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연재를 시작하며

58년 개띠 노동자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온 뒤, 돈도 없고 학벌도 안 되고 빽도 없어서 서울 근교 공단에 있는 중소기업 공장에 취직했던 신돌석씨. 가진 거라곤 의리 있게 산다는 생활 신조 하나였던 그가, 27세 되던 1985년 전국의 공단지역을 휩쓸었던 노동운동의 폭풍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들어가 인생의 변화를 겪고, 의리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노동운동가가 되었다가 어느덧 이순의 나이가 되어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그러나 있을 수 있었던, 지금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허구의 이야기는 과거만을 다루는 후일담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필요했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결국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인지를, 살 만한 세상이 되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 보려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정해랑

 

▲ [삽화-김윤기]


해마다 8월이 되면 신돌석씨는 휴일 하루를 잡아서 오리고기 먹는 모임을 하였다. 신돌석씨가 작년까지 다녔던 회사에서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90년대 후반쯤에 그 회사 프레스반에서 같이 근무하던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들었다. 처음에는 한 직장에 같은 부서이니까 수시로 하다가 이직이나 퇴직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1년에 한번 8.15광복절에 했었는데 신돌석씨가 집회에 나가야 해서 8월 둘째 일요일로 하다가, 5일제가 된 뒤에는 8월 둘째 토요일로 바꾸었다.숨을 쉬기도 힘든 살인적인 더위가 연일 계속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4년만의 최고 기온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기상 관측 이후 최고란다. 신돌석씨는 24년 전의 더위가 새삼 떠올랐다. 36일 동안 열대야가 계속되었었다. 그 해 사상 처음으로 철도와 전철의 동시파업이 있었다. 신돌석씨는 그때 징역에서 바로 나온 뒤 노동문제 연구소에서 임시직으로 일을 하였다. 파업 현장을 지원하러 다닐 때 더위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었다. 오죽하면 태풍은 뭐하고 오지도 않냐 하는 소리를 하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때보다 더 덥다고 한다. 날씨에 대한 기억은 믿기 힘든 거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같은 더위는 60 평생 처음 맞이하는 것 같다.

이 모임은 원래 개고기를 먹는 모임이었다. 신돌석씨가 사는 지역의 교외에 나가면 숲 속에 개고기 파는 집이 있었다. 그런데 개를 기르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서 개고기를 안 먹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 시류를 반영했는지 그 집도 오리 파는 집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자 이 모임도 은근슬쩍 오리 먹는 모임으로 변하였다. 그런데 올해처럼 더운데도 모여야 하냐는 소리들이 나왔다. 장소가 숲 속인지라 야외에 놓인 식탁에서 고기를 먹곤 하였는데 올해는 아무래도 밖에서 먹기에는 더울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1년에 한번이니 모이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면서 모이게 되었다.

원래 멤버는 일곱 명인데 그 중 두 명만 빠지고 다섯 명이 모였다. 한 사람은 귀농하여 안 나온 지 오래되었고, 또 한 사람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 온다고 하였었다. 그러므로 오기로 한 사람은 모두 다 온 셈이었다. 구성원들 중 현직에 있는 사람과 은퇴한 사람은 반반이었다. 이미 다 50이 넘었고, 60이 넘은 사람이 귀농을 한 사람과 60을 갓 넘긴 신돌석씨를 빼고 둘이나 되었다. 그러므로 신돌석씨가 이 모임에서 중간이 되었고, 연락을 담당하는 총무를 맡아서 하였다.

나이가 5-60인 남자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야 대략 술 이야기, 건강 이야기, 운동 이야기 등이었다. 요즘에는 노부모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물론 정치 이야기도 화제에 올랐다. 하지만 노조 활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신돌석씨처럼 진보적인 정치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진보 정치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이야기가 미투로 모아졌다. 몇 달 전부터 신돌석씨는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미투 이야기를 여러 번 나누었었다. 5-60대의 남자들은 한마디로 우왕좌왕 뒤죽박죽으로 미투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제일 연장자인 강성대였다. 그는 남녀 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수컷이 암컷을 탐하듯 남자가 여자한테 다가가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자들이 좀 더 많은 여자들을 가지려고 하고 그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50대의 김민준이 장난스럽게 말을 받았다.

