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라 내고향 12-동룡굴(蝀龍窟)

 
날이 갈수록 가고 싶은 곳
부모님들의 인자한 모습이 그리고
굴속에 「보트」로 재미나던 뱃놀이

 〇... 고향 떠난 지가 하도 오래서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더우기 전쟁이라는 모진 풍파를 겪고 나니 감정도 무뎌지고 감상이란 별로 없습니다. 생각이 나는 것은 추운 겨울밤 살을 에는 찬바람을 맞아가면서도 방현리(方峴里담) 냉면집에 국수 먹으로 가던 생각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습니다. 여기 와서 그런 국수 맛을 본 일이 없어요!

〇... 지금 내 고향 영변읍에는 끔찍이 여겨주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사촌형 조카들이 있건만 생전에 만나 볼 수나 있을는지! 이현(梨峴) 큰집에 놀러 가면 맏형 ○옥이며 작은형 ○걸씨가 그렇게도 아껴주고 사랑해주었던지 이따금 형님들의 생각이 나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잇달아서 큰 아버지 큰어머니의 인자한 얼굴들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지금은 큰아버지의 나이 78세 큰어머니의 나이 70세 아마도 다시 한 번 볼 수 없을 것만 같군요!

〇... 용등동(容登洞)에 있는 대종유동(大鐘乳洞) 동룡굴(蝀龍窟)말이죠! 내가 극히 어릴 때 가보아서 별로 이렇다 할 생각이 나지 않으나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종유(鍾乳)가 겨울날 초가지붕에 매달린 고드름처럼 굵고 가는게 많이 달려 있었는데 이것은 나무막대기로 때리면 똥똥똥~ 묘한 소리가 났습니다! 

또 굴속은 굴속인데 큰 강물이 넘쳐흘렀고 여기다가 「보트」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는 것도 본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는 그 굴속에 전깃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 좋았었는데 그 후 소식을 들으니 굴속의 전기를 걷어버려 캄캄한 암흑이더라고 합니다.

그 굴속에 놀러갔을 적에 기다란 사닥다리도 올라간 기억이 나고 비좁은 굴속을 빠져나가기도 했습니다.

〇... 지금 고향에 가보았자 누가 제대로 살아 있을는지도 모르는 내 고향이건만 날이 갈수록 가고만 싶은 땅입니다. 내가 이곳에 나온 이후 부모님도 돌아가셨다고 1.4후퇴 당시 나온 분들이 일러 주었습니다.

또 하나인 외아들을 부모님들은 얼마나 그리워하다가 돌아갔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38선이 무엇인지!

(사진=용등동의 대종유동(大鐘乳洞) 동룡굴(蝀龍窟)=1938년 촬영)

 

박문수 朴文洙(구성 龜城 출신=회사원)

▲ 가고파라 내고향 12-동룡굴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3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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