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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선언서, 무력으로 국권회복을 해야” 김종성 국학연구소 이사장, 대한독립선언서 백주년 학술회의 개최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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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3  15: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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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17일 대한독립선언서 발표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국학연구소 김종성 이사장과 12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정부와 민간 모두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 중인 가운데, 오는 17일 ‘대한독립선언서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열려 눈길을 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가 발표된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그보다 한해 앞서 만주지역에서 일명 ‘무오독립선언서’로 알려진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된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기미년보다 한해 앞선 무오년에 이미 대한독립선언이 나왔고, 이듬해 일본의 2.8독립선언과 3.1기미독립선언이 이어진 것.

학술회의를 주최하는 (사)국학연구소 김종성 이사장은 12일 오후 5시 30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무오독립선언서 반포 100주년을 맞이하여 당시의 간절했던 대한독립운동의 의지와 정신을 살펴봄으로써 잊혀져 가는 민족정신을 회복하여 다시는 민족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국민들에게 알리는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국학연구소는 벌써 30년이 된 연구단체로서 어떤 의무감도 가지고 있고, 그동안 민족의식이 척박한 한국적 토양에서 국학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한 단체”라며 “무오독립선언서 100주년을 맞이해서 기념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획했다”고 말했다.

“서명자 3분의 2정도는 대종교와 관련된 분들”

   
▲ 올해 4월부터 4년 임기의 국학연구소 이사장을 맡은 김종성.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사)국학연구소가 주최하는 ‘대한독립선언서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는 주말인 17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리며, 개회식에 이어 학술회의가 네 가지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제1주제는 윤명철 동국대 교수가 ‘대한독립선언서의 민족사적 의의’를 발표하며, 제2주제 ‘대한독립선언서에 담긴 사상’은 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발표를,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이 토론을 맡는다.

제3주제 ‘대한독립선언서’의 발표시기와 서명자에 대한 분석‘은 신운용 한국외국어대 강사가 발표를, 박용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가 토론을, 제4주제 ’대한독립선언서와 무장독립운동‘은 김병기 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발표를, 이숙화 한국외국어대 강사가 각각 맡는다.

김종성 이사장은 “이번 학술회의는 선언서에 담긴 사상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발표함으로써 사상적 논점을 부각하여 정립하는 것이며, 발표 시기에 대하여도 여러 설이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내용이 발표될 것이며, 다양한 독립운동가로 구성된 서명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연구가 시도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대한독립선언은 1919년 2월 발표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 이사장은 “1918년 11월 13일 발표됐다는 문헌이 있다”며 “대외 발표는 2월이지만 실질적인 선언서 작성과 서명하기 위한 정신적인 결집은 무오년에 이미 이루어져 끝났다”고 말했다.

또한 서명자들에 대해서도 “일부는 안 들어간 분들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당시 만주에서 활동을 많이 하셨던 서일 총재, 홍범도 장군도 정신적으로 지지하지 않았겠느냐”며 “학술회의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표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예고했다.

김 이사장은 “대한독립선언서는 당시 만주, 노령, 상해, 북경 그리고 미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해외 저명인사 39인이 선언했는데, 김교헌 대종교 2대 교주를 비롯하여 신규식, 여준, 김동삼, 박은식, 박찬익, 이시영, 이상룡, 윤세복, 문창범, 이동녕, 신채호, 김좌진, 김규식, 이동휘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미주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승만, 안창호, 박용만 등도 동참한 그야말로 해외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총합된 선언”이라며 “3분의 2정도는 대종교와 관련된 분들 아닌가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명자 중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린 김교헌은 홍암 나철에 이은 대종교 2대 교주이고, 윤세복은 이후 3대 교주가 된다. 신규식, 이동녕은 대종교 서도본사 책임자다. 선언서를 기초한 조소앙 선생도 대종교와 밀접하다.
 

