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정치학(북한정치) 박사/‘수령국가’ 저자

 

이 글은 총론적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라는 주제 하에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분야의 국정과제인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모색의 글에 가깝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담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이에 필자는 두 문제의식에 해답을 찾기 위해 먼저, 북핵문제의 본질을 짚어내고자 한다. 다음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다음은 연재 순서이다. / 필자 주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Ⅰ. 북한에게 핵은 무엇인가?
 1. 북-미대결의 산물, 북핵
 2. 핵-경제 병진노선에 대한 정확한 이해
 3. 수령의 지위와 역할에서 갖는 북핵의 의미

Ⅱ.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성공의 조건
 1. DJ·참여정부에서의 경험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얻는 교훈
 2.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들
 3. ‘더불어 평화로운 한반도 구현’에 대한 분석과 대안

Ⅲ. 담대한 제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하여 

 

트럼프의 유엔연설에 대해 美보수언론 『워싱턴포스트』(2017.09.19.)는 “정치인이라기보다 깡패 두목(a mob boss)과 같은 연설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고 힐난했다. 같은 날 CNN도 “어떤 미국 대통령도 세계에 대고 이렇게 말한 적은 없었다”며 “도가 지나쳤다”고 비난했다.
 
중국의 『신화통신』(2017.09.20.)은 한걸음 더 분석해내었다.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장관 발언을 인용보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연설을 명백하게 “유엔헌장 위반”으로까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헌장 2조4항이 그 근거였다.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해 또는 국제연합의 목적과 양립하지 않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

따라서 트럼프의 연설은 유엔헌장을 위반한 ‘무력의 위협’이라고 보기에 충분한 것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그러나 보니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치인들과 국가들이 트럼프의 유엔연설을 비난하고 나섰다. 지면상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몇 개만 소개하면 먼저, 러시아와 중국 외교부는 물론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메르켈 총리까지 “완전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美민주당 상원의원도 "유엔의 목표는 국제사회의 평화와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날 미국의 대통령은 전쟁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무대로 사용했다"라는 비판을 던졌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대한민국의 청와대는? 제 아무리 북핵 해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은 ‘국내용’발언이라 하더라도 그 인식은 ‘대단히’정상적이지 않았다. 또 일반적인 의미에서 청와대의 인식이 곧 대통령의 인식과 같게 볼 수 있다면 이날 청와대의 발표는 문 대통령의 인식에 남북 문제와 헌법상 평화적 통일이행 의무를 수행할 의지가 남아있는지도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과 맞물리게 되었다. “靑, ‘북한 완전히 파괴’트럼프 대통령 유엔 연설지지”(『노컷뉴스』, 2017.09.20.) 다수의 국가들과 정치인, 언론들이 반대한 트럼프의 ‘막말’연설을 대한민국의 청와대가 전폭지지 했다? 참으로 ‘웃고픈’코미디이다.   
 
백번 양보해서 미국 대통령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중동,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그렇게 해 왔으니까. 다시 말해 자국-미국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우리-대한민국은 다르지 않는가? 그렇게 해서라도-YS 왈,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못하다”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동맹의 힘을 빌려 북한을 초토화해서 핵을 포기시켰다 치자, 그 다음에는? 미국은 그걸로 끝나지만, 우리-대한민국은 ‘그’북한과 평화와 통일을 구현시켜나가야 할 민족적 주체이자 대상이다.
 
그리고 이 뜻에는 아무리 북한이 핵을 가는 것이 밉다고 하더라도, 그렇다하여 북한인민들은 보호하지 않아도 될 그런 민족이란 말인가? 그렇게 초토화된 북한을 재건하는 비용은? 또 그렇게 해결되었다손 치더라도 북한인민이 갖는 남한에 갖는 감정은? 그 모든 것을 생각했을 때 트럼프의 그 연설에 청와대(문 대통령)는 그렇게 반응하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3주제, ‘담대한 제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하여’에서 더 깊게 다룰  예정이어서 이만 줄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물음은 꼭 남겨놓아야 하겠다. “청와대는 과연 어느 나라의 청와대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대통령)는 ‘평화적 통일이행’의 의무 충실과 민의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여론으로 포장되어진 언론과 방송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민의, 그것도 촛불민의와 ‘감동적’으로 재결합하여야 한다.
 
그렇게 못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는가? 스스로도 촛불정부임을 밝히고 있고, 탄생과정도 촛불민심과 함께 했으니 문재인 정부의 가장 든든한 백 그라운드는 촛불민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는가?

하물며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도 임금은 나라에 재앙이 있거나 국정을 이끌어 가는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공식기구(의정부와 6조, 3사) 외에 그 필요에 따라 ‘구언(求言)’이라든지, ‘잠행’, ‘상언’과 ‘격쟁’등을 통해 신하와 백성에게서 바른말을 구한 예가 참으로 많다.
 
