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정유미 전미특위 사무총장의 10주기를 맞아 방한한 쟈니 클라인 목사를 25일 창덕궁 인근 찻집에서 인터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매일매일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를 통해서 내가 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를 매시간, 매일 그리워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쟈니의 유미 사랑’은 아직도 절절하다. 2008년 7월 26일, 미국인 남편 쟈니 클라인(Johnny Kline)을 남겨둔 채 먼저 세상을 뜬 정유미 전민특위(미군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전민족 특별위원회) 사무총장의 10주기는 기록적인 무더위 속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5년전 인터뷰 당시 신학대학원 학생이었던 쟈니 클라인(60) 씨는 이제는 목사가 돼 지난 23일 방한했고, 26일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자주통일 열사 고 정유미 동지 10주기 남북해외 합동추모제’에 참석하고, 27일 정전협정 6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30일 돌아갈 예정이다.

쟈니 클라인 목사는 25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창덕궁 인근 찻집에서 가진 <통일뉴스>와의 인터뷰 도중에도 ‘유미’ 이야기만 나오면 목이 메어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시카고에서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현재는 뉴욕에 있는 병원에서 원목(병원 목사)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사실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많이, 수십 번도 더했지만 동시에 그녀가 항상 나와 함께 있기에 때문에 그녀에게 아직 작별을 고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다고 하더라도 유미의 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서 정말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서 내가 오히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유미의 상실을 통해서 성숙해지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관대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더 성숙해진 계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서로를 '유미'와 '쟈니'로 부르며 각별한 사랑을 나눴던 이들은 결혼으로 영원을 약속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는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본 소감을 묻자 “유미에게 항상 통일은 최우선 순위였다”며 “이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보통의 미국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남다른 생각이 들었다”고 운을 뗐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서 너무 순진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 때가 있다”며 “사실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그것은 미국이 한국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경우 뿐”이라고 냉정한 현실을 짚었다.

“사실 지금 트럼프의 경우도 김정은과 이런 관계를 맺는 것은 결국 북한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른 면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괴물이 고개를 돌려서 다른 쪽을 보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싶다”는 것.

나아가 “이 한눈팔고 있는 사이에 남과 북의 정상이 빨리 좀더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발전시켜서 다시 미국이 간섭하려고 할 때 그러한 발전된 협력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단계까지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나는 문 대통령이 충분히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트럼프 눈치를 너무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26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추모제에는 전민특위 북측본부의 추도사도 도착했다. “홍안의 처녀시절부터 너무도 일찌기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강의한 의지와 온 넋으로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며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진행된 수많은 국제회의들과 강연들에 출연하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선생의 열정에 넘친 모습은 오늘도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깊이 간직되여 있다”고 기렸다.

아무리 목사라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데려간 하느님의 가혹한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는 “고통의 의미는 논리적으로 알 수가 없는 걸 거다”며 “다만 우리는 그 고통의 시련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과 믿음과 서로 간의 유대를 발견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고통의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유미’ 앞에서 발표할 추모사의 내용을 미리 묻자 “시 한편 쓸 거고. 유미에 대해 이야기할 텐데, 유미가 사람들을 모두 연결시키는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인터뷰는 정유미 총장의 지인 김익태 변호사의 통역으로 1시간여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여전히 그녀를 매시간, 매일 그리워한다”

▲ 쟈니 클라인 목사 인터뷰는 정유미 총장과 미국에서 전민특위 활동을 같이 했던 김익태 변호사의 통역으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한국에 언제 왔고, 언제 떠나나?

■ 쟈니 클라인 목사 : 23일 월요일에 입국했고, 30일 월요일에 출국한다.

□ 이번에 방한한 목적과 주요한 일정을 알려 달라.

■ 정유미가 2008년 7월 26일 사망했다. 10년이라는 게 주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마석에 있는 무덤에 모여서 추모행사를 할 예정이다.

