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다섯 가지 이유

제주 4.3항쟁 63돌을 하루 앞둔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또 하루 봄날이 저물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냇물, 바로 한라산의 천연암반수가 흐르는 강정천의 물흐름 소리가 마치 이곳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보존지역 일대임을 말하는 듯하다. 강정다리에서 바닷가 쪽엔 볼썽사나운 기지건설 공사장 울타리가 처져있어 강정앞바다를 내다볼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거리곳곳엔 청정해안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갖가지 펼침막들이 세워져 이 마을을 새로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기지건설로 토지수용이 된 듯한, 그래서 제주도 내에서도 명품으로 알려진 강정 감귤나무들이 함부로 베어지고 있는 중턱 올레길을 따라 강정 바닷가로 간다. 길 양쪽 헐리고 베어진 빈터가 된 곳에 유적조사 발굴터가 있다. 군사기지건설을 위한 유적조사 형식을 갖춘 전시용처럼 보인다.

해안 쪽으로의 올레길이 끝나는 곳에 ‘평화강정대장군’, ‘평화강정여장군’ 장승이 서 있고 바로 앞에 구멍 난 돌들로 쌓은 ‘생명평화 방사탑’이 있다. 천 조각으로 꼰 새끼줄로 감겨진 방사탑엔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합니다’라는 홍보판이 걸려있다. 다섯 가지로 정리된 이유는 이러했다.

첫째, 세계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건설은 어떠한 이유로도 타당치 않습니다(2002년 12월 유네스코의 생물권 보존지역 지정,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 제442호, 천연기념물 보호지역, 환경부지정 생태계 보존지역, 해양수산부지정 해양보호구역 등 5개 자연보호구역). 둘째, 제주 군사기지화는 동북아의 화약고일 뿐입니다(지정학적으로 제주도를 무장시키면 주변 국가와의 긴장도만 가열될 뿐 평화에는 그 어떠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임). 셋째, 강정 해군기지 건설은 절차적으로 잘못되었습니다(단 한 번의 주민설명회 등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음). 넷째, 국방부, 제주도청은 주민동의 없이 해군기지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런데 강정마을 주민주표가 무시되었습니다(2007년 8월 26일 강정마을 주민투표 실시. 유권자수 1050명중 725명이 투표. 기지건설반대가 680표(94%) 찬성 36표. 무효 9표 등이었음). 다섯째, 생활공동체가 깨진 강정마을 주민들은 3년째 첨예한 갈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가족·친지들 사이에도 해군기지 찬·반문제로 서로 등 돌린 지 오래이며 하루가 멀다 하고 주민갈등으로 인한 불화가 끊이지 않고 있음. 이런 가운데 건설되는 해군기지가 과연 주민들과 공생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주민들은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정부가 천억 금을 준다 해도 내 마을을 절대로 팔지 않을 것입니다. 해군기지 부속마을이 아닌 생명이 넘쳐나는 평화로운 강정마을 그 자체로 남고 싶습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 것인가. 강정마을 주민들의 해군기지건설반대 뜻은 이 홍보판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같은 주민들의 뜻을 지지·연대하고 받침해주는 설치물도 여기저기 눈에 띤다. 최병수 설치미술가의 솟대가 높이 세워져있고 청정해안 강정앞바다의 연산호 군락모습 등 아름다운 해저 자연유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언제 이곳까지 방문했는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의 ‘강정을 지키는 일은 제주의 평화를 지키는 일입니다’란 펼침막도 세워져 있다. ‘힘내라! 오키나와, 괌, 하와이, 제주-군사기지 결사반대’란 외국방문단체의 펼침막도 보인다. 그리고 수백·수천 명의 방문자 의견전단도 매달려 있다.