특히, 태종이 반포한 구언령을 보면 “…쓸 만한 말이면 받아들이고, 혹 맞지 않더라도 관대히 용납하겠다. 바른 의논을 듣기 원하노라”라고 되어 있다. 무려 1080건이나 되는 것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고, 이를 계산해보면 오백년의 역사에서 연평균 2차례 정도의 구언이 있었던 셈이다. 비례해서 구언의 언로를 활짝 연 임금들은 예외 없이 성군이었다. 정조가 특히 그러하였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외치적으로는 남북·북핵문제와 사드 등 외교문제가 꼬여있고, 내치적으로는 남한 전술핵 재배치 논란과 사상 첫 헌법재판소장 후보 인준 부결 등이 일어나고, 박성진 장관후보자 인준과 관련하여서는 야당은 생리가 그러하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쨌든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곧바로 사과하면 될 일을 기껏 옹호한다는 게 ‘공대출신’이니 ‘생활 보수’라는 요상한 작명으로 버티려 한 청와대의 인식이 참으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 뉴라이트가 일부 야당이 옹호하는 뉴라이트는 ‘극우 보수’고, 청와대가 감싸 안는 뉴라이트는 ‘생활 보수’였던가? 거기다가 적폐청산에 대한 기대와 ‘이게 나라다’의 희망은 ‘희망고문’으로 전락될 위기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타이밍적으로 지금이야말로 문 대통령은 그 언로에 문제가 없는지를 심각하게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소외되고 빽 없는 사람들을 ‘따뜻하게’만나주고 어루만져주는 것도 중요하고, 청와대를 개방·이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으로서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런-감상적이고 하드웨어적인 발상과 행동보다도 촛불민의를 정확하게 읽고, 함께 코드를 맞출 수 있는 그런 실질적인 소통의 장과 제도가 어떻게 마련되어져야 할 것인가를 보다 심도 깊게 인식해내어야 하는 것이 더 맞다.
 
그것이 신변보호 때문에 ‘마음은 간절하지만...’그렇게 합리화되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고, ‘해서는 안 될’그런 유혹과 참모들의 과잉경호 발상을 떨쳐내어야 하는 상황의 절박함이기도 하다. 

이유는 그렇게 ‘가슴 아프게’다가왔다. 그래야만 지금의 위기를 탈출할 수가 있어 더더욱 가슴 아프다.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대통령이 소통을 잘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고, 그 문제가 청와대 시스템에 문제가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듣기 싫은 소리에 귀를 닫는’의미에서의 ‘화장실 들어갈 때(=대통령 후보시절)와 나올 때(=대통령이 된 이후)의 생각이 변한’문 대통령의 변심이라고 밖에 얘기할 수 없다. 촛불민의가 동명이인의 ‘문재인’에게 농락당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해서 부탁드린다. 촛불민의가 알고 있는 ‘문재인’이가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 맞다면 촛불민의에 귀 기울이시라!  

또 있다. 트럼프식 성동격서(聲東擊西])에 속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사드를 통해서는 대한민국과 중국과의 균열, 북 핵 제재 일변도를 통해서는 한-미FTA에서의 이득 및 전략무기 무기판매, 전술핵 배치논란을 통해서는 남-남 갈등 유발과 ‘예속적’한·미동맹강화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그렇게 속은 결과-참모들의 ‘잘못된’조언과 대통령님의 ‘엉뚱한’인식이 맞물리면서 작성된 견적서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호기롭게 선언한 ‘운전자’론은 무색해졌고, (그 원칙을) 단단히 잡고 교통정리를 해야 할 현 정부와 대통령은 작금의 상황에 대해 교통정리를 못하고 있을 뿐더러, 능력마저 상실해 가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다 이 상황-한반도 전쟁위기 상황을 즐기는 미국은 전쟁위기고조를 더 심하게 노골화하고, 중국과 러시아로부터는 쌍중단·쌍병궤의 북핵 해법이 제시되고는 있으나, 북한은 그런 미국과 끝장을 보려한다. 이렇게 한반도의 운명시계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맞물려가고 있다.

그렇게 대한민국만 죽어나고 있는 셈이다. 야당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여당 내에서조차 전술핵과 관련해 갈팡질팡하고 전술핵 배치와 독자 핵무장화가 국론분열의 주범이라고 한다면, 더 가관인 것은 문 대통령의 측근그룹들의 행태 또한 결코 그기에 뒤지지 않다는 것이다. 모 의원의 경우는 모 기자의 기사를 인용하기는 했지만, 문 대통령에 대해 “‘미국 가랑이 밑을 기는 것’, ‘미국 짖으라는 대로 짖는 것’…왜 저런 행보 할까 생각해 달라”(『중앙일보』, 2017.09.11.)며 대통령을 옹호하는 모습 속에 측근과 참모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냐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해서 그렇다. 
 
묻는다. 언제 촛불민심이 문 대통령에게 미국의 ‘가랑이’밑을 기라고 했던가? 예스(Yes)할 때는 예스하더라도 노(No)할 때는 노하라고 했지,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트럼프의 ‘푸들’(김종대 의원의 표현)과 ‘아베’(정세현 전 장관의 표현)와 같이 표현에 문 대통령의 ‘잘못된’인식을 보지는 못할망정 당신들의 귀에는 정녕 촛불민심이 그렇게 밖에 들리지 않는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문제의 핵심은 한반도 정세를 톤다운(tone down) 시켜야할 현 정부가 무조건적으로 미국에 편승해 제재로 해결될 수 없는 북핵(대표적인 주창자들, 이종석·문정인·정세현 등)에 대해 현 정부가 제재일변도로 대북정책을 후퇴시키는 것이 그 문제인식의 본질이거늘... 해서 진짜로 측근이라 생각하고 참모라면 주군인 문 대통령과 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충언’을 하거나 ‘고언’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 그 무슨 개뼈다귀 뜯어먹는 발언을 해서 촛불민심을 호도한단 말인가?    
 