“형님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리니까 그냥 들어주지 다른 데서 그러면 개박살 나십니다.”

“형 이야기는 문제가 있지만 요즘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어. 이건 뭐 나이 든 남자는 완전히 죄인처럼 돼야 하니 말야. 사실 우리 젊을 때야 안 그런 사람 어딨어.”

또 다른 육십대인 유현태가 이어서 말을 했다. 5-60대 남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좀 심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50을 갓 넘겨서 막내인 안요한이 끼어들었다.

“이 문제야말로 남자들은 입장 바꿔 생각해야 돼요. 내 딸, 내 동생이 그런 일 당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죠.”

안요한은 이름처럼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다. 성격이 온순해서 좀처럼 자기 발언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간 단호한 듯한 태도로 말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래서 남자들은 피해를 안 봤냐? 피해자라고 하는 여자들이 꽃뱀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해?”

강성대가 언성을 높이면서 대거리하였다.

“아니 뭐 그런 일이 없어야지. 하지만 너무 심하니까 하는 이야기지.”

유현태의 물타기였다.

안요한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김민준이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하려 하였다. 하지만 강성대는 핏대를 올리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유현태 역시 물타기를 하면서도 안요한을 공격하였다. 신돌석씨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이 문제는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자기 나름대로 오랜 세월 생각해 왔던 것이었다. 신돌석씨는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보면서 지금의 미투 운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곤 하였다.

한참 열을 내며 이야기들을 하다가 신돌석씨가 이야기를 바꾸려는 의도로 귀농을 해서 이 자리에 없는 이군주의 이야기를 꺼냈다.

“군주 형님은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요?”

강성대와 유현태도 그 이야기가 지속되어야 유리할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화제를 돌리기를 바란 듯이 얼마 전에 다녀왔다면서 그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딸기 하우스를 하고 닭을 치면서 살고 있는데, 그때가 더위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는데 지금 어떨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 [삽화-김윤기]

이군주. 이름도 군주였다. 군주처럼 찬란하게 살라고 부모가 지은 이름일 텐데 그는 금형공, 프레스공으로 평생을 보내고, 늙은 나이에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신돌석씨보다 거의 열 살 이상 많았으니 이제 70이 넘은 나이다. 그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지금 대화는 어떻게 진행이 될까? 신돌석씨가 그의 근황을 거론한 것은 화제를 돌리려는 것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이 화제와 관련해서 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20년이 다 된 이야기지만 안요한의 말을 들으면서 그와 있었던 일이 비디오처럼 머릿속에 영상을 만들어 나갔다.

오전 11시쯤 되었나. 프레스반 한쪽 구석이 시끌벅적하였다. 반장의 목소리였다.

“이러구도 먹고 살겠어요? 이렇게 불량품을 많이 내면 어쩌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왜 속여요? 내 참. 그러니까 나이가 들면 잘라야 하는 건데.”

신돌석씨는 지금 반장이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몇 마디 말만으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반장이 존댓말을 쓰는 사람은 이군주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쉰 살이 넘은 사람이었다. 젊은 날에는 금형 기사로 이 공장이 가내 공업 수준일 때부터 날렸던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금형을 위해 새로 들여온 기계들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마침내 프레스반으로 밀려 왔다. 그때 잘랐어야 하는데 상무, 부장과 함께 일했던 경력 때문에 살아났다는 것이 반장의 말이었다.

