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결정된 이재승 교수가 자신의 저서 『국가범죄』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우리는 과거청산을 하라는 국제적 압력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를 들어 전범국가처럼 국제관계에서 저지른 잘못이 많다면 외세에 의해 강요된 것이 있겠지만, 우리는 주로 국민의 내부적 동력에 의해서 과거사를 정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높이 평가해야 한다.”

‘제5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결정된 이재승(47) 건국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이른바 ‘과거청산당’에 몸담았던 경험에 비추어 우리나라의 과거청산 작업의 수준에 대해 “물론 미진한 점이 있지만 너무 낮추어 보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우리 사회에 친일문제를 본격 제기한 임종국 선생(1929~1989)을 기리는 제5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학술부문에 『국가범죄』(앨피, 2010)를 저술한 이재승 교수를, 사회부문에 한일과거사와 친일문제 관련 법률활동을 편 이민석 변호사를 선정해 11일 오후 7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시상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재승 교수는 수상소감을 묻자 “약간 놀랐다. 식민지시대와 한국근대사를 다루는 분들이 받는 상인 줄 알았는데 법학이어서 뜻밖이었다”며 “월급을 받는 사람이니까 과외소득인 상금의 4/5는 공적으로 쓰기로 정해놨다”고 말했다.

“냉동국가인 우리나라에 15년간의 간빙기”

▲ 이재승 교수는 방대한 분량의 저서를 통해 국가범죄를 법학적으로 논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는 “10년 동안 발표했던 글과 보고서 등을 제가 작업했던 부분만 정리해서 2년 정도 작업을 거쳐 『국가범죄』를 내놓았다”며 “역시 역사를 다루는 것은 휴식이 있어야 한다”고 밝게 웃었다. 현정부 들어 과거사 청산 활동이 사실상 중단되자 집필에 집중해 72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국가범죄』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

그는 “2년 동안 책을 쓰면서 원래 ‘냉동국가’인 우리나라에 김영삼 정부 때부터 노무현 정부 때까지 15년 정도가 약간의 해빙을 맞은 ‘간빙기’ 같은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며 “혁명적으로 체제가 바뀐 적이 없어 철저한 원칙이나 악행을 저지른 자를 처단하는 식은 없었지만 가진 역량 범위 내에서 과거사 정리작업을 수행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지난 10년간의 과거사 청산 활동을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만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질적인 상승이 있어야 했는데, 진실화해위원회법이 만들어진 과정에서 너무 빨리 무모할 정도로 화해지향적 담론이 만연했고, 근본적 화해보다는 정파적 정당구조 안에서 빨리 덮고 화해하자는 분위기가 지배했다”고 아쉬워했다.

또한 “진실화해위원회법은 진실규명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진실이 규명된 사건이나 진실이 규명되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 사후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도 현재로서 그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다만 재심권고 결정은 그나마 법원에 의해서 활발하게 수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과거사 정리 작업을 통해 빈부격차를 줄이고 극단적으로 상대를 적으로 몰아치지 않는 정치문화를 갖게 됐는지 의문스럽다”며 “분단국가의 특수성으로 남북관계도 그렇지만 남한 내에서도 그런 화해가 없다. 사회적인 평등이나 정의가 과거사의 진정한 해법이 아니겠느냐”고 평했다.

“용산참사, 전형적인 정치재판이자 계급재판”

그의 연구성과는 매우 구체적이고 기존 법률 해석의 한계를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권위주의 시대에 재일교포 간첩조작사건에서 가장 유효한 증거로 채택됐던 ‘영사증명서’에 대한 자세한 법률적 반박이나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재심에서 재심법원이 ‘특수범죄처벌법’을 적용한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반박한 것이 그 같은 실례다.

그는 “조용수 재심에서 특수범죄처벌법이 유효하다고 전제하고 그 법을 해석해서 무죄라고 선고했지만 그런 논리는 있을 수 없다”며 “그 법은 무효고 조용수도 무죄다”고 해석하면서 “재심재판부는 박정희가 조용수와 같은 진보적 인물을 처형하려고 만든 도구로 조용수를 정말로 구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정치재판(정치사법), 계급재판(계급사법)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자의 지시에 따르거나 그들의 숨겨진 의도를 찾아서 실현하는 것이 정치재판”이며, “중상류층 출신에서 많이 배출되는 판검사들이 하층계급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에 대해 가혹한 불리한 재판을 계급재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용산 참사는 도시재개발과 관련하여 근본적으로 부정의하고 약탈적인 국가정책에 대한 항의과정에서 나온 사건이었다”며 “도시재개발 과정에서 생존권이 파괴돼 가는 도시 하층민의 입장을 국가가 보호하고 이들의 삶을 피폐하지 않게 하기는커녕 도시게릴라 수준의 이미지를 뒤집어씌워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은 전형적인 정치재판이자 계급재판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단적 불평등 없는 정치 공동체 만들어야”

