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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 삶의 무게와 비밀문서의 무게<기고> 호주 정부 비밀문서 공개 (1)
박강성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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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1.10  17: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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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내일 너희들이 들어야 할 역기는 너희들이 살아온 삶의 무게보다 가벼울 거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삶의 무게를 안고 산다. 때론 가벼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역기를 들어내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의 역기는 결국 누구도 아닌, 자신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역기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늘 그러는 것은 아니다. 삶의 무게를 힘차게 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늘 그러는 것도 아니다. 영화 <킹콩을 들다>에 나오는 대사를 통해, KAL858기 사건과 관련된 삶의 무게들을 떠올려 본다.

묵직한 비밀문서와 삭제된 분량

   
▲ 호주 정부가 공개한 문서 중 삭제된 문서. 우측 하단에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DECLASSIFIED Released under the provisions of the FOI Act 1982”라고 적혀 있다.
[사진제공 - 박강성주]
삶의 무게에 대한 생각은 최근 호주 정부가 보내온 비밀문서의 묵직한 무게로 이어진다. KAL기 사건 관련해, 리처드 브로이노브스키 당시 주한 호주 대사와 전자우편 면담을 한 적이 있는데, 이를 계기로 호주 외무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대사는 자신의 정치분과가 이 사건을 분석했고, 그 결과 "북쪽이 저지른 것일 수 있지만, 정확히 평양에 있는 누구를 비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적 증거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1년 정도 기간(1987년 11월 29일-1988년 12월 31일)에 해당하는 문서들로, 99건 251쪽에 이른다. 이 중에서 28건에 대해서만 완전공개 결정이 내려졌고, 57건은 부분공개, 14건은 비공개 결정이 내려졌다. 다시 말해, 전체 문서의 3분의 2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삭제된 상태로 공개된 것이다.

호주 정부는 90여 건의 문서가 더 남아있다고 알려왔다. 참고로, 각각 200쪽 정도 분량의 7개 파일 뭉치, 따라서 1,400쪽 정도가 별도로 있는데 분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사정상 외교전문(cable)에 기록된 자료들에 대해서만 공개 여부가 결정됐다(1년치에 해당하는 기록들이니 그 이후까지 계산하면 호주 외무부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은 상당할 것으로 추측된다).

호주에는 관련 문서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글을 통해 이번에 공개된 문서를 나름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1987년 12월 2일자 문서는 당시 외무부에서 있었던 내부 회의내용을 담고 있다. 참석자들은 서울에서 작성된 외신(AFP 통신) 기사를 바탕으로 했을 때 북쪽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the DPRK may be implicated in the sabotage) 논의한다(32쪽). 이 외신 자료는 부분적으로 김정기 당시 주바레인 대리대사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는 김현희의 행동을 관찰했을 때 그녀가 일본에 있는 총련에 소속됐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말한다.

1987년 12월 3일자 문서는 이라크 바그다드 대사관에서 작성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이곳 외교관들이 개인적으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탑승객 중 한 명이었던 어떤 인물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이름과 내용이 지워져 있다(38쪽).

일본 외무성이 주관한 기자회견(1987년 12월 3일) 내용도 있다. 당시 <BBC> 소속 기자가 각료회의 도중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 정부의 정보에 근거해 김현희-김승일이 북쪽 공작원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발언했던 것에 대한 질문을 했다(42쪽). 외무성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변한다. <AP통신> 기자는 김정기 대리대사가 바레인에서 진행된 (김현희에 대한) 조사에 참관을 했다는데 이게 사실인지, 그리고 왜 한국 관계자에게 조사 참관이 허용되었는지 묻는다. 외무성 관계자는 이에 대해 확인해줄 수도, 설명해 줄 수도 없다고 답변한다(46쪽).

“한국, 확실한 증거 없는 상황에서 북 비난” 

1987년 12월 4일자 문서는 서울에서 작성되었다. 이에 따르면 그때까지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지만(ALTHOUGH THERE IS NO FIRM EVIDENCE) 정부 대변인들과 언론 사설들은 이미 북쪽을 비난하기 시작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53쪽). 그러면서 결국 잔해가 발견되거나 김현희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어떤 정확한 원인도 알 수 없다고 덧붙인다.

