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 결과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북미간 협상이 지속되고 있다. 북미 양 정상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 포괄적 합의에 이른 것은 일대 사변임에 틀림없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토브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게 되면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고 현실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일괄 타결’을 자신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역사성과 복잡성, 장기성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이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를 두고 숱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더구나 향후 전망을 둘러싸고는 거의 중구난방 수준으로 종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핵심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본질이 무엇이고 결정적 해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차일 것이다.

1. 오바마, ‘가역적 핵포기국’ 타이밍 놓치다

6자회담 등을 취재해온 기자는 2012년 12월 인공위성 광명성3호 2호기의 궤도 진입을 지켜본 뒤 북한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de facto nuclear-weapon state)으로 분류하고 북한에 ‘가역적 핵포기국’ 지위를 부여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더 완벽해지기 전에 북한에게 언제든지 핵무기 보유국으로 빨리 되돌릴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가역적 핵폐기’를 추진하면 북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미국은 관계정상화와 안전보장을 약속하더라도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에게도 안전장치를 부여한다면 균형잡힌 협상이 된다는 게 요지다. 물론 그마저도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라는 강대국 논리가 관철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가역적 핵폐기국’의 핵심은 평화적 핵이용권과 우주개발권을 국제적 감시하에 허용함으로써 북한이 안심하고 핵폐기에 나서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주권을 가진 보통국가들이 보유할 수 있는 핵연료 주기를 완성한 경수로를 IAEA(국제원자력기구) 감시하에 운용하고, 인공위성 개발 권한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사실, 역사적인 9.19공동성명 협상 과정에서도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 즉, 경수로 문제가 핵심 사안이었고,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는 “오늘은 경수로의 날이었다”고 말하곤 했을 정도였다. 한국의 200만Kw 전력제공 방안이 9.19공동성명에 포함된 것도 이런 사정과 연관돼 있다.

어쨌든 미국이 북한에 대해 관계정상화와 안전보장을 ‘되돌릴 수 없도록’, 즉 ‘불가역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면 ‘가역적 핵폐기’를 목표로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지만,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사실상의 무대책으로 일관하다 실기했다.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시험, 3월 노동당 전원회의서 경제.핵무력 병진노선 채택, 4월 영변 원자로 재가동 선언으로 치달았다. 명실상부한 핵무기 보유국으로 한걸음 더 성큼 내딛은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새로 등장한 북한의 젊은 지도자가 ‘경제 발전과 핵무력 발전 병진노선’을 완강히 고수하고 나서자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힌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임기 내에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를 돌려세울 수 없다고 판단, 의욕을 상실했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이 아무리 빠른 속도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더라도 자신의 임기 내에 미국 본토를 위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주효했을 것이다.

2. 트럼프, 역사적 난제 해결에 뛰어들다

▲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열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북한은 과거와도 확연하게 구분될 정도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위해 총력 질주했다. 특히 9월 3일 6차 핵시험을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으로 발표했고,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국가핵무력 완성’과 ‘로케트강국 위업 실현’을 선포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뤄뒀던 북핵 문제가 이제 미국 본토까지 사정거리에 들게 됨으로써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것이다. 화성-15형 발사 불과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 1일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대피훈련이 일본열도를 넘어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벌어졌다. 하와이에서 핵공격 대피 사이렌이 울린 것은 냉전시기 이후 30여년만이었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했던 것은 다 싫어하는(Anything But Obama) 트럼프 대통령이 투덜거리듯이, 그러나 자신의 업적을 부각시키듯이 되뇌는 것이 바로 “그들은 25년 동안 대화를 해왔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느냐? 아무 일도 없었다”, “지금보다 과거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게 훨씬 쉬웠을 것”이라는 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의용, 서훈 대북특사가 백악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전하자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왜 못 풀었는지 아느냐. 참모들 말 듣다 그렇게 됐다”며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즉석에서 수락했다. 북핵 문제를 자신의 역사적 임무로 수용한 것이다.

국내정치에서 입지가 현저히 좁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름대로 성과를 내보일 수 있는 소재로 북핵 카드를 붙잡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잘 읽고 ‘노벨평화상’의 미끼를 던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온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 보좌관에게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지난 25년간의 한미 양국 정부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으셔야 한다.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도 했다.

3. 김정은-트럼프,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합의하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일괄 타결’을 자신하며 북미 정상회담을 수용한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시점부터 ‘물리적 이유’, ‘과정(process)’, ‘여러 차례 회담’ 등을 언급하며 싱가포르 회담에 임했고, 결국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포괄적 합의만 담게 됐다. 나아가 최근에는 ‘칠면조 요리’ 발언까지 등장했다.