상황이 그러하고, 그리고 그 상황은 대통령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안 되는 것’이라면, 많은 전문가들과 촛불민의가 전달하고 있듯이 북 핵 해법은 달리 찾아져야 하는 것이다.
 
여전한 희망적 사고와 체제 우월적 자만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장사속셈만 있는 트럼프와 ‘가능하지도 않는’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화에 대해서는 집안단속-여당은 지금 전술핵 배치를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다-을 잘하고,  그 바탕 하에 양립가능하지도 않는 ‘제재와 대화’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이유는 일본과 미국이 처한 상황과 한반도의 상황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어서 그렇다. 트럼프와 아베는 한반도의 전쟁고조가 마냥 반가운 관련국 정상들이라면 우리정부는 한반도의 긴장고조와 전쟁분위기가 전혀 즐거울 수가 없다. 따라서 그 ‘극강(極强)의 제재’운운하면서 짝짝꿍 하는 것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미국과는 전략자산 무기수입 등 ‘예속적’한미동맹을 지속시키는 구심력으로, 일본과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기정사실화하여 스스로 미-일동맹의 하청동맹화를 자처하는,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사드(THAAD)의 성주 배치로 인해 북 핵 공조에 이탈을 자초함과 아울러 롯데·현대 등의 우리기업들에게는 부도위험이자 한국경제는 위태롭게 되어 현 정부가 추진하려하는 한반도경제론은 ‘페이퍼’위의 전략으로만 존재하는 자충수가 되고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해서 내키지 않겠지만, 이 상황쯤 되면 터닝(turning)해야 한다. 『한겨레신문』(2017.09.05.) 「사설」 , “‘군사력 강화’만으로 북핵 문제 해결할 수 없다”와 같이 강경일변도에서 대화의 방법론으로 그 방향키를 돌려야 한다.
 
역발상을 할 때란 말이다. 그런데도 9월 15일에 또 문 대통령은 ‘우리(문재인 정부)가 도발하지 말아’라고 했는데, ‘또 도발 했어[9월15일 괌을 타깃(target)으로 하는 북한의 미사일발사를 두고 한 말을 의인화하여 표현]’. 그럼 또 ‘더 강력한 제재를 해야지’그렇게만 자꾸 인식이 확장된다면 그 결과 종착점에는 대통령 스스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난 뒤 한 발언, “이런 상황에서는 (남북)대화도 불가능"(『통일뉴스』, 2017.09.15.)하다는 인식밖에 할 수 없게 되어있다.

정말 그러시면 안 되는 것이다. 당연한 것-북한이 그렇게 도발을 하면 할수록 한미동맹에 의한 억지력과 자체 군사억지력을 키워나가는 것은 국가원수로서 당연히 취해야할 대응조치이고(이 대응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제아무리 북한과는 민족관계가 작동하고 있다하더라도 엄연히 UN에 동시 가입한 독립국가 들이다. 하여 그 어떤 체제를 가져다하더라도 UN에 가입한 모든 국가는 국가를 구성하는 3요소-영토·국민·주권-중 국토방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과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대화의 문을 더 활짝 열어놓아야 하는 별개의 문제를 감정으로 처리하시면 안 된다는 말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더 그러면 안 되는 이유가 대통령님은 일국의 대통령이지 않는가. 그러니 대통령님 뒤에는 그 어느 누구도 없다. 그런 만큼 최종 결정권자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인식과 감정을 가져 북핵 문제해결과 남북관계를 개선해가려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해서 어떤 이유에서건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한반도의 상황이라면 ‘억지’에는 ‘억지’하고(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한 억지력을 선보이는 것과), 동시에 무조건-조건 없는 대화를 통해서는 한반도전쟁 고조를 톤 다운시키고, 쌍방의 군비경쟁체제를 종식시켜 나가기 위해 혼신을 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평화·통일의 문도 열리고, 현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한반도경제도 실현가능해져 참으로 풀기 어려운 한국경제와 실업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해서 북한이 도발하면 도발할수록 대화의 문을 닫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역설의 상황이어도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이 한반도 38°이남의 대통령이 감내해내어야 할 통수권적 무게라면. 더더욱 제재를 통해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은 대화와 협상의 원칙을 비례하여 구사할 것을 요청한다하겠다.
 
연원적으로도 제재를 통해서는 한반도 평화 체제가 수립될 수가 없음은 이미 증명되어왔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이래로  ‘도발 – 제재 – 또 도발(더 큰 도발) – 또 제재(더 큰 제재) - “또 또 도발(더 더 큰 도발) … ’라는 패턴의 정립은 미국과 현 정부 스스로가 정한 ‘레드라인’임계점-핵보유와 핵강국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상황과 맞닿아 있음이다.  
 
