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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수필/우유죽 골목'민족일보 다시보기' <55>
이창훈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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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9  13: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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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수필/우유죽 골목

 

崔浩然


같은 핏줄을 이어 받은 내겨레가

요모양 요꼴로 버림받아야 하는가

 

허기진 몸을 가까스로 움직여 그래도 한 끼나마 얻어 볼까 하고 오늘도 구세군 급식소 앞에는 남녀노소의 장사진이다.

애옥한 동아리를 위해 마련된 우유죽이자만, 그나마 얻어먹지 못한 육십 고개를 훨씬 넘어섰다고 보이는 할아버지의, 정상이 한결 나의 애를 끊는다.

날피 주제이기에 이러한 모습을 어느 누구보다도 골수에 사무치도록 느낀다고는 하지만, 차마 눈 없이는 바라다볼 수 없는 지극히 처참한 광경이다.

어느 날은 나이 열 살 가량 되어 보인 어린이가 뒤늦게 왔다가 바라던 우유죽을 얻지 못하고 담벽에 기대어 초라하게 서 있는 꼴이야 말로 자식 가진 사람으로서 어찌 흘겨 넘길 수 있을까 말이다.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내 겨레가 요모양 요꼴로 버림을 받아야 하는가 하면, 누구를 위하여 지어진 고층 건물인지는 모르되,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 꼬락서니란 울화가 터질 지경이다.

내가 의정단상에 오르면 여러분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잘 살도록 하겠다는 언약은 잊었는지 자기들의 세비는 수십만 환이라니 거룩한 직업이기도 하다.

날이 갈수록 급식소앞에는우유죽에 의지하려는 군상이 점점 늘어만간다.

나오지 않는 젖먹이에게 몇 숟가락의 죽을 입에 떠넣고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정상을 어떠한 감정으로 표현할 것인지 오로지 언어와 문자의 빈곤이 있기에 또한 다행한 일이다.

나의 일터가 이 급식소 바로 곁이기에 매일같이 이 광경을 겪지 않을 수없는 딱한 처지가, 때로는 현깃증을 일으킬 것만 같다.

벌써 한달포쯤 되었으리라 병들고 지친 나그네가 급식소에서 한 十「미터」 떨어진 곳에서 누워 신음하다가 그만 이승을 하직한 일이 있었다.

그 주검은 하루가 지나 이틀재가 되어도 아무도 장례를 치러준 사람은 없이 마치 돌이나 널빤지처럼 길가에 버려둔 채로 지냈다.

기구하게도 사흘째 되던 날이다.

어찌된 영문이닞 피골이 상접한 사내가 또 이 주검으로부터 약 五「미터」 서쪽에 자리잡고있는 문화주택의 정문에 비스듬히 누워있지 않은가!

벌써 그의 눈방울은 생기를 잃었고 아마도 하룻밤을 지새우기는 어려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가엾은 창생을 누구한 사람 보살펴주지는 않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는 하지만 인생의 운명이 이다지도 짓궂고 모질어야 된단 말인가!

초개같은 운명이라면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자지 않았던들 얼마나 좋았겠을까?

 
눈에 돋보이도록 나날이 늘어만 가는 실업자,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제대로 얻지 못한 학사, 박봉에 시달리고 빚에 우는 영세시민, 정말 질식될 세상이다.

빛좋은 개살구 격으로 높다랗게 지어진 삘딩에는 공식처럼 으례 맨 아랫층에는 은행이요. 윗층은 다방, 당구장, 캬바레다.

굶주린 백성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시설만이 자꾸 늘어만 간다.

며칠이 지나 겨우 이두 시체는 이른바 관청의 혜택을 입어 마치 나뭇단 다루듯이 수례에 실려 화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쓸쓸하게도 이들 영혼앞에 명복을 빌어주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오직 한 주검의 손에 쥐어진 신문지 조각이 흩어져 있으니 거기에는 특호 활자로 「리기붕일가의 비극」이란 제호가 뚜렷이 보였다.

(글쓴이 = 한글학회 간사)

생활수필/우유죽 골목

 

   
▲ 생활수필/우유죽 골목 [민족일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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