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라 내고향 11-압록강철교


떠내려 오는 「뗏목」에 정서 담뿍
무참히도 죽어간 은전(銀錢)과 아편(阿片)의 밀수배(密輸輩)
안동가서 담배 전술쓰던 기억도 새로 와

 
〇... 담배 한 갑을 슬쩍 넣어주면 세관사람도 별수가 없었다. 압록강 철교를 넘어 만주 땅 안동엘 가서 놀자면 내 동무들은 담배 전술을 쓰기가 일쑤였다. 중학교 때 우리는 거기에 가서 「위스키 과자」를 사먹는 것이 큰 재미거리였다. 싼 돈을 주고 열대여섯 알만 먹으면 술을 마신 것처럼 눈이 팽팽 돌아서 다시 철교를 걸어 넘어오곤 했다.

황혼이 깃들인 압록강에는 저 멀리 혜산진(惠山鎭)쪽으로 부터 떠내려 오는 「뗏목」이 정서를 담뿍 솟군다.

어렸을 때 나는 압록강을 타고 밀수하는 배를 향해 총질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만주에서 따량(銀錢)이나 아편을 날라 오다가 무참히 죽어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국경도시는 이런 비극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행심에서 내 고장에 모여든다. 이런 사람들을 바탕으로 도박과 술과 여자가 득실거리는 뒷거리가 형성되어 범죄를 유발했었다.


〇... 시가지 주변에 제방을 쌓기 전에는 압록강과 삼교천에서 넘쳐드는 홍수 때문에 쓸모없는 갈대밭에 불과했던 내 고향 - 그러나 그곳을 버리고 오던 1·4후퇴때 시가지 길은 동북에서 서남, 서북에서 동남으로 정연히 뻗쳐서 마치 바둑판 줄과 같았다. 사변 통에 신의주는 많은 상처를 입었다고 들린다. 내 어머니와 동생들은 지금 살아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어머니 주머니를 꾀어 만주로 넘어가서 「드로프스 (캔디)」나 「위스키과자」를 마음껏 먹던 일, 뒷골목 중국집에 가서 쓴 「빽알」을 쫄쫄 마시고선 비틀거리며 철교를 넘던 일, 만포선을 따라 올라가서 낯선 어른을 졸라 뗏목을 타고 우쭐거리던 생각이며 모두 어제와 같다.

다시 한 번 그런 시절이 돌아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향에 간다면 옛 친구들과 함께 뗏목위에서 소주라도 한잔 나누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사진=압록강철교=1938년 촬영)

 
김덕훈 金德塤(신의주 출신=공무원)

▲ 가고파라 내고향 11-압록강철교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3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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