□ 정유미 선생 기일과 7.27이 겹쳐 있는데, 올해도 7.27 관련 활동 계획이 있나?

■ 있다. 매우 바쁜 스케줄이다. 환영회도 있었고 송별회도 있을 거지만, 오늘 저녁에도 잭시잭슨 목사와 컨퍼런스 미팅도 할 거다. 내가 시카고에 있을 때 재시 잭슨 목사와 같이 일을 해서 개인적으로 잭슨 목사를 잘 안다.

7.27 경우에는 두 가지 행사에 참여하고 발언도 할 거다. 정전 65주년 기념행사를 두 군데서 할 거다. 행사에서 발언을 간단히 할 예정이다.

□ 5년전 인터뷰할 때 신학교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신학교는 졸업했나? 목사가 됐나?

■ 그걸 기억하는 게 신기하다. 나도 가끔 계획을 세워놓고도 나 스스로 계획을 잘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억이 새롭다. 신학을 공부했다. 시카고에서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현재는 뉴욕에 있는 병원에서 원목(병원 목사)으로 일을 하고 있다.

□ 성직자의 길이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대도시 병원의 원목으로 일하는 이유가 있나?

■ 병원에는 통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사람은 뭔가 변화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건강의 변화랄지, 삶의 스타일의 변화랄지, 혹은 정신적인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 사람들은 고통 속에 있으나 그러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고 나는 그런 사람 옆에 있고 싶다.

사람들이 가장 절박할 때 오히려 변화에 대해서 가장 능동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럴 때 사람들이 가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스스로 변화를 이뤄낸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는데, 내 경험도 그렇지만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최대한 잘 떠날 수 있도록, 잘 죽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 고 정유미 전민특위 사무총장 약력.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참고로, 한국 사람들은 전통사상에 따라 ‘돌아간다’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 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정유미 선생의 10주기를 맞는 소회는?

■ 항상 나와 함께 있다. 항상 나와 함께 있을 뿐더러 어떤 부분에서 볼 때는 ‘내가 누구인가?’ 나의 본질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많이, 수십 번도 더했지만 동시에 그녀가 항상 나와 함께 있기에 때문에 그녀에게 아직 작별을 고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떠났으나 나를 통하여, 익태를 통하여, 김 기자를 통하여, 여전히 존재하고 활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녀가 했던 일들은 더욱더 왕성해지고 있고 그녀의 삶도 더욱더 강력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서 정말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서 내가 오히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를 통해서 내가 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를 매시간, 매일 그리워한다.

□ 한국에 유명한 철학자 다석 유영모 선생이 있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우리 전통사상을 추구했다. 그는 결혼을 한 관계는 해혼을 하는 것이 좋다, 성숙된 인간이 되면 해혼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졌다. 우리식 사고다. 쟈니 선생에게 잔인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있나? 해혼이 잊는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맺어진 둘 만의 특별한 관계를 보편화시킨달까, 그만 놓아주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 결혼관계를 유지하는 것, 유미와의 결속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나를 제한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에게 해혼이란 것은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고, 나의 경우에 적용되는 것일 테다.

그렇다고 내가 새로운 관계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유미가 떠나기 전에 나의 눈을 바라보며 내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으면 좋겠다 말한 바도 있었고, 그런 점에서는 내가 뭐 그런 관계에 대해서 문을 닫은 것은 아니나 지난 10년 동안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다고 하더라도 유미의 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마음이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더 커질 것이며, 유미의 자리는 그대로 있고 새로운 사람을 위한 자리는 온전하게 내어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잠깐 한눈팔고 있는 형국”

▲ 26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된 ‘자주통일 열사 고 정유미 동지 10주기 남북해외 합동추모제’에서 잔을 올리고 있는 쟈니 클라인 목사. [사진제공 - 정유미를 생각하는 사람들]

□ 최근에 한반도의 정세가 급진전되고 있는데, 특히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본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다.

