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 스티브 엘러 베네수엘라 오리엔테 대학 교수
번역 :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출처 : Latin American Perspectives 2012년 1월 17일자

이 글은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라틴아메리카의 실정과 조건에 맞게 정치적으로는 민중참여, 경제적으로는 혼합경제, 사회적으로는 서민복지, 문화적으로는 민족정체성, 대외적으로는 대미자주를 강력히 추진하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정부의 담론과 정책을 평가한 것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통해 진보적 정권교체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한국 진보세력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논문이기에 독자들께서 ‘귤화위지(橘化爲枳)’(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의 지혜로 일독하시길 권한다. / 번역자 주

대다수 정치학자들은 베네수엘라의 후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정부를 그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같은 범주에 놓는다. 2008년 <좌파를 넘어>(Leftovers) 발행 시작으로 좌파 비평가들은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 같이 온건한 '좋은 좌파'와 구별해 위 3인의 대통령을 '포퓰리스트 좌파'로 분류하는 한계를 보였다.

이 책의 공동편집자인 호르헤 카스타네다와 마르코 모랄레스에 따르면, 포퓰리스트 좌파들의 뚜렷한 특징은 이념적 실체를 결여한 급진적 담론, 민주주의제도에 대한 홀시, 대단히 권위주의적인 성향, 그리고 자기 나라의 경제적 이익에 정치적 배당금을 노리는 미국 비난 등이다.

그러나 오랜 정치 분석가이자 활동가인 마르타 하네커는 이와 다른 정치적 시각에서 3인의 대통령을 라틴아메리카 '신좌파'의 출현으로 표현했다. 하네커는, '신좌파'를 3인 대통령이 채택한 "21세기 사회주의"와 관련지었다. 두 개념이 모호하고 과도기적 성격 규정임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세 정부의 추진력에 대한 이 같은 표현은, 새로운 국제변혁운동을 추구하는 '제5인터내셔널'의 창설을 위해 2009년 후반기 차베스 대통령이 명명한 것이다. 이전의 제4인터내셔널의 전통과 단절하고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새로운 유형의 경험을 분석,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의 개발은 여야의 많은 좌파들이 수사학 이상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새로운 좌파가 어떻게 새로워질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폭넓은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온건한 정치, 급진적 사회경제

세 정부의 하나의 특징은, 대통령 발의의 제헌의회 선거를 거쳤으며 이 온건한 정치무대가 보다 급진적 사회경제정책 실시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세 정부는 압도적 다수의 유권자들과 의회 다수당을 기반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장기적 개혁 목표를 실현하는 민주적인 길을 걷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 글이 검토할 또 다른 특징은, 경제적 생산성과에 대한 사회적 참여와 협동, 맑스주의 계급개념의 수정, 경제(소유)관계의 다양화, 자유민주주의 보다 급진적 민주주의 선호, 그리고 국가적 상징 기념 등이다.

이 글은 세 정부의 경험을 중남미의 다른 이념, 다른 나라와 구별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가령 카스타네다는 네스또르 까를로스 키르츠네르와 크리스티나 키르츠네르 페르난데스의 아르헨티나 정부를 '포퓰리스트 좌파'로 분류하며, 그들의 담론과 정책은 차베스와 모랄레스의 그 것 만큼이나 무책임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분류가 과연 정확한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정부의 독특한 성격을 살펴보면서 점검할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특징과 접근에 대한 이 글의 분석은 세 나라의 공산당과 트로츠키그룹 같은 전통적인 좌파의 비판적 입장도 다룰 것이다. 세 나라와 쿠바가 가까운 관계이며 궁극적으로 쿠바모델을 복제할 것이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두 가지 국제환경의 두 가지 사회주의 경로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밝힐 것이다.

▲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오른쪽)과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

1. 급진적 민주주의 모델


하나의 독특한 특징은 유권자의 높은 투표율로 표현되는 정당의 예선과 본 선거, 그리고 국민투표라는 빈번한 선거제도이다. 진보세력은 간혹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 승리를 기록했다.

빈번한 선거, 유권자의 높은 지지

예를 들어 1999년 4월 베네수엘라 유권자의 88%가 정부 발의의 국민투표를 통해 제헌의회를 비준했다. 2007년 12월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이 나라 현대 민주주의 시대의 대통령후보 가운데 가장 높은 63% 지지율로 차베스를 재 선출했다. 비슷하게 2009년 12월 모랄레스도 재선 도전에서 64%의 지지를 받았으며 그의 지지자들은 의회 양원에서 전례 없는 2/3 의석을 확보했다.

차베스와 모랄레스는 또한 국민소환 투표에서도 각각 58%와 67%의 지지를 받아 승리했다. 결국 세 나라에서 압도적 다수의 유권자들은 정부의 주요 적들이 반대하는 새 헌법을 승인했다. 세 나라의 대다수 유권자들은, 1970년 36% 지지로 집권한 칠레 살바도르 아옌데, 2006년 38% 지지로 대통령에 복귀한 니콰라과의 산디니스타 출신 다니엘 오르테가 같은 다른 좌파 대통령 보다 세 대통령에게 급진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나라 모두 첨예한 정치적 긴장과 극단적인 갈등에 직면해 정권의 합법성을 인정받는 수단으로 잦은 선거 전략을 구사했는데, 이는 매우 위험했다. 모든 패배는 승복하지 않는 야당들에게 대정부 투쟁의 출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정부세력 관용

세 나라 정치생활의 다른 특징은, 반대세력이 독재 치하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정부를 비난해도 강력히 억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 나라의 예리한 정치투쟁의 배경인 정당 간의 경쟁관계도, 제3세계의 연약한 민주주의의 일부이지만 불충의 야당에게 전통적으로 낮은 수준의 관용을 보인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정부 반대파는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불충의 반대세력"의 대명사이다. 반대파는 정부 주도를 실제 지지하지 않고 권위주의라고 비난함으로써 정권의 정당성을 효과적으로 부정하려 했다.