양윤모 선생

다시 바다 쪽을 본다. 검푸른 바다가 잔물결을 치고 있는 저만치에 밤섬이 누워 있다. 이 밤섬 바다 속은 천연기념물인 연산호 군락지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존지역인 것이다. 해군기지 방파제 건설로 물 흐름을 막으면 산호들은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이라는 환경운동가들의 말이다. 그런데 장승이 서 있는 인근 바로 해안선이라 할 곳에 절이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중덕사’였다. 낡은 천막이 바로 절이기도 한 푸른색 처마에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지키는 중덕사’라는 목각된 현판이 붙어 있다. 천막절 안엔 밥을 지어 먹고 잠자리가 될 몇 가지 안 되는 살림살이가 어지러이 놓여 있다. 과연 이것이 절인가. 살림집인가. 어떤 초소인가. 천막을 나오면서 느낀 의문은 곧 풀렸다.

아까부터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지켜보고 있던 도사처럼 보이는 이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개 선생님! 하고 소리를 지른다. 수수만년을 파도에 곱게 다듬어진 현무암 덩어리들을 조심스레 밟으며 마주 다가간다. 봄볕과 바닷바람에 거칠게 그을었지만 알아볼만한 얼굴이었다. 영화평론가로 유명한 양윤모 선생이었다. 아마 2006년께 한미FTA 반대와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에서 자주 보았을 얼굴이었다. 그가 바로 ‘중덕사’의 주지스님이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 장본인이었다. 서울에서의 문화 활동과 대학 강의까지 접고 2년 전부터 이곳 고향에 돌아와 강정마을 중덕바닷가에서 천막을 치고 먹고 자며 감시하고 기지건설 강행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 시공업체나 공권력과 부딪히는 일이 빈번했다. 2012년 4월 12일 공사강행을 막아서다 ‘업무방해’ 등 협의로 체포되어 구금되었고, 12월 27일 종교·시민사회단체의 해군기지 건설반대 기자회견을 하는 과정에서 천주교, 개신교 성직자 사회단체 대표 등 34명과 함께 업무방해 집시법위반 혐의 등으로 강제연행 되어 다시 구금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48시간 내에 다 풀려났지만 앞서의 ‘업무방해’ 등 불구속입건 때 벌금 190만원을 내지 않았다하여 양윤모 선생만 계속 구속상태였다. 해군기지건설반대투쟁의 정당성을 들어 벌금을 물지 않고 몸으로 때우겠다고 버티고 있었지만 마을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벌금을 내고 풀려나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필자가 강정마을을 다녀온 뒤 지난 4월 6일 또다시 기지건설시공업체가 방파제건설에 사용할 자재반입을 막아서다가 폭행까지 당하며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이곳에서 헌신적 활동을 다하고 있는 최성희 평화운동활동가도 함께 체포되었으나 그날 밤으로 풀려났고 양윤모 선생은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제주지방법원 영장담당판사는 8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양씨는 지금까지 해군기지와 관련해 비슷한 행위를 반복해 왔고 연재 사법계류중인 사안이 있음에 따라 재범의 위험이 크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음이 보도되고 있다.

‘군사기지 저지! 한반도 평화실현, 노동자 평화문화제’

이윽고 강정마을에 어둠이 깔린다.

강정교 인근 잔디광장에 무대가 세워졌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공무원노조,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1200여 노동자들이 일부 가족들과 함께 4.3항쟁 유적지 답사를 마치고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 생명평화순례단, 개척단,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비롯한 환경·평화단체와 그 활동가들이 자리를 같이 하고 촛불을 밝혔다. 그리고 ‘군사기지 저지! 한반도 평화실현, 노동자 평화문화제’가 민주노총 엄미경 통일국장 사회로 열렸다.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 건설 반대한다!” 등 구호를 외친다음 보건의료노조팀의 ‘평화의 노래’ 공연, 평화의 섬 제주도를 그린 영상물 상영, 민주노총 각 단위 통일위원장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황수영 본부 통일위원장이 선언했다. “평화의 섬을 지키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에 노동자들이 함께 하겠습니다!” 큰 박수가 터진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땅을 잘 지켜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결사항전 정신으로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진다. 일본에서 온 도로치바 노조위원장도 노동자의 권리와 함께 평화를 지키는데서 민주노총과 굳건히 연대하겠다는 연대사를 했다. 무형문화재 전수조교 조철현님의 대금연주, 마당극패 ‘걸판’의 해군기지건설반대 풍자마당, 울산노동자노래패의 노래공연 등이 이어졌다. 이렇게 1500여 촛불대열은 강정마을 아니, 제주와 이 땅의 생명평화를 노래하고 다짐하고 있었다.