또한 북한은 미국과 대한민국이 정해내온 그 임계점에서 멈출 생각이 절대 없이 핵보유라는 국가목표를 향해 도발을 계속할 것이 자명한데, 무조건 그렇게 계속 제재일변도로만 간다면 운전대 한번 못 잡아보는 ‘운전대’패싱(passing)이 발생함도 각오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은 말 그대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를 것이 없고, 그러면 그럴수록 촛불정부 답지 않게 되고, 비례해서 YS정부 때와 같은 판박이로 데자뷰(deja vu)해야 한다.
 
이는 제 아무리 북한의 행태가 마음에 안 들고 싫더라도 전쟁은 안 되고, (북핵 문제가) 제재와 군사적 대응만으로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라면, 제 아무리 그러한 선택을 하고 싶지 않다하더라도 궁극적으론 ‘대화와 협상’에 의해 풀려야 한다는 것 또한 우리가 피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로 직면할 수밖에 없음이다.  
 
백번 양보하여 대통령께서 그렇게 믿고 희망하고 싶은 것과 같이 현재의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이 그 실효를 가지려면 그것이 ‘대화와 협상’의 문을 여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확인하고 있는 바와 같이 북한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고,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미국과는 끝장-"국가핵무력완성..모든 힘을 다해 끝장 보아야(지난 9월 16일 김정은의 '화성-12'형 발사훈련 지도를 공개하면서 언급한 내용)”-을 보려하고, "최종목표는 미국과의 실제적 균형"이라면서 그 도발을 멈출 생각이 전혀 없음을 내외에 천명한다.(『통일뉴스』, 2017.09.16.)
 
그런데도 현 정부에서 그렇게 브레이크 없는(?) 질주-제재, 또 제재, 오직 제재만-을 계속한다면 진짜로 코리아 패싱은 발생한다 하겠다. 계속해서 그러한 희망고문을 스스로에게 주입할 때-제재를 통해 대화의 문을 열 수 있다는 착각을 계속하여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촛불민심과의 전면전쟁 선포와 하등 다름없음을 각인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답은 이미 나와 있고, 명확해져 있다. 제재와 압박, 즉 군사적 억지전략만으로 북핵 문제가 풀려질 수만 있다면 골백번이라도 그렇게 해야 하겠으나, 그렇게 해서는 절대 북핵 문제가 풀어지지 않는다면 좀 폼 안 나고 자존심은 상할 수는 있지만, 원심력이 덜 작용하는 정권초기에 ‘흔들림 없는’중심을 잡고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1.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 간략한 고찰

한 권의 책에서 소중한 교훈을 찾자. 『역사의 파편들』(주한 미대사를 지낸 그레그 지음; 창비, 2015)에서 그레그는 미 외교정책의 고질적 문제에 대해 일침을 가했는데, "우리가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지도자나 집단을 무조건 '악마화'하려 드는 경향이 우리를 끊임없이 곤경에 몰아넣는 원인"이라 하면서 그는 이어 "체제를 제거하여 변화를 강제하려는 전통적인 미국의 접근방식은 이란, 과테말라, 쿠바에서 그랬던 것처럼 더 큰 혼란과 지속적 분쟁만을 초래 한다"고 지적하고, 북한도 그 사례에 들어가 있음을 밝혔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 악마화에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견해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지난 정부-민주정부든 보수정부든 공히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보고 싶은 것만 보는’희망적 사고와 ‘우리가 보다 민주적이고, 잘 산다’는 체제우월적 사고에 빠져 한쪽에서는 북한붕괴론에 빠지게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교류·협력을 전개해 나가면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이라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오류’에 매몰되었다.    
 
그 결과 둘 다의 시각에는 전직 미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의 ‘냉철한’시각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페리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대북정책 조정관 (North Korea Pollcy Coordinator)에 임명(1999.5)되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같은 해 10월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고 (North Korea as it is not as we wish them to be)’정책을 수립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페리 보고서에는 미국과 북한 간 관계 정상화를 골자로 한 미-북 포괄 협상이 담겨졌고, 진행되었다. 이른바 '페리 보고서'라 알려졌고, 이후 북-미간의 문제를 풀어가는 하나의 교본과도 같았다.
 
다시 우리가 그 페리 보고서에 주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고, 작금의 상황이 그런 자세와 정신으로 되돌아가야만 북핵문제가 풀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어 더더욱 소중한 반면교사다.

1-1. 이명박·박근혜 정부

(1) 북한붕괴론에 빠져 있었다

임기 내내 북한붕괴론에 취해있는 정부 하에서 제대로 된 대북정책을 기대한다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얻으려 한다'라는 뜻의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지 않겠는가.
 
구체적으로는 먼저, 이명박 정권 하에서의 사례인데 2010년 11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비밀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09년 7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북한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 붕괴를) 기다리며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기록되어있다. 2010년 2월에는 천영우 외교부 2차관이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에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하고 있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 2,3년 내 정치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한 걸로 나타나 있다.  
 