더구나 일부 반대세력은 중요 시점에 다른 반대세력이 제 때 말리지 못한 폭력행위에 연루되었다. 베네수엘라에서 2004년 야당 지도자들이 반정부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라 꾸아림바(la guarimba)” 라 불리는 도시폭동을 공공연하게 주창했다. 볼리비아에서는 2008년 여러 주지사들과 결탁한 준 군사그룹이 친정부 시위대를 공격했고 브라질 행 가스파이프라인을 끊었으며 동부 저지대의 관공서를 파괴했다.

세 정부의 또 다른 특징은, 급진적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첫째, 급진적 민주주의는 사회적 협동과 직접 참여를 강조한다. 반대로 자유민주주의는 엘리트와 동의어로 자주 사용되는 소수의 우선권을 고려하고 견제와 균형과 분산의 시스템을 장려한다. 이 두 가지의 색다른 패러다임 고집이 심각한 갈등을 초래했고, 야당들이 세 정부의 민주주의 자격을 시비하는 이유가 되었다.

급진적 민주주의는 사회협동과 직접 참여, 자유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이 두 가지 접근법의 차이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급진적 민주주의는 모든 문제를 과반수로 결정하는 다수 지배의 원칙을 적용했다. 그에 반해 자유민주주의 옹호자들은 소수자 권리를 배려해 중요사안을 여야합의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세 나라의 야당들은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이전 체제에서 실시해왔던 "복잡한" 민주주의 모델을 선호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들은 합법성을 위해 50% 보다 훨씬 높은 찬성률을 요구했다.

두 개념의 충돌이 2006년 볼리비아 제헌의회에서 일어났는데, 야당이 헌법 개정의 일괄 승인만이 아니라 각 조항에 대해서도 2/3 이상의 찬성을 요구했던 것이다. 모랄레스 사회주의 운동당(MAS)은 7개월의 저항 끝에 소수자에게 거부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2/3 의결방식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랄레스 사회주의운동(MAS)은 2007년 12월 헌법을 비준하기 위해 전체 대의원의 과반수, 즉 단순 다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 날 참석자의 2/3 찬성을 얻으려고 주요 2개 야당의 보이콧을 역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주요 야당을 대표하는 호르헤 키로가(Jorge Quiroga) 전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폭력사태가 일어나는 그 당시에 '국가망신'이라 비판했다.

에콰도르에서 코레아 대통령도, 헌법 각 조항에 대한 의사결정은 의미 있는 개혁을 방해하는 66% 이상이 아니라 제헌 의원들의 단순 다수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야당은 차베스가 대법원 판사 임명동의안을 대의원 2/3가 아니라 과반수의 찬성으로 처리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의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거칠게 비난했다.

세 나라의 헌법에 명시된 국민소환제도 역시 급진적 민주주의의 기본 구성요소인 다수의 지배 원리의 연장선에 있다.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국민소환투표는, 정치적 분열갈등의 현장을 거리에서 선거로 이동시켜 위기를 수습하는 효과적인 메커니즘으로 증명되었다.

2004년 8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국민소환 투표는 2002년 쿠데타로 회귀하는 긴장을 제거하는 데 기여했고 수년간 상대적인 정치안정을 가져왔다. 볼리비아 모랄레스도 2008년 8월 국민소환투표라는 반란에 직면해 서로 상처 주고 갈등을 조장하는 몇몇 기득권자들에 대한 국민 다수의 반대를 호소한 바 있다.

많은 정치 분석자들은 물론, 세 나라의 야당들도 자유민주주의 논리에 좌우되어 국민투표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이 모델에 의하면 국가 집행구조는 야당의 개입 없이 자체 의제에 따라 형성되고 대중이 그 찬반을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에서 야당들이 차베스가 제안한 헌법 개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절절하게 호소했다. 69개 헌법 개정 조항의 대부분이, 국민투표를 통해 한꺼번에 처리될 게 아니라 의회에서 개별적으로 심의되는 법률과 연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콰도르에서도 야당들과 일부 정치 분석가들은 국민투표 민주주의를 조장하는 코레아를 비난했다. 그 근거는 코레아가 2007년 4월 새 헌법 제정을 자신의 신임투표 성격으로 만들고 패배하면 집에 가겠다고 협박하면서 국민투표에 부쳤다는 것이다.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대중 동원과 참여

둘째,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대중 동원과 참여가 급진적 민주주의의 기본 특징이며 세 대통령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체이다. 사회운동의 항의시위를 통해 모랄레스와 코레아(아르헨티나의 네스또르 키르츠네르는 말 할 것도 없고)는 권력 강화의 길을 닦았다.

에콰도르에서 강력한 원주민운동단체(CONAIE)와 기타 사회운동들의 코레아 후보 지지가 2006년 대통령 결선 승리를 가져왔다. 베네수엘라에서도 2002년 4월 13일 수많은 빈민들의 결집을 통해 차베스가 쫓겨난 지 이틀 만에 대통령에 복귀할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모두 정부 지지자들의 동원은 야당들의 반란에 직면해 질서를 회복하는 수단으로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2002년 4월 쿠데타가 일어날 당시 차베스 지지자들의 카라카스 시내 운집은 폭력적인 반정부 세력과 대통령궁 사이의 완충역할을 했다. 그 해 12월에 시작된 2개월 총파업 기간에도 주변 지역사회 구성원들로 편성된 조직이 석유 침탈을 막아냈다. 볼리비아의 농민들과 광부들은, 새 헌법 제정 최종 투표를 코앞에 두고 준군사조직의 위협에 처한 제헌의회 의원들의 안전을 위해 수크레시에 집결했다. 2010년 9월 30일 수천 명의 에콰도르 국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코레아 대통령을 사실상 납치한 쿠데타 반란군 부대를 저지했다.