■ 유미에게 항상 통일은 최우선 순위였다. 그녀가 여러 많은 운동을 했으나 사실 통일운동을 제일 우선시 했고, 그것을 그녀의 삶의 전체에서 함께 항상 가지고 다녔다.

당연히 그런 이유로 나도 미국에서 한국의 정치 사회적인 이슈들을 항상 체크를 하고 주목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보통의 미국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남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물론 안다. 사실 미국 밖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악한 정부, 악한 나라로 보는 걸로 아는데, 나도 그 점은 동감한다. 어떻게 보면 인류역사상 가장 악한 나라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실 미국의 역사를 볼 때 원주민들의 학살에 기반하고 아프리카 노예들을 수입해 발전하고 세계에 제국주의가 되고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화 하면서 온 역사가 아닌가 싶다.

사실 미국의 힘이라는 것은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멸망시킨, 기꺼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 원천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서 너무 순진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사실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그것은 미국이 한국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경우 뿐이다.

사실 지금 트럼프의 경우도 김정은과 이런 관계를 맺는 것은 결국 북한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른 면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괴물이 고개를 돌려서 다른 쪽을 보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잠깐 한눈팔고 있는 형국인데, 이 한눈팔고 있는 사이에 남과 북의 정상이 빨리 좀더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발전시켜서 다시 미국이 간섭하려고 할 때 그러한 발전된 협력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단계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주류사회를 설득할 수 있을까 상당히 의문이 들었다. 현재 미국 기류는 어떤가?

■ 사실 그게 아주 복잡한 문제인데, 단순하지만은 않다. 99%의 미국인들은 잘 모른다. 그들은 결국 선전이나 선동에 의해서 정치적인 의견들을 형성하게 된다. 결국 북한이 미국에 위협이 된다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데, 정치적인 선동에 의해서 북한은 그런 나라구나 생각하고 있고 그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딱히 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결국 1%가 여론을 주도하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실종됐다고 본다. 한국의 경우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편이 아닌가 싶다. 1%의 관심은 결국 북한을 통해서 돈을 벌자는 건데, 지금까지의 대세는 북이 오히려 위협으로 존재해서 군수산업이나 전쟁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대세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장기적으로 희망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미국이 잠시 한발 물러서는 형국을 보이고 있는 이런 때에 단기적으로 희망이 있을 수 있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남북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나는 문 대통령이 충분히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트럼프 눈치를 너무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미국의 웨스턴 뮤직 중에 노래도 있는데, 거기 보면 광산이 무너져 광부들이 다 매몰됐는데, 용케 구멍이 하나가 있는데 누가 나타나서 통나무를 다 거기다 던져서 통나무들이 이어져서 구멍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노래가 있는데, 지금 한국 상황이 그런 상황이 아닌지. 통나무가 용케 연결이 돼서 서둘러서 그 통나무를 밟고 갱도에서 지상으로 나와야 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시대적인 아픔을 유년기 때 오롯이 다 겪었기 때문”

▲ ‘유미’에 이르면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쟈니’.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예전에 시카고에서 지역네트워크 NGO 활동을 한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목회만 하는지,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는지?

■ 시카고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 재시 잭슨 목사 등과 같이 내가 다니던 학교가 시카고 남부 흑인지역, 굉장히 가난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흑인단체들과 함께 많은 조직활동을 했다.

당시에 내가 시카고대학과 협력해서 약 500억원 정도 규모의 트라우마(회복) 센터를 지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 그리고 요즘 미국 불법이민자들이 강제 출국당하고 난민처럼 되어가는 경우가 많은 데, 그런 사람들을 실제 우리가 교회로 쉼터를 마련해 지낼 수 있게 조직하는 일도 했었다. 그게 시카고에서 학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뉴욕에 돌아와서 병원 업무로 일하는 것 외에 이런 운동들에 대한 글을 많이 쓴다. SNS를 통해서 공유하고 출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 저는 사람들이 다 서로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서로 공동체 의식 같은 걸 잃어버렸고, 그러면서 변화에 대한 희망이나 믿음 같은 것도 다 잃어버린 채 각자 고립돼서 살고 있다.

