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활동(作品活動)으로


조국통일(祖國統一)을 촉진(促進)
재일 여류소설가(在日女流小說家) 안 양(安孃) 귀국(歸國)

 

『거리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무엇인가 사무치게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어요』라고 첫말을 꺼내는 安福基子(한후끼꼬)양은 재일(在日)교포 동인지 「백엽(白葉)」으로부터 제1회 문학상(文學賞)을 받은 여류소설가이다.

혁명 1주년을 앞두고 소란스럽기만 모국(母國)이 여간 관심되지 않아서 직접 와서 함께 느끼면서 작품의 소재(素材)를 마련하기로 결심하고 잠시 방문한거라고 말하는 안(安)양은 만나본 많은 사람들의 통일(統一)에 대한 열망이 교포의 그것에 비길 바 아니라고 열띤 표정이다.

특히 학생(學生)들이 자신 쟁취하겠다고 전진하고 있는 모습은 성장하는 조국(祖國)에의 기대를 크게 하는 것이었다고 강조하면서 『남북통일은 우리 한국민 스스로의 힘으로만 얻을 수 있느니만큼 저는 작품활동으로써라도 조국통일을 촉진시켜 도움 되고자 해요』라고 자신의 태도를 밝혔다. 

그리고 모국에 있는 문학인들이 혁명 및 그 결과를 어떠한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지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작품(作品)을 소개해 주길 청하는 그였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순수문학(純粹文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아연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 가늘고 긴 것은 낡은 유산이야요. 지금 같은 스피드 시대(時代)엔....? 오늘의 인텔리야말로 대중(大衆)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책임이 중(重)해요.』

또한 학생 내지 젊은 세대에 대한 관심의 일면으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예의(禮儀)를 가르치기 전에 색동옷(奢侈)부터 입히더라』는 표현은 연소자의 범행(犯行)이 빈번한 우리 사회의 실태에 대한 근본 면(面)의 일침이기도 했다.

그것은 「통일(統一)」을 「공산화(共産化)」처럼 생각하고 있는 일부 기성층의 체념(諦念)과 더불어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건전한 통일조국」을 거듭 강조해 마지않았다.

안(安)양은 이달 하순에 일본에 돌아가는 대로 「성장해 가는」 조국을 작품화하겠다고 다짐하고 교포와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좀 더 올바르게 이해시키는 한편 자랑하고 싶은 게 많았다고 말한다.

▲ 작품활동(作品活動)으로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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