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 장군의 동상이 순국 123년만인 2018년 4월 24일 순국터인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에 건립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동학농민군의 지도자 전봉준 장군(1855-1895)이 순국 123년만인 2018년 4월 24일 교수형을 당한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에서 부활했다.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이사장 이이화, 건립위원회)는 24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서린동 26-1 영풍문고 앞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출구 사이에서 '전봉준장군동상제막식'을 진행했다. 이날 전북 정읍의 단소(壇所, 제단이 있는 곳)에서는 전봉준 장군 제사가 거행됐다.

동상은 지난 1년 남짓한 기간 68개 주요단체의 2,000여명이 모아 조성한 2억7,000만원의 국민성금으로 만들어졌으며, 작품은 2017년 7월 제안공모를 통해 선정된 원로 조각가인 김수현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가 제작했다.

동상으로 되살아난 전봉준 장군은 처형 사흘 전인 1895년 3월 27일(음력) 종로 의금부 감옥에서 신문을 받기 위해 법무아문으로 호송되는 과정에서 일본영사관 구내에서 일본인 사진사에 의해 촬영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좌대에 1미터 높이로 앉아 있다.

좌대에 앉아 있는 전봉준 장군은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가는 사람에게 내 피를 뿌리라"는 유언을 남긴 그 기개가 그대로 살아있는 듯한 형형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다.

서울시는 공공미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역사전문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독립기념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자문을 받고 동시에 설치장소인 영풍문고의 사업 주체인 (주)영풍의 동의서를 제출하도록 했으며, 동상의 높이를 20cm 더 낮추고 전봉준 장군과 장소의 관계를 설명판에 드러내라고 조건부 승인을 냈다.

좌대 뒤편 동판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새겨져 있다.

"전봉준(1855-1895) 동학농민군의 함성은 1894년 이 강산을 뒤덮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지휘한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벼슬아치를 몰아내고 폐정을 바로잡기 위해 봉기하였다. 농민통치기구인 집강소에서 개혁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이 침략음모를 꾸미자 이를 몰아내려고 전면 재봉기하였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이 주력인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전옥서(한성부 중부 서린방)에 갇혔다. 그리고 권설재판소에서 사형판결을 내린 다음 날인 1895년 4월 24일 새벽 2시에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 등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았다. 이제 순국 123주년을 맞이하여, 국민성금을 모으고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에 녹두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동상으로 세운다. 2018년 4월 24일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 2억7천만원의 국민모금으로 전봉준 장군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각계 인사들이 전봉준 장군 동상 제막식에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건립위원회 상임이사인 신영호 충북대학교 명예교수는 경과보고를 통해 "전봉준 장군 동상을 서울에 건립하는 것은 100주년 이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고 말했다. 전봉준 장군은 한 개인이 아니라 수십만 동학농민군을 상징하고 수만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또 그 가족과 후손들의 한세기에 걸친 고난 극복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동상을 세우는데 국민모금으로 한 것은 전봉준 장군 동상을 세우는 이 사업이 최초이고 유일한 사업이라고도 했다.

지난 2016년 10월 전봉준장군동상건립을 위한 모임이 서울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처음 열렸고 수차례 모임을 가진 끝에 2017년 3월 22일 성균관대학교 6백주년기념관에서 건립위원회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어 지난해 4월 10일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하고 이이화 이사장을 추대한 뒤 동상건립소위원회와 국민모금소위원회를 결성하고 국민모금에 들어갔다.

앞서 동학농민혁명 발발 60년이 되는 1954년 전봉준 장군이 살던 전북 정읍의 조소림 인근에 천안 전씨 문중에서 단소를 세웠는데, 이것이 전봉준 장군과 관련된 최초의 기념조형물이고 서울에 만들어진 조형물은 종로 네거리 전봉준 장군 동상이 처음이다.

▲ 왼쪽부터 이이화 건립위원회 이사장, 한승헌 건립위원회 고문, 박원순 서울시장, 유성엽 국회 교문위원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 스님.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이화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 등 다섯 지도자를 종로 전옥서 감옥(좌감옥)에서 새벽시간을 틈타서 교수형에 처했다. 장렬한 죽음이었다. 지금 우리는 이 자리에 동상을 세워 그들이 겨레 사랑하는 마음과 나라를 구하려는 의지를 기리려 한다"고 말했다.

또 "많은 민족 민주단체와 일반 시민이 성금을 내어 건립기금을 마련했다. 정부의 지원이나 기업체의 협찬은 받지 않았다. 서울시와 종로구청 담당자들의 협조를 받아 결실을 맺었다"면서 "이 동상은 오래오래 외래 침략에 저항한 민족운동의 상징물로 평등과 자주의 가르침을 익히는 청소년의 학습장이 될 것"이라고 동상제막에 대한 감회를 밝혔다.

한승헌 건립위원회 고문은 "오늘은 선열의 뜻을 이어받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들이 스스로 회개하고 깨닫고, 또 앞으로 부끄럽지 않은 후예가 될 것인지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전봉준 장군, 또 그와 함께 나라사랑의 처절한 싸움에서 순국하신 그 분들의 뜻을 이어받아야 하지만 거창하게 순국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그분들의 뜻을 새겨서 애국이라도 하자. 나라 사랑의 길이 험하고 어렵다면 우국이라도 해서 오늘 이렇게 동상이라도 모신 뜻을 새겨야 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동상이 서울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지도록 해서 그 어른들의 뜻을 새겨서 자랑스러운 국민이 되자. 그렇지 못하더라도 부끄럽지는 않은 국민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덧붙였다.

지난 2016년 서울시에서 부지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혀 동상건립에 큰 도움을 준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번 동상건립으로 전봉준 장군이 123년전 구속된 몸에서 이제 자유의 몸으로, 패배자의 신분에서 승리자의 신분으로 돌아왔다"면서 "123년전 반봉건과 척왜양 창의의 외침은 민주, 민족, 민권의 정신으로 우리 현대사에 면면히 이어져왔으며, 민주주의는 더 진전시키고 분단의 질곡을 벗어나 평화와 통일의 길로 더 나아가도록 하고, 불의와 불평등의 세상은 좀더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으로 만들라는 명령을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정읍·고창 지역구의 유성엽 의원은 동학농민혁명기념일 제정을 둘러싸고 14년째 정리되지 않은 논쟁을 조속히 정리하고 헌법전문에 동학농민혁명정신을 담아야 하며, 관련법을 개정해 1895 동학농민혁명 참가자들부터 국가유공자 지정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김성주 시인이 지난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안도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낭송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전봉준장군동상제막식에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강창일 국회의원, 최경환 국회의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회장,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배종렬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기곤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 이승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이정희 천도교 교령, 전봉준 장군의 직계자손인 전종호·전명준 씨와 당시 전봉준 장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재판장인 법무대신 서광범의 후손 서기현 씨 등이 두루 자리를 함께 했다.

▲ 전봉준 장군 동상의 바탕이 된 사진. 처형 사흘 전인 1895년 3월 27일(음력) 종로 의금부 감옥에서 신문을 받기 위해 법무아문으로 호송되는 과정에서 일본영사관 구내에서 일본인 사진사에 의해 촬영되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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