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누가 더 진심으로 다가가느냐... 범죄라는 게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일 아니겠습니까. 진심을 다해서, 순정을 다 바쳐서 하면 안 될 일 없다." 경찰대를 다니던 그녀는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범인 얼굴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 경찰이 된다는 것은 웃기다는 그녀의 말에 현직 형사가 말한다. 눈으로 보고 못 보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사건을 대하느냐는 태도의 문제라고. '앎'이 누구의 기준에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블라인드>에 나오는 대사다(편의상 사투리는 다듬었다). 공식 수사결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물적 증거'를 둘러싼 문제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KAL858기 사건을 떠올려본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누구의 진심을 믿어야 하는 걸까. 아니, 과연 이 사건은 진심의 문제일까. 이 사건에서 '증거'란 어떻게 알 수 있고 나아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 걸까.

전체의 4분의 1만 완전공개

▲ 호주 외무부가 공개한 KAL858기 사건 관련 비밀문서. 호주 외무부 관리는 한국이 "실망을 했다는 뜻으로 들린다"고 메모를 남겼다. [사진제공 - 박강성주]
지난번에 이어, 호주 외무부가 비밀문서를 보내왔다. 이번 결정은 모두 115건의 문서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완전공개 30건, 부분공개 69건, 비공개 16건이다. 이 중에서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 16건의 문서들은 비밀정보기관에 관한 내용이나 국가들 사이의 비밀유지 준수 등에 관한 것들이다. 그러나 가장 주된 이유는 '정보공개 신청 범위 이외'라는 것인데, 이는 공개 신청을 했을 때 문서 범위를 '외무부의 분석'으로 한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외무부는 관련 문서가 매우 많기 때문에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편의상 이를 받아들여 (특히 문서를 가능한 빨리 얻기 위해) 범위를 재조정했었다. 이것이 정확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결론적으로 115건의 문서 중 4분의 1 정도만 완전공개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지금부터 공개된 부분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호주 외무부는 1988년 1월 22일, KAL기 사건이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북의 테러로 밝혀질 것인가에 특히 많은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259쪽). 이는 당시 올림픽 개최가 비사회주의권 국가들 사이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인데, 만약 사건이 북의 테러로 밝혀지면 이는 북의 국제적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호주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적었다. 같은 날 미국에서 작성된 문서에는 유고슬라비아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문서에서 삭제된 어떤 정보원에 따르면, 한국은 유고가 김현희 일행이 두 명의 아시아계 남성과 접촉을 했고 결국 이들에게서 폭약을 건네받았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하는데, 유고 정부는 한국의 이와 같은 판단을 사실상 받아들이기 꺼려한다고 (APPARENTLY RELUCTANT TO ACCEPT) 적었다(270쪽). 또한 역시 삭제된 정보원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북에 대한 제재는 둘 사이에 특별한 외교관계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미미할(IMMATERIAL) 것이라고 했다.

1988년 1월 28일에는 미국 대사관 관계자와 호주 관리 사이에 대화가 있었다. 여기에서 호주 관리는 외무부장관의 성명서가 북을 비난하는 데 호주가 적극적이지 않다는(unillingness) 뜻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287쪽). 이에 따르면 호주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북의 외교관계 수립 제의를 서울올림픽 이후에 받기로 방침을 정했었는데 이는 올림픽을 겨냥한 테러를 고려했던 조처라고 밝혔다. 이는 당시 호주 정부가 그만큼 북의 책임이라고 확실히 밝히라는 압력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1988년 1월 29일자 문서는 호주 외무부의 사건에 대한 잠정 판단(PRELIMINARY ASSESSMENT)을 담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사건이 북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한 강한 증거들이 있다고 한다(290쪽). 그리고 1월 22일에 발표된 장관 성명서에는 북을 직접 지목하지 않았다면서 증거들을 더 검토한 뒤 장관에게 보고할 예정이라고 적고 있다. 1988년 1월 29일자 문서는 서울에서 호주 대사가 직접 작성했는데, 이에 따르면 한국의 외교관리로 추정되는 이가 외무부장관 성명서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대사에게 만약 호주가 북의 개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를(CLEAR AND UNEQUIVOCAL EVIDENCE) 인정했다면 좀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293쪽). 어떤 면에서 호주의 성명서가 그만큼 신중했다는 이야기인데, 호주 외무부 관리는 이와 관련해 한국이 "실망을 했다는 뜻으로 들린다(Sounds to me like they were disappointed)"고 메모를 남겼다.

한편 호주 대사는 그에게 한국이 김현희에 대한 재판을 준비하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이 한국관리는 그러지는 않고 있다면서(THIS HADN'T OCCURRED) 중요한 제안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한다. 1988년 2월 1일자 문서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작성되었다. 이에 따르면, 김현희 일행이 당시 머물던 호텔에서 다른 아시아인들을 만났는가에 대해 호텔 직원들 말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고 적고 있다(315쪽). 그리고 김현희 일행이 유고의 북 대사관에 접촉했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했다. 한편 의견란에 유고와 한국의 관계가 언급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시 말해, 유고는 한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증진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고 최근 이와 관련된 양국 사이의 교류가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317쪽). 다음 날 작성된 문서에는, 한국이 유고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지부에 접촉을 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320쪽).

호주의 신중한 접근

1988년 2월 3일자 문서는 김현희와의 인터뷰에 대한 호주 정부의 고민을 담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한국은 호주 당국이 김현희와 면담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호의적으로 나섰는데 호주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WE DO NOT HOWEVER INTEND TO PURSUE AN INVITATION) 암시했다(329쪽). 왜냐하면, 문서와 사진 증거만으로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려했던 점이 있는데, 김현희를 면담하게 되면 그만큼 호주의 입장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대치를 불필요하게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COULD NEEDLESSLY RAISE ROK EXPECTATIONS). 호주 정부가 얼마나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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