   
▲ 무오년(1918년) 발표돼 <기미독립선언서>에 영향을 끼친 <대한독립선언서> 원본. (자료출처 - 국가기록원)

大韓獨立宣言書

我 大韓同族男妹와 曁我遍球友邦同胞아. 我 .大韓은 完全한 自主獨立과 神聖한 平等福利로 我 子孫黎民에 世世相傳키 爲하야, 玆에 異族專制의 虐壓을 解脫하고.大韓民主의 自立을 宣布하노라.
我 大韓은 無始以來로 我 大韓의 韓이오, 異族의 韓이 아니라 半萬年史와 內治外交는 韓王韓帝의 固有權이오, 百萬方里의 高山麗水는 韓男韓女의 共有産이오, 氣骨文言이 歐亞에 拔粹한 我 民族은 能히 自國을 擁護하며 萬邦을 和協하야 世界에 共進할 天民이라, 韓一部의 權이라도 異族에 讓할 義가 無하고 韓一尺의 土라도 異族이 占할 權이 無하며, 韓一個의 民이라도 異族이 干涉할 條件이 無하니, 我韓은 完全한 韓人의 韓이라.
噫라 日本의 武孽이여. 壬辰以來로 半島에 積惡은, 萬世에 可掩치 못할지며 甲午以後의 大陸에 作罪는 萬國에 能容치 못할지라, 彼가 嗜戰의 惡習은 曰 自保 曰 自衛에 口를 籍하더니, 終乃 反天逆人인 保護 合倂을 逞하고, 後가 渝盟의 悖習은 曰 領土 曰 門戶 曰 機會의 名을 假하다가, 畢竟 悖義非法의 密款脅約을 勒結하고, 後의 妖妾한 政策은 敢히 宗敎와 文化를 抹殺하얏고, 敎育을 制限하야 科學의 流通을 防遏하얏고, 人權을 剝奪하며 經濟를 籠絡하여 軍警의 武斷과 移民의 暗計로 滅韓殖日의 奸凶을 實行한지라, 積極消極으로 我의 韓族을 磨滅함이 幾何뇨. 十年 武孽의 作亂이 此에 極하므로 天이 彼의 穢德을 厭하사 我에 時機를賜 하실새, 吾人等은 順天應人하야 大韓獨立을 宣布하는 同時에 彼의 合倂하던 罪惡을 宣布懲辦하노니,

一. 日本의 合邦動機는 彼所謂 汎日本主義를 亞洲에 實行함이니, 此는 東亞의 敵이오,
二. 日本의 合邦手段은 詐欺强迫과 不法無道와 武力暴行이 具備하얏스니, 此는 國際法規의 惡魔이며,
三. 日本의 合倂結果는 軍警의 蠻權과 經濟의 壓迫으로 種族을 磨滅하며, 宗 敎를 抑迫하며, 敎育을 制限하야 世界文化를 沮障하얏스니 此는 人類의 賊이라, 所以로 天意人道와 正義法理에 照하야 萬國立證으로 合倂無效를 宣布하며, 彼의 罪惡을 懲膺하며 我의 權利를 回復하노라.