협동과 참여, 견제와 균형을 결합시키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셋째, 차베스, 모랄레스, 코레아는, 그들의 정부가 과거의 자유민주주의를 뒷받침 하는 견제와 균형은 물론, 협동체제의 운용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들이다. 또한, 세 정부는 협동조합과 정당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 특권층의 결합과 직접 참여를 추진하고, 의사결정에 엘리트를 투입하는 몇몇 좌파정당들의 오랜 관행과 단절했다.

이러한 노선에 따라 세 나라 정치지도자들은 레닌 정당 모델을 거부하고 그 대신, 볼리비아 부통령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의 말 대로, "좀 더 유연하고 유동적인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넷째, 여당은 정부에 대한 견제장치로서의 영향력, 정치력, 독립성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의 여당인 통합사회주의당(PSUV)는 주로 내각의 장관들에 의한 지엽적 수준, 주지사들과 시장들에 의한 지방적 수준에서 개입하고 있을 뿐이다. 코레아의 정치조직, 2006년 대선을 앞두고 약12개 그룹에 의해 설립된 '애국동맹'(PAIS)도 신중한 권력을 휘두르기에는 너무 다양하고 이질적이다.

일부 정부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일반국민들과 교류하고 밑으로부터의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수정 보완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경영진의 막강한 지위와 역할을 정당화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지방 분권과 자치의 기치를 들고 권력의 집중에 맞서왔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정치모델은 공산주의 국가, 사회민주주의 국가와 분명히 다른 길을 걷는다. 세 나라에서 성공하고 있는 선거 민주주의와 정당 경쟁은 소련이나 중국 같은 기존 사회주의의 정치제도와 다르다. 이 세 나라에는 레닌주의자들의 전통에 입각한 일사 분란한 정당, 집권 전후 센터 역할을 하는 어떤 형태의 강력한 정당도 없다.

기존 사회주의와도, 사회민주주의와도 다른 정치모델

또한 세 나라 집권 좌파들의 투쟁이론, 정치적 갈등의 지속 정도, 첨예한 사회정치적 양극화, 확고한 급진주의는, 민주사회주의 정당들에 의해 운영되는 유럽과 아프리카 나라들과도 많은 측면에서 동일하지 않다. 사회프로그램 참여와 정부의 지도력을 지지하는 대중의 대규모 정치적 동원은 여타 중남미 국가들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급진적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결합된 이 신흥 혼혈 모델은 여러 가지로 독특하다. 국민투표, 정당 예비선거, 빈번한 선거, 협동조합 등 공동체조직의 공공일자리 프로젝트, 국가 정치생활에의 사회운동의 적극적 역할, 직접 참여를 촉진하고 과거의 대의민주주의를 억제하는 국가의 강력 지원과 공식 담론 등이 급진적 민주주의의 특징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낡은 시스템은 아직 해체되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선출된 지방정부를 지역주민공동체가 대신한다고 하지만, 각 분야의 대의기관이 세 나라에 그대로 남아 있다.

2. 급진화 과정

첫 번째 대통령 당선을 위한 차베스, 모랄레스, 코레아의 선거 공약은 장기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덜 강조하고 보다 온건한 목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의 주요 캠페인 제안은 민중 참여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위한 제헌의회 소집이었다. 예를 들어 차베스는 1998년 대선에서 외채문제에 대해 협상을 통한 해결을 주문해 일방적 파산선언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혔다.

모랄레스는 2005년 대선 이전 시기-사회주의운동당(MAS)이 등장해 자신의 지역기반인 북부 코차밤바에서 벗어나 세력을 확대할 시기-1990년대 사회운동이 공식화했던 코카 재배와 탄화수소 국유화라는 급진적 요구를 내세웠다. 그러나 대통령 모랄레스와 부통령 가르시아 리네라가 "공동체 사회주의'를 표방하기 전에는 "안데스 사람들의 자본주의"를 옹호했다.

코레아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콜롬비아의 인권침해를 비판했지만 콜롬비아 혁명 게릴라의 체포와 그 나라 당국으로의 인계를 약속했다. 비록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친구이지만 차베스의 볼리비안 운동에 대한 추종을 부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에콰도르 경제의 달러화를 비판했지만, 시스템의 변화를 실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세 대통령은 점진적이지만 꾸준한 급진주의를 추구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합의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결합시킨 일종의 양보와 타협으로 결코 회귀하지 않았다. 세 대통령이 모두 권력의 통합과 정치적 경제적 혁신을 위한 초기 헌법 제정을 광범위한 민중의 판단에 맡겼다.

선거 승리를 급진화의 계기로

일반적으로 대통령들은 매개 정치적 승리로 창출되는 계기를 이용하여 변화과정을 심화시키고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들 역시 선거승리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민중들의 명령으로 해석했다.

베네수엘라에서 2001년 차베스의 토지개혁, 석유산업 국가통제와 관련한 입법화, 2005년 개인재산에 대한 재정의, 2007~2008년 전략부문의 기업 몰수는 더 급진적인 단계를 위한 무대를 깔아놓은 것이다.

모랄레스는 취임한지 불과 몇 개월 안에 놀라운 대립상황에서도 새로운 국유화 법률을 받아들이도록 외국인회사를 압박하기 위해 56개 천연가스 시설과 2개 주요 정유기관을 인수하라고 군대에 명령했다. 코레아는 대선 이후 몇 개월 안에 의회 해산을 주장하고 전통적 정치엘리트를 대표하는 의회 다수파와 충돌하게 됨으로써 제헌의회 제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급진화했다.

초기 온건주의가 점차 급진주의로 이동하는 동력은, 공산당이 맑스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목표를 가지고 집권했던 소련, 중국과 다르다. 또 급진주의가 혁명 초기 3년 동안 가속도로 일어났던 쿠바와도 다르다.

