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 사이에 ‘2.29합의’가 발표되자 남측이 난처해졌습니다. 그간 남북·미를 둘러싸고 남북 간, 북·미 간에 대화다운 대화가 없었습니다. 지난해 초부터 남측은 북측의 ‘무조건 대화 제의’를 일축해 왔으며, 북한과 미국이 대화와 갈등 사이를 오락가락할 때 갈등을 조장하거나 일방적으로 미국 편을 든 면이 있었습니다. 남측이 남북대화를 거부하거나 북·미대화를 훼방 놓고 있던 셈인데, 이번 2.29합의를 계기로 북·미가 지속적인 회담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러니 지금 남측의 처지는 딱하다 못해 참 안됐지만 업보(業報)이기도 합니다.

북·미 2.29합의에 대해 지난 2일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북한 당국이 비핵화를 위한 제3차 미·북합의에 이어 우리의 대화 제의에 조속히 호응해 나올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말했지만 왠지 공허합니다. 원님 행차 뒤 나발 부는 격입니다. 늘 이래 왔습니다. ‘파격성’ 있게 할 일을 ‘유연성’만으로 대처하고자 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그 유연성마저 동력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어차피 남측이 북측과 대화를 하지 않으려면 ‘숨만 쉬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북·미대화가 성사된 이상 남측이 대북 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류우익 통일장관이 지난해 취임 초부터 ‘유연한 대북정책’을 노래 불렀지만, 연말에 북측이 조문방북을 문제 삼으며 ‘이명박 정부와의 상종 불가’를 재천명하자 ‘유연성’은 한방에 날라 가 버렸습니다. 게다가 최근 상황이 꼬이기까지 했습니다. 인천의 한 군부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에 전투 구호를 붙인 것을 놓고 북한이 ‘최고 존엄 모독’이라며 연일 대남 공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한은 4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최고 존엄 모독’과 관련 “조선반도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처럼 발악해온 이명박 역적패당은 최근 조미(북·미)회담이 진전될 기미가 나타나자 그를 역전시켜 저들의 잔명을 유지해보려고 최후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이 담화에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색채가 농후합니다. 이정도면 백약이 무효일 듯싶습니다. 다만 어느 유행가 가사마냥 시간이 약이겠지요. 이제 하릴없이 북측의 아량을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게 그토록 남측이 해보고 싶었던 ‘기다리는 전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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