어쨌든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현재로서는 북미 간에 도달한 합의 수준이자 내용이다. 물론 이면합의서나 구두합의 등이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성명 서명 뒤 기자회견에 나서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를 약속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은 1항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해나가기로 하였다”, 2항 “한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다”, 3항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로 압축될 수 있다.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4.27 판문점선언에 포함된 비핵화 관련 합의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3항 4조다. 여기에 더해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고 명기돼 있다.

남북간, 북미간 정상들이 합의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남과 북을 포괄하는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를 뜻하고, 특히 이미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의 비핵화를 뜻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다만, 시한을 못박지 않은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 옮기면,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국임을 전제로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로 합의했고, 이미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주동적 조치’(핵.미사일 모라토리엄, 핵실험장 폐기)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한 것이다.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고 핵무기 보유국을 한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즉 ‘되돌리기로 약속한 핵무기 보유국’,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 시기 본격적인 해법을 모색했더라면 ‘가역적 핵포기국’ 정도 선에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던 미국은 시간을 허비한 끝에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에 합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4. 전례 없는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논란을 일으키다

▲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단독 기자회견을 가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6월 12일 북미 정상이 역사적인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1시간이 넘게 기자회견을 가졌다. 리얼리티쇼 사회자 출신의 대통령이 리얼리티쇼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협상이 1차 협상이었다면, 워싱턴 주류사회를 상대로 한 2차 협상의 첫 관문을 전 세계가 생중계로 지켜본 것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확인된 트럼프 대통령의 면모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잘 대처하는 유능한 정치인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간 미국과 서방 주류언론이 김정은 위원장 못지않게 ‘괴짜’나 ‘멍청이’로 매도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상징조작이 일거에 발판을 잃게 된 것.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기업의 자금지원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당선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겹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05년 6자회담 당시에도 미국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북한 또는 5개국과의 협의가 끝나면 숙소로 곧장 오지 않고 미국대사관에서 비화기를 붙들고 워싱턴과 2차 협상을 끝없이 가졌다. 밤늦게야 숙소에 돌아온 그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쏟아내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름 성심껏 답해 기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가 2005년 4차 6자회담 기간 중 호텔 로비에서 기자들을 만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은 ‘핵무기 보유국’ 북한을 ‘어떻게’, ‘언제까지’, ‘핵무기 비보유국’으로 되돌릴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성토장이 됐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이른바 CVID(완전하고 확인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폐기)와 목표시한이 명기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주종을 이뤘다.

그러나 사실 그 누구보다도 트럼프 대통령이 CVID와 목표시한을 명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6.12 회담 하루 전까지도 협상 책임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CVID를 거론하며 북한을 압박했고, 심지어 회담 당일 확대정상회담장이나 오찬장에서도 미국의 압박이 계속됐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북한의 핵문제가 압박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더구나 상대가 누구인가. 수십년간 미국과 맞상대해오며 맷집을 키워온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지위는 전례가 없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가보지 않은 길을 조심스레 가고 있는 중이라고 지켜봐 주는 것이 합당한 평가일 것이다.

통상 세계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이 인정한 P5(미.영.프.중.러)만이 합법적 핵무기 보유국에 속하고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은 ‘사실상(de facto) 핵무기 보유국’으로 분류한다. 북한 역시 NPT 체계 밖에서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을 인정받은 셈이지만 유일하게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핵무기 보유 지위를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중 완전한 비핵화를 천명한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특수한 형태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사태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문제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무기 비보유국’으로 되돌아가는데 어떤 조건이 갖춰져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아니, 실제로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할까의 문제일 수도 있다.

5. ‘디테일 속의 악마’, 정치적 합의로 피해 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최대 걸림돌은 북한 핵.미사일의 신고와 검증 과정을 꼽는다. 실제로 난산 끝에 탄생한 옥동자 9.19공동성명도 신고 과정에서 삐걱대다 진도를 더 나가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했듯 ‘악마는 디테일에’ 있게 마련이지만 신고와 검증 과정은 대체로 기술적인 사안이므로 고비가 될 수는 있지만 넘지 못할 산은 아니다. 다만 ‘정치적 합의’가 필요할 따름이다. 미국이 사실상 북한의 굴복을 요구하며 북한 전역을 언제든지 뒤져보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지루한 협상만 이어지게 될 것이다. 결국 현실 가능한 선에서 북미와 국제적 감시기구들의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만약 ‘악마’를 물리치지 못한다면?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한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남게 될 것이다.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확인했듯이. 그럴 경우, 미국의 선택은? 군사적 옵션은 말로는 항상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배제된 지 오래다.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한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북한을 쳐다만 봐야 한다. 북한이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지위로 존속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북한을 ‘핵무기 비보유국’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신고와 검증 과정 등에서 마주칠 ‘악마’를 슬기롭게 물리치는 ‘정치적 합의’를 단계별로 잘 밟아 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이 자칫 ‘정보주의’에 매몰되면 금창리 사건이 재연될 수 밖에 없다. 금창리 사건은 첩보를 확신한 미국이 헛다리짚은 전형적 사건으로, 정보는 양날의 칼임을 잘 일깨워주는 사례다.