반장은 물론이려니와 현재의 생산부장보다도 오히려 이 공장에 먼저 들어왔다고 하였다. 그는 나이는 들었지만 기술은 여전히 보통을 넘어섰다. 평생을 기름밥을 먹고 살아온 사람답게 프레스반의 어떤 기계가 고장이 나도 그의 손에서 고쳐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계도 미리 이상을 말해 줄 정도의 실력파였다. 또한 그는 프레스반에서 제일 먼저 출근해서 기계에 기름을 넣고 조이고 닦고 한 뒤에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불량을 많이 내게 되었을까? 반장의 말로는 이군주가 불량을 계속 낸 뒤에 그것을 쓰레기통에 몰래 버린 모양이었다. 그로서는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두 개 불량만 나와도 금세 이상을 느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은 뭔가 딴 생각을 하면서 일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돌석씨는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김갑식이라고 하는 30대 후반쯤 되는 녀석 하나가 자기 친구가 성추행 때문에 잘렸다고 하면서 불만을 털어 놓았다. 전자 제품 공장에서 기사 일을 하던 친구였는데 여공의 엉덩이를 만지다가 그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김갑식이는 그 정도 가지고 사람 모가지를 잘라서야 되냐고 하면서 열을 올렸다. 자기가 총각 때는 조장이나 반장이면 그 정도가 아니라 속옷 속으로 손을 넣어도 됐다고 하면서 마치 무용담을 말하듯이 떠들어댔다. 모두들 그저 그렇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듣고 있는데 별안간 이군주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조용히 해 임마. 뭐가 자랑이라고 떠들어.”

이군주는 원래 주사가 좀 있는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말이 없었지만 술을 마시고 한번 꼭지가 돌면 필름이 끊어지는 사람이었다.

“술 마시고 좀 떠드는 것도 죄유, 씨팔 꼰대 어려워서 어디 술 마시것나.”

김갑식의 대꾸였다. 그때 회식 자리는 갈빗집 방이었는데 김갑식은 구석에서 두 번째에 앉아 있었고, 이군주는 건너편 가운데쯤에 있었다. 이군주가 소주병을 김갑식에게 집어던졌다. 아직 술이 남은 채였다. 김갑식의 머리에 소주병이 떨어졌고,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서는 사람, 두 사람을 뜯어 말리는 사람들로 갈빗집은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평소에 이군주를 좋아하지 않았던 반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갖은 압력을 다 가했다. 물론 대놓고 하는 데는 조금 조심스러웠지만 본인만 없는 자리면 비난하곤 하였고, 조금만 잘못이 있어도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술 마시는 자리가 생기면 이군주를 빼놓고 가곤 하였다. 사실 회식 자리에서 이군주가 한 행동은 좀 황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반원들도 그를 좀 꺼리게 되었고, 반장은 그것을 틈타서 평소에 갖고 있던 반감을 이럴 때 적절하게 쏟아 붓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돌석씨는 이군주가 왜 그러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가 신돌석씨에게는 그럴 만한 사연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어 달 전이었다. 이군주가 신돌석씨더러 소주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마시자고 먼저 제안하는 일은 좀처럼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특히 그보다 조금 나이가 적은 반장 또래 사람들은 그가 짜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였는데, 그것보다는 자신의 술버릇 때문에 자제하는 것이라고 신돌석씨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 일로 그 날은 술을 마시자고 하는 것이었다.

