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 "유미는 우리에게 영원한 혁명의 꽃으로 돌아올 것이다"
- 정유미 자주통일열사 민족통일장...마석 모란공원서 눈물의 하관식

▲ 29일 오후, 마석 모란공원에서 고 정유미 전민특위 사무총장의  하관식을 마치고 참석자들이 평토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정유미 동지의 심장으로 우리는 통일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어디가나 피어있는 들꽃을 볼 때면 정유미 동지를 생각할 것이다."

운구 행렬이 도착한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후문에서 300여 미터 지점, 고인이 생의 인연들과 이별을 맞이할 곳이 눈 앞에 들어왔지만, 사진 속의 故 정유미 열사는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다.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29일, 낮 12시 30분 故 정유미 열사의 하관식이 유족들과 해.내외 통일운동가 7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모란공원에서 진행됐다.

하관에 앞서 진행된 추도식에서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민족을 넘어서 지구상에서 핍박받은 사람들의 눈물 고인 자욱 자욱마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마다 일본, 유럽, 남미를 마다않고 유미는 다 갔다"며 "그러면서 민중의 벗이 되었고, 인류의 벗이 되었다"고 애통해 했다.

그는 "유미는 우리에게 영원한 혁명의 꽃으로 돌아올 것이다"면서 "혁명의 꽃은 지지 않고 날로 새롭게 피어날 것이다"고 떠나는 이에게 작별을 고했다.

▲추도사를 하고 있는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인의 당숙인 정향수 씨는 유가족들을 대표해 함께 해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는 고인과의 옛 추억을 꺼내놓으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권 대표는 "평양을 드나들며 (한국에) 올 때마다 나이어린 제 딸을 위해 선물을 사왔다"면서 "아름다운 배려에 감동을 받았고,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유미의 심정을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다"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고인의 당숙인 정향수 씨는 고인이 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함께 찾아 준 것에 대해 고인을 대신해 고마움을 표했다. 정 씨는 "열사라는 호칭과 민족통일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에 대해 우리 가족들은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제 고인이 바라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여러분들이 완성해 주는 것이다"고 부탁했다.

▲ 추도식에 이어 하관식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고인의 하관을 지켜보고 있는 남편 쟈니씨와 정기열 목사(오른쪽).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이윽고 관이 대지 밑으로 내려앉았다. 20여 년을 한결 같이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 살아온 고인의 삶을 기리는 작은 한반도기가 관 위에 올려졌다.

7개의 나무횡대가 관 위에 얹어졌고 첫 삽에 뜨인 흙이 '후드득' 관 위로 떨어졌다. 고인의 남편 쟈니 씨는 정기열 목사와 유족의 손을 양 손에 꼭 쥐고 이 장면을 바라봤고, 유족들은 얼굴을 돌리며 눈물을 훔쳤다. 유족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이겨내려는 모습들을 보여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고인을 보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동지'들의 취토가 이어졌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쟈니 씨를 비롯해 고인을 추도하는 '동지'들의 취토가 이어졌다. 흙을 가득 퍼낸 삽이 한 삽, 한 삽 허공을 움직일 때마다 관 위에 흙이 비처럼 쏟아졌고, 어느덧 관은 흙으로 완전히 덮여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유족들과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3번의 평토를 마친 고인의 묘지 앞에서 주(酒), 과(果), 포(脯)를 진설하여 평토제를 지내고 고인과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

▲ 남편 쟈니씨가 묘지를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고인의 영정속 모습은 여전히 환하기만 하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1신> "들꽃같은 혁명가 정유미 동지, 통일조국에 부활하소서"
- 남북해외가 함께 한 '자주통일열사 정유미 동지 민족통일장'

▲ 지난 26일 암 투병 끝에 운명한 고 정유미 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사무총장의 영결식이 29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남북해외 동포이 애도속에 '민족통일장'으로 치러졌다. '춤패' 출이 추모춤을 추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꺽이지 않는 들꽃같은 혁명가 정유미 동지, 통일조국에서 부활하소서."

