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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사이비 통일론을 박함민족일보 다시보기'<92>
이창훈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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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26  10: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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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통일론을 박함
-신상초 의원의 글을 논박한다- (2)


김상찬


신의원은 「우리 민족처럼 약소한 민족이 미・소의 세력권적 대립에서 해방되고자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하더라도 그 무슨 효력이 있을 것인가?」라고 했는데 우리가 약소민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우리 민족자체가 약하기 때문인 것이 아니고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외세의 식민지로서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착취를 당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며 우리 민족자강의 길은 오직 외세의존의 사대주의 근성을 탈피하고 민족자주 및 자립적인 독립을 쟁취하는 길 뿐이다.

국제 제국에 예하더라도 우리 민족보다 훨씬 약한 「아프리카」의 「가나」 「기니아」 「콩고」 「니제리아」 등 제국에 있어서도 반외세민족해방투쟁을 과감히 단행하여 민족자주독립을 쟁취했던 것이다.

이 땅에 있어서 미・소의 세력권적 대립은 오늘날에 있어서 그렇게 첨예화되어 있지 않다. 형태는 어떻든 간에 외군의 주둔은 세계적인 평화를 확립하는데 위배된다고 하는 것이 주류적인 세계여론이다. 「미사일」 병기의 고속적인 발전과 한국의 군사기지로서의 불필요성 그리고 전쟁불가론과 거기에 따른 미・소 평화공존론 등이 이유로 된다.

그리고 중공의 유엔 가입론과 남한에 유엔군의 주둔이유의 희박성 그리고 민족주체세력의 강화 등의 제 조건을 열거할 수 있다.

신의원은 「민족에게 자결의 원칙을 적용하다가는 6・25때보다 더 가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이것은 민족통일이 이룩되면은 6・25때보다 더 가혹한 민족상잔을 맛보게 된다는 뜻인데 이것 역시 정치사태를 형식상으로 파악하려는 논리성이 결여된 말이다.

통일이 지연되는 그 날에는 신 6・25와 같은 참극을 우리들은 앉아서 맞이하게 되며 또 신 4・19의 민중봉기를 맞이하게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 방방곡곡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통일의 아우성이 바로 가난한 백성들의 생활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쟁취하여 민족자주적 경제체제를 확립하지 않고서는 이 땅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과거 16년간의 외세의존의 생활체험에서 느꼈다.

신의원은 민족자주통일협의회가 내걸고 있는 민족자주적 평화통일론도 부인했고 중립화통일총연맹의 영세중립화통일론 그리고 중립화통일론까지를 부인했다. 이것은 선건설후통(일)운운하면서 유엔감시하에 대한민국헌법절차에 따라 남북간의 총선으로 통일한다는 정부의 통일방안이 옳다는 것을 고집하는 결과가 되는데 과연 통일 없는 건설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것을 반문하고 싶다. 현재의 외원(외국원조)이 서민층백성들의 생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현명한 독자 여러분이 판단할 줄 믿는다.

빈곤문제이 해결은 민족자립적 경제체제의 확립과 유관되어있고 민족자립 경제체제의 확립은 민족통일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운운하는 것은 북한공산정권의 무조건 항복 또는 자연 소멸의 조건위에서 북한만의 선거를 의미하게 되는데 이것은 통일협상론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통일의 대상이 어디 있는지를 분간 못하는 ?론이다. 북한공산정권은 가치에서가 아니라 존재로서 인정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할 때도 적국을 가치에서가 아니라 존재로서 인정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통일방안은 통일하려는 성의에 있어서 리승만 체제의 북진통일론보다 뒤떨어져 있으며 통일의 실천방안이 아니라 통일지연방안 또는 통일방해력안으로 표현되는 것이 마땅하다.