▲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재승 교수가 10년간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보여준 '개척적인 학술연구와 실천적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현 정부에 대해서는 “과거사 기구들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활동을 멈추게 하려고 개정법을 제안하기도 했고, 끝나고 나서도 최종적인 해법 제공은커녕 극우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역사의 부정과 왜곡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사 정리에 관한 국제 규범들을 보면, 결국 피해자에게 경제적으로 배상하고 심리적 강화, 즉 자존심을 세워주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또 인권침해를 야기했던 문화와 정신을 어떻게 순치하고 치유하고 인권존중의 의식을 교육하고 형성시키는지를 사활적으로 다룬다”며 “문화적, 정신적 재건과 구축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극단적으로 불평등하지 않은 정치 공동체를 만드는 것, 정치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 극단적인 증오로 대결하지 않도록 정신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데올로기 문제는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교육을 통해 반성적으로 접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묻자 “박해받는 과정에서도 사회 최하층으로 취급되고, 그래서 구제받는 과정에서도 최하의 액수로 최하로 취급받은 삼청교육대 희생자들, 30년이 지난 상황에서 국가로부터 대략 2,000만원 정도를 손해배상액으로 받아야 했던 삼청교육대 사망자 유족들”이었다면서 “지금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동명이인으로 오인돼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인생이 꺽였던 착하게 생긴 당시 중학생이었던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는 “삼청교육대에 동원된 기제, 학생들을 끌어내던 학교의 기제까지도 파헤쳐야 하고, 80년대 학원사찰 때도 대학들이 고분고분하게 협력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문건들을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 책장에는 물론 바닥까지 널려있는 자료들 속에서 이 교수는 필요한 책들을 금새 뽑아들곤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번 수상 저작인 『국가범죄』에는 친일파에서부터 제주4.3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일본교포들에 대한 간첩 조작사건, 5.18군사쿠데타와 광주학살 등 수많은 주요 국가범죄들이 망라돼 있을 뿐만 아니라 군대에서의 자살자 문제 등 간과하기 쉬운 문제들도 풍부히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나치 청산의 상징인 뉘른베르크 재판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탄압에 대한 수상의 사죄문 발표를 비롯해, 미국의 노예소송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범죄와 청산 노력들이 다양하게 실렸다.

이처럼 국제적 감각을 갖춘 방대한 저술을 그가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2년여의 독일 유학을 거쳐 독일 법학자 라드브루흐 연구로 1997년 박사학위 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라드브루흐(1878~1949)는 생애의 마지막 작업을 나치 청산의 법철학적 기초를 확립하는데 쏟았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법무장관을 역임한 법학자다.

그는 “라드브루흐는 제2차세계대전후에「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나치체제의 법률이 형식은 법률이지만 내용은 범죄와 불법이라는 인식하에 법률보다 더 높은 법을 원용하며 나치 악법을 비판하고 청산하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요약했다.

그는 독일 나치체제에 대한 법적 비판을 무기삼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5.18군사쿠데타 세력에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검찰을 반박한 「쿠데타의 법리」를 1998년 『민주법학』에 기고했고,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과거사 청산에 팔을 걷고 나섰다.

9일 오후 3시경부터 인터뷰를 진행한 그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실에는 여러 서적들이 책장은 물론 바닥에까지 즐비하게 널려있었고, 그는 새로운 화제거리가 등장할 때마다 곧바로 관련 서적을 찾아와 설명에 몰입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를 제5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심사위원회는 이 교수가 지속해온 일련의 지적 노동이 강의실에서 이루어진 현학적 작업이 아니라, 피해자의 절규에 응답하기 위한 실천과정이었다고 이해했다”며 “현실에 기초한 이 교수의 이러한 개척적인 학술연구와 실천적 자세는 임종국 상의 제정 취지에 제대로 부합한다고 보며, 그 노고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의 활동에 대해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구사됐던 법리에 대해서 단행본을 하나 내려 하고, 냉전시대의 정치재판들을 정리해서 단행본으로 내고 싶다”고 여전히 저술 의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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