噫라 日本의 武孼이여.小懲大戒가 爾의 福이니 島는 島로 復하고, 半島는 半島로 復하고, 大陸은 大陸으로 復할지어다. 各其 原狀을 回復함은 亞洲의 幸인 同時에 爾도 幸이어니와, 頑迷不悟하면 全部禍根이 爾에 在하니, 復舊自新의 利益을 反復曉諭하노라.
試看하라. 民庶의 魔賊이던 專制와 强權은 餘熖이 已盡하고, 人類에 賦與한 平等과 平和는 白日이 當空하야, 公義의 審判과 自由의 普遍은 實로 曠刦의 厄을 一洗코자하는 天意의 實現함이오, 弱國殘族을 濟하는 大地의 福音이라.
大하도다 時의 義여. 此時를 遭遇한 吾人이 共進하야 無道한 强權束縛을 解脫하고 光明한 平和獨立을 回復함은, 天意를 揚하며 人心을 順應코자함이며, 地球에 立足한 權利로 世界를 改造하야 大同建設을 協贊하는 所以일새, 吾人 等이 玆에 二千萬 大衆의 赤衷을 代表하야, 敢히 皇皇一神께 昭告하오며 世界萬邦에 誕誥하오니, 우리 獨立은 天人合應의 純粹한 動機로 民族自保의 正當한 權利를 行使함이오, 決코 眼前利害에 偶然한 衝動이 아니며, 恩怨에 囿한 感情으로 非文明인 報復手段이 自足함이 아니라, 實로 恒久一貫한 國民의 至誠이 激發하야 彼異類로 感悟自新케 함이며, 우리의 結實은 野卑한 政軌를 超越하야 眞正한 道義를 實現함이라.
咨홉다 我 大衆아. 公義로 獨立한 者는 公義로 進行할지라, 一切方便으로 軍國專制를 削除하야 民族平等을 全球에 普施할지니 此는 我 獨立의 第一義오, 武力兼倂을 根絶하야 平均天下의 公道로 進行할지니 此는 我 獨立의 本領이오, 密約私戰을 嚴禁하고 大同平和를 宣傳할지니 此는 我 復國의 使命이오, 同權同富로 一切同胞에 施하야 男女貧富를 齊하며, 等賢等壽로 知愚老幼에 均하야 四海人類를 度할지니 此는 我 立國의 旗幟오. 進하야 國際不義즐 監督하고 字宙의 眞善美를 體現할지니 此는 我 大韓民族의 應時復活의 究竟義니라.
咨我 同心同德인 二千萬 兄弟姉妹아.
我 檀君大皇祖께서 上帝에 左右하사 우리의 機運을 命하시며, 世界와 時代가 우리의 福利를 助하는도다. 正義는 無敵의 劍이니 此로써 逆天의 魔와 盜國의 賊을 一手屠決하라. 此로써 五千年 祖宗의 光輝를 顯揚할지며, 此로써 二千萬 赤子의 運命을 開拓할지니, 起하라 獨立軍아, 齋하라 獨立軍아. 天地로 網한 一死는 人의 可逃치 못할 바인즉, 犬豕에 等한 一生을 誰가 苟圖하리오. 殺身成仁하면 二千萬 同胞와 同體로 復活하리니 一身을 可惜이며, 傾家復國하면 三千里 沃土가 自家의 所有 이니 一家를 犧牲하라.
咨我 同心同德인 二千萬 兄弟姉妹아. 國民本領을 自覺한 獨立인 줄을 記憶할지며, 東洋平和를 保障하고 人類平等을 實施키 爲한 自立인 줄을 銘心할지며, 皇天의 明命을 祇奉하야 一切 邪網에서 解,脫하는 建國인 줄을 確信하야, 肉彈血戰으로 獨立을 完成할지어다.

建國紀元 4252年 2月

가나다順
金教獻 金奎植 金東三 金躍淵 金佐鎭 金學萬 鄭在寬 趙鏞殷
呂凖 柳東說 李光 李大爲 李東寧 李東輝 李範允 李奉雨
李相龍 李世永 李承晩 李始榮 李鍾倬 李沰 文昌範 朴性泰
朴容萬 朴殷植 朴贊翊 孫一民 申檉 申采浩 安定根 安昌浩
任(방) 尹世復 曹煜 崔炳學 韓興 許(혁) 黃尙奎
 