사이비 통일론을 박함

   
▲ 사이비 통일론을 박함 [민족일보 이미지]


論壇/似而非 統一論을 駁함
-申相楚議員의 글을 論駁한다- (2)

 
金相贊

 
申議員은 「우리 民族처럼 弱小한 民族이 美・蘇의 勢力圈的 對立에서 解放되고자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하더라도 그 무슨 效力이 있을 것인가?」라고 했는데 우리가 弱小民族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理由는 우리 民族自體가 弱하기 때문인 것이 아니고 우리 民族이 오랫동안 外勢의 植民地로서 政治的 壓迫과 經濟的 搾取를 當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며 우리 民族自强의 길은 오직 外勢依存의 事大主義根性을 脫皮하고 民族自主 및 自立的인 獨立을 爭取하는 길 뿐이다.

國際諸國에 例하더라도 우리 民族보다 훨씬 弱한 「아프리카」의 「가나」 「기니아」 「콩고」 「니제리아」 등 諸國에 있어서도 反外勢民族解放鬪爭을 果敢히 斷行하여 民族自主獨立을 爭取했던 것이다.

이 땅에 있어서 美・蘇의 勢力圈的 對立은 오늘날에 있어서 그렇게 尖銳化되어 있지 않다. 形態는 어떻든 間에 外軍의 駐屯은 世界的인 平和를 確立하는데 違背된다고 하는 것이 主流的인 世界與論이다. 「미사일」 兵器의 高速的인 發展과 韓國의 軍事基地로서의 不必要性 그리고 戰爭不可論과 거기에 따른 美・蘇 平和共存論 等이 理由로 된다.

그리고 中共의 유엔 加入論과 南韓에 유엔軍의 駐屯理由의 稀薄性 그리고 民族主體勢力의 强化 等의 諸條件을 列擧할 수 있다.

申議員은 「民族에게 自決의 原則을 적용하다가는 六・二五때보다 더 가혹한 同族相殘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이것은 民族統一이 이룩되면은 六・二五때보다 더 가혹한 民族相殘을 맛보게 된다는 뜻인데 이것 亦是 政治事態를 形式上으로 把握하려는 論理性이 缺如된 말이다.

統一이 遲延되는 그 날에는 新六・二五와 같은 慘劇을 우리들은 앉아서 맞이하게되며 또 新四・一九의 民衆蜂起를 맞이하게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 坊坊曲曲에서 요원의 불길 처럼 일어나는 統一의 아우성이 바로 가난한 百姓들의 生活問題와 連結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祖國의 平和的統一을 爭取하여 民族自主的經濟體制를 確立하지 않고서는 이땅의 貧困問題를 解決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過去 十六年間의 外勢依存의 生活體驗에서 느꼈다.

申議員은 民族自主統一協議會가 내걸고 있는 民族自主的平和統一論도 否認했고 中立化統一總聯盟의 永世中立化統一論 그리고 中立化統一論까지를 否認했다. 이것은 先建設後統云云하면서 유엔監視下에 大韓民國憲法節次에 따라 南北間의 總選으로 統一한다는 政府의 統一方案이 옳다는 것을 固執하는 結果가 되는데 果然 統一없는 建設이 可能할 수 있겠느냐는 것을 反問하고 싶다. 現在의 外援이 庶民層百姓들의 生活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賢明한 讀者 여러분이 判斷할 줄 믿는다.

貧困問題이 解決은 民族自立的經濟體制의 確立과 有關되어있고 民族自立經濟體制의 確立은 民族統一과 連結되어 있는 것이다.

大韓民國憲法云云하는 것은 北韓共産政權의 無條件 降服 또는 自然 消滅의 條件위에서 北韓만의 選擧를 意味하게 되는데 이것은 統一協商論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都大體統一의 對象이 어디 있는지를 分間 못하는 ?論이다. 北韓共産政權은 價値에서가 아니라 存在로서 認定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다른 나라와 戰爭을 할때도敵國을 價値에서가 아니라 存在로서 認定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統一方案은 統一하려는 誠意에 있어서 李承晩體制의 北進統一論보다 뒤떨어져 있으며 統一의 實踐方案이 아니라 統一遲延方案 또는 統一妨害力案으로 表現되는 것이 마땅하다.

<민족일보> 1961년 3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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