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0년 8월 4일
대담 : 김익흥(통일뉴스 취재부장)
사진 : 조성현(통일뉴스 사진부 기자)






분단으로 인한 고통이야 우리 민족의 구성원과 우리 민족의 장래를 생각했던 사람들 모두가 겪어야 했던 것이지만 김남식 선생은 그 분의 특수한 처지로 인해 남다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생은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의 공간에서 갖은 고초와 곡절을 겪으면서도 평생을 민족의 통일을 위해 연구하고 활동해 온 실천적인 학자이십니다. 선생은 시대가 변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특수한 관점과 일관된 논리 그리고 뛰어난 분석으로 통일문제를 연구해 왔습니다.

특히 지난 6월 남북정상의 역사적인 상봉과 6.15남북공동선언이 이루어진 지금, 분단의 체험자이자 통일문제 전문가로서 한 생을 사신 선생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최근 한반도 정세의 변화는 선생의 일관된 예측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통일뉴스 인물탐구란은 김남식 선생이 이 시기 가장 주목해야 할 대표적인 통일문제 전문가라는 이유에서 선생을 첫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8월 4일 오전 김남식 선생을 만나러 가는 날 비가 오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김남식 선생의 서재에서 인터뷰의 대강을 마친 뒤 바람이라도 쐴겸 임진각에 가서 사진 촬영과 함께 보충 대담을 나눌 작정이었다. 그런데 장마철 지난 비가 굵게 내리고 있었다. 내년 희수를 바라보는 노학자를 모시고 장대비를 무릅쓰고 멀리 나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을 하며, 찾아뵙기로 한 정시에 초인종을 눌렀다. 선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왔다.
"비가 오네. 근데 어쩌지. 손주들이 잔뜩 와서 집안에서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애. 애들이 온통 뒤집고 다니니까"
우리는 즉석에서 오전 이른 시간에 문을 열만한 레스토랑을 찾기로 하고 신촌쪽으로 향했다. 승용차 안에서부터 선생은 전날 있었던 일본 관변연구기관의 고위 관계자와의 면담 내용을 늘어 놓으신다. 자연히 차안에서부터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딸네 식구들이 올라와 함께 기거하고 있어요. 손주들의 재롱에 정신없이 지내고 있지. 바쁘지만 대한매일신문이나 해외교포들도 독자인 민주평통지 등에 기고도 하고--- 6.15선언 이후 매우 바빠졌어. 8월 11일에는 2000년 통일대축전 준비위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 발제하기로 했구. 또 어제는 일본 관변연구기관의 고위관계자가 방문해 대화를 나누었지"

- 일본 고위관계자와는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눴습니까?

"일본도 북일수교협상에 매우 적극적이래. 그 관계자에 따르면 남북의 화해, 통일 흐름에 일본이 뒤처질 수 없다는 인식이 내부에 팽배하다는 거야. 내 생각에도 조만간 북일수교에 큰 진전이 있을 것 같아"

우리는 신촌역 근처에 있는 넓고 잘 가꾸어진 현대식 찻집에 들어갔다. 우리가 인터뷰 장비를 풀고 장치하는 중에도 선생은 일본 고위관계자와의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비로소 본격적으로 인터뷰할 준비가 되었다.

 

 

 

 

 