다음으로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사례인데, 이명박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붕괴론은 거의 신앙이었다. 여러 증명자료들이 있겠으나 가장 단적인 예가 2013년 12월 21일 국가정보원 송년 모임에서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이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2014년 벽두,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터뜨렸고 곧 이어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2) 한국판 ‘전략적 인내’에 매몰되어 있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MB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이다. 북한이 비핵화하고 개방하면 10년 내에 1인당 국민소득이 3천 달러가 되도록 돕겠다는 것이 그 핵심내용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 신뢰를 형성시켜 나가겠다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대표 브랜드였다. 사실상의 '비핵·개방'과 유사했고, 선 비핵화 후 협력의 정책을 모토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선 비핵화하고 개방을 해야만 북한을 지원하고, 교류·협력 하겠다 하니 사실상 북한과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오히려 북한고립과 붕괴를 촉진하겠다는 정책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북한 자신들의 체제존속과 생존권이 달린 문제를 스스로 포기하면 도와주겠다? 누가 보더라도 가능하지 않는 대북정책이어서 그렇다.   
 
그러니 결과는 분명했다. 한반도 문제 당사자 국가로서의 지렛대 역할이 전혀 무색해졌고, 핵문제는 더 꼬여졌으며 박근혜 정부 막판에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하여 사실상의 한국판 ‘전략적 인내’정책이라 명명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지난 보수정부의 대북정책들이었다. 

(3) 북한 문제를 국내정치에 부속시켰다

남북문제의 국내정치화 후유증은 참으로 컸다. 그 핵심에 종북 논쟁이 있었다. 핵심사례로는 2014년에 발생한 신은미의 ‘종북 콘서트’이다.
 
실제 신은미의 강연 내용은 이미 알려져 있었고, 그리고 통일부에서 홍보영상물을 만들 때도 이미 활용했던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었다. 북한 사람들의 김정은에 대한 평가, 수양딸 사연, 세 쌍둥이 출산 얘기 등등. 그렇게 그 어디에도 ‘종북적’얘기는 없었다.
 
허나, 보수정권 하에서 북한은 무조건적으로 나쁜 국가로 낙인(烙印)되어 종북과 연결되어야 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들-보수·수구세력을 지지하지 않은 모든 세력들을 ‘종북 좌파’로 매도해 한국판 매카시 선풍이 일어나야만 그들이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이념논쟁에서 승리했고, 그들의 의도대로 대한민국은 ‘종북 공화국’으로 전락하였다. 그 상황에서 대한민국과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대한민국은 무조건으로 절대로 선(善)하나, 상대방 북한은 무조건적으로 악(惡)하다는 주관주의적 이분법만 선택하게 되었다.
 
후유증은 심각했고, ‘종북(從北)’프레임(Frame)은 곧 북한에 대한 ‘악마화’프레임과 같은 동격으로 작용하였다. 수구·보수 세력에게만 이득이 되는 ‘묻지마’식 종북 먹구름이 온 하늘을 그렇게 뒤덮은 채로 말이다.   

2-2. DJ·참여정부

(1) 성과적 측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남북·미관계에서 제법 적극적 역할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언어대로 하자면 ‘운전대를 좀 잡았다’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6.15와 10.4가 이를 증거하고 있어서 영 허황된 평가는 아니다. 남북장관급 회담을 비롯한 각급 대화가 정례화 되었고, 민간과의 교류·협력 및 이산가족 상봉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개성공단 가동 등 경제협력 쪽에서도 양과 질의 측면에서의 많은 변화가 이를 실증해주고 있다.

이 중에서도 북핵 해결의 가능성과 남북관계가 조금씩 진전되어진 것은 소중한 성과임이 틀림없다.
 
남북한 상호공존의 제도화가 이뤄졌고, 북핵문제의 해결기반을 마련되었으며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반조성도 10.4선언에 의해 보장되었다. 4항에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의역하자면, 두 정상은 정전체제의 종식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지역 내에서 종전 선언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서 적극적 당사자로 참여할 명분을 확보하고,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정착 과정에서도 남북 군사대화 등을 통해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다음으로 경제 협력분야에서도 윈-윈·상생경제 모델 창출되어 ‘한반도 경제권’이라는 북방경제로의 확장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제도적으로는 남북경협의 제도적 장치와 관련, 남북한이 4개의 투자 관련 합의서를 발효했고, 원산지 증명, 직교역체제 정비, 무역사무소 등의 개설에 합의함은 물론, ‘평화상징의 심장’, ‘경제협력의 거점’, ‘경제통합의 실험의 장’이라는 의미를 가진 개성공단이 추진되었고, 가동되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또한 남북 육상교통망 시대의 개막도 이뤄져 향후 물류비용 1/4 정도가 절감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졌다.
 
끝으로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민간단체의 교류협력이 강화되었고, 이산가족 상봉과 납북자 해결 및 인도적 지원이 확대·강화되어 감에 따라 남·북간에 조성되어 있었던 이질성은 완화되고, 그와 비례해 민족의 동질성 회복은 강화되어 갔다. 통일의 사회·문화적 기반조성에 청신호가 열린 것이다. 