대한독립선언서

우리 대한 동족 남매와 온 세계 우방 동포여, 우리 대한은 완전한 자주독립과 우리들의 평등복리를 우리 자손 여민에게 대대로 전하게 하기 위하야 여기 이민족 전제의 학대와 압박을 벗어나서 대한 민주의 자립을 선포하노라.
우리 대한은 예로부터 우리 대한의 대한이요, 이민족의 대한이 아니라, 반만년사의 내치 외교는 한왕한제의 고유권이요 금수강산의 고산려수는 한남한녀의 공유 재산이요 기골문언이 구아에 뛰어난 우리 민족은 능히 자국을 옹호하며 만방과 화합하야 세계에 공진할 천민이라 우리 나라의 털끝만한 권리라도 이민족에게 양보할 의무가 없고 우리 강토의 촌토라도 이민족이 점령할 권한이 없으며, 한 사람의 한인이라도 이민족이 간섭할 조건이 없는 것이어서 우리 한토는 완전한 한인의 한토이다,
슬퍼라! 일본의 무력이여. 임진 이래로 반도에 쌓아 놓은 악은 만세에 엄폐할 수 없을지며, 갑오 이후 대륙에서 지은 죄는 민국에 용납치 못할지라. 그의 기전의 악습은 자보 자위의 구실을 만들더니, 마침내 반천역인인 보호합방을 강제하고, 그의 윤맹패습은 영토보존이니 문호개방이니 기회균등이니 구실을 삼다가 이어 몰의무법한 조약을 강제로 맺고 그의 요망한 정책은 감히 종교를 압박하여 신화의 전달을 저희하얐고, 학자를 제한하야 문화의 유통을 막고, 인권을 박탈하고 경제를 농락하며 군대 경찰의 무단정치와 이민이 암계로 한족을 멸하고 일인을 증식하려는 간흉을 실행한지라. 적극 소극으로 한족을 마멸시킴이 얼마이뇨 십년 무단의 작폐가 여기서 극단에 이르므로 하늘이 그들의 예덕을 꺼리어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주실세, 하늘에 순종하고 인도에 응하야 대한 독립을 선포하는 동시에 그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탄한 죄악을 선포하고 징계하노라.

1.일본의 합병 등기는 그들의 소위 범일본주의를 아시아에서 사행함이니, 이는 동양의 적이요,
2. 일본의 합방 수단은 사기와 강박과 불법무도한 무력폭행을 극도로 써서 된 것이니, 이는 국제법규의 악마이며,
3, 일본의 합방 결과는 군대 경찰의 야만적 힘과 경제 압박으로 종족을 마멸하며 종교를 강박하고 교육을 제한하야 세계 문화를 저장하얐으니 이는 인류의 적이라.