북미간 평화협정은 불원간 이루어질 것

- 6월 평양정상회담에 이어 최근 장관급회담도 정례화되고 경의선 복원도 합의했습니다. 또 8.15때 이산가족 상봉이 있고 9월초에는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이 예정되어 있는 등 남북관계가 가히 폭풍노도처럼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공동선언이 갖는 의미와 남북관계의 향후 전망에 대해 종합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 6.15 이후 남북관계의 변화와 정세를 어떻게 보는가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어. 지금 한반도 정세의 변화는 민족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의미도 있어요.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은 이제까지 한반도의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어요. 한반도는 반세기동안 불안정한 휴전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200만 군대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지. 그리고 한미일 연합체제에 의해 북한의 붕괴를 목적으로 한 5027작전과 같은 군사훈련이 행해지고 있구. 한마디로 한반도는 국제냉전이 가장 철저하게 투영된 국제냉전체제의 전초기지였지. 그것이 조금도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상황하에서 정상회담이 열렸다는 것, 그리고 5개항에 걸치는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세계가 경탄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지. 이는 89년도 몰타에서 미소정상들이 냉전해소를 합의한 후 동서냉전체제가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제야 세계 냉전체제의 마지막 보루인 한반도에 변화가 온 걸로 봐야 해요. 따라서 이는 세계사적 대세라고 볼 수가 있지. 그러나 정상회담과 공동선언 합의가 갑자기 온 것은 사실이나 이는 민족사적 요구로부터 출발된 필연적인 현상으로서 우리는 민족사적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따라서 세계사적 대세와 민족사적 당위 이것이 결합된 것이 한반도에서의 변화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와 같은 흐름은 일시적으로 온 것이 아니고 하나의 흐름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역행할 수도 없고 멈추게 할 수도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현재 한반도 문제를 기본문제와 부차적인 문제로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지.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간의 민족내부문제와 주변국간의 관계문제 등 복합적인 이중구조로 되어 있지. 그런데 남북한 문제는 갈등과 모순 관계가 기본적으로 적대적이 아니라 상용적인 모순인데 비해 우리 민족 대 외세와의 관계는 상용적인 모순이 아니라 적대적인 모순이라고 볼 수 있어. 즉 북한과 남한과의 관계는 상용적인 모순관계이고 북한과 미국관계는 군사관계로 적대적인 모순 관계이지. 민족의 분단과 고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북미간의 군사문제야. 따라서 남북민족간에 어느 정도 화해가 이루어지더라도 북미간의 군사적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남북간의 신뢰 관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므로 북미간의 군사적 적대관계로부터 남북간의 문제해결을 위한 정상회담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북미간의 휴전상태가 평화상태로 전환해서 북미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남북관계는 순탄하게 해결될 것이야. 북미간의 평화협정을 통한 냉전체제 해소 없이 남북간의 관계발전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

- 남북관계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반도 문제, 특히 북미관계를 살펴봐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북미간의 평화협정 문제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이라면,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작년에 나온 페리프로세스에 의하면 대북정책에 대한 미 행정부의 공식적이고 단계적인 입장이 있는 것 같은데요.



"북미간의 평화협정을 통한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소는 기본적인 요소임은 틀림없어요. 북미관계는 1994년 북미합의서 체결 이후 이의 실천을 통해서 관계개선까지 하려고 했으나 98년에 미사일문제가 가시화 되고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미사일 문제만이 아니라 핵문제까지도 포괄해서 대북정책이 변화되고 있어요. 그것이 페리프로세스에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페리보고서를 보면 3단계로 되어있는데, 첫 단계가 북의 미사일 시험발사 중지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일부 완화, 두 번째 단계가 북한의 미사일과 핵개발의 영원한 중지와 북미간의 관계개선 및 관계정상화 그리고 세 번째 단계가 한반도의 냉전해소입니다. 1단계 조치는 작년에 취해 졌다고 봅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 중지선언을 하고 그에 따른 미국의 부분적인 경제제재 완화조치가 있었고 지금은 2단계로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중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방향에서 회담이 진행되고 있어요. 지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울브라이트 국무장관과 백남순 외무상과의 회담은 분명히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고위급 회담으로서, 불원간 94년도 기본합의서 실천을 위한 카트만과 김계관의 회담보다도 한 차원 높은 고위급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러한 회담이 열리면 핵과 미사일문제까지도 포함하면서 동시에 대북 경제제재 해소, 북미간 평화협정을 포괄하는 새로운 틀을 구성하는 단계로까지 진행될 것으로 봐요. 따라서 남북정상회담 직후 남북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것을 수차에 걸쳐서 김대통령이 이야기했다는 것은 결국은 평화협정도 불원간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지고 평화협정 문제는 당장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북미간의 군사적 적대관계가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순조롭게 해소되는 그러한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충분히 보입니다"

- 북미 평화협정 문제가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면 그 움직임이 있습니까? 얼마전 문명자 기자가 김정일 위원장과 인터뷰한 내용이 소개되었는데, 거기에 의하면 김용순 아태위원장이 가을에 미국을 방문해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했는데요.