문화제를 마친 노동자들이 숙소로 떠난 뒤 강정마을 의례회관에 아쉬움을 느낀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해군기지 반대 강정주민대책위 고권일 위원장(이 분도 서울에서 만화가로 명성을 떨치었으나, 고향에 내려와 기지건설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과 마을원로들, 생명평화 100일 순례단의 권술용 단장과 단원여러분들, 강정대책위에 큰 성원을 하는 부산 어느 학부모회원들, 분쟁이 있는 곳에 정의를 위해 싸우는 ‘개척단’의 송강호 박사와 여러분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의 배종렬 상임공동대표와 김종일 현장팀장, 김영제 노동팀장, 광주·전남 활동가들, 양윤모 전 영화평론가협회장, 서귀포 시의원들, 이곳에서 5개월이 넘게 헌신하고 있는 최성희 평화운동활동가, 남양주시에서 온 양홍관 환경운동가, 노래도 너무 잘하시는 대책위 여성위원장, 문화제에서 대금연주를 했던 조철현님과 연주단 여러분 등 50여명이 함께 뒷풀이를 하며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공동의 목표와 실천을 다짐하고 있었다.

이날 밤에 있었던 일은 강정마을에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생명·평화를 위한 해군기지반대 활동의 일상적인 일일뿐이다. 수많은 종교단체 평화단체 환경단체 시민사회단체들과 활동가들이 이곳을 찾아와 평화미사 기도회, 평화문화제, 평화순례, 강연회, 토론회, 결의모임, 기자회견, 해군기지 건설반대 서명운동, 1인 시위, 단식농성 등에 참여하고 지지와 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나라 밖에서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009년 10월 22일 ‘우주와 핵무기반대 글로벌네트워크’ 부르스 개그논 사무총장이 강정마을을 방문했고 천주교 제주교구에서 강연회를 가졌으며 해군기지 반대 국제네트워크를 통한 50여 나라 600여 단체 개인의 서명을 보내오기도 했다. 생명과 평화를 위한 일에 국경과 국적을 뛰어 넘고 있었다.

정부당국의 해군기지건설 목적과 계획

그렇다면 이처럼 나라 안팎에서 반대하는 해군기지건설을 정부와 군당국은 어떤 목적과 계획으로 추진하려는지 알아보자.

해군자료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목적은 남방해역과 해상교통로에 대한 효율적인 감시와 보호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유사시 반응시간 단축 및 전력집중이 용이함과 해군전력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지사업 근거로는 방위사업법과 국방중기계획이고 전력강화 방침에 따른 안보국책사업이라고 주장한다. 중요사업내용을 보면 총공사비 9,715억여 원(2011년 현재), 사업규모는 토지매입 85,000여평, 바다매립 6만평, 계류부두 2,223m, 건물 32동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향후 기지 건설에 대한 기대효과로, 제주 남방해역의 안전통항보장 및 유사시 작전반응시간 단축, 책임해역에 대한 경비작전 수행 및 해양 분쟁시 잠재적 위협 차단, 전력화되는 함정의 규모를 고려한 전개기지 확보로 꼽고 있다. 또한 추진경위 몇 가지를 보면 1993년 12월에 156차 합동참모회의에서 제주해군기지 소요결정을 했고 2007년 6월 8일 국방부가 제주도에 해군기지건설 지역을 통보했다. 2007년 12월 ‘관광미항 기능의 세계적인 군항건설’을 대통령(이명박)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2009년 12월 17일 환경영향평가와 절대보존지역 변경동의안을 제주도의회에서 통과한 것 등을 들고 있다.

