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정부는 지난 12일자로, ‘서민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 생계형 사범 955명을 특별사면하고 건설분야 행정제재 3,742 건을 해제’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특별사면이 ‘경제위기로 인한 사업실패로 채무를 갚지 못한 중․소 상공인이나 소액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며 소액 경제사범 중 초범이거나 과실범인 경우에만 사면 대상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벼랑으로 사정없이 밀어낼 땐 언제이고 그 무슨 측은지심으로 그들을 다시 구제하겠다고, 병 주고 약 주는 이율배반은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사회적 약자로 밀린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생계형 민생사범’의 사면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들 또한 잘못된 국정운용과 차별정책이 빚은 큰 범주의 정치수(政治囚)이기 때문이다. 바로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이 불러온 사회 양극화 과정의 피해자들이고, 자본제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차별로 인한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생계 또는 생존 과정의 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면이 ‘생존 또는 생계사범’만인지는 또 다른 비판의 시각이 있어 뒤에 다시 짚어보기로 한다.

사면의 우선 대상은 양심수이어야

사면은 그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사면권 남용이란 비판을 받기도 하고 정의구현 수단으로 권장받기도 한다. 부정비리 정치인이나 경제인 등에 대한 특별사면이나 정략적인 선심용 사면이 전자라면, 비록 실정법을 어겼지만 부당한 권력과 반민주악법에 맞서 역사를 바로 세우고 사회정의를 실천하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사면이 후자에 속한다. 따라서 사면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베푸는 은전이 아니라 인류가 추구해 온 역사발전과 사회진보,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개선, 사회정의와 국민화합차원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당연히 사면의 우선 대상은 양심수이어야 한다.

양심수란 정치적, 종교적, 도덕적 확신을 가지고 개인이나 소수 이익이 아닌 다수의 이익, 바로 공동선을 위해 양심에 따라 활동하다 구속된 사람들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 정치 사회적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정치수(범)라고도 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옳다고 확신했기에 확신수(범)라고도 한다. 양심수에 대한 국제적인 인권 기준이 있지만, 나라마다 민족마다의 특수한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등박문을 응징한 안중근 의사는 일제로서는 살인죄의 형사피의자였지만, 우리에게는 조선침략의 원흉으로 2천만 조선민족의 자주독립과 5억의 동양평화를 위한 확신을 가지고 행동한 양심수였다. 많게는 40년 이상을 0.75평 독방에 갇혀 있었던 비전향장기수들이 공안당국자에게는 반국가좌익사범이었지만, 국제사면위원회는 ‘나라의 자주통일을 위한, 수십 년 감옥을 살면서도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오고 있기에 양심수로 규정’한 민가협양심수후원회 결정을 존중, 이들을 양심수로 규정하고 국제적인 석방운동과 송환운동을 했었다. 때문에 우리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서는 민주주의 발전과 자주통일을 위해, 사회진보와 민중의 생존권을 위해, 평화와 자연생태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다 구속된 사람들이 양심수이다.

그런데 이번 특별사면에서 양심수 또 제외돼

이 시간 현재 감옥에는 무더기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다 구속된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한상균 지부장을 비롯하여 주간 2교대로의 노․사 합의를 이행하라는 노조의 요구에 직장 폐쇄를 한 사측의 부당노동에 맞서 파업투쟁을 했던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이구영 지회장, 신기철 충남건설기계 지부장 등, 유성기업 직장폐쇄 투쟁노조원들, 정리해고에 맞서 싸운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 지회 현정호 지회장, 언론노조 총파업 집회로 구속된 손승환 민주노총 조직부장, 범한 택시 김태수 노조원, 전북지역 버스노조 파업관련으로 구속된 문용원 조직쟁의 실장과 노조원들, 아마니 키빅 이주노동자 등 27명의 노동자들이 사측의 부당 노동 행위에 맞서 노동 3권 보장을 요구하다 부당하게 구속돼 있다.

