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경남대 초빙석좌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3일 제75차 유엔 총회 화상 기조연설을 통해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도 힘을 모아 주길 바란다”고 호소하면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며 종전선언의 중요성을 재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하게 된 동기는 교착상태에 빠진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의 문을 열어 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숨어 있다.

한반도 종전선언이 4.27 판문점 남북정상 공동선언문에 명시

한반도 종전선언은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2019,2)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 없었다. 미국은 11월3일 대선을 앞두고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종전선언은 2018년 4·27 판문점 제1차 남북정상간 공동선언문에 명시되어 있다. 판문점선언 3조 3항은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하였다.

싱가포르 제1차 북미정상회담(2018. 6.12) 이후 북한의 비핵화 선제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로 종전선언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9·19 평양선언(2018) 이후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하였으며 비핵화 협상과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차원에서 정치적 선언으로 종전선언의 필요성에 한미 간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2019.2.29) 결렬 이후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고, 남북관계도 최악의 ‘대적 관계’로 전환되어 종전선언 관련 화두가 사려졌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금년 유엔총회 화상기조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다시 제안한 것은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복원과 남북관계의 복원을 추동하려는 그의 절박감과 강력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언급에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이는 야당과 일부 보수논객들이 목청을 높여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 유감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 만찬 화상 기조연설(10.8)을 통해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재강조하였다. 그는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만이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이라면서 종전선언 의지를 재천명했다. 그는 “지난 2018년과 2019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화를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어렵게 이룬 진전과 성과를 되돌릴 수는 없으며,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한미) 양국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길 희망한다”며 “전쟁을 억제하는 것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고 제도화할 때 우리의 동맹은 더욱 위대해질 것” 이라고 역설했다.

북한의 새로운 셈법 요구를 미국은 존중해야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접근방식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협상에 아무런 진전이 없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에게 2019년 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김 위원장의 데드라인을 무시하면 북한은 “새로운 길”(a new path)을 가겠다고 강조하였다. 많은 논객들이 북한이 새로운 길은 군사적 도발 행위를 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현재까지 김정은 위원장은 핵실험이나 ICBM 발사를 자제하고 평화로운 길을 택했다.

아직까지도 트럼프 미 행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군사적 도발행위를 자제하고 있다. 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유엔결의안을 위반하는 이런 군사적 도발 행위를 계속해서 자제하길 기대한다. 북한의 유엔결의안 위반은 북한의 생존권과 발전권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북한체제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멸 행위이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지도부는 김정은 위원장이 제안한 한반도 비핵화의 전제조건을 미국이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교착상태에 빠진 현재 북핵 협상의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북미 양측이 한 발짝씩 물러서서 양보와 타협을 하려는 의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지금 양측이 그렇게 할 의지가 없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제3자가 중재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 북미 양측이 딜레마에 처해 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11월3일 재선을 앞두고 대선준비에 정신이 없어 북미관계와 관련하여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으로 현 상황을 타결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의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남북관계 개선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그 동안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여러 방안을 제시하였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무 진전이 보이지 않아 다시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문 대통령이 한반도 종전선언 카드를 꺼낸 것이다.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북미 양측이 수용하길 촉구한다.

그러나 미국 조야와 트럼프 행정부의 반응은 사늘하다.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은 先(선) 비핵화 조치를 반복하여 주장하였다. 한편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묵묵부답이다. 현시점에서 비핵화와 관련하여 북미 양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평행선을 달려 접점을 도출하는데 실패했다. 이런 상황을 뚫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 카드를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무산될까 불안하다.

