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폭포(博淵瀑布)

황실에 바치던 「나무리」의 쌀
「갈대꽃」의 白坡는 가슴을 녹일듯
統一되자마자 뛰어가고 싶어요
 
○...제가 자란 재령(載寧)에서 三十리가량 떨어진 곳에 「나무리땅」이라는 곳이 잇습니다. 외삼촌이 살고 있던 그곳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얼음이 풀리는 이때가 되면 「말나물」을 제일가는 반찬으로 칩니다. 낫에다 줄을 매서 냇가에 던져 끊어 냅니다. 모양이 꼭 미역과 같은데 기름에 볶으면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어디 있겠어요. 남편이나 아이들 상에 한번 올려 보았으면 좋으련만 갈 수가 없는 그곳이 되었군요...
 
○...외할머니를 따라 「나무리」에 가는 일만큼 즐거운 일은 없었습니다. 옛날부터 그 고장에서 나는 쌀을 황실에 바치고 일본 천황에게도 보냅니다. 밥을 지을 때면 가끔 매끄럽고 기름진 재령평야의 쌀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돌 얻기가 금 얻기만큼 어려운 기름진 땅입니다. 산을 찾아 볼 수 없는 그 광활한 옥토 – 그곳을 끊고 재령강이 가로 누웠지요.
 
여학교를 서울에서 마친 저는 방학 때가 되면 친척들이 살고 있는 개성 「박연폭로」나 「배천온천」으로 가기보다 「나무리」에 가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재령강변에 나부끼는 「갈」밭을 보는 것은 꿈과 같습니다. 갈대꽃이 피어나면 늠실거리는 백파(白坡)는 가슴을 녹일 듯 해요. 그것이 몇 십리나 가다가 끝나는지.... 꼭 꿈나라로 이끌어 가는 한없는 길과도 같습니다.
 
많은 시인들이 여기서 시를 읊었답니다. 그래서 저도 한때 시인이 되어보려고 한 적도 있었죠.
고향이 다른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꼭 한번 「나무리」에 가보렵니다. 통일이 되자마자 뛰어 가고 파요. 「갈」밭에서 재령강을 지나서 진남포로 흘러가는 배를 보며 「갈게」를 「솜방망이」로 잡아내는 일도 팔도강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그 시골길을 모시옷에 나귀를 타고 점잔을 빼며 지나가는 어른들의 모습은 동화 속 그림과 같아요.
그런 제 고향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十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곳만은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변할 리가 없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달라질 수가 없어요.(사진=朴淵瀑布)
 
林寶仙(재령출신=가정부인)
 
▲ 가고파라 내 고향 10-박연폭포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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