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일 오전 신년사를 발표, ‘대화와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혀 주목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은 남북관계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으며, ‘조국해방 일흔돌이 되는 올해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자!’는 ‘투쟁구호’를 제기했다.

‘제도통일’ 경계, ‘청탁놀음’ 비판

그러면서 “남조선당국은 북남사이의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는 ‘제도통일’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 상대방의 체제를 모독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동족을 모해하는 불순한 청탁놀음을 그만두어야 한다”며 “북과 남은 이미 합의한대로 조국통일문제를 사상과 제도를 초월하여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지난해 7월 7일 이례적인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북과 남에 근 70년동안이나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고 서로가 자기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조건에서 체제통일은 곧 전쟁의 길을 의미한다”면서 “북과 남은 연방연합제방식의 통일방안을 구체화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공존,공영,공리를 적극 도모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신년사에서는 최근 남측 통일준비위원회의 ‘통일헌법’ 제정 움직임 등을 ‘제도통일’로 간주하고 경계심을 드러냈으며, 유엔과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등 국제무대에서의 북한 문제 의제화 등을 ‘청탁놀음’으로 비판했다.

또한 ‘연방연합제 방식’ 통일방안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합의한 대로”, “사상과 제도를 초월”하자고 말해 6.15공동선언 2항에서 적시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에 기초한 통일방안 추구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올해 김정일 제1위원장의 신년사 중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은 역시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한 점이다.

김 1위원장은 “북남사이의 대화와 협상.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끊어진 민족적 유대와 혈맥을 잇고 북남관계에서의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며 “북과 남은 더이상 무의미한 언쟁과 별치않은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하며 북남관계의 력사를 새롭게 써나가야 한다”고 적극적 의지를 밝혔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조국통일운동에서 새로운 전진’을 언급한데 비해 올해는 ‘남북관계 대전환, 대변환’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고, ‘무의미한 언쟁’과 ‘별치않은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지 말자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지난해 고위급접촉과 개성공단 회담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김정은, ‘최고위급 회담’ 가능성 직접 언급, 통준위 제안은 무시

특히 “우리는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수 있고 부문별회담도 할수 있다고 본다”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고위급 접촉’과 ‘부문별 회담’, ‘최고위급 회담’ 모두를 열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의 대화 제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북측은 기존 고위급 회담을 남북대화의 기본틀로 여전히 상정하고 있으며, 이를 발전시켜 부문별 회담과 최고위급 회담으로 이어간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이에 비하면 통준위의 대화 제의는 광복70주년을 맞아 남북 공동 기념행사를 갖자는 이벤트성 제의가 주류를 이룬데다 북측의 통준위에 대한 기존 인식도 부정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북한 전문가는 “연말에 느닷없이 통준위가 대북 대화제의를 한 것은 전형적인 기선잡기 수준의 대화전술로 파악될 수 있다”며 “북측 입장에서는 기존 6.15남측위원회 등이 준비 중인 6.15 15주년, 광복 70주년 기념행사를 남측 정부가 가로채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고위급 회담을 위한 ‘분위기와 환경’

올해 신년사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역시 조건은 붙였지만 ‘최고위급 회담’ 가능성을 북측 당사자인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직접 언급한 점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남한 통일부 장관과 북한 통일전선부장에게 5.24조치 해제와 이산가족 생존자 전원의 생사확인 같은 결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남북 정상이 만나면 통큰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3년차에 접어든 올해가 아니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도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임기 마지막해인 2007년에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못한 경험을 남북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김 1위원장이 언급한 ‘분위기와 환경’ 마련일 것이다. 북측은 이미 상호 비방.중상 금지 문제와 군사적 대치 완화 문제 등을 제기한 바 있으며, 이번 신년사에서는 “상대방을 반대하는 전쟁연습이 벌어지는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신의있는 대화가 이루어질수 없고 북남관계가 전진할수 없다는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고 말해 한미합동 군사연습 문제를 주요하게 제기했다.

이외에도 지난해 하반기 남북관계 경색을 몰고왔던 대북 전단 문제나 통합진보당 해산이나 ‘종북몰이’와 같은 남측 내부의 색깔 공세, 국제무대에서의 ‘청탁놀음’ 등도 분위기와 환경 조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김 1위원장은 “우리는 앞으로도 대화와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전체 조선민족은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거족적운동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 올해를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놓는 일대 전환의 해로 빛내여야 한다”고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다.

병진노선 고수, “미국, 대담하게 정책전환 해야”

김 1위원장은 “우리 민족을 둘로 갈라놓고 장장 70년간 민족분렬의 고통을 들씌워온 기본장본인인 미국은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과 무분별한 침략책동에 매달리지 말고 대담하게 정책전환을 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53년 간의 쿠바 봉쇄 정책이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양국 간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김 1위원장은 지난해 국제관계를 개괄하면서 “사회주의의 보루이며 자주와 정의의 성새인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기 위한 미국의 극단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으로 하여 조선반도에서는 긴장격화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전쟁위험은 더욱 커졌다”고 평가하고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우리의 자위적인 핵억제력을 파괴하고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기도가 실현될 수 없게 되자 비열한 ‘인권’ 소동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 발간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에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등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공세가 유독 거셌다. 

김 1위원장은 특히 신년사에서 “국제무대에서 힘에 의한 강권이 판을 치고 정의와 진리가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선군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핵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억척같이 다지고 나라의 생명인 국권을 튼튼히 지켜온 것이 얼마나 정당하였는가 하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 있다”며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계속되는 한 선군정치와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은 성공할 수 없다며 핵 포기를 촉구하고 있는 미국을 향한 김 1위원장의 육성 답변인 셈이다.

물론, “적들의 책동이 계속되는 한”이라는 조건을 붙인 점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고립.압살 정책이 철회된다면 병진노선도 검토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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