진보집권세력은 반신자유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권력의 미래가 과거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할 잘 정돈된 프로그램을 갖지 못한 보수야당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섰다. 정부와 그 반대파인 보수 세력을 차별화하는 가장 큰 이슈는 민영화 관련이었다. 진보집권세력은 민영화 계획을 대대적으로 중단하여 반신자유주의를 입증하는 데, 반대파 주요 야당들은 이 주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거나 전혀 입장이 없었다.

좌우 구별의 요체는 민영화에 대한 태도

진보정권의 우측에 있는 모든 정당들은 민영화 철회를 사실상 비판하는 데 집중했고 이로 인해 조성된 정치적 양극화는 국유화조치에 대한 비판적 지지, 중도 좌파적 시각을 배제했다. 정치적 다양성 가운데 좌측 공간을 축소해 야당 측에 상처를 준 것이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에서 MAS, Causa R, Podemos 같은 이전 좌파정당들은 반 차베스 진영 안에 나머지 중도 및 보수 야당들과 뒤섞여 뚜렷한 독자노선을 포기했다. 이와 비슷하게 에콰도르에서도, 2006년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코레아를 지지했던 사민주의 성향의 '좌파민주당(ID)은 그의 연임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야당들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세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접근은 국가를 부르조아의 도구로 간주하고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추구하는 극좌파 정치 활동가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세 정부와 그 좌쪽 비판세력 사이의 충돌은 새로운 진보집권의 특성을 보여준다.

세 정부의 지지자들은 진보세력의 늘어나는 공공 일자리를 근거로 그람시의 '진지전'에 따f른 국가의 점진적 변화를 생각하고 있다. 이 전략에 의해 진보세력은 공공행동의 활동가 들 존재와 국가에 끊임없이 붙어 다니는 내부 모순을 이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트로츠키 신봉자 등 교조적인 맑스주의자들은, 은행, 대토지, 독점기업을 몰수한 시점에 '국가의 소멸'의 필요성을 제기한 레닌의 교시를 거론한다. 또한 공산주의자들과 다른 전통적 좌파들은 이전 세기 좌파들의 투쟁의 전취물을 무시하는 "21세기 사회주의" 개념에 비판적이다.

관료주의 특권을 뿌리 뽑는 '혁명 안의 혁명'

또한 세 정부의 좌측에 있는 일부 비평가들은 무정부주의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자발적인 사회운동과 일반 서민들로 구성되어 있는 제헌 권력은, '정치적 계급'만이 아니라 그대로국가 관료를 상징하는 '구성 권력'과 불가피하게 충돌하게 된다. 이는 관료주의 특권을 뿌리 뽑는 '혁명 안의 혁명'을 요구한다.

이 입장은 지역공동체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토착 원주민운동에서 그 예를 찾는데, 이들 원주민운동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대규모 광산 개발을 추진하는 모랄레스와 코레아의 시도에 저항했다.

또 일부 사회운동은 집권 좌파의 선거 전략과 배치되는 '정체성 정치'를 강조한다. 문화적 정체성을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원주민 지도자들 중에는, 모랄레스의 코카 생산 제한조치를 맹렬히 반대했고 자격을 제대로 갖춘 국유화를 주장했던 볼리비아 대통령 후보, 펠리페 퀴스페도 있다.

교조적인 맑스주의자, 신 무정부주의자들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왼쪽에 있어 세 대통령과 그들의 지지자들의 독특하고 이색적인 특징이 더 잘 입증된다. 변화를 거부하는 관료들이 국가영역을 대표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으나, 더 왼쪽에 있는 정치 활동가들이 주창하는 중국 문화대혁명 노선 같은 대대적인 숙정작업에 돌입하지는 않는다. 세 대통령의 지도력은 매우 폭넓고 다양한 운동을 생성시키고 있음에도 그 전체의 통일단결과 수평적 수직적 소통을 잘 하고 있다.

3. 외교관계

'다극화세계'를 지향하는 세 정부의 전략은 여러 가지 점에서 비슷하고 20세기 사회주의 정부들의 대외정책과는 다르다. 다극화세계라는 문구는 차베스가 대통령을 시작하면서 반제국주의와 미국지배 반대의 완곡한 어법으로 주창했다.

이 개념은,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의 OPEC(석유수출기구), 코레아가 2009년 이 기구 창립 이후 대통령이 되었던 UNASUR(남미국가연합) 같은, 상호 이익을 위한 또 다른 국가연합을 강화하자는 의미다. 이와 같이 다양성에 기초한 단결 전략은, 남반구 국가들을 공통의 목표와 요구를 중심으로 묶어내기 위해 민족, 종교, 정치의 차이를 초월해 1960년대 초 시작된 티토, 네루, 나세르, 은크루마 주도의 비동맹운동을 복원하고 있다.

ALBA와 CELAC ; 진보 블록과 중남미 통합의 이중 접근

본질적으로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는 '아메리카 인민을 위한 볼리비안 대안(ALBA)'으로 자기 나라들을 스스로 단결시키는 동시에 넓은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통합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중 접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나라의 전략은, 가장 가까운 공산주의 동맹국들과 '민족해방'을 표방하는 반제 민족주의 성향의 제3세계를 구별했던 냉전시대 소련의 대외정책과 구별된다.

또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대통령들은 자신들을 반자본주의자로 규정해 미국과 자주 충돌하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파라과이 등의 온건 정부와 함께 행동한다. 21세기 초반은 냉전시대의 첨예한 대치상황과 다르고 중남미의 대미 자주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그래서 급진적인 중남미 나라들도 1960년대 쿠바의 고립적 상황과는 다르게 온건 국가들과 긴밀한 유대를 가질 수 있다. 차베스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파라과이의 지도자들 같은 온건주의자들에 대해 증언했듯이, 60년대 쿠바는 중남미 전역의 게릴라 전쟁노선을 지지해 아르헨티나의 아르투로 프론디시 같은 온건 대통령들을 제압하거나 중립화시킬 가능성을 잃었다. 이렇게 지난 세기 라틴아메리카는 최근 몇 년처럼 통합되지 못했다.

