엔의 가입이나, 유엔에 의한 통독을 바라고 있지 않다. 

이들은 통독이란 자유⋅공산 양진영의 냉전이라는 국제정세가 변화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동시에 통독의 자체는 어디까지나 독일국민 자신임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들은 공산지배하에 있는 동독이 영원히 공산화하여 서독과는 이국 이민족이 되는 사태를 가장 우려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동서독간 교류를 통하여 「자유의 질병」을 동독에 침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독일의 운명이 독일 국민자신의 손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서독은 이에 따라 국제감시하의 전독 자유선거를 주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하여 동독은 그들의 동독공산괴뢰정권을 기성사실화시키기 위하여 동서 양독의 연합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북뢰가 유엔군의 철수나 남북연방을 주장하는 것과 너무나 흡사한바 있는 것이다.

한국과 동일한 양단의 비운하에 있는 독일의 장래는 공산괴뢰로 존속하려는 동독의 집요한 흉계에 대항하여 통독의식을 유지함으로써 민족자결을 하려는 서독의 부단한 노력이 결실할 때, 비로소 통독의 숙제를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명식 기=동양통신]

서독은 이렇게 통일에 노력

서독은 이렇게 통일에 노력 [민족일보 이미지]
서독은 이렇게 통일에 노력 [민족일보 이미지]

 

西獨은 이렇게 統一에 努力

유엔에 依存치 않고 民族自體가

 

靑少年에 單一民族을 强調

相互交流獎勵로 同族意識을 堅持

「自由의 疾病」이 東獨 침투에 注力

民族의 宿願인 統韓問題 第十五次 유엔總會의 政治委員會에서 條件附 北韓招請이라는 前例에 없던 決定이 내려짐으로써 全國民에게 큰 衝擊을 주었고, 이러한 國際的 現實에 直面한 政府와 政界에서는 새로운 情勢에 對處할 統韓態勢를 갖추어야 할 必要性을 痛感하기에 이르렀다. 

國會에서는 統一問題에 對한 擧國的 超黨態勢를 摸索하기에 이르렀고, 政府에서는 一億六千萬圜의 經費로 統一問題硏究所를 五月內에 發足시켜 統韓問題에 對한 調査 및 政策樹立에 滿全을 期하고 있다.

韓國이 이같이 一九四八年 政府가 樹立된 以後 十三年만에 겨우 統韓에 對備할 態勢를 摸索하고 있는데 比하여 東西兩斷이라는 同一한 運命에 처하고 있는 西獨에서는 이미 一九四九年 西獨政府가 樹立될 때부터 政府機構內에 統獨省이라는 統獨에 對備하고 있는 外에도 一九五四年에는 統獨促進委員會라는 擧族的인 民間團體를 設置하여 兩斷된 祖國에 統一될 將來에 對備할 態勢를 갖추고 있다.

二次大戰後 「나치」의 降伏에 이어 美⋅蘇 兩陣營에 依하여 東西獨으로 兩斷된 獨逸은 一九四九年 東西兩獨에서로 西獨政府와 東獨政府가 樹立된 以後로 民族과 國土의 兩斷이라는 運命을 오늘날까지 지녀오고 있다. 獨逸에 있어서의 統獨의 움직임은 東獨共産政權의 一方的인 固執으로 오늘날까지 아무런 進展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東獨은 北韓共産政權과 마찬가지로 全 外國軍의 撤收를 前提로 兩獨間의 直接交涉을 固執하면서 앞서 金日成이 提案한 바와같이 東西兩獨의 聯合을 提議하고 있다.

이에 對하여 西獨은 國際監視下의 前獨 自由選擧를 主張하고 있는데 東獨이 一九五七年의 四大國 外相會議時 이를 拒否한 以後 이 協商은 事實上 決裂된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西獨政府와 國民은 東獨괴뢰政權의 이 같은 態度에도 不拘하고 統獨의 그날이 오기를 苦待하면서 官民一致의 萬般의 態勢와 準備를 기울이려 하지않고 있는데, 그들의 統獨을 위한 機構로는 첫째 統獨問題 및 東獨內事情의 硏究調査를 主目的으로 하고 있는 統獨省(全獨問題省)이 設置되어 있고 統獨問題를 對外的으로 取扱하는 統一課가 外務省에 設置되어 있는 外에도 民間團體로는 全國民과 諸團體를 網羅한 統獨促進委員會가 있어 名實相符한 官民一致의 擧族的인 態勢를 갖추고 있다.

먼저 統獨省의 機構를 본다면 統獨 正⋅副相밑에 四局二十三課로 나누어져 있으며 第一局은 東獨 및 蘇聯占領地와 東部國境線問題를 비롯하여 全獨에 걸치는 思想問題 및 統獨對策을 硏究調査하고, 第二局은 伯林代理部, 第三局은 東部國境線 以外의 國境線問題를 管理하여 第四局인 本部局은 省內行政을 擔當하고 있다. 이 같은 機構를 가진 統獨省은 그 根本目的을 어느 一定時期에 統獨을 成就할 수 있다는데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東西獨이 單一民族이며 單一國家라는 精神的 紐帶를 堅持하는 것을 至上目標로 하고 있으며, 그들의 活動對象을 앞으로 國民이 될 靑少年層에 集中시키고 있다. 이러한 根本目的에 따라 統獨省은 東西獨間의 往來旅行을 積極後援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과 같은 分斷狀態가 國際情勢로 말미암아 長期로 持續化할 때 西獨이 서로 移民族으로 化하는 것을 防止한다는 哲學에서 出發하고 있으며, 大學敎授學生들의 交流, 書冊交換, 藝術運動 等의 交流를 獎勵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便乘하려는 東獨共産主義者들의 宣傳과 ?行爲를 防止하기 爲하여는 現在 間諜 防止法을 起草하여 東獨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宣傳員 및 간첩들을 索出하려하고 있다.