이 같은 제주해군기지건설계획과 추진에 대해 제주도민 특히 강정마을 주민들의 반대이유는 앞에서 다섯 가지 이유로 소개했지만, 해군기지부지 선정과정과 절대보존지역 변경동의안 등 문제점을 다시 정리해 보고, 끝으로 평화의 섬 개념에 배치되는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짚어보기로 한다.

해군기지 부지 선정과정의 문제점

제주해군기지 대상지는 맨 처음 화순항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로 위미로 이동되었다가 2007년에 강정마을이 ‘적정지’로 되면서 강정마을이 기지건설반대투쟁의 중심이 되었다. 화순에서는 5년이, 위미에서도 2년이나 걸리면서 적정지를 둘러싼 주민들과의 격론이 벌어졌었다. 그런데 강정마을은 일주일도 안 돼 전격적으로 처리됐다. 기지건설에 대한 사전인식이 전혀 없었고 기지가 유치되면 갖가지 혜택이 주어진다는 말에 2007년 4월 26일 마을 임시총회에서 찬성하는 86명만 모여 결의했다(강정마을은 600가구 주민 2000여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기지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임시총회를 열려면 7일 전에 공고해야 하는데 3일 전에 했고 마을 재산 매각 처분은 150명의 정족수가 있어야 한다는 마을 ‘향약’ 규정을 들어 임시 총회 결의가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7년 5월 14일 김태진 도지사는 도민 여론조사를 근거한다며 강정마을을 해군기지의 최우선 대상지로 선정 발표했다. 이에 강정마을 주민들은 2007년 8월 26일 주민투표를 하여 1050명 유권자 중 726명이 참석 680명이 기지 유치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리고 주민동의 없는 기지 건설을 하지 않겠다고 한 공언을 지키라고 국방부와 제주도정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 대상지로 임의 선정된 강정마을 주변 일대는 생물권 절대보존지역이었다. 그러나 기지 건설에만 집착한 국방부와 제주도정은 절대보존지역 변경을 시도한다. 2009년 9월 17일 제주도 의회는 절대보존지역 변경동의안과 환경영향 평가 협의동의안을 임시회의에서 한나라당 의원들만으로 날치기 통과시켰다. 절대보존지역 변경동의안은 15일 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에서 부결된 것을 한나라당 의원 24명의 서명을 받아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 출석의원 27명 가운데 18명 찬성으로 통과시켰고,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은 의장 직권으로 상정 민주당 의원들의 퇴장 속에 통과시켰다. 강정주민들에 따르면 본의회에서는 찬반토론도 없이 거수투표를 했고, 의결정족수가 부족하자 재투표를 진행했다며, 일상부재의 원칙에 위배되는 무효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2011년 3월 15일 제주도 의회는 총의원 수 41명 중 재석 의원 27명 가운데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의원 22명이 절대보존지역 해제 취소에 대한 재결의를 했다. 2009년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한 날치기 처리를 되돌려 놓은 것이다. 강정마을회는 17일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은 법적으로 하자가 많은 해군기지 건설을 당장 중단해야 하며 도지사는 절대보존지역 변경처분을 직권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평화의 섬 선포와 군사기지 건설은 양립할 수 없는 상극관계

평화의 섬 선포와 군사기지 건설은 처음부터 양립할 수 없는 상극관계였다.