(2) 한계적 측면

위와 같은 소중한 성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한계도 존재한 민주정부 10년이었다. 가장 먼저는 남북관계가 진전되어 갔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국민적 합의 형성을 내왔어야 하나, 그러하질 못하였다. 당연히 그 후폭풍은 대북정책의 과도한 국내정치화 현상이었다.
 
‘종북·반공주의’외에는 그 어떤 정치자산을 가진 것이 없는 보수정당은 오직 ‘퍼주기’논쟁을 유발시켜 자신의 생명력들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 그 예다.
 
그러다 보니 민주정부 10년 동안 가장 큰 회한으로 남는 것은 그 첫째가 평화와 통일담론을 재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한국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반증해주는 10년이었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의 고단함, ‘고용 없는 성장’과 경제위기, 1대 99의 위험사회 진입 등이 극복되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분단체제에 의해 파생된 이념과잉과 재벌신화(정경유착과 하청경제), 억압적 권위주의 체제와 1등 만능주의정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개화(開花)될 수 없음의 자각에 있었으나, 이를 치유할 대안담론 생산에 실패한 것이다. 이른바 평화와 통일담론이었다.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지점을 위와 같은 거시적 차원의 한계와 함께, 10년의 민주정부는 6䞋와 10ܪ선언을 내왔지만, 이를 실현시켜나갈 정권적 힘을 포기했다는데 있다. 이유는 크게 2가지여서 그렇다. 먼저는 갖가지 ‘대화’와 ‘회담’조건의 성숙이라는 미명하에 정권 중·후반기에 정상회담이 성사되어 그 추진동력을 스스로 제어한 것이 그 첫째이다. 둘째는 공동선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민족공조와 통일방안 합의노력에 전혀 손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그 예로 6.15공동선언 중 1항과 2항, “①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내몰라하면서 오직 𔃳,4,5항’에만 집착하였다. 즉, 사회문화교류와 경제협력에만 관심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북정책을 구사함에 있어 ‘체제우월적’사고에 입각한 경제와 안보의 교환에만 집착하지 않았는지를 겸허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DJ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으로 별칭할 수 있는데, 이것이 정치·외교학에서는 ‘햇볕을 쪼이면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는 소프트 랜딩(soft landing) 정책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음은 익히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교류와 협력이 강화되다보면 북한이 개혁·개방되어 자본주의·민주주의 체제로 통합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2. 얻어야 할 교훈들

민주정부 10년 동안 구사되었던 구동존이(求同存异)의 접근법이 전쟁(1950년)의 후유증과 그로 인한 쌍방의 신뢰관계는 거의 제로에 가깝고, 그 연장선상에서 오랫동안 체제경쟁과 정치·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갈등이 상존해왔던 남북 간의 입장과 처지를 고려한다면 대단히 현실적이고 실사구시적인 방침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다만, 2가지 측면에서 한번쯤 생각되어져야 할 요인이 있다. 첫째는, 쉬운 것부터 푼다는 것과 근본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사실의 간과이다.
 
즉, 남북 간에 상존하는 근본문제-정치·군사문제를 놔두고 쉬운 문제인 경제와 교류협력에만 집중하면 절로 근본문제가 해결된다?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2가지 이론·실천적 오류가 있다. ⓵경제와 교류협력이 강화되면 북한이 개혁·개방될 것이고, 그렇게 되다보면 체제전환-사회주의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체제로 전환-이 일어나거나, 그렇게까지는 안 간다 하더라도 종국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흡수·통합할 수 있다는 체제우월적 사고가 짙게 깔려있는 것이었다. ⓶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볼 때 ‘저절로’는 발생하지 않는 과학적 개념이어서 그렇다. 의식의 작용과 관계를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해나갈 때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 인식이다. 했을 때 경제와 교류협력만 열심히 한다하여, ‘저절로’북한과 가까워질 수는 없다. 가까워져야 할 이유(근거)를 발견하고, 노력하고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평화와 통일담론이 정부주도로 이뤄지다보니 범국민적이고 대중적인 평화·통일운동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교류협력과 접촉승인의 독점권을 정부가 갔고 있었고(창구단일화), 국가보안법과 반공·반북이데올로기는 국민적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하는데 상당한 장애요인이었다. 즉, 연공연북으로 나아갔어야 하나, 그러하질 못한 것이었다. 물론 이 지점에서는 민간통일운동 단체들의 반성도 함께 따라와야 한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이뤄지는 평화통일운동은 절대 평화통일운동이 범국민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한계-창구단일화 폐지, 국가보안법 철폐, 가칭 제2의 북한바로알기운동과 같은-를 뛰어넘기 위한 적극적이고도 창의적인 활동이 동반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다 보니 이른바 ‘맷집’과 내공이 없는 합법적 평화통일운동에로의 체질이 전환되어버린 것이 그것이다.    
         
2-1. 제재와 대화는 양립할 수 없다

제재와 대화라는 투 트랙은 언뜻 보면 참으로 매력적인 문법인 것 같다. 외교적 레토릭으로도 너무나 멋지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딱 거기까지이다. 즉, 외교무대와 수사학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당사자(혹은, 국가)에게는 참으로 당혹스럽고 모순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외교적으로는 그런 어법이 필요해 모호성을 견지해야 하겠지만,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주체의 입장에서는 자주 사용할 정치적 용어는 아니어야 한다.
 