소주를 마시면서 그가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며칠 전에 도장반 기계가 고장 나서 고쳐 주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하였다. 옛날에, 한 삼십 년쯤 전에 사귀다가 헤어진 여자가 도장반에서 일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로는 그 여자와 결혼까지 약속했는데 그만 일이 잘 안 돼서 헤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 뒤로는 통 소식을 몰랐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왜 헤어지게 되었냐고 묻자 그는 한 동안 말이 없이 술만 마셨다. 그러다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 내가 겨우 스물 두 살이었지. 여자가 동거부터 하자고 했는데 알량한 자존심에 방을 구하고 나서 하자고 했어. 나는 프레스반에서 일했고, 그 여자는 조립반에서 일했지. 그런데 조립반 반장 녀석이 개차반인 거라. 그 여자한테 치근덕거리는 것을 나도 몇 번 봤지. 그러나 어쩌겠어. 그냥 참았지. 그러던 어느 날 결근을 한 거야. 퇴근하고 찾아가 보니 같이 살던 친구만 있고 그 여자는 없더라구. 벌써 어딘가로 떠버린 거야. 왜냐구? 글쎄 회식 자리에서 술에 약을 타 먹인 뒤 여인숙에 끌고 가서 겁탈을 했다더군. 그 죽일 놈의 반장 녀석이. 그 여자를 사랑했냐구? 사랑이 뭔지 난 잘 몰라. 하지만 유행가에 나오는 얘기 같은 게 사랑이라면 틀림없이 난 그 여잘 사랑했지. 그 뒤 유행가만 들으면 그 여자 생각이 나는 거야. 울기도 많이 울었어. 몇 번을 그 반장 녀석을 죽이려고 했지. 하지만 술 마실 때 술상을 뒤엎은 것밖에는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했어. 결국 그 회사에서 잘리기만 했지. 내 술버릇도 그 뒤부터 생긴 거지. 그 여자는 그 뒤 어떻게 살았냐구? 잘은 몰라. 선창가에서 봤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같이 살던 친구 이야기가 시집가서 잘 사니까 괜히 찾지 말라구 하구. 왜 안 찾았냐구? 그야 이미 내 사람이 아닌데 찾으면 뭘해. 반장놈한테 시집 갔냐구? 무슨 소리야? 그 자식 유부남이야. 그 자식이 결혼 생각하구 그 짓 하나? 하룻밤 즐긴다구 그런 거지. 그럼 왜 내 사람이 아니냐구? 그 놈한테 처녀를 바쳤으니 내 사람이 아니지. 그건 강제로 빼앗긴 것 아니냐구? 그야 그렇지. 하지만 아무튼 내 사람은 아니지.”

신돌석씨가 보기에 이군주의 생각은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사실 신돌석씨 같아도 그 여자를 더 이상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이 아니라 젊은 날의 이야기이다. 왜? 대답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잘못 된 생각이라는 걸 알기까지 무척 오랜 세월이 걸렸다.

아무튼 이군주는 그 뒤 뭔가 불안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러더니 어제는 일 끝나자마자 재빨리 옷 갈아입고 사라졌는데 오늘 아침에는 술 냄새가 입에서 풍길 정도였다. 어제 과음을 한 것이었다. 신돌석씨는 그가 아마도 어제 저녁에 도장반 여자를 만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드디어 불량품을 대거 찍어낸 것이었다.

“거 일절만 합시다. 나이 든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할 것 없잖아요?”아무래도 신돌석씨가 끼어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신돌석씨는 프레스반 대의원이므로 이런 일에 개입할 권리와 의무가 있었다. 반장이 부당하게 조합원에게 압력을 행사할 때 개입하여 막는 것도 대의원의 구실이었다. 사실 프레스반에서 신돌석씨 때문에 반장이 횡포는커녕 다른 반 정도의 권위를 세우기도 어려웠다. 신돌석씨가 반장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뿐더러 성깔이 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쉽게 기죽을 반장은 아니었다. 역시 반장이 티껍다는 듯이 쳐다봤다. 하지만 노조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다.

“불량품 났는데 그것도 말하지 못하면 반장이 뭐땜시 있냐?”

“일절만 하라는 거지요.”

“그럼 저 불량품 니가 물어낼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야단이슈? 자꾸 그러면 조합에서 정식으로 문제 삼겠습니다.”

“뭐가 어째? 조합만 내세우면 불량 마구 찍어도 상관없다 이거냐? 씨팔 해봐. 그래, 그 잘난 조합하고 한번 붙어 보자. 내 정말 좆같아서.”

그러더니 반장이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한 표정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 [삽화-김윤기]

“박 반장님, 다시 한 번 말씀해 보시죠. 조합하고 붙어 보겠다고요?”

신돌석씨는 일부러 말을 낮게 깔았다.

“그래 붙어보자 그랬다. 니들이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공돌이, 공순이 주제에 좀 모여서 왈왈 대면 뭐 겁날 줄 아냐? 씨팔 노조 만든다고 할 때 칵 깔아뭉갰어야 하는 건데…”

“뭐가 어째?”

