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도교 방북단을 이끌고 지난 13일 천도교 평양교당에서 남북 합동시일식을 거행한 오암 이범창 종무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지난 12~15일 북한을 방문해 북측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위원장 류미영)와 합동시일식을 거행하고 돌아온 천도교 이범창 종무원장을 만나 19일 인터뷰를 나눴다.

이범창 종무원장은 “합동시일식을 정례화 하는 첫발을 이번에 내딛었다”며 “(내년) 4월 5일 천일(天日) 기념식을 같이하자고 북측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천도교 동덕(신자)들이 쓰는 도호가 오암(悟菴)인 이 종무원장은 1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경운동 소재 수운회관 종무원장실에서 가진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방북과 합동시일식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8년 만의 천도교 남북 합동시일식 거행

□ 통일뉴스 : 이번에 방북해 합동시일식을 가졌는데, 먼저 방북 성사 배경을 설명해달라.

■ 이범창 종무원장 : 8년 전, 2003년에 북쪽에서 여섯 분이 오셔서 합동시일식을 한 적이 있었다. [관련기사 보기]

작년에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아무래도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민간의 교류가 없어졌기 때문에 물꼬를 트는 작업을 민간에서 해야 되는데, 그것도 종교인들이 하면 좋겠다는 뜻을 가지고 합동시일식을 금년 사업에 넣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정부 당국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못 갔다. 그러던 중 지난 9월에 각 종단 대표, 7대종단 수장들이 방북했고 우리 임운길 교령과 북쪽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류미영 위원장이 만나 남북 합동시일식을 포함해 남북교류에 대한 협의를 하고 왔다.

그래서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가 초청을 했고, 마침 정부 당국에서 방북을 허가해줘서 다녀오게 됐다.

▲ 13일 천도교 평양교당에서 열린 남북 합동시일식 모습. [사진제공 - 천도교]
□ 합동시일식이라고 했는데, 시일식이란 무엇인가?

■ 다른 종단처럼 불교로 치면 법회고 교회로 치면 예배, 천주교 미사와 같이 천도교인들이 7일마다 모여서 일요일에 합동으로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것을 시일(侍日), 모시는 것이라고 한다.

□ 남북 천도교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 우리 천도교 중앙총부는 3원과 3관이 있는데, 3원은 종무원, 종의원, 감사원이고 3관은 교화관, 교무관, 경리관이다. 나머지 부분단체가 있다.

북측은 지도위원회 위원장이 있고, 부위원장이 있고, 부장들이 있다. 교무부장, 교화부장 식으로 부장으로 부른다. 우리 관장과 같은 것이다. 부장과 부원들이 실무를 맡고 있었다.

나의 주 파트너는 강철원 부위원장이었다.

□ 현 정부 들어와서는 민간 교류를 불허했지만 이전 정부들에서는 교류가 활발했는데 왜 그간 왕래가 이어지지 못했나?

■ 김대중 대통령 때나 노무현 대통령 때는 개별적으로 왕래를 했다. 박남수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 같은 분들이 개별적으로는 방북했다. 그러나 천도교 이름으로 단체적으로는 안했다. 그러다 이번에 8년 만에 했다.

합동시일식, 동귀일체(同歸一體) 강조

□ 방북 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 12~15일 3박 4일 갔다 왔다. 가는 날은 북경을 거쳐 가느라 하루 걸렸고, 오는 날 아침 9시 반 비행기로 순안공항에서 출발했으니까, 실질적으로 이틀이다. 13일 합동시일식을 가졌다.

□ 이번 방북과 합동시일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 합동시일식을 정례화 하는 첫발을 이번에 내딛었다. 앞으로 실무접촉을 통해서 서로 협의해서, 서울에서 한번 올라가면 평양에서 한번 내려오고 해마다 왔다갔다하면서 합동시일식을 봉행하기로 했다.

□ 합동시일식은 어디서 어떻게 진행했나?

■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산하 평양교당에서 했다. 우리 중앙총부의 중앙대교당과 같은 곳이다. 건물은 아주 깨끗하게 잘 유지되고 있었다. 물론 신식 건물은 아니지만 유서 깊은 건물이 잘 보존돼 있다. 북한에서 종교의 활성화가 잘 안돼 있지만 그래도 활성화 돼 있는 것은 천도교다. 교당도 옛날부터 있던 교당이다.

일요일인 13일 11시에 합동시일식을 봉행했다. 우리 올라간 인원 10명이 앞줄에 앉고, 그쪽 지도위원회 인원들과 평양시민들은 우리 뒤쪽에 앉았다.