다극화시대 대외전략 ; 자주성에 기초한 다양성

첫째, 온건 정부들은 급진 국가들의 불안정과 고립을 함께 극복하기 위해 비교적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예를 들어 브라질,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이 위협받더라도 2006년 모랄레스의 탄화수소 산업 국유화로 인한 첨예한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중재에 나섰다. 그 후, 남미국가연합(UNASUR)의 모든 회원국들이 통화협정에 서명했고, 이 통화선언은 2008년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막아냈으며, 2년 후 에콰도르가 쿠데타 시도에 직면해서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둘째, 급진적 입장은 오히려 온건한 입장의 단점을 보완했다. 예를 들어 2009년 6월의 온두라스 쿠데타 이후 1년 6개월 동안, 남미국가연합(UNASUR)의 온건 국가와 급진 국가는 이 새로운 정권의 미주기구(OAS) 가입을 막았다. 온건 국가들이 가입 조건을 내걸고 급진 국가들이 새 정권의 합법성을 물었다.

셋째, 라틴아메리카 통합 움직임은 급진 대통령들과 온건 대통령들로 하여금 남미국가연합과 그의 더 폭넓은 계승인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국가들의 공동체‘(CELAC)에서 공동 관심사를 둘러싸고 중도 대통령들과 함께 하도록 만들었다.

세 대통령의 외교정책 담론과 내용은 세계화 추세 속에서 다듬어졌다. 그들은 반세기 전의 모택동주의의 특징인 절대적인 자급자족과 자립경제의 목표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 아메리카 인민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과 '뻬뜨로까리베'(Petrocaribe=베네수엘라 석유를 카리브와 중앙아메리카 나라들에 값싸게 제공하는 조약) 프로그램은 바로 이러한 노선에 따른 것이다.

더구나 세 대통령은 국유화를 열렬히 주장했음에도 세계화 압력으로 국제정책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 예를 들어 차베스는 외채 상환 중지나 국제통화기금(IMF) 탈퇴를 감행하지 못했으며, 최근 라틴아메리카 좌파 연구 편집자에 의하면, 모랄레스도 미국시장 접근정책을 유지했다. 이러한 전략, 정책, 담론의 추진력은 스탈린시대 소련의 지도력으로 옹호되었던 '일국사회주의' 이론과는 배치된다.

4. 담론과 비전

2005년 이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지도자들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공통적인 개념을 주창했다. 2009년 1월 볼리비아 신헌법의 비준에 따라 모랄레스는 지역자율성을 명문화한 '공동체 사회주의'의 탄생을 선포했다.

모랄레스, 차베스, 코레아는, 서구의 통념으로 볼 때 이미 죽은 모델로 치부되는 사회주의를 라틴아메리카의 구체적인 실정과 조건에 맞게 추진한 것이다.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과정은, 1959년 이후 쿠바 사회주의의 궤적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경제활동의 지배적인 양식으로 된 부르조아 민주주의 사회의 변수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 부통령 가르시아 리네라는, 사회주의가 시장경제의 존재를 배제하지 않으며 좌파 사회주의운동당(MAS)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 자본가들과도 대화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차베스는 정부가 이를 비즈니스 부문과 밀접히 결합된 '전략적 동맹'이라 말했다.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의 혼합

베네수엘라의 혼합경제는, 생활필수품의 부족과 인플레를 피하는 수단으로 특정 부문에 허용된 민간기업과, 이들과 경쟁하지만 이들로 대체하지 않는 국영기업들로 효과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나라의 경제는 몇 가지 상품의 미국시장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또한 사회문화적 변화도 정치적 급진주의와 아직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화려한 소비, 개인주의 등의 자본주의사회의 가치, 소비자 중심의 사회를 유지하고 있으며, 개인재산이 아직 높게 평가되고 있다. 세 나라의 보수정당들은 민간언론, 성당, 미국의 역할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동맹에 의지하고 있다.

짧게 말해, 1917년 이후의 소련, 1949년 이후의 중국, 1959년 이후의 쿠바와 다르게, 21세기 사회주의를 촉진하는 노력은, 이전 사회주의의 전통적인 가치와 제도가 약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매우 경쟁적인 자본주의사회 영역에서 강력히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급 전위 부정, 광범한 민중 통합

칠레의 사회학자, 정치학자, 언론인, 활동가인 마르타 하네커가 지적한 바와 같이, 21세기 사회주의는, 소련, 동구와 그 밖의 나라 사회주의 건설에서 나타난 오류에 대한 인정에 기초하여 과거 좌파전략의 재검토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새로운 관점은, 전위정당의 빼어난 역할과 라틴아메리카 사회현실에 거의 적용할 수 없는 교조적 이론을 부정한다. 또 노동계급의 영도적 역할과, 도시빈민, 비공식 부문, 지역공동체, 원주민, 아프리카 후손, 여성 등 광범한 민중을 통합시키는 노동계급의 능력을 의문시한다.

노동계급 전위주의에 대한 부정은 다른 그룹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정치적 공간,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의 정치적 힘을 창출했다. 볼리비아의 경우, 이 접근의 핵심적 측면은,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평민 사회운동의 자기표현“ 프로젝트이다. 특히 이 전략은 좌우의 정치조직이 자체 정치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원주민조직을 잘 다루어온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뚜렷하다.