지난 26일 암 투병 끝에 운명한 故 정유미 전민특위(미군범죄진상규명 전민족특별위원회) 공동사무국 사무총장의 영결식이 29일 남북해외 동포의 애도속에 '민족통일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이 치러진 이날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남편 쟈니 클라인(Johnny Kline) 등 유족과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한상렬 전민특위 남측본부 위원장,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박중기 추모연대 의장 등 남측 단체 대표자는 물론 해외측 조문단으로 존 최(최용준) 노둣돌 대표, 이남희(UCLA).서재정(존스홉킨스) 교수 등 100여명이 자리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정 사무총장의 비보에 남북해외에서 조사를 보내 애도를 표했다.

이규재 의장은 "동지의 불꽃과 같은 신념과 활동의 삶은 우리 겨레 모두의 자랑이었으며 남, 북, 해외 모든 동포들의 사랑을 받았다"며 "자기 한 몸 돌보지 않고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민족을 위해 헌신해 온 동지의 모습은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 살아 있을 것이며, 그 정신은 기어이 민족 앞에 저지른 미국의 만행을 단죄하고 자주 통일의 길을 밝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특위 북측본부(위원장 김완수)도 조사를 보내 "선생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정의로운 애국위업에 모든 것을 바친 우리 모두의 친근한 통일운동가였다"면서 "정유미 선생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으나 민족을 위한 정의로운 애국의 길, 조국의 통일을 위해 바친 선생의 고귀한 넋과 투쟁공적은 '전민특위' 투쟁사와 더불어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 이날 영결식에는 남측의 각계 인사는 물론 해외측 인사들도 자리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故 정유미 사무총장의 암 투병을 도와줬던 박정희씨의 두 아들 구연우(18)와 동훈(17)군이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위원장 안경호)도 "뜻밖의 비보에 접한 6.15북측위원회는 지금 애석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남녘의 애국인사들이 정유미 선생을 잃은 슬픔을 가시고 고인이 생전에 그처럼 바라던 조국통일의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기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리라는 기대를 표명한다"고 조사를 보내왔다.

전민특위 해외본부(본부장 최철교)도 "정유미 동지를 잃어 전민특위 뿐만 아니라 전체 자주 민주 통일 운동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정유미 동지의 못다 이룬 뜻을 이어받아 전진할 것"이라고 고인 생전의 뜻을 기렸다.

이밖에도 6.15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 한통련, 범민련 공동사무국, 6.15유럽지역위 등이 조사를 보내와 남북해외 모두가 고인의 비보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영결식은 민중가수 '아름다운청년', '희망새'와 암 투병을 도와줬던 박정희(47)씨의 두 아들 구연우(18)와 동훈(17)군의 하모니카 연주, 춤패 '출'의 공연으로 엄숙하면서도 경건하게 진행됐다. 

▲ 고인의 남편 쟈니 클라인 씨가 유족을 대표해 인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암으로 인해 6개월도 채 살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도 결혼해 고인이 떠나기까지 곁을 지켜온 남편 쟈니 클라인씨는 "저는 유미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 함께 있고 싶었다. 사람이 자기를 그렇게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사람을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라며, 고인과 고인의 '동지'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저에게 소중한 2년의 시간은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사랑했던 여인과 함께 보낼 수 있게 했고, 동지들의 사랑과 힘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것을 배워서 남은 생을 살수 있게 해 줬다"고 말했다.

또 "전 세계 민중들에게 자주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배웠다. 또한 어떻게 내 나라 미국이 파괴했는지도 목도했다"면서 "수천년동안 이 민족의 문화와 유산, 이것이 하나의 지식 유산으로 남아서, 전세계 타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존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호상을 맡은 정기열 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초대 사무총장.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그는 중간중간 고인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고, 이를 통역해 주는 김익태 전민특위 미주본부 전 위원은 물론 영결식에 자리한 지인들도 눈물을 떨궜다.

호상(護喪)을 맡은 정기열 전민특위 공동사무국 초대 사무총장 역시 "남녘에서 평생의 삶을 나라의 통일과 조국의 미래를 위해 바치신 선배, 동지 여러분들이 이 두 사람의 사랑의 이야기를 듣고 정성이 모아져 6개월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동지가 2년이 넘는 아름다운 기적의 사랑의 이야기를 이뤄내지 않았는가?"라며 울먹였다.

생전 고인이 꼭 불러달라고 했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마지막으로 1시간 30분여의 영결식이 끝나고, 고인은 유족과 '동지'들과 함께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남북해외가 함께 해 공히 '민족통일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의 명예장례위원장은 김완수 전민특위 북측본부 위원장과 최철교 전민특위 해외본부 위원장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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