진행은 기독교 같은 경우 목사님이 혼자 하는데 우리는 집례자가 있고, 경전을 읽는 경전 봉독자, 설교하는 분, 세 분이 시일식을 이끌어 간다. 세 분은 꼭 단상 위에서 시일식을 이끌어가고 일반 신도는 자리에 앉는다.

이번 설교는 강철원 부위원장이 했고, 집례는 최동관 교무부장이, 봉독은 부원이 했다. 다 북쪽에서 했다. 남쪽에서 할 때는 우리가 할 예정이다.

그 대신에 설교가 끝나고 남측 대표로 종무원장이 단장이니까 내가 인사말만 했다.

▲ 합동시일식에서 이범창 종무원장이 남측 방문단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천도교]
□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어떤 인사말을 했나?

■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첫 방문이니까.

북쪽에서는 수운(최제우) 대신사님의 ‘세상이 어지럽고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없는 것은 각자위심(各自爲心)에서 그렇게 된 것이니까,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잘살게 되려면 동귀일체(同歸一體)로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꼭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와 체제가 다르니까 북측 말 내용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남북 천도교인이 수운 대신사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우리는 동덕이니까 동귀일체를 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신앙심을 고취하고 앞으로 경색돼 있는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것을 우리 천도교인이 앞장서서 해가자고 말했다.

수련 열심히 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해서 우리가 서로 자주 만나다 보면 지금은 많이 다른 것도 있겠지만 점점 이해의 폭도 넓혀갈 수 있으니까 이걸 단발성으로 끝내지 말고 계속 하도록 하자. 그리고 내년 4월 꼭 천일기념식을 합동으로 봉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주 교류하고 폭을 넓혀가자는 쪽으로 주안점을 두고 2,3분 정도로 짧게 인사말을 했다.

내년 4월 5일 합동 천일기념식 제안

□ 내년 4월 천일기념식을 제안했다고 말했는데, 천일기념식은 무엇이고 북측의 반응은 어떠했나?

■ 우리는 4월 5일이 천일(天日)기념일이다. 우리는 다른 종단과 달리 수운 최제우 대신사님 탄생일을 기념일로 하지 않고 대신사님께서 ‘한울님’ 대도를 받은 날, 득도일인 1860년 4월 5일을 기념한다. 물론 그때는 음력 4월 5일이었지만 양력으로 4월 5일로 정했다. 그것을 천일기념이라고 한다. 제일 큰 기념일이다.

4월 5일을 천일 기념식을 같이하자고 북측에 제안했는데, 지금 단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지만 거의 어려운 것 같다. 북쪽 상황이 내년 4.15 태양절 100주년 기념행사에 초점을 맞춰놓고 있어서 우리가 4월 5일 내려오라 해도 못 내려 올 것 같다.

그래서 사전접촉은 우선 구두로 내년 2,3월에 다시 만나 협의하자고 했다. 사전접촉을 해서 날짜는 다른 날짜로 잡아서 해야 할 것 같다.

▲ 합동시일식을 기념해 남북 천도교 임원들이 평양교당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가운데 이범창 원장 우측이 류미영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위원장. [사진제공 - 천도교]
8월 14일이 지일(地日)기념일이다. 지일기념일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로부터 해월 최시형 신사님으로 도통이 전수된 날이다. 그래도 안 되면 12월 24일이 해월 신사님으로부터 의암 손병희 성사님께 도통이 전수된 날이다. 천지인 순으로 인일(人日)기념일이라고 한다.

특히 이번에는 10명만 중국을 거쳐 갔지만 다음에는 많은 인원이 육로로 가자고 요구했다. 개성에서 바로 올라가면 두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데, 3국을 통해 가니까 시간도 많이 들고 경비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제안했더니 지금 시기적으로 빠르긴 하지만 북쪽도 노력은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많은 인원이 가고, 저쪽도 많은 인원이 내려오고 서로가 왕래하다 보면 동질성도 많이 회복될 것이고 이해 폭도 넓어질 것이다.

□ 천도교와 개천절은 큰 관계가 없나?

■ 대선사 말씀처럼 우리는 유불선을 통합하는 거니까 개천절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개천절 관련 행사는 우리 천도교 중앙총부가 진행하는 것보다는 동학민족통일회에 맡겨서 동학민족통일회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생각이다. 이번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확답은 없었지만 서로 의견교환을 하고 왔다.

□ 북측과 간담회 같은 일정은 없었나?

■ 별도로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식사하기 전에 잠깐 만나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정도였으니까 형식을 갖춘 간담회는 없었다.