이밖에도 東西獨간의 通商도 管理하는 同時에 東獨內의 共産化 實情을 硏究調査하고 共産圈內의 實情을 出版 映畵 및 其他 「매스⋅매다아」의 方法으로 國民에게 周知시키는 一方, 統獨이 成就될 때에 取扱할 行政 其他 모든 措置를 作成하고 있다.

統獨省이 統獨의 對內問題를 擔當하는 一方, 外務省의 統一課는 統獨政策의 樹立과 實踐을 擔當하고 있다. 現在 統獨相으로는 基民黨의 「에른스트⋅레머」氏가 一九五七年 以來로 就任하고 있는데 그는 統獨省의 目的은 統獨의 實現이 美蘇英佛 四大國의 合意에 依한 國際情勢의 變化에 달려있다는 認識下에 單一國家를 가지려는 獨逸國民의 精神的 統一을 維持하는데 있다고 明言하고 있다.

政府의 이러한 努力에 呼應하여 西獨의 全政黨 및 民間⋅社會團體를 總網羅한 統獨促進委員會가 一九五四年에 發足되었다.

이에는 西獨의 모든 政黨⋅勞動組合⋅企業家協會⋅避難民協會 및 其他 文化⋅社會團體들이 參加해 있으며, 그 이름은 「호이스」大統領이 作名한 것으로 前國會議長을 지낸바 있는 「풀⋅로에베」氏가 委員長으로 취임하고 있다.

全西獨內에 三千個의 支部를 가지고 있는 同委員會는 綱領에서 全獨逸國民 特히 靑少年들의 精神紐帶維持를 그 目的으로 하고 있다고 宣言하고 「分斷될 수 없는 獨逸」을 標語로서 標榜하고 있다. 實地的인 活動으로는 東獨으로부터의 避難民 救護와 生活保障을 위하여 政府와 協調하고 있으며 一九五三年 東獨에서 共産主義에 抗拒하여 일어났던 自由義擧를 記念하기 위하여 六月 十七日을 「統獨의 날」로 設定하고 每年 全般的으로 行事를 推進하고 있다.

이들은 이 委員會의 目的이 民族의 解放과 自決에 있음을 强調하고 出版 其他 方法에 依하여 靑少年들을 계몽하고 善導하는데에 注力하고 있다.

이 안에는 大學委員會를 特別히 設置하여 學校敎育을 通한 反共思想과 統獨思想의 涵養에 힘쓰고 있으며 靑少年 東獨訪問을 알선하여 東獨의 物情을 直接 見聞케 함으로써 精神武裝을 强化하는 同時에 東西靑少年들과의 精神的 紐帶를 維持토록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統獨意識을 强調하기 위하여 伯林市內의 東西境界를 이루고 있는 「브란덴부르그」門을 象徵한 「브란데브르그」 門「빼지」를 製造하고 이의 佩用을 獎勵하고 있는데, 그간 千二百萬個가 팔렸다 한다.

이 委員會의 經費는 國民들의 自進納付에 依存하고 있으며, 西獨內 各 都市⋅村落마다 自發的으로 一人當 一「페니」씩을 自進醵出하고 있다는 것이다. 

二次戰後의 廢墟로부터 刻苦勉勵 오늘날에는 「라인」江의 奇蹟이라는 繁榮을 이룩한 西獨은 韓國과는 달리 유엔의 加入이나, 유엔에 依한 統獨을 바라고 있지 않다. 이들은 統獨이란 自由⋅共産 兩陣營의 冷戰이라는 國際情勢가 變化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認識하는 同時에 統獨의 自體는 어디까지나 獨逸國民 自身임을 認識하고 있다. 

이러한 見地에서 이들은 共産支配下에 있는 東獨이 永遠히 共産化하여 西獨과는 異國 異民族이 되는 事態를 가장 憂慮하고 있으며, 이러한 事態를 防止하기 위하여 東西獨間 交流를 通하여 「自由의 疾病」을 東獨에 浸透하는데 注力하고 있다.

獨逸의 運命이 獨逸 國民自身의 손에 依하여 決定되어야 한다고 確信하는 西獨은 이에 따라 國際監視下의 全獨 自由選擧를 主張하고 있으나 이에 對하여 東獨은 그들의 東獨共産傀儡政權을 旣成事實化시키기 위하여 東西 兩獨의 聯合을 主張하고 있는 것은 北儡가 유엔軍의 撤收나 南北聯邦을 主張하는 것과 너무나 恰似한바 있는 것이다.

韓國과 同一한 兩斷의 悲運下에 있는 獨逸의 將來는 共産傀儡로 存續하려는 東獨의 執拗한 凶計에 對抗하여 統獨意識을 維持함으로써 民族自決을 하려는 西獨의 不斷한 努力이 結實할 때, 비로소 統獨의 宿題를 達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高明植 記=東洋通信]

[민족일보] 1961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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