남북미중은 선(先) 종전선언 후(後)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해야

미국은 선 비핵화 조치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 하에서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의 창의적인 방안으로 북한이 요구하는 북미간 적대시 정책을 청산하기 위한 첫 단계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한반도 종전선언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선언은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 로드맵(roadmap)의 첫 단계이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조약(협정) 체결 전에 필요한 조치이고 단계적으로 비핵화 조치와 평화체제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구상인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가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기자회견(2018. 8.2)을 통해 처음으로 종전선언에 대해 “시대 발전의 흐름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밝힘으로써 종전선언에 공식 참여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한중 외교장관회담(8.3)에서 종전선언과 관련,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어서 비핵화를 견인하는 데 있어 긍정적이고 유용한 역할을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장기간 동안 북미 간 종전선언을 주장했으나 중국의 권유로 4자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미국에게도 중국의 참여 없는 종전선언은 지지할 수 없음을 알렸고 문재인 정부도 3자 종전선언에서 4자 종전선언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과거 오랜 전부터 4자 평화협정(조약) 체결을 원했고 1990년대 말 남북미중 4자회담에 참여하여 이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미국은 현재까지 종전선언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종전선언이란 표현보다 평화선언(a peace declaration)이란 표현을 선호한다. 북한이 미국에 자발적인 비핵화 조치의 대가로 종전선언을 요구하였다, 미국은 아직 종전선언 혹은 평화선언을 서두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 된다.

첫째, 미국이 종전(평화)선언 서명 이전에 가시적인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진전을 요구하고 있는 강경한 입장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둘째, 종전(평화)선언 이후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혹은 감축 요구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만일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약화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종전(평화)선언을 서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장기적인 국익차원에서 종전(평화)선언이 창출하게 될 이익을 계산하면 종전(평화)선언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 로드맵 단계에서 입구에 첫 단계로 종전선언을 먼저하고 출구에 북미 간 평화협정보다 구속력이 강력한 4자간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을 제안하여 왔다.

필자는 현재에도 남북미중 4자회담에서 종전(평화)선언을 먼저하고 후에 출구에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맞교환하는 4자간 평화조약(a peace treaty)[평화 협정(a peace agreement)이 아닌] 체결을 일관성 있게 주장해 왔다.

즉 가칭 ‘한반도 평화조약’ (a Korean peninsula peace treaty) 속에 남북 평화 합의문(agreement), 한중 평화 합의문, 북미 평화 합의문, 중미 평화 합의문 등 4개 부속 합의문을 포함한 4자간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맞교환 하면 한반도에는 핵무기 없는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만이 북한이 요구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북한체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유일한 대안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 내용은 아래 칼럼 참조. 곽태환,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5단계 로드맵 구상(통일뉴스, 2019.5.13게재)]

결론적으로 필자는 미국과 북한 지도부에게 당부하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주길 촉구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추동과 복원을 위해 종전선언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이며 주도적으로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이행 로드맵을 작성하여 미, 중, 북한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4자 정상이 종전(평화)선언 합의문에 서명할 것을 촉구하고 싶다.

이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11월3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든 조 바이든 후보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관계없이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복원을 위해 종전선언을 먼저 고려하길 기대한다.

 

<곽태환 교수 프로필>

곽태환 박사 (미 이스턴 켄터키 대 명예교수/전 통일 연구원 원장)

한국외국어대 학사, 미국 Clark 대학원 석사, 미국 Claremont 대학원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 전 미국 Eastern Kentucky 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교수; 전 통일연구원 원장. 현재 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 명예교수, 경남대 초빙 석좌교수, 한반도미래 전략 연구원 이사장, 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이사장, 통일전략연구협의회(LA) 회장, 미주 민주참여포럼(KAPAC)상임고문 등, 경남대 명예정치학 박사 수여(2019),글로벌평화재단이 수여하는 혁신학술 연구 분야 평화상 수상(2012). 32권의 저서, 공저 및 편저; 칼럼, 시론, 학술논문 등 350편 이상 출판; 주요저서: 『한반도평화, 비핵화 그리고 통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통일뉴스, 2019), 『국제정치 속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 공저: 『한반도 평화체제 의 모색』 등; 언문책 Editor/Co-editor: One Korea: Visions of Korean Unification (Routledge, 2017); North Korea and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Ashgate, 2014); Peace-Regime Building on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n Security Cooperation (Ashgate, 2010) 등. Email: thkwak3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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