또한 7․4 남북공동성명 정신에 따라 남․북․해외 3자연대로 조직 구성되어 6․15 공동선언 이행에 헌신해 온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과 지도간부들, 6․15 공동선언 이행을 위해 몸소 북녘을 다녀와 구속된 한국진보연대 한상렬 상임고문, 실정법을 넘어 우리 민족끼리 자주통일을 모색했던 이른바 ‘일심회’ 사건의 장민호 씨, 사이버 공간을 통한 통일의지를 표명했던 황선종 사이버 민족방위사령부 카페 운영자, 6․15대학생 운동본부에서 남북학생교류활동을 한 혐의로 법정 구속된 김은혜 씨, 인터넷 카페 등에 글을 올린 혐의로 구속된 전 육군대위 방홍섭 씨와 김연욱 항공기 기장, 학자적 양심에 따라 남북관계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면서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해 온 이병진 교수, 국가보안법 피해자모임 카페운영자 박용 씨, 트위터에서 <우리 민족끼리>를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회당원 박정근 씨, 그리고 압수수색과 구속․기소과정의 인권침해와 120여명에 이르는 각계 인사의 부당한 피의자, 참고인 조사를 벌이며 사건조작의 의혹을 받고 있는 이른바 ‘왕재산 사건’의 김덕용 씨 등 관련자 6명을 포함해 20여 명이 반인권, 반통일 악법인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감옥에 갇혀 있다.

그리고 용산 4구역 철거에 주거권과 최소한의 생업기반을 요구하다 무참하게 살인진압당하고 적반하장으로 농성주도 등 혐의로 장기형을 선고받고 있는 이충연 용산 4구역 철거대책위원장 등 철거민과 전국철거민 연합의 남경남 의장 등 8명이 구속되어 있고, 한진중공업의 무더기 정리해고에 맞서 크레인 고공농성을 하고 있던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농성 투쟁에 연대하는 ‘희망버스’를 기획했던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 실장이 이른바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되었고, 한미 FTA 날치기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가한 김진요 좋은 어버이들 운영위원장이 집시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되어 있다. 또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를 주장했던 김영준 씨 등 8명과 종교적 신념으로 총들기를 거부했던 820여명이 감옥에 갇혀 있다.

이들 900여명의 양심수들은 최소한의 생존조건과 주거환경을 위해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갈라진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통일하기 위해, 생명과 생존의 원천적 본능에 따라 그리고 양심에 따라 활동하다가 부당하게 구속되었다. 이들은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규약 그리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 사상과 양심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등 기본인권의 범주에서 활동했던 양심수들이다.

그런데 이들 양심수들은 이번 특별사면에서도 제외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여섯 번에 걸친 사면이 있었지만, 양심수는 단 한 사람도 대상에 들지 못했다. 마치 양심수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는 사회정의 실현의 수단이어야 할 사면권이 정의와 인권에 대한 초보적 개념도 모르는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왜곡, 남용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사례를 보기로 한다.

사면권이 권력에 의해 왜곡, 남용되고 있는 사례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2월 출범했으나, 취임사면을 하지 않았다. 같은 해 6월 4일, ‘일반 영세민’과 ‘생계형 운전기사’ 등 282만명을 특별사면했지만, 양심수는 제외되었다. 그리고 2008년 광복절 사면에서는 조․중․동 등 재벌언론사 사장급 5명과 정치인 12명, 고위공직자 10명, 지방자치단체장 12명, 재벌총수들과 기업체 대표 74명 등 권력형 부정비리 사범이 포함된 일반형사피의자 10,461명과 선거사범 1902명, 모범수형자 702명, 징계공무원 228,375 명 등 모두 341, 864명을 특별사면, 감형, 복권과 징계 해제, 면허제재감면 등 특별사면을 하면서도 반민주 악법으로 부당하게 구속된 양심수는 단 한 사람의 석방도 감형도 사면, 복권도 없었다.