제주도에 대한 평화의 섬 개념은 평온하고 화목함이라던가, 화합하고 안온함을 뛰어넘는 모든 폭력과 전쟁수단이 없는 평화를 의미한다. 바로 대결과 전쟁과 전쟁수단이 없고 어떤 주변으로부터의 물리적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는 조건을 말한다. 그것은 제주도가 지니고 있는 비극적 현대사를 반영한 뼈아픈 반성과 성찰이기도 하다.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님은 2007년 5월, 제주해군기지 계획과 관련하여 ‘평화의 섬 제주를 염원하며’에서 이렇게 강론했다. ‘제주는 한반도에서 특별한 역사적 배경과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59년 전 4·3 사건으로 무고한 생명 3만 명이 무참히 학살된 땅입니다. 한반도 역사상 이만큼 죽음이 연출된 적이 없습니다. 제주의 땅은 그들의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주의 땅은 그들의 희생을 거름으로 참된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어떤 이유로도 인간들이 형제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기나 무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땅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이보다 더 제주도민의 뜻과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어야 함을 옳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게는 3만에서 많게는 8만의 주민이, 전체 제주도민의 1/3 이상이 마치 인간 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그 야만의 행패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희생자들은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거나 무고한 제주 민중이었고 학살자는 미군정과 그 하수인들이었다. 해방 공간에서의 가장 큰 민족적 과제는 통일된 자주정부 수립이었다. 제주 민중은 그 민족적 과제의 실천과정에서 희생되었다. 때문에 평화의 섬 의미 속엔 주교님이 말씀하신 무기와 무력으로부터 자유와 함께 외세의 지배간섭으로부터의 자주성을 지키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제주도는 또한 일제의 각종 군사시설 구축으로 갈기갈기 찢긴 상처를 갖고 있다.

대륙침략을 획책하면서 1931~1936 년까지 대정읍에 60만㎡ 항공기지를 완성했고(알뜨르 비행장), 1945년까지 80만평으로 확장했다. 1945년 패색이 짙어지면서, 제주도를 제2의 오키나와(옥쇄작전)로 삼기 위해 주둔병력을 7만 4천여평으로 늘리면서 섯달오름의 고사포 기지, 송악산 알오름의 거대한 지하진지를 비롯하여 수많은 오름들에 동굴진지 송악산- 사계리 - 화순항 - 월라봉에 이르는 해안 특공기지를 설치했다. 이많은 군사시설 구축에 제주 민중이 강제 동원되었으며, 하마터면 남태평양의 많은 섬들과 오키나와에서의 옥쇄작전처럼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일본군의 방패감으로 희생될 뻔하기도 했다.

제주도민들은 4·3 항쟁과 무참한 학살을 잊을 수 없고 군사시설로 인한 아찔한 살륙 전쟁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평화의 섬’ 선포는 이러한 비극적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로 2005년 1월 1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의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계승하고 제주를 세계평화의 전진기지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 선포했었다. 도한 2006년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4·3 위령제에 직접 참석하여 희생자와 도민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고 화해와 상생으로 가는 제주도민을 격려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또 다른 문제점은 미국의 해양패권을 위한 군사적 발판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바로 대중국 미사일 방어체제(MD)의 전진기지로 이용될 위험성이다. 중국은 유사시 미국의 MD 기지를 공격한다는 대응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의 독립언론인 매튜 라이스는 ‘강정 마을 해군기지 건설이 미국 본토 방어용이며, 대한민국안보에는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제주도에 이지스함을 정박시킴으로써 중국을 자극하여 유사시 제주도를 주요 타격목표로 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주간지 <시사 in>이 보도한 바 있다(2010년 7월 2일)

또한 ‘우주와 핵무기 반대 글러벌 네트워크’의 브루스 개그논 사무총장은 2009년 10월 22일 제주도를 방문한 강연에서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에 편입되어 경제적으로 중국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미국이 중국 석유 수입로인 말라카 해협 통제를 통한 중국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며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미 전쟁군함들이 제주 기지에 배치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과 예상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오늘의 한미관계로 보아 충분히 점쳐지고 있다. 부산이나 진해, 평택항을 핵 항공모함과 핵잠수함까지도, 제집 드나들 듯 하는데, 이들 항구가 연안항이라면 제주항은 대양항 성격을 갖고 있어 더욱 자유스럽게 이용할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한미군사동맹이 강화되고 있으며,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군사패권주의와 이명박 정부의 반북대결정책이 맞아 떨어지고 있는 조건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렇듯, 생명평화에 대한 인류 지향에 반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제주도가 지니고 있는 평화의 섬 의미는 지켜져야 하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의 자랑인 자연 유산은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 또한 수백 년을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아오면서 땅과 바다를 기름지게 가꾸어 온 강정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훼손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양심적 활동에 대한 공안 탄압은 중지되어야 하고 구속된 양윤모 선생은 즉각 석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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