"카트만은 부상급이고 김계관과 강석주도 부상급이고 따라서 북미간의 한 차원 높은 고위급 회담이라면 역시 김용순과의 회담이라고 봅니다. 이번에 울브라이트가 ARF를 위해 태국에 가기 앞서 기자회견에서 태국에 가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백남순 외무상을 만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봐서 고위급 회담으로 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봐야죠. 김용순 비서의 미국 방문과 고위급회담에서 포괄적인 협상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며 이를 통해 북미관계는 한 차원 진전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 미국의 아태지역 전략을 고려할 때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그렇게 낙관적이기만 할까요?

"클린턴의 개입 확장정책은 임기 말이라는 시점에서 매듭지어져야할 내부적인 이유가 많아요. 우선 올해 말 선거에서 민주당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 문제 처리를 더이상 미룰 수가 없어요. 또한 NMD 및 TMD정책에 대한 집착은 북한의 미사일개발 의혹을 명분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의 미사일개발 의혹의 해소와 더불어 변화되어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미국이 NMD를 위해 또다른 가상의 적을 만드는 문제와 별개로 북한과는 관계정상화의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큰 흐름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요"

- 최근에 6월 정상회담의 비화식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고 또 오늘 신문을 보니까 미국의 보수적 두뇌집단인 헤리티지 재단에서 주한 주일 미군이 주둔국으로부터 용납받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야 하며, 이를 위해 재난구호나 지뢰제거 등 비전투활동의 수행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진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보수적인 연구단체인 헤리티지 재단과 공화당 의원인 헬름스 미상원 외교위원장의 미군 지위에 대한 이야기 등을 종합해볼 때 현재 미군의 주둔명분은 사라졌으나, 당장 미국의 정책이 크게 변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미군의 지위와 역할이 달라질 것은 확실해요. 워싱턴은 주한미군의 감축, 지위변경, 일부 철수까지를 예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또한 김위원장의 발언은 미군이 나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통일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미군 주둔의 문제는 주둔국의 대통령과 여론에 의해 많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 올해 말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집권한다면 대한반도 정책에 변화가 올까요?

"부시 공화당정권이 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선거과정과 실제 정책진행과정은 다르며 주한 미군의 단계적 철수론은 그의 아버지인 부시 전대통령의 정책이었어요"

 

 

 

 

 

 



남한은 한미일 3자 공조에서 빠져 나와야

- 이제까지 주로 북미관계 특히 미의 대한반도정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은 북한에 대한 관점이나 한반도 정세를 보는 관점에서 독특한 시각과 분석 틀을 갖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항상 이른바 관변학자는 물론 다른 북한문제 전문가와도 다른 견해를 내놓곤 했습니다. 6.15선언에 대한 전반적인 선생님의 해석이 궁금합니다.

"우선 이번의 정상회담이 통일회담이라는 점, 6.15남북공동선언 역시 통일선언이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남측의 일부가 화해협력회담이나 화해협력선언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하려 해도 7.4남북공동성명의 통일 3원칙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박지원-송호경간의 회담에서 7.4남북공동선언의 통일 3원칙을 남측에서 수용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가능했지요. 7.4남북공동성명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3원칙에 근거해서 6.15공동선언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근거는 7.4공동성명입니다. 따라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 3원칙이 이번 공동선언에서 그대로 구현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사회주의, 자본주의라는 계급주의의 논리가 아니라 민족논리로 일관되어 있는 것이지요"

- 공동선언 1항에 자주원칙이라는 표현을 두고 해석이 분분한데요.

"북한은 자주에 관해 큰 문제가 없어요. 남한의 한미일 3자 공조가 문제가 됩니다. 3자 공조는 일시적으로는 순기능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북한을 압살하기 위한 역기능으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3자 공조는 북한에도 이로운 것이라고 이해 시켰다지만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녜요. 무엇보다 3자 공조의 핵심은 군사적인 동맹체제인데 아마도 북한은 이 문제를 북미, 북일 수교를 통해 풀어갈 것으로 봅니다. 이러한 한반도 문제의 기본 축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보조 축인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진이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었던 하나의 배경입니다. 남한은 통일문제에 있어서 3자 공조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 특히 제2항인 통일방안의 공통성과 합의를 두고 여러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적 요소가 있다는 6.15선언 제2항에 대해 정부나 학계의 주장을 들어보면 크게 3분류의 견해가 있어요. 첫째 북쪽이 남쪽의 연합제 방안을 수용한 것이라는 주장이고, 둘째는 연방제를 수용하되 여러 개의 지역정부를 만들자는 견해, 셋째는 공통점이 없어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서로의 입장을 감안해 윈윈방식으로서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하자고 했다는 견해예요. 그런데 내 생각엔 모두다 틀렸어요. 이번 합의는 연방제로의 통일 방안으로 합의한 것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 중요하지만 예민한 부분입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해 주시죠.