6. 트럼프, ‘완전한 안전보장’ 숙제 떠안다

▲ 남북 정상간의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간의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다짐받았지만 이 합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의 '완전한 안전보장' 조치도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즉 북한의 핵폐기 과정도 어려운 점들이 있지만 ‘완전한 비핵화’에 상응해 미국이 북한에 ‘완전한 안전보장’을 제공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의 문제이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에 대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완전한 안전보장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첫째, 정치적 안전을 보장하는 문제다. 북한을 정치적으로 인정하고 그 체제를 보장한다는 것은 북한을 유엔가입국의 일원으로 주권을 존중하고 내정에 불간섭하는 통상적 국가 간 외교룰을 지킨다는 것이다. 평양과 워싱턴에 대사관이 설립되는 북미관계 정상화, 즉 수교가 귀결점이랄 수 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존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호탄이다. 오히려 우방국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대할 때와 비하더라도 상당히 신경써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북한은 자주적 주권국가로 존중받고 그 지도자가 그에 합당한 예우를 받는 것을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인민들의 자존심 문제와 연관지어 받아들이고 있다. 경제적 군사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북한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상주대표부로 시작해 대사관 설치까지 시간 단축도 어려운 문제만은 아니다.

또한 미국이 북한에 대한 내정불간섭의 가장 단적인 징표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태도로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 인권문제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해결의 주체를 북한 정부와 인민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잣대를 북한에 들이대며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주권 침해이자 실제로 인권 향상에 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개혁개방을 외부에서 아무리 외쳐댄다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개방에 나섰던 적은 없다. 오히려 중국의 경우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스스로 편입됐다. 북한의 인권문제나 개혁개방 문제도 북한 스스로 결정하고 능동적으로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군사적 안전를 보장하는 문제다. 북한을 재래식 전력이든 핵전력으로 위협하지 않고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필요하면 미국은 북미 불가침조약이라도 맺을 수 있어야 하고, 남북 간에도 비무장지대의 비무장지대화를 포함한 군비통제.감축도 실행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보다 핵.미사일 능력이 훨씬 미치지 못했던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도 보장했던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과 우주개발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경제적 보장조치이자 군사적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핵연료주기를 완성한 경수로의 가동과 인공위성 시험발사 보장이야말로 미국이 변심할 경우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전판이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도 안심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단행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에 ‘되돌릴 수 없는’이라는 문구를 넣고 싶어하는 것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도록 경수로든 과학기술자든 모든 연관된 것들을 제거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보다도 훨씬 핵.미사일 능력이 미치지 못했던 2005년 9.19공동성명 당시에도 달성하지 못한 추상적 목표일 뿐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모든 국가들이 보유한 경수로와 인공위성 발사 권한을 제약해 ‘가역적 핵무기 포기국’ 지위마저 보장할 수 없다면 북한은 그냥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남아있으면 된다. 언제든지 완전한 비핵화하겠다는 신호를 발신하면서. 즉,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으로 존속하게 되는 셈이다.

셋째, 경제적 안보를 보장하는 문제다.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소극적 보장과 경제협력과 국제경제기구 편입 등 적극적 보장으로 나눌 수 있지만 소극적 보장 조치를 미국 정부가 취하는 것이 전제이다.

문제는 대북 경제제재가 유엔 등 다자제재와 미국과 한국, 일본 등 양자 제재가 중첩돼 있고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풀 수 있는 제재와 의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풀 수 있는 제재가 얽혀있다는 점이다.

최소한 온전한 대북 경제제재가 해제되기 전까지는 북한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버릴 조건이 마련됐다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7.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북한과의 동거, 정해진 시한은 없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폐기 속도가,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정치.군사.경제적 북한 안전보장 속도가 얼마나 빨리 진행될지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와 대선이 2020년인 점을 고려하면 2020년까지를 목표시점으로 잡을 상식적인 이유가 있어 보인다.

북한 역시 쉽게 오지 않을 협상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고,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한 지난 4월 노동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의 관철을 위해서는 경제제재 문제를 우회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안전보장 장치 없이 ‘핵무기 비보유국’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상상하기 힘들다. 어렵더라도 임기가 무한정한 젊은 지도자와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버티기’에 들어가 ‘시간은 우리편’이라고 트럼프 대통령과 맞설 수 있다.

어쨌든 북미간 합의가 실현돼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안전보장’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선언한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지위로 남게 될 것이고, 우리는 ‘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북한과 상당시간을 공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이것이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합의 내용을 직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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