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거(義擧)비 옆서 부부(夫婦)가 피 뿜고

굶기 보다는 차라리 죽어 버리겠어요.

혁명(革命)의 발상지(發祥地)에 봄을 등져


○.... 혁명의 발상지 마산항구에 봄이 등졌다. 은행깽, 살인강도, 좀도둑 등이 날뛰어서 시민들은 전에 없던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지난 1일밤 북마산(北馬山)파출소 안에서 살인사건이 났다. 이 파출소는 「제1차 마산데모」때 시위군중들에 불살라졌던 것을 지금 신축하고 그 바로 옆에 「의거기념탑」을 세웠다. 비석은 그날 총에 맞은 돌이라 한다. 총 자국이 뚫린 돌에 비문을 새긴 것은 그런 비극이 다시없도록 후세에 명심을 주고 또한 의거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리라.

그 상처 깊은 파출소 관내에 「4월위기설」로 매일 기동대가 파견되고 살인 사건까지 발생했다.

 

○.... 1일의 살인사건은 의첫증(疑妻症)에서 생긴 사건이라고 지방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먹지 못해 허기진 사람들 간에 일어난 참극이었다고 말한다. 범인 전재성(田在成, 33)은 그의 아내 이춘숙(李春淑, 25)을 면도칼로 목을 찔러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사천군(泗川郡) 완사리(完沙里)에 사는 두 부부는 먹고 살길이 없어 세 살짜리 딸을 업고 친척집을 찾아다녔으나, 별도리 없이 다시 돌아가던 중 마산에 들렀다.

중성동(中城洞) 이모집에 들러서 밥 한끼를 얻어먹던 전(田)은 오래간만에 아내와 마주앉아 밥을 먹게 되자 발작을 일으키며 「밥에 독약이 들었다」고 하며 아내에게 대들었다. 전(田)은 그전에 먹고 살길이 없어 아내를 부산에 있는 형 집에 심부름을 보냈으나, 일주일이 넘어도 안돌아오므로 처가 바람이 났다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모집에서 집에는 다시 안돌아가겠다고 아내는 항거했다. 다시 돌아가서 굶기는 죽기보다 싫다고 하자 싸움은 심해져갔다한다. 큰 싸움이 벌어지자 이들은 경관에 연행되어 북마산 파출소를 가게 된 것이다. 취조를 받을 동안 전(田)은 아내에게 냉수를 달라고 하는 체 하다가 돌연히 면도칼로 여자의 목을 찌른 것이다. 그리고 자기도 목을 찔렀으나 죽지는 않았다.

여인의 목에서 내뿜는 선지피가 파출소 주임 얼굴에 잔뜩 뿌려졌었다. 가난에서 온 비극이었던 것이다.

 

○.... 상남동(上南洞)에 사는 최(崔)호갑씨는 이렇게 자기 고향을 버리고 객지로 떠다니다 예상하지 못하는 일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해마다 춘궁기가 되면 절량민들이 도시로 몰리고 이농가는 늘어가나 금년과 같은 심한 해는 없다고 탄식하며 「절량」이라는 말이 이 땅에서 없어지는 날이 과연 있을 것인가고 반문하고 이 부부살인사건은 절량민에 주는 좋은 경고일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 곽인효 기자 郭仁孝記者)

 

◇ 사진 = 북마산(北馬山)파출소 옆에 세운 의거기념비! 그 뒤에 보이는 신축청사에서 부부살인의 비극이 있었다! (마산에서)

빛 잃은 계절풍(季節風) - 발의 절량보고(絶糧報告) (5)

빛 잃은 계절풍-발의 절량보고 [민족일보 이미지]
빛 잃은 계절풍-발의 절량보고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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