"내 주장은 연합제는 양국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통일방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나 연방제는 통일방안이예요. 따라서 둘 사이엔 공통점이 없어요. 그러나 연방제로 가기 위한 전단계로서의 연합제는 통일방안이 될 수도 있어요. 연방제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란 그 수준에 관계없이 본질은 연방제입니다. 연합제는 그 자체로는 통일방안이 될 수 없으나 연방제로 가기 위한 전단계로서 통일방안이 될 수 있어요. 앞의 세 가지 편향은 연방제를 수용했다고 주장하지는 않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사실상 연방제를 수용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연합제는 연방제로 가기 위한 방안이므로 ’연방제 방안으로 접근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연방제 방안으로 접근했다’는 방향성에서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성을 해석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양쪽 국가를 존속시키는 국가연합방식은 통일방안이 아니고 분단방안이예요. 또한 통일회담에서 영구분단을 의미하는 연합제 방안을 논의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요.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현실을 수용한 통일방안이고 연방제의 전 단계로서 남쪽의 연합제를 이해할 때 연합제 안도 통일방안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방안의 공통점이 있으며 따라서 연방제란 틀에 합의한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통일은 제도통일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민족차원의 통일은 충분히 가능해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은 쉽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 민족에게는 언어 핏줄 문화 심리상태 등의 공통점은 그대로 있어요. 지난번 평양학생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의 공연을 통해 우리는 하나다라는 것은 이미 확인된 바입니다. 제도의 통일, 제도의 공존은 민족의 동질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가능해요. 우리의 민족적 동질성은 수천년을 두고 형성되어 왔어요. 어느 민족보다 우리 민족은 민족적 동질성이 강하고, 미국처럼 제도와 이념이 같아야만 한다는 말은 우리의 특수성과 관계없는 서구적인 논리일 뿐예요. 조만간 북미 북일 관계는 개선될 겁니다. 수교 차원으로까지 발전할 거예요. 이때 남북이 두 개의 국가로 굳어질 것을 우려한 북한이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이라는 느슨한 연결고리라도 가지고 우리 민족은 하나라는 사실을 다른 나라에 보여주자는 겁니다"

- 연방제 통일방안이 체제유지에 곤란을 느끼는 북한이 더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남한내 일부 학자들의 견해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하자는 식은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연방제가 가능한 조건과 환경을 고려하면 북한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요. 예전에는 연방제는 북의 통일전선전략이라며 연방제를 반대하다가 이제는 북도 못 받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관변학자들의 말 바꾸깁니다. 7.4공동성명의 정신에 충실하다면 연방제밖엔 달리 방안이 없어요. 당장 제도를 통일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며 제도의 통일보다 민족차원의 통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양제도가 공존하면서 통일국가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 남북 양체제가 구조화되어있는 상태에서 양쪽의 체제가 이질적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회제도의 통일이 아닌 민족차원의 통일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서둘러야 하는 시급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북한과 이미 수교한 국가의 수도 많지만 최근 이태리, 호주, 필리핀과의 수교가 이루어졌으며 앞으로 미일과의 관계정상화도 될 것이며 이러한 추세는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실재하는 상황을 구조화할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서둘러야 합니다"

-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김위원장이 자신의 표현대로 은둔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남쪽 정부나 전문가, 그리고 일반인의 예상을 깨고 김위원장이 전면에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위원장이 전면에 나선 것에서 통일에 대한 그의 강한 실천의지를 엿볼 수 있어요. 특히 그가 직접 김대중 대통령을 공항 영접하는 모습은 무게가 있고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정상회담에 대한 북의 준비는 철저했고 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어요. 이는 우리 민족은 하나다, 우리는 대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특히 김위원장의 등장은 북한사회에 대한 남한의 잘못된 인식을 순식간에 무너뜨렸습니다"