백번 양보하여 ‘제재를 통해 대화를 이끌어 낸다’는 그런 발상을 할 수는 있다. 또한 희망적 사고와 수사학적으로도 가능한 어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화에는 그 상대방이 있기 마련이라고 한다면, 그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러한 상황-제재의 결과로 대화(협상)에 나서는 상황이 된다면, 그 상황은 인과관계로 따지자면 제재에 굴복(항복)해서 마지못해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상황과 똑같을 텐데, 이 상황은 그 상대방이 그렇게-굴복(항복)해서라도 나갈 수밖에 절박한 처지와 맞물릴 때만 가능하다.  
 
해서 어지간해서는 대화(협상)에 나서는 그 상대방(국가)는 그러한 굴욕을 감내하면서도 대화(협상)에 나서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나서더라도 나섬과 동시에 자신은 이미 ‘을’의 상태에서 대화(협상)에 임해야하기 때문에 수동태로 전락될 수밖에 처지임을 누구보다 잘 할고 있어 (대화를 하고자 하는 국가가) 진정으로 대화를 원한다면 제재를 통해 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대화와 협상에 나올 수 있게끔 해주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는 모든 대화와 협상은 ‘마지못해 나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굴욕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거나’, 그것도 아니면 ‘항복’하려 나오는 경우의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체제가 달라 서로 경쟁해야 하는 국가 간의 대화와 협상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에서 이뤄진 대북정책의 성과가 왜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명백한 이유가 발견되어진다.
 
첫째는, 윗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기능주의적 접근이 갖는 한계에서 발생했고, 그 두 번째가 교류·협력의 최종 목적지가 ‘순수한’의도에 있었기보다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낼 수 있다(더 나아간다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합이라)는 의도의 불순성에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여질 수 있다는 말이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김일성 주석의 사망, 연이어 닥친 제2의 고난의 행군시기-이 시기는 말 그대로 체제생존을 놓고 사투를 벌이던 시기이자 김정일 체제생존이 그야말로 위협받는 상황이었을 텐데, 북한의 입장에서는 그 상황이 ‘마지못해’대화와 협상 및 교류협력에 응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여 그 상황은 항상 수세였고, 방어하기에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에서는 다르다. ‘경제적으로나’체제적으로나‘생활적으로나’매우 안정화되어있다 보니 ‘근본문제’해결 우선의 원칙을 수립했고, 실제에 있어서도 이 문제의 합의도달에 성의 있는 노력 없이 과거와 같이 경제와 안보의 교환이라는 기능주의접근법에는 난색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민간차원에서의 교류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문재인 정부 하에서 야심차게 제안한 ‘신베를린선언’이 수용되지 않는 이유가 설명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2-2. 경험과 교훈들

(1) 북핵, 비핵화가 가능했던가?

결론은 ‘가능했다’이다. 실제 당시 미국과 대한민국이 정치·군사적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 목표-‘비핵화와 일괄타결’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의 북핵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당시 북한은 핵보유를 전략적 목표로 설정하지 않았다. 둘째는, ‘첫째’와 연동해서 북한이 핵문제를 체제생존 수단으로 접근해서 그렇다. 셋째는 ‘둘째’와 연동해서-그래서 경제와 안보의 교환이 가능했었다.    

해서 얻는 결론은 (지금의 정부 또한)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 ‘맞춤’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대한민국과 미국은 ‘엉뚱한’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각인하여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고 있는 엉뚱한 생각이라 하면 ‘굴복’, ‘붕괴’, ‘개혁과 개방’, ‘체제통합’, ‘제재(관여)와 대화’, ‘김정은 참수작전’, ‘북한 완전파괴’등과 같은 가능하지 않는 전략수립에 환상을 갖지 않는 것이다.

(2) 한반도 문제해결의 조건이 변했음을 인정하자
 
문민정부 10년과 보수정부 10년을 지난 지금, 핵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핵보유에 있다. 그것도 단순한 핵보유를 넘어 핵강국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해서 이런 상황에서는 주관적이고 희망적인 사고에 매몰되어 과거에 가능했다고 봤던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정책적 상상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그것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 이유 첫째는, 북한에게 이제 핵은 더 이상 경제와 안보의 교환수단이 아니다. 둘째는, ‘첫째’의 결론에 기반 해 본 기고 글 ‘Ⅰ.북한에게 핵은 무엇인가?’에서 확인받듯이 이제 북한에게 핵은 북미대결·핵-경제병진노선·수령의 위대성과 결합된 사상의 무기·정치-군사적 무기·경제의 무기여서 그렇다. 셋째는, ‘둘째’와 연동해서 북이 ‘현재적’상황 하에서 핵에 대한 정의를 위와 같이 내렸다면 그 핵을 포기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은 북이 미국과의 ‘끝장’대결에서 이겼다는 명분획득과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인민생활 향상을 이뤄냈다(미국과는 경제제재 해제합의와 남북 간에는 민족경제체제 확립)는 결과가 있을 때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 페리적 시각: ‘있는 그대로의 시각’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페리적 시각이라 함은, 위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North Korea as it is not as we wish them to be’의 시각을 말하고, 이 시각이 결국 현실적으로 투영되는 방식에는 첫째가 북한을 ‘악마(= 불량국가)’화하지 않는 것이고, 그 둘째가 북한체제가 붕괴될 것이라는 환상을 안 갖는 것이고, 그 셋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흡수통합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유는 3가지이다. 첫째가, 좋든 싫든 대한민국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엄연히 UN에 가입한 독립 ‘국가’체제여서 그렇다. 둘째가,  본 기고 글 ‘Ⅰ.북한에게 핵은 무엇인가?’에서 확인받듯이 김정은 정권이 ‘체제적으로나’‘경제적으로나’‘생활적으로나’안정화되어 있어서 그렇다. 셋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흡수통합은 6.15와 10.4선언에 위배되어서 그렇다.     
2-3. 한미동맹에 포박되어서는 대북정책 새로울 수 없다