모랄레스는, 독일 맑스주의자, 하인츠 디테리히와의 인터뷰에서 “노총 지도자들이 언제나 인디언들은 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혁명의 건설자이고 그들이 혁명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이 우리에게 동조하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볼리비아 노총(COB)의 조직노동자들과 원주민들의 힘 관계의 변화를 평가했다.

자본주의는 개인주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사회복지, 동포애, 사회연대

자본주의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데 비해 21세기 사회주의는 사회복지, 동포애, 사회연대를 강한 도덕윤리의 구성요소로 하고 있다. 이 모델은 가톨릭과 심지어 해방신학으로부터의 영감을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도 여전히 종교적 신념을 공언하고 있다.

코레아는, 영국학자 헬렌 야페(<체 게바라 : 혁명의 경제학>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방신학과 사회주의의 상호관계를 언급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는 무신론자들과 천주교 신자들이 모두 결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카톨릭 신자이며, 그것이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나의 신념을 부정하지 않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1세기 사회주의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정치현실, 사회문화적 경험으로부터 상상력을 얻고 있다. 과거의 급진적 인기영합주의(populism)처럼, 21세기 사회주의는 전통적 좌파와 사회민주주의정당(휠씬 더 까다롭고 수입된 구호에 의존하는) 보다 역사적 상징을 폭넓게 의인화하고 대중적 인기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 페론주의자들이 주안 마뉴엘 로사서와 주안 파쿤도 퀴로가를 재해석하듯이, 차베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을 미화하고 민족주의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 시프리아노 카스트로 (베네수엘라 군인·정치가) 같은 19세기~20세기 초 지도자들의 모순을 간과하려 하고 있다.

세 나라 지도자들은, 문화, 역사, 인종, 성별, 국적, 정체성에 대한 이전의 대표성과 미래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국민들의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운동은, 낡은 질서를 정당화했던 종래의 지혜를 거부하는 대안적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이 현재 사회운동과 정치권력을 사회정치적 투쟁의 전통으로 연결시킨다. 과거를 반추함으로써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에서 역사적으로 사회변화를 위해 투쟁해온 원주민, 아프리카 후손, 농민, 여성, 노동자 등 지금까지 소외된 민중들의 통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볼리비아의 원주민운동은, 그들 자신을 투팍 카타리와 투팍 아마루(스페인 식민 당국에 맞서 대중운동을 이끈)가 이끌었던 투쟁의 상속자로 여긴다. 과거와 현재의 투쟁을 연결함으로써 공식적 역사기록에서 제외된 저항의 유산을 이어받는 것이다.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어로 "뒤를 보면서 앞으로 걷는" 것으로 표현되는 이 과정은, 역사적으로 소외된 목소리를 통합시키고 사회변화를 위한 현재의 힘에 권력을 부여하는 감각을 만들어낸다. 모랄레스가 2006년 5월 1일 볼리비아 천연가스의 국유화를 선언했을 때, "투팍 카타리, 투팍 아마루 같은 우리 선조들의 투쟁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과거로부터의 영감을 명시적으로 드러냈다.

혁명전통에 대한 계승과 실정∙조건에 맞는 혁신

21세기 사회주의의 지적 교리는, 세 나라 정부 지도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페루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귀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인디아아메리카 사회주의를 제안한 마리아테귀는 아메리카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받아들였다. 노동계급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그는 더 광범위한 민중투쟁과 민족해방투쟁의 일환으로 원주민과 농촌공동체의 결합을 추진했다.

마리아테귀는 이런 노선에 따라 스페인 정복 이전부터 내려오는 집단주의에 대한 원주민의 유산은 혁명정부 하의 사회주의 건설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식민지 경험에서 물려받은 경제체제에서의 인종과 계급의 상호관계, 그리고 자본의 힘에 맞서는 폭넓은 투쟁전선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세 나라에서는 남성 지배의 역사로 인해 전통적으로 간과되어온 여성에 대한 통합 노력도 진행되었다. 그 결과, 19세기 독립과정에서의 여성의 역할, 사회정치적 투쟁에의 여성들의 기여, 20세기 노동과 정치투쟁에의 여성 참여는 점차 늘러났다.

에콰도르에서는, 몇 십 년 과거를 반추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독립운동 지도자 마뉴엘라 사엔즈가 재평가를 거쳐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녀의 시몬 볼리바르와의 관계에 대해 간단하게 볼 수 없게 되었다. 대령 계급장을 달게 한 피친차와 아야쿠조 전투에서의 용기 있는 행동 등 그녀의 남미 독립운동 공헌은, 일부 사회운동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9월 5일을 국제 원주민 여성의 날로 1983년 지정하게 한, 1781년 라파즈 원주민 반란을 주도한 바르토리나 시사는 21세기에 더 존경받고 있다. 사엔즈와 시사의 경우, 토착민들과 원주민들이 지역사회 투쟁에의 여성들의 참여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후고 차베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베네수엘라 역사와 그 속의 가장 지배적인 인물, 시몬 볼리바르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의문을 던진다. 새로운 정치담론은, 인종 평등을 주장한 다른 인물들을 점점 더 강조하지만, 학자 등이 프란시스코 미란다, 안데레스 벨로, 시몬 로드리게스 같은 엘리트 지도자들을 기념하는 공간도 열어놨다.

인종평등을 주장했던 인물 가운데, 베네수엘라의 라라 주(카라카스와 메리다의 중간쯤에 있는 지방)의 부리아에서 반란을 주도한 '흑인' 미구엘, 1730년과 1795년 스페인에 맞선 봉기를 각각 이끌었던 아프리카계 베네수엘라인, 주안 안드레스 로페즈 델 로사리오와 호세 레오나르도 크리노스, 1797년 반 스페인 투쟁을 모의했던 마뉴엘 쿠알과 호세 에스파냐가 있다.

