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전략당 사건) 희생자인 권재혁 선생 43주기 추모제가 4일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그는 당시 보기 드물게 노동운동을 한 지식인이었다.”

4일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이른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전략당 사건) 희생자 권재혁 선생 43주기 추모제에 모인 참가자들은 고인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이같이 회고했다.

고인의 묘는 공원묘지 초입에 있는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지나 공원묘지 관리소로 들어가는 오솔길 중간에 있었다.

이날 추모제는 이형숙 추모연대 사무처장의 사회와 고인의 큰아들 권병덕 씨의 참배로 시작됐다.

고인의 약력을 소개한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던 고인이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해 12월 돌연 귀국했다”면서, 특히 고인이 “외세에 의해 분단된 나라에서 외세가 군부독재정권을 비호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다가 동지들을 규합해 노동자 조직화를 통해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전개했다”고 강조했다.

☞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이란?

1968년 7월 30일 중앙정보부는 통일혁명당 사건 수사과정에서 권재혁 씨 등 13명을 강제 연행해 3∼53일간 불법구금하고 고문과 가혹행위로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권 씨 등이 가져 오던 친목모임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남조선해방전략당으로 둔갑됐고 그해 8월 24일 간첩사건으로 발표됐다.

이들 관련자들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반공법 위반,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에서 사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권재혁 씨는 반국가단체 구성 및 수괴죄, 내란예비음모죄, 간첩죄가 적용돼 1969년 9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 두 달 만인 11월 집행됐다. 다른 연루자 이일재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988년 8·15 특사로 출옥했으며, 이강복 씨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 1971년 10월 암으로 옥중에서 사망했다.

▲ 전략당 사건 관련자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노중선 전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전략당 사건 관련자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노중선 전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추모사를 통해 “고인이 세상을 돌아가신지 43년이 지난 지금 두 개의 상반된 상황을 볼 수 있다”고 말문을 떼었다.

그는 “하나는 이렇게 우리가 권 선생님의 묘소 앞에 모여 조촐한 제사상이라도 올릴 수 있게 세상이 민주화가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참담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남북관계는 여전히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라면서 “남은 우리들이 권재혁 선생의 정신에 흠결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남민전 사건 관련자이기도 한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저는 권재혁 선생을 생전에는 뵙지 못하다가 남민전 사건 관련자이신 김병권 선생을 통해 알게 되었다”면서 “권 선생님의 삶을 보면 조직된 노동자만이 이 나라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으며, 또 지금처럼 계급해방이니 민족해방이니 하며 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치된 이 나라의 모순으로 바라보면 해결하려 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김명운 추모연대 의장은 추모사를 통해 “권재혁 선생님이 편히 대학에서 교수만 했다면 저들이 사형까지 시켰을까요?”하고 묻고는 “권재혁 선생님의 삶의 목표는 교수가 아니라 새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참세상을 만들고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하고는 “그것만이 고인의 진정한 명예회복을 이루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 고인의 장남 권병덕 씨(맨 좌측)가 유가족을 대표해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어, 유가족을 대표해서 권병덕 씨는 인사말을 통해 “염려했던 비가 내리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면서 “차가운 날씨인데도 이렇게 먼 걸음을 해주신 여러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 아버님이 바라시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날 추모제에는 권재혁 선생 유족을 비롯해 전략당 사건 관련자인 이일재․이형락 선생 유족들, 전략당 사건으로 조사를 받았던 노중선 선생, 김영옥 범민련 고문, 황만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국장, 전략당 사건을 조사했던 전명혁 위원, 권오봉 선생, '이일재 선생 추모사업회' 운영위원들, 전해투(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해고자복직투쟁 특별위원회) 회원들, 박재민 유가협 사무국장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 이날 추모제에는 권재혁 선생 유족을 비롯해 전략당 사건 관련자인 이일재․이형락 선생 유족들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한편,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이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가 ‘통일혁명당 사건’과 함께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을 ‘간첩 사건’으로 발표했지만, 별도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권재혁 등 13명을 연행해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를 통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여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진실화해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지인들 간의 친목모임을 ‘남조선해방전략당’이란 명칭과 강령을 가진 반국가단체로 확대 과장해 조작한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피고인들에 대한 검사작성 피의자 신문조서나 자술서 등은 임의성이 의심이 있는 억압적인 상태에서 작성된 것으로 판단되어 반국가단체 구성, 가입 내지 내란예비음모 등의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도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고인의 유족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09년 서울 고등법원에 재심신청을 하였으며 2011년 1월 24일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다시 대법원에 항소를 한 상태이며, 대법원은 22개월이 지나도록 이 건을 방치하고 있다.

▲ 추모제를 마치고 고인의 묘 주위로 모였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권재혁 선생의 묘비 뒤에 새겨진 고인의 약력.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수정, 6일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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