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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선언서, 대종교의 단군민족주의 표출"국학연구소, 대한독립선언서 100주년 학술회의 개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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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8  22: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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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선언서, ‘단기연호’와 ‘대한독립’ 사용

   
▲ (사)국학연구소는 17일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대한독립선언서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3.1운동 당시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 보다 먼저 만주지역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선언서’, 일명 ‘무오독립선언서’는 단군민족주의를 기저로 민족종교 대종교가 주도한 것이라는 분석이 발표됐다. 발표시점과 서명자들에 대한 조명도 시도됐다.

(사)국학연구소(이사장 김종성)가 17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개최한 ‘대한독립선언서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선언서에는 여러 대목에서 단군민족주의의 흔적이 표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먼저, 대한독립선언서의 발표일자를 단기연호로 적고 있는 점을 들었다. 선언서 말미에 ‘건국기원(建國紀元) 4252년 2월’이라 표기된 것. 또한 “반만년‘, ’사천년 조종의 영휘‘ 등의 표현도 등장한다고 예시했다.

정영훈 교수는 “단기연호는 단군민족주의가 정립하여 보급한 대표적인 전통”이라며 “단군을 동국사의 출발점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정착하면서 지식인들은 특정의 역사적 사건이나 당대의 시기를 단군이 건국한지 몇 년 째인가를 자주 따져 묻곤 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명철 동국대 교수는 “무오독립선언서는 선언서의 앞머리에 ‘대한독립선언서’라고 정식으로 국호를 표기하고 있다”고 대한의 ‘한(韓)’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대한독립선언서에는 “우리 대한은 예로부터 우리 대한의 한(韓)이요, 이민족의 한이 아니라, 반만년사의 내치외교는 한왕한제(韓王韓帝)의 고유 권한이요, 백만방리의 고산려수는 한남한녀(韓男韓女)의 공유 재산이요...(중략)...우리나라 한 사람의 한인(韓人)이라도 이민족이 간섭할 조건이 없으니, 우리 한은 완전한 한인의 한이라”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윤명철 교수는 “이렇게 ‘한’이라는 언어 또는 기호를 집요할 정도로 반복하면서 표현하였다”며 “2.8독립선언서나 기미독립선언서는 제목에 해당하는, 즉 선언서의 목적을 표현하지 않았다. 반면에 대한독립선언서는 ‘대한독립’이라는 명칭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고 짚었다.

또한 “소위 ‘무오독립선언서’는 ‘조선’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부활을 강렬한 목표로 삼았으며, 나아가 대한제국에 이어 새로운 국가의 사상적인 정통성과 지향성을 ‘한’으로서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독립선언서, 대종교 영향 특정할 수 있어

   
▲ 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왼쪽)와 신운용 한국외국어대 강사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정영훈 교수는 “선언문 속에서 대종교의 영향을 특정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며 “아 동심동덕인 이천만 형재자매야. 아 단군대황조께서 상제에 좌우하여 우리의 기운을 명하시며, 세계와 시대가 우리의 복리를 조하는도다”라는 대목을 들어 ‘단군대황조(檀君大皇祖)’라는 표현이 “전적으로 대종교식 표현”이라고 꼽았다. 이외에도 ‘황황일신(皇皇一神)’ 등의 표현도 마찬가지로 해석했다.

또한 “대종교 교주인 김교헌이 서명자 39인의 이름 중 가장 수위에 거명돼 있는 대목”에 대해 “3.1독립선언서에서 손병희의 이름을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을 참고하면, 김교헌을 선언의 주동자나 대표자로 생각한 결과였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만주지역에서 무오년(1918)에 작성된 대한독립선언서에 대종교 2세 교주 무원 김교헌이 첫 번째로 서명했고, 국내에서 기미년(1919)에 발표된 3.1독립선언서에 천도교 3세 교주 의암 손병희가 첫 번째 서명자로 등장한 것은 우연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정영훈 교수는 “선언문을 기초한 조소앙은 대종교 계통의 민족사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규정했다. 조소앙은 일신(一神) 아래 단군,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모하메드 등 6인을 ‘신자육성(神子六聖)’이라며, 단군을 앞세우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또한 “조소앙도 정식 입교한 기록은 안보이지만, 대종교단의 상해지역 포교책임자였던 신규식의 주선으로 상해에 망명한(1913) 이래 대종교인들과 긴밀히 교유하였으며, 대한독립선언서 발표를 전후한 시기에는 길림에 거주하면서 대종교단 및 교인들과 밀접히 교류하고 있었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신운용 외국어대 강사는 “학계에서 대한독립선언서가 대종교 세력이 주축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39명의 서명자를 당시 대종교의 교구에 따라 구체적으로 분류해 30명을 대종교 관계자라고 밝혔다.

