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모연대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위칭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정희 정권 때 인혁당 사형수 8명과 저의 아버지만 억울하게 사법살인 당했는 줄 알았는데, 170명이 사법살인 당했다면 그 억울한 영혼을 누가 위로해주겠습니까? 박근혜는 인혁당 8명의 사형수 유가족에게만 사과할 것이 아니라 이름도 없이 억울하고 또 억울하게 죽어간 170명의 사형수들 영혼 앞에 무릎꿇고 사과해야 합니다.”

1969년 11월 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위칭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권재혁 선생의 아들 권병덕 씨의 애타는 하소연에 학술세미나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사건 관계자들은 지난해 1월 재심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이고, 이 사건으로 유일하게 사형당한 권재혁 선생 유족이 2010년 11월 16일 대법원에 접수한 재심청구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 전략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권재혁 선생의 장남 권병덕 씨(오른쪽)가 유가족들의 삶을 증언하고 있다. 왼쪽은 전략당 사건의 전말에 대해 발표한 전명혁 동국대 연구교수.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권병덕 씨는 “정권의 눈치를 보는 대법원은 제가 뼈가 녹는 아픔으로 네 번씩이나 탄원서를 냈는데도 1년 11개월이 지나도록 꿈적도 않고 아무 반응이 없다”며 “저희 유가족들의 아픈 상처와 속타는 애절한 마음들을 생각해서 하루빨리 재심개시를 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추모연대가 12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1임시회의실에서 개최한 ‘박정희정권의 국가폭력 희생사건 재조명 학술세미나’는 처음으로 위칭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을 주제로 열린 공개토론회 자리였다.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을 ‘위칭’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실제로 남조선해방전략당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당시 중앙정보부가 고문수사를 통해 지어낸 명칭이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권재혁 선생의 유족은 물론 이일재, 이강복, 이형락, 박점출, 김봉규 선생의 유족들과 피해당사자인 노중선 전 사월혁명회 의장, 권오봉 선생 등도 참석했다.

▲ 이날 학술세미나는 전략당 사건에 관한 첫 공개 토론회 자리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전명혁 동국대 연구교수는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기 조직 사건과 국가폭력’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을 중심으로 발표에 나서 이 사건의 발생 배경과 사건 경과, 사건 내용에 대해 정리했다.

이미 진실화해위의 2009년 10월 재심 권고와 이일재, 이강복, 이형락, 김봉규 피해자의 지난해 1월 서울고등법원 재심판결을 통해 내용이 알려진 중앙정보부의 불법구금과 고문 및 가혹행위에 의한 허위진술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또한 남조선해방전략당이라는 명칭의 허구성과 조총련 및 간첩미수 사실의 조작 등도 공판조서와 항소이유서, 피해당사자 진술 등을 근거로 밝혔다.

전 교수는 “전략당 사건 관련 피해자들은 5.16이후 ‘민주사회주의동지회’와 노동운동 등을 통해 만나게 되어 ‘전국적인 노동운동조직’을 통한 민주적 사회발전을 지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며 “중앙정보부는 이 수사과정에서 권재혁, 이일재, 이강복, 이형락, 노정훈, 김봉규, 박점출, 조현창, 김병권, 오시황, 나경일, 김판홍, 노중선 등 13인을 연행하여 사람에 따라 3일~53일간 장기간 불법구금하고 고문과 가혹행위 등 강압적 상태에서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남조선해방전략당’이란 반국가단체를 구성, 가입하였다는 등의 범죄사실을 조작하였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권재혁에 대해서는 ‘남조선해방전략당’의 수괴이며, 조선노동당에 가입하고 북한공작금을 수수하였다는 점 등을 조작한 중앙정보부의 송치 의견서에 대한 뚜렷한 입증없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하여 결국 처형에 이르게 하였다”고 정리했다.

▲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왼쪽)은 전략당 사건의 노동운동사적 의미를 조명했다. 오른쪽은 국가폭력에 대해 발표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원장은 ‘전략당 사건의 노동운동사적 접근’을 주제로 토론에 나서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과 더불어 판단해야 할 지점은 이들이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모이고 활동한 부분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하는 진실의 규명”이라며 “전략당 사건의 당사자들은 노동운동, 변혁운동, 민주화운동 등 다양한 성격의 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 원장은 “이들은 5.16이후 ‘민주사회주의동지회’와 노동운동 등을 통해 만나게 되어 ‘전국적인 노동운동조직’을 통한 자주적 사회발전을 지향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며 “13인의 구속자 중에서 무려 8명이나 노동조합 관련 활동에 집중했던 것을 보아도 분명하다”고 짚었다.

또한 5.16군사쿠데타로 민주적 노동운동의 싹이 잘렸지만 “엄혹한 조건하에서 이들은 민주노조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업종, 산업별로 활동가를 배치”했으며, “활동가들은 현장에 취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며 노학연대에 따라 학생운동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특히 한국노련과 별도로 독자적인 지역연합체로서 결성된 ‘노동조합대구시연맹’에 주목, “이 연맹에 사건 관계자 중에 이일재가 조직부장, 조사통계부장으로 이형락이 활동하였으며, 나경일과 조현창은 제일모직노조 활동가로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전략당 당사자들은 그야말로 일제하에서부터 60년대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살아있는 증인이자 노동운동사의 한 흐름을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 전략당 사건 관계자로 고초를 겪었던 노중선 전 사월혁명회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호동 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토론회는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과 인재근 민주통합당 의원이 인사말을,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국가폭력을 주제로 발표를 맡았으며,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과 인혁당 사형수 신향식 선생의 부인 이영자 여사 등이 참석했다.

사건 관계자인 노중선 전 의장은 기자에게 “무죄판결이 말해주듯이 국가폭력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고문사실이나 유가족의 가슴 찢어지는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자꾸 발설하는 것은 도의상 안 되는 것 아니냐”며 “국가폭력 폭로가 아니라 국가사과를 이끌어내야 하고 당시 활동가들이 지향했던 민주운동으로서 민주화와 자주통일이라는 관점을 갖고 국가폭력을 방지하는 한편 완벽하게 과거사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토론회가 꾸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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