□ 북측 류미영 위원장이 연세가 많으실텐데 건강은 어떠셨나?

■ 올해 90인데 건강은 좋으셨다. 허리가 조금 굽으시긴 했지만 아주 건강이 양호하셨다.

□ 합동시일식 외에 다른 방북 일정은 어떠했나?

■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을 둘러보고 보현사도 둘러봤고, 다시 평양으로 오면서 대동강 과수농원과 단군릉, 만경대 고향집과 개선문을 봤다.

대동강 과수농원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 천 정보가 넘는다는 대규모 대동강 과수농장 모습. [사진제공 - 천도교]
□ 대동강 과수농원이 꽤 넓다고 들었다.

■ 대동강 과수농원은 천 정보(3백만 평)가 넘는 아주 넓은 땅에 사과나무 같은 것을 심어놨더라. 천 정보니까 엄청 넓은데다가 하나 좀 특이한 게 우리는 사과나무가 좀 굵지 않나, 거기는 가늘다.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거기에 사과가 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밀식을 해놨더라. 새로운 밀식법인지 모르겠다. 이태리에서 묘목을 많이 줘서 심었다고 들었다.

과일나무를 다 심어놓고 한쪽 귀퉁이에 돼지공장이 있는데, 돼지에서 나온 분뇨를 가공했는지 발효했는지 자연비료로 나무들에 공급한다고 하더라. 그 안에 과일들을 가지고 가공하는 공장도 있다는데, 거기는 못 가봤고 그냥 언덕 위에서 농원만 봤는데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 단군릉은 처음 가봤나?

■ 처음이었다. 위치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아, 여기 있구나”라고 봤다. 여러 목적으로 만들었겠지만 웅장하게 해놨더라.

류미영 위원장이 우리하고 합동으로 개천절 기념식을 같이 봉행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쪽에서 2002년, 2003년 두 번 올라가서 같이 했다더라. 그 부분은 앞으로 동학민족통일회에서 남쪽을 잘 어울리게 해서 같이 하면 좋은 일이라 본다. 그건 걸 하나의 연결고리로 해서 자꾸 교류하다보면 서로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틀이라 짧아서 크게 본 것은 없다. 13일날 시일식 보고 저녁에 묘향산에 가서 자고 14일 아침에 돌아보고 평양으로 나오니까 하루가 꼬박 가버렸다. 묘향산 공기는 참 좋더라.

▲ 단군릉 앞에서 북측 안내원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제공 - 천도교]
□ 동학민족통일회는 천도교 내부 조직인가?

■ 동학민족통일회 설립 자체가 전국대회에서 설립하도록 돼 있다. 민족.통일 문제와 환경.생명 운동을 주도적으로 하도록 천도교 전위단체로서 설립된 단체다. 천도교는 신앙을 위주로 하고, 나머지 운동이나 이런 쪽은 동학민족통일회가 하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동학민족통일회 공동대표나 상임의장 이런 분들은 천도교의 지도자급에 있던 분들이 나가셔서 하신다. 우리는 선거에 출마가 없고 대의원들이 이름을 적어내 많은 득표를 한 분이 된다. 단체는 연임이 가능하고 교령님만 연임이 불가능하다.

49일 특별기도와 통일기원 특별기도

□ 방북 결과를 천도교 교인들과 공유해야 할텐데.

■ 불과 이틀 동안의 여정이어서 사실상 특별하게 할 건 없다. 49일 특별기도 중 마지막인 20~22일 3일 동안 통일기원 특별기도회에서 이야기될 것이다.

□ 지금 진행하고 있는 49일간의 특별기도회와 통일기원 특별기도는 무엇인가?

■ 9월 21~24일 교령님이 방북해 ‘이신환성 정신개벽(以身換性 精神開闢)’ 49일 특별기도를 10월 5일부터 11월 22일까지 49일 동안 시행하는데 남북이 같이 하자고 제안해서 북한에서도 기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1주일간은 통일기원 특별기도도 같이 하기로 지난번에 합의하고 왔다.

□ ‘이신환성 정신개벽’이란 무엇인가?

■ 이신환성은 의암 손병희 성사께서 강조하신 것인데, 육신 관념을 성령 관념으로 바꾸라는 뜻이다. 모든 물질적인 육신적인 관념, 욕심 이런 것을 정신관념, 성령관념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우리 몸뚱이는 일시적인 100년 밖에 못사는 물체지만 성령은 영원히 있는 거니까 성령관념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1910년 나라가 일본에 강제 병탄되자 손병희 성사가 나라를 되찾아 독립하겠다고 1911년에 우이동에 땅 3만평을 사서 집을 지어 봉황각이라고 하고 1912년에 완공한다.