내 처지를 말하자면, 병원 원무계에서 일하면서 사회 전체 변혁의 차원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인간들을 서로 다시 묶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과 믿음을 느낄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했던 거대담론이라기 보다는 개인 단위의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혹시 한국에 들어와서 목사로서 활동하거나 사회적 활동을 할 생각을 해 본적이 없나?

■ 꿈이지만 옆에 있는 (익태) 친구와 그런 이야기도 많이 했다. 한국에서 같이 영어와 한국어를 같이 하는 그런 공동목회를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해봤는데, 꿈은 여전히 꾸고 있고 5년쯤 후에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는 스타가 될 거고 나는 돕고.

□ 성직자가 됐고, 유미 선생 10주기를 맞게 됐는데, 하느님께서 유미 선생을 먼저 떠나게 한 섭리가 받아들여지나?

■ 좋은 질문이다.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본다. 첫 번째는 먼저 떠나야만 했던 유미의 관점에서, 또 하나는 그녀를 보내야했던 내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유미의 관점에서 본다면, 참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일찍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의 불우한 유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7살 때쯤 어머니가 집을 떠나고 가난한 집에서 그녀가 나무에 올라가서 과일을 따서 동생들 먹이고 자기도 생존하고. 때로는 까딱 잘못하면 총맞게 생긴 상황에서 남의 밭에 가서 음식을 가져오기도 하고 등등... 말로하기 참 어려운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었던 시절에 불우한 유년을 보냈다.

어찌 보면, 시대적인 어떤 아픔을 유년기 때 오롯이 다 겪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녀에게 정신적으로도 계속 남아있어서 사실은 그녀가 이 세상에서 오래 버티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고통을 창조한다거나 고통이 발현되도록 승인을 해준달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고통을 부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이유인지, 고통의 의미는 논리적으로 알 수가 없는 걸 거다.

다만 우리는 그 고통의 시련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과 믿음과 서로 간의 유대를 발견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고통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유미의 삶이 아마 그런 점에서 볼 때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일 거다. 유미가 먼저 떠나서 나도 고통이 있다. 만약 유미가 있었더라면 훨씬 풍요로웠고 돈도 더 많았을 테고, 훨씬 더 즐거웠고, 친구들과 편하게 살았을 텐데, 유미의 상실을 통해서 성숙해지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관대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더 성숙해진 계기라고 생각한다.

“유미가 사람들을 모두 연결시키는 매개자 역할을 했다”

▲ ‘자주통일 열사 고 정유미 동지 10주기 남북해외 합동추모제’ 참석자들. [사진제공 - 정유미를 생각하는 사람들]

□ 우리 전통의 사상이나 사회운동은 개인의 구원과 사회적 구원을 하나로 봤다는 게 가장 특징적이라고 생각한다.

■ 수천년의 한국의 문화에 나는 그게 분명히 핵심으로 자리잡아 있다고 생각하고, 미국은 그런 걸 잃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서로 찢어발겼다고 생각한다. 마침 이번에 근현대사 박물관도 가봤는데 수천년의 문화 역사를 미국과 비교하면 말할 수 없다. 그게 한국 사람들의 어떤 정신을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 내일 10주기 참배를 위해 유미 선생 묘역에 가는데, 5주기 때는 간략한 시도 낭송한 걸로 안다. 이번 10주기에 유미 선생한테 뭐라고 이야기하고 싶나?

■ 아직 정리 중이다. 아마 오늘 했던 이야기들을 할 것 같다. 시 한편 쓸 거고. 유미에 대해 이야기할 텐데, 유미가 사람들을 모두 연결시키는 매개자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할 것 같다. <끝>


(수정, 30일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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