- 정상회담을 통해 북의 실상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동방의 부다페스트라는 평양의 도시계획이 잘된 시가지 모습이 나오고 김위원장의 거침없는 행동과 육성이 TV를 통해 남한의 안방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이에 대해 남한 국민들이 느낀 정체성의 혼란도 큽니다. 남한에선 김정일 신드롬까지 나타났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받은 충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55년간 남북간의 긴 대결이 사람의 행동과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어요. 국민이 받은 냉전교육과 반공교육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정상회담을 통해서 확인되었다는 겁니다.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젊은 세대는 괜찮아요. 그러나 이른바 북한을 공부한 기성세대의 의식이 문제입니다. 특히 지식인들은 기존의 논리를 일시에 바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민족 화해의 분위기 속에서도 남한 일부에서는 여전히 북한과 김위원장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모든 사회를 파악할 때 그 사회의 중심가치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북한이 지키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나를 잘 아는 게 선행되어야 해요. 중심가치를 위해 부작용이나 희생 등 대가를 치른 것을 두고 비판하는 것은 전쟁을 치르면서 왜 사람을 죽이는가 라고 문제삼는 것과 같이 어불성설입니다"

- 북한바로알기의 핵심은 김위원장바로알기라 보여집니다. 최근 김위원장을 만난 김대중 대통령은 ’대화가 되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으로, 푸틴은 ’국제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완전한 현대인’이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선생님이 김위원장을 평가한다면?

"김위원장 개인에 대한 평가는 북한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계가 있어요. 북은 90년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중국조차도 북한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으며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흡수통일 붕괴론 폭격설 등으로 무너질 상황이었으나 이를 이겨낸 바 있습니다. 이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심지어 김영삼 대통령은 공공연히 통일은 예상외로 빨리 올 수도 있으니 준비하라고 했는데 94년에 합의한 경수로 지원을 지연시킨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북은 1998년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강성대국으로 들어섰으며 어려운 고비를 극복했어요. 북의 주장에 의하면 혁명전통을 지켰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켰고 또한 단군을 시조로 하는 민족사적 전통을 지켰다, 모든 것을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강성대국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앞으로 어떠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예요.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어떠한 관점에서 볼 것인가. 지도자 중심으로 봐야 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어요. 선군정치라는 군을 강화해서 혁명을 선도한다는 새로운 통치방식을 창출했어요. 이는 미사일 발사를 가능케 했고 지속된 군사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기초가 되었고 어떠한 어려움, 기아, 재해 등을 감수하면서도 미사일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결과적으로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즉 민족사적 관점에서 볼 때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탁월한 지도자라고 보아야 합니다. 특히 김위원장은 예술에 조예가 깊어요. 김위원장의 주체예술에 대한 저서와 논문 등을 볼 때, 대단한 이론가입니다. 그리고 항상 여유있는 농담 등을 잘하는데 농담은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 마찬가지로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평가나 당부의 말씀은?

"김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면 남북관계에서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가 현실화되었습니다. 재야시절에 불이익을 당하면서 공화국연합제 통일방안을 내놓았으며 그리고 그는 역사 속에서 오늘을 보려는 확고한 안목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외세와 잘 지내는 자주적 통일을 지향한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민간단체의 통일운동에 대해 지원과 여건조성을 아끼지 말라는 겁이다. 또한 통일과 관련해 미시적인 사안이나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기 보다 거시적인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6.15공동선언 이후 남한의 민간통일운동도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8.15행사도 준비가 한창입니다. 6.15선언 이후 민간통일운동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입니까?

"공동선언은 그 내용상 당국자 중심으로 실현될 수밖에 없어요. 당국이 바르게 공동선언의 정신을 잘 실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하고 또한 비판과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통일의 주체는 남북한의 온 민족이며, 올바른 통일의식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민간운동단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통일이라는 공통목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중심세력과 범국민적인 통일운동조직이 필요해요. 또한 통일운동은 민족운동이고 따라서 반통일 세력이라도 되도록이면 포섭해야 합니다. 반통일 운동은 저지하되 그야말로 대중적인 통일운동의 발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반도 정세의 커다란 방향은 북미간의 평화협정체결의 흐름이고, 남북의 상이한 체제의 공존을 전제로 해서 연방제 통일의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이를 가속화시키기 위한 거시적인 범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남로당을 종합적으로 분석, 정리한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

- 선생님의 삶과 이력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략적이나마 이야기를 해 주시죠.

