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현 (<민족21> 대표, 국민대 겸임교수)


지난 달 북한의 ‘은하 3호’ 로켓 발사와 대남 보복 위협으로 조성된 한반도의 위기국면이 완화되고 있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4월 13일 국제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은하 3호’ 로켓을 발사한 북한이 정세 완화를 위한 잇단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선 북한은 자주권 보장을 전제로 ‘평화’를 강조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 경축 열병식에 참석해 한 첫 공개연설이 주목된다. 김정은 제1비서는 첫 연설에서 “우리가 선군조선의 존엄을 만대에 빛내이고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위업을 성과적으로 실현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민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선군사상을 강조했다. 선군노선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이러한 발언과 북한의 로켓 발사 등을 거론하며 김정은시대에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북한이 선군노선을 포기해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북한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자주’와 ‘선군’의 계승을 표방하면서 ‘지식경제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김정은시대의 정책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김정은 제1비서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3세대 구상대로 ‘지식경제강국’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정세가 안정돼야 한다. 김정은 제1비서도 첫 연설에서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총적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에 있어서 평화는 더없이 귀중하다”라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그는 “우리에게는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이 더 귀중하다”라고 발언해 북한의 자주권 보장을 전제로 제시했다. 위성발사 등 우주개발계획이 ‘자주권’에 해당된다는 기존의 주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의 ‘평화’ 발언은 전제를 달았지만 주변국의 대응에 따라서 유연한 정책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북한은 유엔안보리가 로켓 발사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대북제재를 강화한 의장성명을 채택했지만, 내부적으로 올해를 완료시점으로 추진해온 경제성과 달성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김정은 제1비서가 첫 연설에서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총적 목표”로 내세웠다는 점이 주목된다. 최근 김정은 제1비서를 비롯해 최영림 총리,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잇달아 경제건설 현장을 찾아 현지지도 및 현지요해에 나서는 것도 이러한 목표와 관련이 있다.

지난 4월 25일은 북한 인민군 창건 8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김정은 제1비서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최룡해 군총정치국장,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인민무력부장,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경희 당 비서 등 당.정.군의 주요지도자를과 함께 군부대가 아닌 만수교 고기상점 준공식에 참여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보통문거리 고기상점에 이어 두 번째로 평양에 건설된 고기상점으로, 김정은 제1비서의 주도로 군인 건설자들이 지은 것이다. 같은 날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겸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평양 김형직사범대학 개건보수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현지 요해’를 했다.

인민군 창건일에, 그것도 이른바 ‘꺽어지는 해’인 80주년에 당.정.군의 고위간부들이 군부대가 아닌 경제 건설 현장을 방문한 것은 최근 정세를 파악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4월 19일부터 북한이 최고사령부 이름으로 연이어 대남 보복을 위협하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흐름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북한은 ‘은하 3호’ 로켓 발사 발표이후 중단된 북중대화를 재개했다. 지난 4월 21~24일 김영일 노동당 비서는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다이빙궈 국무위원, 왕자루이 부장 등 중국 주요인사와 만나 한반도 정세를 논의했다. 특히 김영일 비서가 후진타오 주석을 직접 만났다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의 핵실험 등 북중 간의 현안에 일정한 합의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의 이러한 행보는 3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해외언론의 보도와는 다른 기류를 보여준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4월 13일 ‘은하 3호’ 로켓에 인공위성 ‘광명성 3호’를 탑재해 발사했고, 사흘 후 유엔안보리는 북한의 로켓 발사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대북제재를 강화한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2006년과 2009년 북한의 미사일 및 로켓 발사와 핵실험 때처럼 북한 미사일 발사→안보리 조치→북핵 실험→안보리 조치의 패턴이 이번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예측해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기정사실화 했다. 일부 해외언론에서는 핵실험 시점이 1~2주 안이라는 구체적 시점까지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이 1,2차 핵실험 때 사전에 핵실험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핵실험을 단정할 근거는 없다. 북한은 2006년에 핵실험 계획을 발표한 뒤 6일만에, 2009년에는 핵실험을 예고한 뒤 26일 만에 핵실험을 했다. 이번에도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미리 예고를 할 것이다. 미국과 남측 정부도 아직까지 핵실험의 구체적인 징후는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앞서 언급했듯이 4월 16일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이 나온 후 보이고 있는 북한의 움직임은 핵실험보다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고, 그것은 김정은 제1비서의 첫 단독 방중이 유력해 보인다.

북한은 6일 “우리는 자위적인 핵 억제력에 기초해 우주개발과 핵동력공업 발전을 추진하면서 강성국가를 보란 듯이 건설할 것”이라고 밝혀 로켓 발사와 경수로 건설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렇다고 북한이 실익이 없는 핵실험을 당장 감행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스스로 ‘핵 억제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만 더욱 촉진하고, ‘강성국가’ 건설에 필요한 북중경협과 외자유치에 결정적으로 장애가 될 3차 핵실험을 할 이유가 적은 것이다. 2006년과 2009년과 달리 3차 핵실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대화에 나올 것 같지도 않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도발과 보상이 반복되는 대북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 언론에 따르면 ‘인민경제 향상’과 ‘중국과의 전통적인 연대 강화’, ‘우주개발과 핵동력공업 발전’은 모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다. 현 시점에서 동시 추진이 어려워 보이는 이들 유훈 중 김정은 제1비서가 어떤 선택을 할 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핵실험보다 김정은 제1비서의 방중을 선택할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북한이 5월 중순 제15차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를 예정대로 개최하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인도네시아.싱가포르 방문에 나서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정은 제1비서의 방중은 한반도 정세를 대결에서 다시 대화국면으로 돌리고, 북미간 ‘2.29합의’를 복원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명분’보다 ‘실리’를 선택하길 기대해 본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한신대, 방송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했다.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연재를 담당했다.

KBS "현대사 다큐멘터리 극장",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등의 방송프로그램에 자문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부.국가기록원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한국현대사』(1~4),『한국역사』,『한국역사입문』등의 집필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 『곁에서 본 김정일』,『인물로 본 북한현대사』,『변화하는 북한 변하지 않는 북한』,『북한사회 깊이 읽기』,『북녁의 사회와 생활』,『CEO of DPRK 김정일』,『KIM JONG IL of NORTH KOREA』,『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등을 출간했다.

공저로 『발굴자료로 쓴 한국현대사』,『실록 박정희』,『WWW.한국현대사.com』,『남북정상회담600일』,『朝鮮半島のいちばん長い日』, 『박병엽증언록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박병엽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등이 있다.

현재 (주)이제이컨설팅 대표, 국민대 교양과정부 겸임교수,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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