시몬 볼리바르의 견해는 지금 과거와 현재의 베네수엘라 정치와 사회 과정에 관한 대중토론의 원천이다. 민주주의, 인종, 국제관계, 사회상황, 공공정책에 대한 볼리바르의 생각은 정부와 야당의 입장을 모두 강화시키고 있다.

5. 사회경제적 측면

세 나라 정권의 진보적 전망을 여는 사회경제적 조건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교조적인 맑스주의 비전과 맞지 않았다. 맑스 이론이 예측한 것과는 달리, 조직된 노동계급이 진보세력이 집권하는 투쟁에서 전위나 사회적 중심세력이 되지 못했다.

비 프롤레타리아, 혜택을 못 받는 계급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고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강력한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이 베네수엘라에서는 1989년 2월 나라를 뒤흔들었던 봉기에 참가했다. 비공식 부문의 노동자와 공식 부문의 소기업 미조직 노동자로서 정치, 문화 엘리트들에 의해 오랜 기간 하찮은 존재나 좀 덜 하찮은 존재로 무시되어 왔다. 이들은 단체협약과 많은 경우 노동법의 혜택은 물론, 국가 차원의 대의권도 보장받지 못했다.

진보집권 이전 수년간의 사회적 격변이, 온건 정부 하의 브라질, 우르과이와 다른,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보다 급진적인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1980~90년대 세계화와 구조조정에 따른 신자유주의 정책이 비공식 경제의 확대를 초래했고 일자리 투쟁이 행동주의적 사회운동과 민중적 소요에 가려져 노동운동이 약화되었다.

남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투적 노조주의 노선을 걸어왔고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인 조직으로서의 오랜 역사를 가진 볼리비아의 광산노련과 노총이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부 하의 민영화와 자동화로 인해 현저히 약화되었다.

베네수엘라 노총(CTV)도 1997년 신자유주의가 반영된 노동법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 법안의 초안 작성을 돕기까지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차베스 대통령을 퇴진시키려는 주요 기업조직과 결탁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총파업을 벌리기도 했다. 차베스는, 혁명과정의 노동계급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맑스주의 주장을 의문시함으로써(최근 그의 입장을 수정했지만) 변화를 거부하는 조직노동자의 저항에 대응했다.

비공식 부문, 소외 계층 혜택 강조

21세기 사회주의 이론가들은 교조적인 맑스주의의 노동계급 숭배를 단호히 거절한다. 이는 "늘어나는 비공식 부문 등 다른 근로민중들을 무시하는, 비생산적인 노동자로, 사실상의 룸펜프롤레타리아로 보는 특권적" 견해라는 것이다. 세 정부의 정책과 담론은 한결 같이 국가의 의사결정과 문화생활에서 소외와 반 소외 민중들의 참여, 공식부문 노동자와 같은 혜택을 누릴 자격을 강조한다.

오리엔테이션도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저한 특징의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특별한 강조와는 다르다. 프롤레타리아는 경제시스템에의 결합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구조로 대표되고 있다. 조직화 경험과 이론이 많이 부족한 소외, 반 소외 부문의 통합 실현에서 제기되는 도전은, 여러 측면에서 조직노동자들의 이익 대변 보다 더 많은 일을 요구했다.

세 나라 지도부의 사회적 성격은 다양성, 복잡성, 내부 긴장이다. 이런 경향은, 산업사회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부르조아에 대항하는 강력하고 결집된 프롤레타리아를 형성한다는, 지난 수십년 간의 교조적인 맑스주의 운동에 영향을 미쳤던 맑스의 예측과 배치된다.

양극화에 관한 전통적인 맑스주의 시각에 따르면, 비 프롤레타리아, 비 특권 사회부문은 결국 거의 없어지거나 우선권이나 이익을 둘러싼 날카로운 내부갈등 없이 다른 형태로 프롤레타리아와 동맹을 맺는다. 그러나 세 나라 좌파진영의 심각한 균열은,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모든 사회부문의 단결과 화합을 당연시하는 "민중"이란 개념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사회적 이질성과 이해관계 상충은, 특히 볼리비아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좌파가, 나라를 뒤흔든 2000년 물 전쟁과 2003년 가스전쟁에서 원주민운동, 농민조합, 노동조합, 야자수 농민운동의 단결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2006년 이후 모랄레스 정부가 이들의 단결과 지지를 얻어내는 것보다 더 쉬웠다.

비슷한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원주민그룹과 농민조합이 별개의 패러다임을 준수하면서 충돌했다. 전자가 어떤 경우 재산 상속 금지를 포함한 원주민의 자치와 전통을 신성불가침으로 지키려 한다면, 후자는 사적 소유권을 허용한 1952년 혁명의 전통을 지키려 했다.

실제 원주민들의 공동체적 이상은 때때로 원주민사회 구성원들의 자기이익과 마찰을 일으켰는데, 볼리비아 정부의 행정 집행과정의 복잡한 내부 모순을 입증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농민조합은, 원주민그룹의 공동체 재산과 권리 추구에 찬성해 몰랄레스의 토지 분배 계획를 비판하면서 볼리비아 동부의 "새로운 농장주"의 제도화를 요구했다.

비슷한 뿌리의 비숫한 갈등 상황은, 1980년대~1990년대 신자유주의 조치에 저항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압력을 넣었던 광부들에게도 있었다.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등 일부 정치 활동가들과 분석가들은, 전통적인 노동계급은 심각하게 약화되었다고 주장하고 모랄레스 정부가 "사회운동 정부"라며 새로운 사회운동의 패러다임을 변호하고 있다.

주민공동체, 협동조합 등 장려

산업노동자 중심이 아닌 세 정부의 계급적 지향은, 그들이 추구하는 전략을 위해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중간층 강화 정치와 사회 프로그램은 값비싼 경제적 비용을 요한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 정부는 공동체 위원회와 도시지역의 노동자 협동조합, 간혹 지출 대비 효과는 적지만, 이전의 의사결정에서 소외된 계층을 참여시켜 귀중한 학습 경험과 능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에 많은 예산을 할당했다.