"1925년 충남 논산지역에서 태어나서 봉건적이고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단 외세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집안이었지. 유교 논리의 삼강오륜은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일본학생과 함께 교육받는 과정에서 충돌이 많았고 자연히 반일 감정이 싹텄어요. 중학생때부터 반일시위를 주도하기도 했지. 중2때 계룡산에서 돌맹이에다 독립만세를 쓰면서 분을 삭혔고 졸업식날에는 유지 아들을 앞세워 시내를 돌면서 반일시위를 했어요. 전쟁이 발생하고 징용을 피하기 위해서 계룡산 속리산으로 피신생활을 하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지. 집안 친척 중 경성콤그룹 관계자가 있어 그 영향으로 남로당과 관계하게 되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약자의 편을 들라고 배웠는데 이것은 옳은 걸 옳다고 하라는 문제였지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었어. 그래서 여운형 선생이 약자를 지지하고 이를 위해서라면 공산주의도 받아들이겠다는 주장을 했을 때 전폭적으로 지지했어요. 해방공간은 애국자와 반역자 간의 투쟁이었지 좌우라는 것은 없었어. 좌우라는 말은 지지도 없고 세력도 없는 한민당과 같은 보수세력이 자신을 진보세력과 동격으로 만들기 위한 수작이었어"

- <남로당 연구>라는 역작을 쓰셨습니다. 당시 박헌영의 결정적 과오는 무엇이었습니까?

"해방후 남로당에 대한 평가가 문제시되는데 박헌영이 자주적인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서 진보적인 세력과 함께 사업을 하려고 했다면 여운형, 백남운 등과 협력해서 대중적인 사업을 해야 했으나 처음부터 공산당을 앞세우는 잘못을 범했어. 박헌영의 가장 큰 과오는 북한의 민주기지를 인정하고 현실적인 정책을 펴야 했는데 북한을 인정하지 않은 점이야. 콤그룹의 지도자로서 북한의 민주기지노선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휘하에 두려고 한 것이 가장 큰 과오였어. 합법적인 당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으므로 골방식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지. 지금도 내가 큰 보람으로 느끼는 것은 남로당에 대해 종합적으로 분석, 정리한 것을 책으로 낸 것이야. 그건 우리나라 통일사를 위해서도 잘 된 일이지"

- <남로당 연구>가 매우 큰 어려움과 우여곡절 속에서 나왔다고 보여집니다. 80년대 초반 그 책이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던 많은 학생들에게 남로당에 대한 환상을 불식시키고 운동에 대한 시각교정을 해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남로당 연구> 이후 특별한 저서나 역작이 없는데요.

"북한과 통일문제에 관한 논문 등은 많이 있지요"

- 일제시대와 분단시대를 겪으면서 어렵고 특별한 삶을 사셨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자서전을 혹시 구상하고 계신지요.

"자서전을 쓸만한 인물이 안되요. 그리고 자서전이라는 것은 솔직하게 다 밝혀야 하는 건데 현재의 여건은 그러지 못한 것 같아요. 통일이 되면 모를까 지금은 어려워.

- 저희 통일뉴스 인물탐구 란의 첫 번째 주인공이십니다. 통일뉴스에 바라는 점을 듣고 싶습니다.

"두 가지야. 하나는 장기적으로 보아야 하는 점이야. 순간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성급하게 바래서는 안되요. 또 하나는 통일뉴스가 6.15선언을 실천하는 언론이 되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주의 입장에 서야 해. 6.15정신은 민족주의이니까 통일뉴스 하면 민족주의가 떠오를 수 있으면 좋겠어"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6.15선언은 통일대헌장이라 할 만해요. 5개항 합의에 대해 남북 당국간의 인식의 차이가 있고 좁히려고 하겠지만 자주나 통일 방안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야. 그렇다고 통일운동진영이 이 차이를 크게 봐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되며 한반도 정세를 종합해서 대응해야 해요. 6.15선언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통일교육을 잘 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크게 상실된 민족의식, 애족의식을 먼저 심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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