신돌석씨는 들고 있던 몽키 스패너를 집어 던졌다. 몽키 스패너가 바닥에 부딪치면서 기계 소리와는 음폭이 다른 금속성이 작업장 안에 퍼져 나갔다. 그 소리는 묘하게 사람들의 귀를 자극했다. 사람들이 일을 멈추고 전부 쳐다봤다.

“야, 박윤수. 너 뭐라 그랬어? 뭐? 공돌이, 공순이 주제에? 그런 너는 뭔데? 이 개새끼가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나? 너 같은 새끼는 조합 힘 빌릴 것도 없이 내가 죽여 버리마. 너는 새끼야 집에 어른도 없냐? 나이 든 사람한테 왜 지랄이야?”

분위기가 이 정도 되자 일하던 사람들이 달려 와서 신돌석씨를 붙잡았다. 반장은 확실히 기가 꺾이는 것 같았다.

“아니 뭐 내가 조합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반장 할 일도 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건데…”

“그래 개새끼야, 반장이 반원 자르는 게 할 일이야? 걸핏하면 나이 든 사람을 자른다 뭐한다 하고, 필요 없어. 너 이 새끼 이제 나한테 죽어라. 그리고 내가 별 하나 더 달면 그만이지.”

신돌석씨는 생각하지도 않던 말이 입에서 마구 나왔다. 반장은 기가 죽는 걸 넘어서서 완전히 사색이 되었다. 반장은 자기가 신돌석씨와 완력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신돌석씨의 평소 성질로 봐서 정말 자기를 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람들이 뜯어 말리고 반장을 작업장 밖으로 나가게 하면서 일은 일단락되었다.

신돌석씨는 노조가 중간 관리자들에게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없던 일이었다. 노조보다 주먹을 더 무서워하다니, 그것마저도 없는 여성 중심 사업장 등은 어떨 것인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침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군주가 다가와서 신돌석씨 팔을 잡고 끌고 나갔다. 작업장 앞 담배 피우는 곳에 반원들이 모여 있었다. 신돌석씨는 담배를 끊은 지 벌써 3년이 넘었는데 이 순간에는 정말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참았다.

“미안혀.”

이군주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말했다.

“무슨 말씀을, 형님 잘못인가요?”

반원들이 한두 마디씩 했다.

“그 새끼 사색이 되는 꼴이라니 정말. 하여튼 박땅따루 진짜 웃기는 자식이야.”

땅따루는 반장의 별명이었다. 땅딸한 몸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김갑식에게로 쏠렸다. 지금 하는 말들이 김갑식을 통해 반장에게 전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김갑식은 프레스반에서 유일하게 노조 일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였다. 눈치를 챘는지 김갑식이 재빨리 담배를 끄더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김갑식을 보면서 신돌석씨는 노조를 바라보는 눈과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 눈은 완전히 비례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비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신돌석씨는 자신을 봐도 그런 것 같았다. 신돌석씨 역시 노동운동을 하기 전에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성추행에 대해서도 별다른 느낌을 갖지 않았다. 군대 가기 전에 처음에 들어갔던 공장에서부터 그런 일은 다반사로 있었다. 조장, 반장, 직장 등의 관리자들이 괜히 여공들의 손을 잡고 끌어 안고 엉덩이를 만지고 하는 따위 짓들을 했다. 신돌석씨는 관리자였던 적이 없으므로 대놓고 그런 짓을 할 위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좀 친한 여자들의 브라자 끈을 잡아당긴다든지 손으로 엉덩이를 한번 툭 친다든지 하는 일은 많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나쁜 짓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신돌석씨가 보기에도 그런 짓을 병적으로 하는 자들도 있었다. 신돌석씨는 그런 자들이 나쁘다고 확고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별로 따라하고 싶지 않았고 좋게 보지는 않았다. 아마 그것은 누이동생과 얽힌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돌석씨에게는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선옥이었다. 지금은 남편 잘 만나서 전철역 지하상가에 조그만 옷가게 하나 내서 그럭저럭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이 살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선옥이는 자라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스무 살 때쯤이던가. 선옥이는 여상을 다니다가 중퇴했다. 선옥이는 신돌석씨보다 두 살이 아래였는데,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었다. 형이 방위를 가는 바람에 고등학교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2년 정도 공장에 다녔는데 그 동안 자기가 모은 돈과 방위를 마친 형이 번 돈 등으로 여상에 늦게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도 선옥이는 안 들어가려고 했는데, 선옥이를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형의 집념은 대단했다. 기어이 선옥이를 여상에 들어가게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여자도 고등학교는 나와야 한다며 반드시 졸업을 시키겠다고 하던 형이 그만 공장에서 손을 다쳤다. 가운데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이 중간 이상 잘려 나간 중상이었다. 그 바람에 선옥이는 여상을 중퇴해야만 했다. 지금은 공장에서 다치면 그런대로 보상이 나오는 편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보상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시원치 않았다. 오히려 다친 노동자가 죄나 지은 것처럼 주눅이 들어야 했었다. 형은 선옥이더러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한다고 했지만 선옥이로서는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선옥이는 학교를 그만둔 뒤 조그만 회사에 경리로 취직했다. 다행이었다. 형이 다니던 회사와 거래하던 곳에서 형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동생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취직을 시켜 준 것이었다. 선옥이는 형과 신돌석씨의 장단점을 모두 가진 아이였다. 쾌활하고 놀기 좋아하면서도 자기 일은 야무지게 하는 편이었다.