이러한 정책 우선순위는, 1930년대 소련의 총력적인 산업화 기간, 1959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대약진운동 등 기존 사회주의의 생산 목표 중심과 다르다. 다양한 좌파와 중도좌파 정당들은, 소외와 반 소외 부문 중심의 정책, 경제적 목표를 초월하는 사회 프로그램 강조에 대해 암묵적으로나 명시적으로 비판적이며, 산업, 생산성, 노동계급에 대한 중시를 강조한다.

2010년 차베스 연합정부에서 이탈한 '모두를 위한 조국'(PPT) 같은 사회민주주의정당과 에콰도르의 '민주좌파당(ID)이 이러한 담론을 선호하고 있다. 이들 두 정당은 기술적 능력과 효율성의 중요성을 비하하는 자기 나라 정부에 대해 혹평했다.

더 좌쪽의 베네수엘라 트로츠키주의 파벌은 프롤레타리아 이념의 유산에 따라 빈민들을 위한 사회전략의 일환으로 경제 개발 비용 보다 더 많은 예산을 지원받는 노동자 협동조합에 대한 회의론을 퍼트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약5명을 묶어 만들어진 협동조합은, 노동법, 단체협약, 노조대표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고용한다.

정부를 더 많이 지지했던 세 나라의 공산당들도 노동계급의 중요성을 폄훼하고 대정부 자주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공산당 치하의 소련과 중국처럼 생산력 증대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세 나라는 상업적 기술적 관계를 다양화했다. 국제 거래에서 국영기업과 선진국의 다국적 블록에 가담하지 않은 민간기업 사이의 관계에 특혜를 주었다.

에너지, 교통, 통신 등 전략부문 국유화, 아웃소싱 관행 억제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는 오리노코 석유 벨트의 예비 탐사 보증을 위해 러시아, 중국, 벨라루스, 이란, 그리고 다양한 라틴아메리카 나라들과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여러 나라들와의 상호의존을 배우려 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21세기 미국의 정치경제적 힘이 쇠락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들 나라의 몰수이나 몰수위협, 대립갈등, 국가의 사기업 통제(특히 외국인 기업)는 1930년대 이후 대다수 급진주의자와 민족주의자의 담론과 행동을 넘어서고 있다. 차베스 정부는 석유산업의 통제를 분명히 했고 2007~8년 전력, 철강, 시멘트, 통신 등 전략 부문을 국유화했으며, 그리고 아웃소싱의 관행을 억제하기 위해 투기 등으로 기소된 기업을 인수했다.
볼리비아 모랄레스 정부는 몰수 위협을 이용하고 새로운 법률 준수 마감 시한을 못 박으면서 외국인기업이 국영 석유회사 ‘야치미엔토스 페트롤리페로스 볼리비아노스’사(YPFB)에 석유와 가스를 할인가격으로 판매하는 법률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6. 결론

학자들, 정치 분석가들은 해당 국가의 조건의 차이를 강조하는 사람들과, 사회과학의 특성을 분명히 하고 국경을 넘어 일반화, 단순화하려는 사람들로 나뉘어져왔다. 마찬가지로 좌파이론가들도 나라의 전통에 초점을 맞추고 독특한 '사회주의의 길'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의 주의주장이 불변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이 글은 여러 측면에서 역사적인 차이가 있지만 구조변화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유사 정책과 접근을 채택한 라틴아메리카의 세 나라들을 수렴했다. 그 기저에는 공히 전통적인 부문의 이익 위주에 도전하는 정치경제전략이 있다. 전통적인 노동계급 보다 정치투쟁에 더 주도적 역할을 해온 일단의 사회적 그룹과 정체성, 그리고 낡은 질서 거부와 관련된 국가적 상징을 중시하고 있다.

이 글은 사회민주주의, 기존 사회주의, 고전적 포퓰리즘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후고 차베스와 에보 모랄레스와 라파엘 코레아의 유사성을 강조하려 했다. 세 대통령은 또한 정치적 갈등이 덜 첨예하고 미국과의 관계가 덜 대립적이며 사회주의를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하지 않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르과이의 비 사회주의, 중도좌파 정부와도 현격히 달랐다.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라틴아메리카의 "핑크색 조류"를 "동질화 프로젝트"로 보는 것을 경계하고 일반화, 단순화가 아니라 다양성과 특수성에 초점을 맞출 것을 요청한다. 이 글 역시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세 정부가 추구하는 노선과 부딪히는 어려움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중남미 신좌파는 “좋은 좌파”?

첫째, 각자의 특수한 이해와 목표를 가진, 변화를 지지하는 사회적 그룹의 다양성과 그에 따른 (좌파를 괴롭히는) 내부 긴장을 논했다. 둘째, 기존 사회주의의 오류를 피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해나가는 과정의 시행착오에서 오는 정부의 어려움은 단순한 해법과 공식으로 무시했다. 셋째, 정부와 야당의 충돌과정에서 민주주의의 다양한 모델을 논하고 민주적 행위와 비민주적 행위의 경계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에서 요구되는 비판의 기준을 제시했다.

민주주의에 관한 이러한 모순된 정의와 구체적인 조건에 맞는 적용은, 호르헤 카스타네다, 마리오 바르가스 로사 등 21세기 사회주의 비판자들이 규정한 "나쁜 좌파", "포퓰리스트", 권위주의 좌파로 단순화할 수 없는 복잡한 의미를 가진다.

짧게 말해, 다양성과 복잡성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정치적 환경을 특징짓는다. 세 나라가 첨예한 사회정치적 양극화, 급진적 민주주의 정치체제, 그리고 반자본주의 담론과 민족주의의적 외교정책을 표방하는 정부와 같은 기본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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