1912년 4월 15일부터 300만 교도 중에서 군.면단위 지도자급 인물들을 선발해서 봉황각에서 49일 수련을 시키는데 그때 수련 목표가 이신환성이다. 그때 2천만 동포라고 하던 시절에 전국의 천도교인 수가 300만이었다.

483명을 7차례에 걸쳐서 49일간씩 정신훈련을 시킨 것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완전히 결사대를 키운 것이다. ‘나라 찾는 일에 목숨을 바치라. 육신을 버리고 성령 개념으로 영원히 보국안민하는 뜻에서 하라’는 그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한 캐치프레이즈로 이신환성을 강조하신 것 같다.

성사께서 급해서 그랬는지 그때는 봉황각이 다 지어지기 전이었는데 1차는 도선사 한 칸을 빌려서 제자들 21명을 데리고 가서 훈련을 시작한다. 이후는 봉황각이 다 지어지니까 봉황각에서 수련시킨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봉황각이 3.1독립운동의 발상지다. 거기서 손병희 선생이 7년을 계시면서 제자를 양성하고, 독립운동을 구상했다. 우이동에 있는 봉황각은 지금은 서울시 문화재로 서울시에서 보호관리하고 있다.

정신개벽은, 천도교에서는 이 세상이 개벽되어야 하는데 개벽되는 것이 물질이 개벽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개벽되어야 한다. 누구 말처럼 지축이 23.5도 기울어진 것이 바로 서서 개벽되는 것이 아니고, 정신개벽을 우리는 주장한다.

그러니까 이신환성하면서 정신개벽하자, 그래서 이번 49일 특별기도 제목을 이신환성 정신개벽으로 했다.

달라진 시대적 과제, 조선독립과 남북통일

▲ 이범창 종무원장은 남북 천도교 동덕들이 자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곱 차례가 똑같이 이신환성 정신개벽인가? 손병희 선생 당시는 독립운동이 강조됐다면 지금은 어떤 정신이 강조되고 있나?

■ 이신환성 정신개벽 49일 특별기도는 현 임운길 교령 체제에 들어와서 일곱 차례를 하는데 이번 11월 22일 끝나는 것이 5차다. 지난해 두 번 했고, 올해 세 번, 내년에 두 번을 더하면 7차가 끝나는 것이다.

천도교인이 가지는 4대 목표가 덕을 천하에 펴는 포덕천하(布德天下),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넓게 구제하는 광제창생(廣濟蒼生), 나라를 잘 보존하고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잘사는 세상인 보국안민(輔國安民), 그 다음에 그걸 다 이룩하게 되면 지상천국(地上天國)이 된다. 우리는 천당이 따로 있다고 보는 게 아니고 내 마음속이 천당이고 이 세상이 천국이니까 이 세상을 지상천국으로 만들자는 것이 천도교인이 가지는 네 가지 목표의 의미이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개벽을 해야 한다. 지금 세상이 자꾸 혼탁해지는 게 사람들이 자기만의 욕심, 명예욕, 재물욕에 사로잡혀 있는데, 우리는 그 모든 걸 정신을 개벽하면 올바르게 세상이 개벽될 것이라고 본다.

이신환성도 그때는 조선독립을 위해 모두 일치단결하는, 내 몸을 돌보지 않는, 내 개인을 돌보지 않는 마음으로, 성령마음으로 바꾸는 것이었고, 지금 현재도 그때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포덕천하도 광제창생도 보국안민도 안 돼 있다.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남북통일도 그렇다.

□ 이번 방북에 대한 소감을 종합적으로 말씀해달라.

■ 특히 이번에 처음에 가서 만나면서 같은 천도교인이면서도 그동안 다른 체제에서 살아왔으니까 차이 나는 점들이 있다. 예를 들면 경전 중 대신사께서 직접 쓴 『동경대전』이나 『용담유사』의 번역 과정에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다.

그쪽 분들 보면서 애틋한 정도 솟아나고 그렇다. 대화를 하다보면 우리는 신앙적이고 저쪽은 남쪽보다는 신앙적인 것은 좀 덜하지 않는가 느낌을 받게 되고. 그런 것들을 자주 만남으로 해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더욱더 동덕 간의 정도 돈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지 이 사업은 지속적으로 이어져나가도록 정부의 많은 지원도 바라고, 우리들 스스로도 그런 부분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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