신운용 강사는 “김교헌은 1917년 교의회를 열어 교구를 동일도본사.동이도본사.서일도본사.서이도본사.북도본사.남도본사로 재정립하였다”며 “대한독립선언서에 참여한 대종교 주축 세력은 동일도 본사.동이도본사.서일도본사.서이도본사 소속 대종교인”이라고 말했다.

동만지역과 함경도를 포함하는 ‘동일도본사’(11명)에는 김규식(우사 김규식이 아님), 김좌진, 김동삼, 박성태, 박찬익, 손일미, 여준, 조소앙, 조성환, 한흥, 황상규, 노령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와 동북만 일대의 ‘동이도본사’(4명)에는 신채호, 이범윤, 김학만, 문창범, 남만일대와 평안도 일대의 ‘서일도본사’(11명)에는 윤세복(대종교 3세 교주), 이광, 이시영, 이탁, 허혁, 유동열, 이상룡, 이세영, 임방, 이종탁, 최병학, ‘서이도본사’(3명) 박은식, 이동녕, 신규식(신정)을 꼽았다. 김교헌을 포함하면 30명에 달하는 셈이다.

그 외에 ‘기독교와 천주교, 간도와 미주지역’(8명) 서명자로 김약연, 이대위, 이봉우, 박용만, 안정근, 안창호, 이승만, 정재관을 ‘사회주의 만주.연해주 지역’(1명) 서명자로 이동휘를 분류했다.

신운용 강사는 “대종교 또는 친대종교 세력이 전체의 3/4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그 외의 서명자들 역시 “대체로 단군에 대한 흠모와 존경을 기반으로 대한독립선언서에 참여하였던 것”이라고 결론짓고 “대한독립선언에 참여한 인물들은 대종교 네트워크를 통하여 대한독립선언에 참여하였던 것”이라며 “특히 기독교와 사회주의 계통의 인물들은 대체로 단군민족주의에 철저한 인물들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대한독립선언서, 작성과 발표 시점도 논점

   
▲ 김병기 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의 발표에 이숙화 한국외국어대 강사가 토론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병기 대한둑립운동총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지역별로 살펴보면 만주지역 24명, 중국관내 6명, 노령 4명, 미주지역 4명, 국내 1명”이라며 “대한독립선언서가 만주지역에서 발표된 데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지역들이 국권피탈 이후 무장투쟁 제일주의를 표방해 왔다는데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김교헌, 윤세복을 비롯하여 이동녕, 박은식, 박찬익, 신정(신규식), 신채호 등 대종교인이 16명으로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대종교인을 16명으로 파악하는 입장을 유지했다.

대한독립선언서의 작성과 발표 시기에 대해서는 신운용 강사가 발표했지만 정원택의 ‘지산외요일지’와 신규식이 주도한 주보 ‘진단’ 창간호(1920년 10월), 대종교인 김정후의 증언 등이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신운용 강사는 ‘진단’의 “근년 이래 중요 선언은 모두 5번 있었다. 첫 번째는 상해에서 선포한 것이고, 두 번째는 동경에서 선포된 것이며, 세 번째는 길림에서 선포된 것이며, 네 번째는 한국 경성에서 선포된 것이며, 다섯 번째는 해삼위에서 선포된 것이다”는 서술에 근거 <대동단결선언>, <2.8독립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 <3.1혁명선언서> <연해주독립선언서> 순으로 기준을 삼았다.

정원택의 ‘지산외유일지’에는 3.1운동 이후에 발표된 것으로, 김정후의 증언에는 1918년(무오년) 11월에 작성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대한독립선언서의 키워드, 민족, 평등, 무장혈전

   
▲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학숳회의는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신운용 강사는 “대종교 세력이 사대주의와 군주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민족중심의 세계관을 제시하여 민족자주와 주권재민을 선포하였고 이는 대한독립선언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으며, 3.1 투쟁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영훈 교수는 “선언문 전체에서 평등이라는 단어는 4번이나 언급되는데, ‘평균’이나 ‘공유산’, ‘대동‘ 등 평등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용어도 자주 나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선언에서 평등 원칙이 가지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며 “선언이 추구하는 정치사회상이 민주공화국을 넘어 평등복지국가로 나아갔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병기 위원장은 “항일 무장독립운동의 근거지인 만주 길림에서 발표되었다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무장혈전’이라는 무장독립투쟁의 강력한 의지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중요시 된다”고 파악하고 “대표적인 무장투쟁가로 김동삼, 김좌진, 여준, 유동렬, 조성환 등을 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학술회의는 김동환 연구위원, 박용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이숙화 한국외국어대 강사가 토론자로 참가했으며, 앞서 이윤수 국학연구소 상임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개회식에서 김종성 국학연구소 이사장이 기념사를 했다.

   
▲ 학술회의를 마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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