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에서 75세의 ‘만복’과 그의 손녀 ‘소원’이 대전형무소 터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대전에서 색다른 형식의 교육프로그램이 선보여 참가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교육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헤드폰을 쓰고 배우들과 함께 옛 충남도청, 대전형무소 터, 산내 골령골을 찾아다니며 진행하는 참여형 교육프로그램으로, 관객참여형 연극(Immersive Theater) 개념을 차용한 신개념 교육프로그램이다.

▲ 옛 충남도청사 본관 정문에서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은 시작된다. 참가자들과 배우들이 섞여 있어 진행되는 프로그램 속에서 참여자는 자신이 관객인지, 배우인지, 그리고 프로그램은 공연인지, 교육인지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색다른 평화통일 교육으로 전환된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프로그램이 진행된 10월 2일 오후는 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에 더욱 몰입하며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의 첫 출발지는 옛 충남도청사였다. 오후 2시가 조금 지나자 진행자들은 참가자들은 참석 확인을 위해 일일이 서명을 받았다. 이때 배우들이 참석자들 사이로 등장했다.

보도연맹 학살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75세의 ‘만복’과 그의 손녀 ‘소원’이 등장하자 진행자는 이들에게도 서명을 요구한다. 손녀 ‘소원’이 서명을 하고, 할아버지 ‘만복’에게도 서명을 요구하자, ‘만복’은 서명을 거부하며 서명판을 내동댕이쳤다. ‘소원’이 할아버지의 이 모습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이 군복을 입은 군인이 서명판을 들고 나타나 청중들을 향해 소리를 친다.

“지금부터 이 서명판에 서명한 이들은 모두 보도연맹원이다. 당신들은 이제 대전형무소로 이동할 것이다. 모두 차량에 탑승”

한순간 참석자들은 관객에서, 보도연맹원의 역할로 전환되어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를 하게 된다. 로드 씨어터 방식은 참여자들이 강사의 일방적인 해설을 듣는 방식을 뛰어넘어 헤드폰을 통해 배우의 목소리와 효과음을 듣고, 배우의 거리 공연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배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진행되는 프로그램 속에서 참여자는 자신이 관객인지, 배우인지, 그리고 프로그램은 공연인지, 교육인지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색다른 평화통일 교육으로 전환되었다.

▲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이 진행되면서 참가자들의 배우들의 공연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심각한 표정을 짖기도 한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옛 대전형무소 터에 남겨진 왕버들 ‘평화의 나무’ 주변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참가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들이 다음으로 이동한 대전형무소에서도, 그리고 차량을 이동하는 동안에도 참가자들은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때로는 버스의 스피커를 통해서 그리고 귀를 감싼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나래이션을 통해서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찾은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7천여명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끌려와 학살당한 비극의 현장이었다. 그 상황을 배우들은 그대로 재연한다. 참가자들은 눈앞에서 처참한 학살의 현장 목격하고, 안대로 눈을 가린 상태에서 헤드폰으로는 총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배우들의 목소리가 헤드폰을 통해 전달된다.

“(소원)할아버지, 이 꽃은 이름이 뭐에요? (만복)달맞이꽃이 피었구나. 아버님이 붙잡혀 가시고 기다리던 길가에 피어있던 꽃인데 여기에도 피었구나. (소원)누군가 찾아 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나 봐요.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에서 참가자들은 배우들의 뒤를 따라 이동한다. 마치 1950년 산내 골령골로 군인들에 의해 끌려가던 보도연맹원들과 대전형무소 재소자들이 떠오른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에서 배우들이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을 재연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이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2시간 반 동안 한 편의 연극을 관람한 것과 같은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에 대해 참가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참가자 이안나씨(대덕구 신탄진동)는 “이전에도 여러 번 갔던 장소들이지만 새로운 형태로 인해 신선했다”며, “직접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보니 더 울컥 했다”고 말했다.

황경희씨(대전 서구)도 “눈 가리개와 헤드폰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더 리얼하게 경험하게 되었다”며,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고, 대전에 숨어 있는 역사를 찾아 데 더 많은 스토리텔링이 덧붙여지면 좋겠다”고 참가 소감을 말했다.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문성호 공동대표는 “길 위에서 펼쳐진 이 작품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훌륭한 무대였다”며, “오히려 내리는 비는 대전형무소를 거쳐 산내 골령골로 이어지는 풍경과 역사의 아픔을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보고 듣게 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로 이동하는 시간에 안대를 하고 헤드폰으로 배우들의 담담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고, 역사의 현장에서는 배우들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길 위에 무대, 길 위의 극장 ‘평화 로드 씨어터’는 참으로 훌륭했다”고 덧붙였다.

제목을 ‘달맞이꽃’으로 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프로그램을 함께 준비한 아신아트컴퍼니 이인복 대표는 “달맞이꽃은 7~8월 밤에 꽃을 피우는 야화”라며, “산내 골령골로 이유도 모르게 끌려가실 때 새벽녘에 왠지 길가에 핀 달맞이꽃을 애처롭게 그들을 바라봐 주었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분들의 억울함이 달맞이꽃으로 낮이 아닌 밤에 몰래 피어 억울함을 얘기하고 평화가 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 산내 골령골 긴 무덤 위에 노란 ‘달맞이꽃’이 놓여 있다. 참가자들은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배우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달맞이꽃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한 대전민예총 박홍순 사무처장은 “전체적인 역사적 상황이 잘 설명되었고,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에 감동이 더해진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시민들과 청소년들에게 역사와 평화, 인권 교육을 체험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개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평화’ 로드 씨어터 <달맞이꽃>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대전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가 주최했고, (사)대전민예총, 대전문화연대, 아신아트컴퍼니,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이들은 지난 5월부터 프로그램 기획을 시작해 현장답사와 시나리오 작성, 연출 등을 진행했고, 지난 9월 17일 내부시연을 거쳐 이날 일반에게 공개됐다. 시나리오는 임정화 작가가, 연출은 김소중 씨가 맡았다. 김성탁, 김광원, 지천배, 최민지, 강승리씨가 배우로 참석해 스토리를 이어갔고, 나래이션은 박정희씨가 맡았다.

▲ 참가자들이 쓴 헤드폰에는 배우들의 목소리나 나레이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때로는 총소리나 새 소리 등 효과음이 흘러나오며 극적 효과를 자아내기도 한다. 산내 골령골에 도착한 참가자들이 헤드폰을 쓴 채 소리를 들으며 이동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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