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일 신년사를 통해 전력문제 해결을 위한 '원자력 발전'을 언급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국제정치의 대표적 불평등 사례, ‘NPT 체제'

흔히 현대를 민주주의 사회라 부르고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따라 자유.평등.박애가 지배하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우리 사회 면면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수락연설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말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비롯해 켜켜이 쌓인 적폐를 바로잡아가는 과정은 험난하고 멀기만 하다.

국제사회로 눈을 돌리면 어떨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는 5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배타적으로 보장하고 있고, 미국의 강력한 입김은 더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게 상식이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지만 국제사회는 침묵해야 했고 심지어 노무현 정부는 울며겨자먹기로 이라크에 파병까지 해야만 했다.

1970년 발표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으로 지탱되고 있는 국제 핵무기 질서는 이같은 약육강식, 비합리의 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핵무기를 합법적으로 보유할 수 있는 이른바 P5(미.러.영.프.중) 외에는 핵무기보유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불평등한 국제질서를 제도화한 대표적 사례다. 심지어 핵물질을 이용한 원자력발전의 경우도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용해야만 가능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렇다고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인도와 파키스탄이 있고, 보유 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핵무기 보유국으로 분류되는 이스라엘도 있다. 국제 정치질서의 이해관계에 따른 편의적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나서서 이스라엘이나 인도.파키스탄의 비핵화를 요구하지도 않고 있다.

북한은 1985년 12월 12일 NPT 체제에 가입했으나 1993년 3월 12일 탈퇴를 선언했고, 탈퇴 요건을 충족시키기 못해 보류되었다가 2003년 다시 탈퇴를 선언해 NPT 체제 밖에서 핵무기 보유국임을 선언했다.

알려진 대로 미국은 북한의 NPT 탈퇴와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94년 이른바 1차 북핵위기를 무마한 북미기본합의서를 체결했고, 2005년 이른바 2차 북핵위기를 봉합한 6자회담을 통한 9.19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지금은 북한이 지난해 11월 29일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탄(ICBM) '화성-15형' 발사 성공에 힘입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데 따른 3차 북미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6자회담 마지막 문턱, 힐 “오늘은 경수로의 날이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6자회담에서 마지막 걸림돌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 문제였다. IAEA 사찰을 수용하는 조건을 충족한다면 원자력발전은 ‘주권국가의 고유권한’이라는 것이 북측의 주장요지였고, 미국은 다른 나라는 몰라도 북한은 비밀리에 핵물질을 개발한 전력이 있는 ‘불법국가’라 불가하다는 불신이 깔려있었던 것.

2005년 9.19공동성명 채택을 목전에 둔 시점에 현지 취재 중이던 기자의 기사제목은 [<5신>힐, “오늘은 경수로의 날이었다”]였을 정도였다. 북한은 핵물질 전용이 용이한 중수로가 아닌 경수로를 이용한 원자력발전 권한을 강력히 요청했던 것.

결국 9.19공동성명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타 당사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명하였고,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데 동의하였다”고 절충적 문안이 포함됐다.

아울러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대한민국, 러시아연방 및 미합중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에너지를 제공할 용의를 표명하였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2백만 킬로와트의 전력공급에 관한 2005.7.12자 제안을 재확인하였다”는 관련 문안도 포함됐다.

한국의 200만 킬로와트 전력공급이 눈길을 끈다. 보수정부 시기 미국 굴지의 GE(General Electric Company)가 북한에 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송배전망을 구축하는 사업을 타진하자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 즉 경수로 개발 의지에 대한 사전조치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에서 ‘원자력 발전’ 언급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두고 북미간 본격 협상이 예상되는 2019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온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린 가운데 김 위원장은 “전력문제해결에 선차적인 힘을 넣어 인민경제활성화의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면서 “조수력과 풍력, 원자력발전능력을 전망성있게 조성해나가며”라고 언급했다. 원자력발전은 조수력, 풍력과 함께 미래 에너지원으로 거론한 것.

가볍게 생각하면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 결과 비핵화를 추진하게 될 경우 ‘평화적 핵이용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면 ‘반대급부’를 내놓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우리도 전력문제가 어려워 원자력발전을 하려고 하는데 너희가 못하게 하겠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라”는 경제적 ‘실리챙기기’ 차원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과연 그렇게 간단히 볼 수 있을까? 여기에 미국의 깊은 고민이 있을 것이다.
흔히 핵무기 보유국이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 현재핵과 미래핵을 동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과거 개발해둔 핵탄두 등 핵물질을 신고, 폐기, 검증하는 수순을 밟게 되지만 우크라이나 사례 등을 보면, 핵관련 종사자들의 재교육과 직종전환 등 연관된 모든 ‘불가역적’ 조치들까지 포함이 돼야 한다.[관련기사 보기]

결국,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더라도 다시는 핵무기 보유국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 핵폐기국’을 목표로 삼을 때 북한의 경수로 운영은 IAEA 감시하에 두더라도 찜찜한 구석을 남겨둔 것과 같다. NPT 탈퇴 시처럼 IAEA의 철수를 요구하면 꼼작없이 쫒겨나올 수 밖에 없고, 핵연료와 관련종사자들이 있는 조건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국으로의 복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사코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을 부정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북한에 대한 ‘불신’인 것이다.

반면에, 북한은 미국과 협상이 잘 진행돼 핵무기를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맺었다 하더라도 미국이 변심해서 적대정책으로 돌아설 경우 자구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안전장치로 경수로를 항시 운영하고 있다면 그나마 협상 타결을 머뭇거리지 않아도 된다. 역시 한마디로 미국에 대한 ‘불신’이다.

‘가역적 핵무기 포기국’과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북한이 미국의 ‘배신’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선호할만한 카드는 다시 ‘핵무장’밖에 없다. 즉 핵무기를 폐기하되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물적토대는 유지해야겠다는 계산이다. 기자는 이런 북한의 입지를 ‘가역적 핵포기국’으로 명명한 바 있다. 핵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되 되돌릴 수 있는 여지를 둔다는 것. [관련기사 보기]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화적 핵이용권’을 인정해 국제감시 하에 ‘경수로’를 운영하고 ‘우주개발권’을 인정해 ‘인공위성’ 발사를 용인하는 것.

그러나 이제는 당시 ‘가역적 핵포기국’ 논리를 제기할 때에 비해 북한의 핵무력 완성 수준은 훨씬 진전됐다. 핵탄두 숫자나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물질 생산 능력,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 등이 현저히 진전된 것.

따라서 이제 북한은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지위에서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국가 핵무력은 완성됐지만 되돌릴 수도, 되돌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수로’와 ‘인공위성’ 권한 보장은 물론, 상응하는 물질적 보상도 추가돼야 한다는 입장에 설 것으로 관측된다. [관련기사 보기]

김정은 위원장은 원자력발전을 전력 문제, 즉 경제 문제로 슬쩍 제기했다. 북미간 협상이 본격화될 때 화력발전소 제공 등 경제적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달리 보면 북한과 미국의 협상의지를 살필 수 있는 하나의 가늠자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과거 200만 킬로와트 전력 제공 제안 같은 한국의 중재자 역할과 의지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과연 해결사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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