2009년 8․15 광복절에는 농․어민과 서민,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와 생계형 운전을 하다 면허가 정지된 사람 등 150만 명을 특별사면했다. 양심수는 여전히 제외되었다. 그리고 2009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은 삼성그룹 이건희 전회장 단 한사람만을 위한 특별사면을 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같은 해 8월 14일 경영권 불법승계를 위한 배임 및 조세포탈죄 등 중죄를 범했는데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란 가벼운 처벌을 받았고, 그나마 선고 뒤 잉크도 마르기 전에 동계올림픽 유치에 필요하다며 특별사면을 했다. 이는 법의 형평성 문제를 떠나 이러한 나라가 있어야 할 그 무슨 이유가 있는지 개탄하게 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2010년 광복절을 맞아 2,493명을 특별사면, 감형, 복권조치했다. 전국회의장 등 4명, 16,17,18대 부정선거 국회의원 18명, 전직 국회의원, 공직자, 지방자치단체장 등 부정비리사범 430명,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등 부정비리 경제인 14명이 포함되었다. 이들 비리사범들 틈에 양심수가 끼지 않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여섯 번째는 위에서 밝힌 바와 같다.

이처럼 여섯 번에 걸친 대통령 특별사면에서 세 번은 ‘생계형’ 또는 ‘서민경제 활성화’ 명분이었고, 세 번은 부정부패 비리사범을 풀어주기 위한 사면이었다. 부정비리 정치인, 고위공직자, 언론재벌사장급, 재벌총수와 기업대표들, 심지어 한 사람 재벌총수를 위해 특별사면을 하면서도 번번이 양심수는 제외시켰다. 바로 사면권자의 머리 속에는 권력과 돈을 가진 자만을 염두에 두었지 정의와 인권, 도덕과 양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음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이번(1월 12일) 사면에서도 ‘서민경제 활성화’란 명분으로 건설산업기본법 등 위반으로 영업정지를 받았거나 입찰경쟁의 공정성을 해쳐 제재를 받은 건설업체에 대한 3377건을 제재 해제조치를 했는데, 이중 상근근로자 300인 이상, 자본금 30억 이상의 대형건설사 관련 129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지난해 정부 발주 공사입찰에 허위서류 제출 등으로 입찰참가제한조치를 받았으나, 이번에 풀린 건설업체 77개 중 41곳은 50대 건설업체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생계형’ ‘서민경제 활성화’란 이름으로 대형건설업체의 부당행위를 풀어주는 삽질정부의 본때가 드러났다 할 것이다.

위 내용과 같이 부정비리 사범을 풀어주거나 특정집단에게 특혜를 주는 사면은 사법권 침해이자 정의에 대한 도전이며 대통령 사면권의 남용으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사면이 정의 실현의 수단일 때도 분명히 있다. 잘못된 법으로 부당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법적 효력을 변경시켜 줌으로써 정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다.

양심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러나 지난해 말 특별사면설이 있었지만, 양심수 가족들이나 인권․노동단체들은 그전처럼 청와대 앞에 가서 양심수 사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정의와 진실에서 멀어진 이명박 정부에게서 양심수 사면을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철거민을 살인진압하고 농성주도혐의까지 뒤집어 씌우는 정권, 2600여명을 정리해고하고 복직과 징계약속을 어기면서 그 후유증으로 19명의 노동자 가족이 목숨을 끊는 등 친기업 반노동 정권, 농민들을 벼랑으로 내몰며 경제주권을 포기하고 한미 FTA비준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정권, 신문재벌에 방송지분까지 허용하고 친정부성향의 종편 채널을 내주어 언론장악을 하는 정권, 모든 권력기관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를 어용화시켜 이른바 ‘북한인권위원회’화시키는 정권, 동족을 적으로 하는 끊임없는 한미연합북침전쟁연습을 하는 정권, 6․15, 10․4 선언을 짓밟고 반북대결 정책과 흡수통일 망상에 사로잡힌 정권, 반인권․반통일악법인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수많은 통일 애국인사를 잡아 가두는 정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역사적인 6․15, 10․4 선언을 이루어낸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에 평화와 통일을 위해 조문을 다녀온 코리아연대 공동대표를 체포하겠다는 반인륜정권에게서 양심수 사면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대신 양심수들이 갇혀 있는 서울구치소에 가서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하여 ‘양심수 석방, 공안탄압 분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2011년 송구영신결의집회’를 열었다. 갇혀있는 양심수들의 뜻을 지지 연대하며 반드시 우리의 힘으로 구출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양심수 사면은 정의와 인권을 외면한 부당한 정권에서가 아니라 민심을 거역한 정권을 엄중히 심판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하여 2012년 민중의 힘으로 참정권을 통하여 국가보안법도 양심수도 없는 세상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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