▲ [삽화-김윤기]

그러던 어느 날인가 선옥이가 밤늦도록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야간 통금이 있던 때였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따라 형도 늦게까지 오지 않았다. 신돌석씨는 영장을 받아 놓고 빈둥대던 때였다. 11시쯤 됐던 것 같다. 선옥이 친구가 헐레벌떡 왔다. 큰일 났다고 했다. 선옥이가 남자 두 놈에게 당할 것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달려갔다. 남자 두 놈은 선옥이가 다니는 회사 사무실의 주임이란 놈과 그 놈 친구였다. 주임이란 놈이 선옥이를 꼬드겨 같이 술을 마신 것이었다. 자기 친구를 데리고 오고 선옥이에게도 친구를 데려 오게 하였다. 그렇게 넷이 술을 마시다가 장소를 옮겨서 한강변으로 갔다. 선옥이를 집까지 바래다 준다는 구실로 그리하였을 것이었다. 그때 신돌석씨 집은 한강과 가까운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한강까지 가 놓고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한강변 둑에 앉아 술을 더 마신 모양이었다. 분위기를 낸다고 그랬던 것이라고 신돌석씨는 나중에 생각했다. 거기까지는 젊은 남녀가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두 놈이 술 때문에 돌았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계획이 있었는지 허튼 짓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몸부림치다가 선옥이 친구가 탈출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강변에 사람은 없고 숲이 우거진 곳이 많았었다. 지금 생각해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 곳이 신돌석씨 집에서 달려가면 1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는 점이었다. 또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 두 놈이 약골인데다가 술이 취해서 신돌석씨를 당해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신돌석씨가 현장에 달려갔을 때 선옥이는 거의 옷이 벗겨진 채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두 놈을 늘씬하게 패 준 뒤 울기만하는 선옥이를 데리고 집에 왔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형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그 날 일은 형에게는 끝까지 비밀에 부쳤다. 그때 그 두 놈을 경찰에 넘기지 않은 것은 신돌석씨도 그 자들을 무지막지하게 패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 일로 떠들어 봤자 선옥이만 손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신돌석씨가 도착했을 때 선옥이는 거의 벗겨진 상태였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시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고 신돌석씨는 생각했다. 사실 여부는 아직도 모르는 일이다. 알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신돌석씨는 그때만 해도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선옥이가 이미 당한 것이라면 경찰에 알려서 그놈들 잡아넣어 봤자 선옥이만 손해라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한심한 것도 같았지만, 다시 그런 일이 있어도 그럴 것만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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