그러므로 하늘의 뜻과 사람의 도리와 정의 법리에 미쳐서 만국의 입증으로 합방 무효를 선포하며 그의 죄악을 응징하며 우리의 권리를 회복하노라.
슬퍼라! 일본의 무력이여. 소징대계가 너희의 복이니, 섬은 섬으로 돌아가고, 반도는 반도로 돌아오고, 대륙은 대륙으로 회복할지어다.
각기 원상대로 회복함은 아시아의 행인 동시에 너희도 행이러니와 만일 미련하게도 깨닫지 못하면 전부 화근이 너희에 있으니 복구자신의 이익을 반복 효유하리라.
보라! 인민의 마적이었던 전제와 강권의 잔재는 이미 다 없어졌고 인류에게 부여된 평등과 평화는 명명백백하야 공 의의 심판과 자유의 보편성은 실로 광겁의 액을 일세코자 하는 천의의 실현이요, 약국잔족을 구제하는 대지의 복음이라. 장하도다. 시대의 정의여! 이때를 만난 우리는 무도한 강권속박을 해탈하고 광명한 평화독립을 회복하야 하늘의 뜻을 높이 날리며 인심을 순응시키고자 함이며, 지구에 발을 붙인 권리로써 세계를 개조하야 대동건설을 협찬하는 소이로서 여기 2천만 대중의 붉은 충성을 대표하야 감히 황황 일신에 밝혀 세계 만방에 고하나니 우리 독립은 하늘과 사람이 모두 향응하는 순수한 동기로 민족자존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함이요, 결코 목전의 이해에 우연히 충동한 바가 아니며, 사원에 관한 감정으로써 비문명한 보복수단에 자족한 바가 아니다. 실로 항구 일관한 지성의 격발로써 저 이민족으로 하여금 깨닫고 새롭게하야 우리의 결심은 야비한 궤정을 초월하야 진정한 도의를 실현함에 있다. 우리 대중이여, 공의의 독립자는 공의로써 진행하게끔 일체의 방편을 다하야 군국전제를 삭제하고 민주 평등을 세계에 널리 실시함이 우리 독립의 제일의이다.
무력 겸병을 근절하야 평등한 천하의 공도를 진행하는 것은 곧 우리 독립의 본령이다. 밀맹사전을 엄금하고 대동평화를 선전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복국의 사명이다. 권리와 부를 모든 동포에게 베풀며 남녀․빈부를 고르게 조화하며, 등현등수를 지우노유에게 평균하게 하야, 사해 인류를 건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 건국의 기치이다. 나아가 국제 불의를 감독하고 우주의 진선미를 구현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대한 민족의 시세에 응하고 부활하는 궁극의 의의이다.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 2천만 형제자매여, 단군황조께서는 상제좌우에서 명을 내리시어 우리에게 기운을 주셨다. 세계와 시대와는 우리에게 복리를 주고자 한다. 정의는 무적의 칼이므로 이로써 하늘에 거스르는 악마와 나라를 도적질하는 적을 한 손으로 무찌르라. 이로써 4천 년 조정의 영휘를 빛내고, 이로써 2천만 적자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다.
궐기하라, 독립군! 독립군은 일제히 천지를 바르게 한다.
한번 죽음은 사람의 면할 수 없는 바이니, 개․돼지와도 같은 일생을 누가 원하는 바이랴. 살신성인하면 2천만 동포는 같이 부활할 것이다.
일신을 어찌 아낄 것이냐. 집을 기울여 나라를 회복하면 삼천리 옥토는 자가소유이다. 일가의 희생을 어찌 아깝다고만 하겠느냐.
아아!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 2천만 형제자매여! 국민 된 본령을 자각한 독립인 것을 명심할 것이요, 동양평화를 보장하고 인류평등을 실시하기 위해서 자립인 것을 명심하도록 황천의 명령을 받들고 일체의 사악으로부터 해탈하는 건국인 것을 확신하야 육탄혈전함으로써 독립을 완성할 것이다.

건국기원 4252년 2월

가나다순
김교헌 김규식 김동삼 김약연 김좌진 김학만 정재관 조용은
여준 유동설 이광 이대위 이동녕 이동휘 이범윤 이태우
이상룡 이세영 이승만 이시영 이종탁 이탁 문창범 박성태
박용만 박은식 박찬익 손일민 신규식(신정) 신채호 안정근 안창호
임방 윤세복 조황 최명학 한흥 허혁 황상규

(자료출처 - 국학연구소, 국사편찬위원회)


“무장독립투쟁 노선을 표방”...봉오동, 청산리 승전

   
▲ 김종성 이사장이 '청산리 항일대첩 기념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 - 김종성 이사장]
   
▲ 중국 연변 화룡현에 자리한 대종교 3종사 묘역을 참배한 김종성 이사장. [사진제공 - 김종성 이사장]

김 이사장은 대한독립선언서 반포에 대해 “기미독립선언의 기폭제 역할을 함으로써 국내에서의 독립운동과 독립정신 고취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먼저 꼽고, 이어 “해외 독립운동가들을 결집하여 통일된 독립운동의 기틀을 다졌으며 이후에 상해 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주권재민의 민주국가를 선포하고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평화적 방법이 아닌 무장투쟁 노선을 택함으로써 만주지역에서의 청산리, 봉오동 전투와 같은 무장독립운동의 조직적 전개가 가능했다는 점”을 주요한 특징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일제가 직접 통치하던 영역이기 때문에 무력에 의한 폭력을 주장할 수 없었을 것이고, 기미독립선언서는 비폭력 선언 형식을 띠었지만 국권을 뺏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일본을 쳐부수기 위해서는 무력으로 국권회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않았겠느냐”는 것.