같은 날 작성된 문서에는 <연합통신>의 영문기사가 실려있는데, 김정기 대리대사가 병원에 있는 김현희를 방문했을 때 그녀가 의식이 없는 것처럼 꾸민 것 같다고 외무부에 보고한 걸로 되어 있다(60쪽). 물을 입에 들이대자 물을 마셨다고 한다.

중국 베이징 대사관에서 작성된 문서(1987년 12월 9일)도 있다. 호주 대사관이 사건 관련해 베이징에 있는 외교관들 및 중국 관리들과 접촉을 했는데, 이에 따르면 중국은 북쪽이 고립되는 것에 대해 점점 우려하고 있었다(77쪽). 마지막 의견란에는 중국이 북쪽의 예측불가능성(UNPREDICTABILITY)에 대해 실질적으로 우려를 하고 있는 듯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홍콩에서 작성된 문서(1987년 12월 9일)도 있는데, 이에 따르면 당시 한국의 고위 외교 관료는 김현희가 한국으로 송환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고 한다(79쪽). 김현희가 체포된 지 일주일 남짓 지난 시점에 송환 여부가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다.

1987년 12월 9일자 문서에는 한국의 <코리아 헤럴드> 영자신문의 기사가 실려있는데, 호주 관계자가 문서에 메모를 짧게 남겼다. 그것은 사건 관련해 동독이 중요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최근 북쪽이 평양-동독 사이의 직항노선을 개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84쪽).

1987년 12월 10일에는 일본 외무성에서 또 다른 기자회견이 있었다. 당시 <AP통신> 기자가, 김승일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 있는 북쪽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다는 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외무성 관계자는 그 보도가 아주 믿을 만하다고 답변한다. 이어서 다른 기자가, 이것 외에 북쪽의 관여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 더 있느냐고 묻자, 외무성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없다(Officially, no)고 답변한다. 그러면 비공식적으로는 있느냐고 또 다른 기자가 질문을 하자, 이 관계자는 바로 신문을 통한(Through the newspapers) 내용이라고 답변한다(95쪽). 그만큼 언론, 구체적으로는 ‘신문’이 사건 이후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일본이 김현희 송환을 추진할 것이냐에 관한 내용도 있는데 외무성 관계자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며 공식적으로 확인을 해준다(96쪽). 앞의 홍콩 대사관 문서에서도 알 수 있지만, 늦어도 12월 9일 기준으로 김현희의 한국 송환이 결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국의 심문 기법…

호주 문서에는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한국의 영자신문 기사들이 자주 발견되는데, 1987년 12월 12일자 문서도 그러하다. <코리아 타임스> 기사는 일본 경찰의 말을 인용해, 김현희가 한국으로 송환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눈물을 터뜨렸다고 전한다. 일본 경찰은 김현희의 이런 심경을 고려했을 때, 그녀가 한국으로 송환되기 전(BEFORE HER EXTRADITION TO KOREA) 사건의 진실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103쪽).

1987년 12월 15일자 문서에는 김현희가 한국으로 송환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실려있다. 흥미로운 것은 호주 외무부 관계자가 이 문서에 남긴 메모내용이다. 김현희의 죽은 남자 동료(HER DEAD MALE COMPANION)도 같이 송환되었다는 대목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데, 여기에 “한국의 심문 기법을 고려했을 때, 그는 결국 말을 하게 될 것이다”(Knowing Korean interrogation techniques, he'll eventually talk)고 적혀 있다 (106쪽). 이 외무부 관계자가 김승일이 아직 살아 있다고 착각한 상태에서 이 메모를 남겼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당시 한국 정보당국의 심문 기법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1987년 12월 16일자 문서는 버마 해안에서 발견된 몇몇 잔해에 대한 <연합통신>의 영문기사를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권병현 당시 주버마 대사는 비행기가 테러리스트의 폭탄에 의해 공중폭파된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113쪽). 1987년 12월 18일자 <연합통신> 영문기사는, 김현희가 서울 도착 이후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결국 고백을 할 것이라는 익명의 수사당국 관계자 말을 인용하고 있다(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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