기고 글, ‘Ⅰ.북한에게 핵은 무엇인가?’에서의 ‘소결론(총 3회)’에서 확인받듯이 대한민국과 북한 간에는 미국과 북한, 중국과 북한 등 유관국 들이 북한과 맺는 관계형성-국가 간의 외교관계 외에도 민족적 유대(분단국가로 인한)에 의한 민족관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해서 북한과의 관계형성은 국가 간에 존재하는 외교관계와 분단국가가 갖고 있는 민족관계가 이중적으로 맺어져있고, 그것을 풀어가야 할 쌍방의 주체이자 대상이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관계형성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처럼 북핵문제만 상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적 정신에 기초한 평화통일을 이뤄내어야 할 민족적 의무도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한미동맹과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되어져야 할 많은 민족적 관계회복이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6.15와 10.4선언에 따른 공동의 노력, 이산가족 문제, 역사문제, 민족동질성 회복문제, 분단체제 극복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가와 그 과정에서 ‘어떤’정책적 수단들을 쓸 것인지가 북핵 해결과정에서 때로는 충돌, 때로는 서로 상호 보완되면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남북 간의 문제를 국가적 관점에서만, 한·미동맹적 차원에서만 풀어갈 수은 없는 것이다.  

3. 소결론: 종북 논쟁에서의 해방, 6.15와 10.4의 적극이행 
       
지난 20년-문민정부 10년과 보수정부 10년의 경험과 교훈에서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북한사회와의 관계 맺기를 ‘새로운’차원에서 이뤄지길 원한다면 분명 과잉이념에서의 해방, 북한 ‘악마’화 및 북한붕괴론에서 벗어나야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헌법정신-3.1정신의 계승과 평화통일 노력-과 일치하지 않는 분단적폐의 문제가 산재해 있다. 인적청산의 문제, 법-제도의 문제 등에서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것과, 외세추종의 국가운영, 종북·반공이데올로기에로의 함몰, 국가보안법의 유지 등은 ‘새로운’대한민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한 단면이 분명하다.
 
해서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낡은 이념의 유물들과 북한붕괴·흡수통합이라는 환상에서 하루빨리 헤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온 겨레가 그렇게도 불려왔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형해화(形骸化)되지 않고, ‘쓸데없는’퍼주기 논쟁도 사라질 것이며 ‘종북’이니 ‘빨갱이’니 하는 격한 인격살인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위 모든 것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가칭)제2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을 6.15와 10.4선언과 연계하여 실효적으로 전개하고, 이 주체가 민주평통이나 통일교육원 등 국가통일기구에서 입체적으로 수립해나가야 할 것이다. 연동해서 6.15남측위원회와 민족화해협력위원회(민화협) 등에서는 정부의 창구단일화 논리에 굴복하지 말고 활발하게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밀고나감과 동시에, 국가보안법등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합법적 평화통일운동에만 매몰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정부와 더 민주당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으면 더 주력적으로 분단적폐의 상징인 국가보안법을 무력화, 철폐시켜나가는데 앞장서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보수와 극우로부터 종북이라는 덫에 갇혀지지 않아서 그렇고, 더 나아가서는 미적미적하는 집권여당과 현 정부를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있어서 그렇다.
 
생각해보면 이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맞물려서 그렇다.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연공·연북을 얘기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정답은 뻔하고 이미 나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기를 갖고 시대적 흐름을 잘 읽어내어 그 이념의 장벽을 걷어 치어야 하고, 비례해서 불필요한 남-남 갈등에서 해방되고, 그렇게 해방되어야만 새롭게 평화와 통일운동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계속)
                 
※ 다음 연재 글은 ‘좌고우면’ 없이 정면으로 문재인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하고자 한다. 이유는 누구보다도 문재인 정부가 촛불민심에 부응하는 ‘진짜’성공과 ‘공생·공리·공존’의 남북관계 수립에 일조하고 싶어서 그렇다. 독자들의 많은 기대를 바라고, 그 제목은 <문재인 대통령(혹은, 정부)의 ‘잘못된’인식들>이다.

 

김광수: 전 한총련(1994년, 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인제대 통일학부·부산가톨릭대 겸임교수·외래교수/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이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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