나아가 “이 선언서에서 나타나듯이 ‘병합수단은 사기.강박과 불법.무도, 무력.폭행에 의한 것’이므로 무장독립을 주장했던 것”이라며 “무장독립투쟁 노선을 표방함으로써 이후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가 실제적으로 일어났고 승리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한독립선언에는 “살신성인”, “일가(一家)를 희생하라”, “육탄혈전(肉彈血戰)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등의 죽음을 무릅쓴 전면 무장항쟁을 촉구하는 강경한 기조가 흐르고 있다.

“국학대학을 세워 한국학 인재를 양성하고 싶다”

   
▲ 김종성 국학연구소 이사장은 국학대학 설립과 국학대상 수상식을 추진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종성 이사장은 1979년 우연한 기회에 대종교를 알게 됐고, 1984년 대종교를 중광(重光)한 홍암 나철 대종사의 증손녀 나도숙 씨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그는 30년 전 국학연구소가 문을 열 때부터 참여했고 내년이면 대종교를 만난지 40년이 되니 연륜이 적지 않은 셈이다.

김 이사장은 대한독립선언과 대종교의 활동이 역사 속에 묻힌데 대해 “일제 강점기 국내적 기반의 약화와 해방 후 일제 친일분자들의 재등장, 6.25전쟁으로 인한 민족주의자들의 몰락에 큰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사적 맥락을 짚고 “잘 잊어버리는 민족의 단점”과 “새로운 사대사상의 풍조에 매몰된 상황” 등을 들면서도 “가장 큰 잘못은 인재 육성을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선배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항상 학교를 만들어 교육구국의 이념을 실천해 왔다”며 “대종교 3대 교주인 윤세복 선생의 환인현 동창학교, 이회영 선생 일가의 유하현 신흥무관학교,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 선생의 명동학교, 이상룡 선생의 서전서숙, 임시정부의 기반을 닦은 신규식 선생의 상해 박달학원 등이 그 예”라고 제시했다.

특히 “해방 후 친 대종교 인사들이 세운 홍익대학이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랐으나 하지 못했다”며 “5.16 쿠데타 이후로 넘어가 시간이 너무 흘러 새롭게 찾아온다는 것은 조금 어려울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홍익학원은 대종교 지도자였던 독립운동가 이흥수가 사재를 털어 1948년 8월 설립됐지만 정치권력의 강압 등으로 재단이 바뀌면서 대종교와 무관한 학교가 되고 말았다.

김 이사장은 “국학대학을 세워 한국학을 심도있게 연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싶다”며 “범국학단체연합이랄까 그런 것도 구상해보면서 앞으로 역사광복과 국사교과서 왜곡된 내용을 바꾸는 운동도 같이 해보려고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4월 임기 4년의 (사)국학연구소 이사장을 맡은 그는 취임 첫 사업으로 서울 청운동 소재 연구소 사무실을 세종대 인근으로 옮겼지만, 장서 3만여권의 무게 탓에 지하 신세는 여전히 면치 못하고 있다고 웃었다.

그는 “1만년 역사를 관통하는 정신사적 맥을 일관되게 연구하는 사업, 국학의 대중화를 위한 강좌와 연찬회의 지속적 개최”와 “국사 교과서 내용의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타 민족사 연구 단체와의 협력강화” 등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나아가 “연구소 연구원들한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도 조성해 주면서 재정적 지원까지 해줄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면서 “만약 앞으로 더 여유가 된다면 ‘국학 대상’을 만들어서 국학에 열심히 연구하고 헌신하는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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